공무원들의 ‘고무줄 나이’ 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6.24 10:53:36
  • 호수 12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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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다가오니 ‘생년’ 슬쩍~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주머니 털어도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던가. 청렴결백해야 할 공무원들이 꼼수를 부리고 있다. 편법으로 정년퇴임 시기를 늦추는 공무원에 대해 <일요시사>가 알아봤다. 
 

▲ 본 기사는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월급쟁이들에게 정년은 유효기한을 의미한다. 정년이란 공무원이나 회사의 직원이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퇴직하도록 정해진 연령을 뜻한다. 현재 공무원 정년퇴직 나이는 국가공무원 법령 제74조에 의해 60세로 정해져 있다. 

꼼수

최근 공무원들이 정년퇴임을 늦추기 위해 나이를 변경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무원 A씨는 “안정적인 조직 관리를 위해 정년에 가까운 나이를 배려해 승진자를 결정한다. 나이로 배려를 받은 승진자가 승진하고 나면, 나이를 1~2살 줄여 승진 인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며 위례시민연대에 제보했다. 

이에 위례시민연대는 올해 5월15일부터 6월15일까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중앙부처 국가공무원, 지방자치단체 지방공무원, 교육 자치단체 지방공무원 등 공무원 나이 변경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승진한 공무원들이 정년퇴임을 늦추기 위해 나이를 줄이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의혹이 제기됐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2015년 1월부터 2019년 5월까지 152명의 공무원이 나이를 변경했다. 이 중 146명(96%)이 나이를 평균 12.6개월로 줄였다. 2년 이상 줄인 공무원은 총 20명(중앙부처 4명, 지방자치단체 16명)이었다.

해당 기간에 나이를 줄인 146명 중 60%를 차지하는 87명(중앙부처 4명, 지방자치단체 82명, 교육자치단체 1명은 승진하고 나서 나이를 줄였다. 가장 많이 줄인 경우는 서울 동작구 공무원이 2016년 10월에 원래 나이보다 무려 43개월을 줄였다. 

실제로 2015년 1월 5급으로 승진한 구로구청 공무원 B씨는 그해 9월 자신의 출생연월일을 1956년 11월서 1958년 1월로 바꿨다. 정년을 1년 3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나이는 59세서 57세가 됐고, 정년은 2016년 12월서 2018년 6월로 1년6개월 늦춰졌다. B씨는 원래 정년인 2016년 12월에 퇴직했다.

그러나 늘어난 정년보다 앞서 퇴직하는 형식이 되면서 일반 퇴직이 아니라 명예퇴직이 됐다. 일반 퇴직자들이 못 받는 퇴직금까지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해당 직급서 1년 이상 근무한 명예 퇴직자는 한 직급 올린다는 규정에 따라 5급이 아니라 4급으로 공직을 마쳤다.

5년간 96% 편법으로 ‘어리게’
무려 43개월이나 줄여 적발도

위례시민연대는 공무원 연령 변경 신청에 대해 엄격하게 허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가정법원에 연령정정신청을 해 나이를 변경할 수 있다. 

호적상 출생연월을 수정하는 절차는 간단하다. 변경을 원할 경우, 관할 가정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정정허가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단, 호적상 날짜와 실제 태어난 날짜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 서류가 필요하다. 족보나 출생증명서, 백일 사진 등 출생연월일을 소명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면 된다. 


위례시민연대 관계자는 “우리사회는 한국전쟁 이후 늦장 출생신고로 인해 실제 나이보다 1~3세 적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공무원 사회에서는 오히려 실제 나이보다 많은 경우가 많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어 “설령 실제 나이가 많아 줄였다 할지라도 오랜 세월 공신력을 갖고 행사했던 나이를 왜 굳이 이제 와서 공무원 말년에 바꾸려고 하는지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특이한 점은 정년이 62세인 교원(교육공무원)이 나이를 변경한 사례는 없다. 정년퇴직을 늘리기 위해 나이를 낮추는 얌체 공무원들의 행태는 성실한 후배 공무원들의 승진 기회를 박탈하고 조직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무원들이 정년퇴임을 앞두고 나이를 낮추는 데는 과거의 판결사례가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호적변경으로 나이가 한 살 어려졌다면, 정년 역시 그에 맞춰 1년 연장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정년제란 근로자가 일정 연령에 도달할 것을 이유로 해당 근로자의 근로계속 의사나 능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제도나 관행을 말한다”며 “근로계약서 정년을 정할 경우 정년퇴직일은 생물학적 연령을 토대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규범적 기준으로 판단돼야 할 근로계약 요소”라고 판결했다. 

5년 전에도 유사한 판결이 나왔다. 가족관계등록부상 생년원월이 변경됐다면 바뀐 나이 기준으로 정년 퇴직일을 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판결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부장판사 마용주)는 서울메트로 직원 B씨가 “정정된 생년월일 기준으로 정년 퇴직일을 정해야 한다”며 회사 상대로 내 정년확인 청구소송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014년 9월 밝혔다. 이수정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서 “실제 나이를 증명해 줄 서류가 충분하다면 보통 2~3개월이면 허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년 연장’ 외국은?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외국의 사례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은 ‘70세 정년’을 계획을 세웠으며 독일도 정년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미국과 영국은 정년을 폐지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15일 아베 신조 총리 주재로 열린 미래 투자 회의에서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7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안을 확정하고, 내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개정 법률이 발효되면 기업들은 현행 65세인 정년의 연장·폐지 또는 퇴사 후 재고용, 다른 회사 재취업 및 창업 지원을 위한 노력 등을 해야 한다. 


독일도 현재 65세인 정년을 2029년까지 67세로 연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연금 등 국가 재정 부담을 완화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부족해진 숙련공의 기술 노하우를 더 활용하자는 취지도 반영됐다. 

미국은 1986년 정년제를 없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퇴직시키는 것은 또 하나의 차별’이라는 여론을 반영했다. 영국도 2011년 같은 이유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년을 폐지했다.

다만 이들 영미권 국가는 고용상황이 한국이나 일본과는 상이하다. 미국은 기업이 근로자에게 사전통지 없이 고용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임의고용 원칙이 통용되는 국가다.

영국 역시 1980년대 성과주의 임금제도가 자리 잡아 기업의 고령자 고용이 큰 부담이 되지 않는 환경이다. 

사상 최고 수준의 청년실업률, 국민연금 조기 고갈 우려 등을 참작할 때 이들의 사례를 바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지금의 연공서열 체계에선 기업이 정년 연장을 꺼릴 수밖에 없다. 정년을 연장하더라도 기업은 청년층 채용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3년 60세 정년연장을 추진할 때 임금피크제를 놓고 노사 갈등이 격화된 바 있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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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