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법조 커넥션’ 대해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5.27 10:51:40
  • 호수 12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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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접수한 서초동 영감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여의도서 서초동 출신의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법조계 출신들이 정당의 주요 요직을 장악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자유한국당서 강하다. 자유한국당의 서열 1·2위는 모두 법조인 출신이다. 자유한국당은 최근 법률지원단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고소·고발을 하기도 하고 당하기도 하는 자유한국당에게는 법조인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자유한국당은 진정한 ‘법조당’으로 거듭날 기세다.
 

▲ 법조인 출신인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최교일 의원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여러 별명 중 법조당이라는 별명이 있다. 판사·검사·변호사 출신, 즉 법조인들이 예전부터 요직을 차지해왔기 때문이다. 한때 한나라당(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의 촉망받는 대선주자였던 이회창 전 총재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대법원 대법관을 지낸 성공한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다. 

예전부터
법조 강세

새누리당 대표와 박근혜정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지낸 황우여 전 대표 역시 판사 출신이다. 그는 제주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를 역임한 바 있다. 

검사 출신도 있다. 홍준표·안상수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최근까지 한국당 대표였던 홍 전 의원은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출신이다. 그를 대표하는 별명 중 하나가 ‘모래시계 검사’다. 한나라당 대표였던 안 전 의원 역시 홍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출신이다.

법조당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국당 서열 1·2위인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모두 법조인 출신이다. 황 대표는 지난 1981년 23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13기)에 합격한 뒤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 대구고검장 등을 지내다가 2011년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퇴임했다. 검사 재직 시절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꼽혔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초대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돼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했다. 2015년 6월 국무총리로 취임한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 19대 대선이 열리기 전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했다.

나 원내대표는 1990년 제34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24기)에 합격한 뒤 부산·인천지법, 서울행정법원 등에서 판사로 일했다. 그는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당시 대선후보 캠프에 영입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후에는 17대 총선을 시작으로 지난 2016년 20대 총선까지 내리 4선을 기록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최근 한국당 전당대회서 경쟁한 당 대표 후보들이 모두 법조인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주목을 받은 적 있다. 황 대표가 당선된 전당대회였다. 당시 황 대표와 맞붙은 후보들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진태 의원이었다. 

한국당의 유력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오 전 시장은 제26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17기)에 합격한 뒤 곧바로 변호사로 활동했다. ‘보수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김 의원은 제28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18기)에 합격한 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춘천지방검찰청 원주지청 지청장 등을 역임했다가 변호사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당권 도전을 저울질했던 주호영 의원 역시 제24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14기) 출신으로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지냈다.

민주당은
민변 주류

한국당은 최근 법조당의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황 대표의 지시로 37명이던 당 법률지원단 규모를 최대 300명으로 늘리는 공개 모집을 진행 중이다. 대상은 변호사, 공인회계사, 변리사, 세무사, 법무사, 관세사, 노무사로 다양하다. 기간은 27일까지다.


한국당 법률지원단장인 최교일 의원은 지난 20일 <문화일보>를 통해 “당 지도부가 법률자문단을 300명까지 늘리려는 계획에 따라 27일까지 인재를 모집한다”며 “현재 약 100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법률지원단 모집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수로 읽힌다. ▲인재영입 ▲법률 대응이 그것이다.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서 인재영입은 필수다. 내년 총선서 얼마나 참신한 인재를 선거 전면에 내세우느냐는 선거의 당락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다.

지난 총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경찰 출신의 표창원 의원, 검찰 출신의 조응천 의원 등을 영입해 큰 효과를 본 적 있다.
 

▲ 문희상 국회의장을 모욕 및 폭언 성추행 혐의로 고소장 제출하러 가는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사진 가운데).

법률대응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새로 모집된 법률지원단의 주요 활동은 ▲당 관련 주요 사건 대응 ▲공익제보자 보호 ▲문재인정권 불법 사례 발굴 등 적극적인 대여투쟁 등이다.

황 대표, 나 원내대표 등 법조인 출신이 당 지도부를 구성하면서 한국당이 문재인정부와 집권여당인 민주당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하는 경우도 늘었다. 지난 3일 한국당은 민주당 우상호, 박찬대 의원을 나 원내대표에 대한 모욕죄 혐의로 고발했다. 

지난달 26일에는 ‘문희상 국회의장 성추행 논란 관련 고소장’을 대검찰청에 접수했다. 앞서 같은 달 15일에는 한국당 최교일, 이만희, 이양수, 송언석 의원이 이미선 당시 헌법재판관 후보자 부부를 자본시장법, 업무상기밀누설,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6명 중 1명 법조인 출신 금배지
‘민’ 변호사, ‘한’ 판검사 강세

반대로 여야로부터 한국당이 고소·고발을 당하는 경우도 늘었다.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국회 회의장 불법 점거 등 한국당 국회법 위반 관련 고발장’을 접수했다. 정의당은 지난달 29일 나 원내대표 등 한국당 의원 42명을 국회선진화법 및 형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같은 날 민주당은 나 원내대표 등을 국회법 위반 및 특수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2차 고발했다.

현재 국회는 ‘고발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야가 고발을 난무하고 있다. 한국당 입장에선 대비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고발을 취하할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22일 확대간부회의서 한국당의 고소·고발 취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 자리서 “국회 정상화에 대한 공감대만큼 여야 간 뚜렷한 입장차를 느끼고 있다. 여야가 충돌과정서 있었던 것을 털어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면서도 “그렇지만 일반적인 역지사지는 가능하지도 않고 또 진실하지도 않다. 과도한 요구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한국당을 향해 조건 없는 국회 정상화를 촉구했다.

국회에는 많은 수의 법조인 출신 금배지가 활동해왔다. 16대 국회에선 41명, 17대 54명, 18대 59명 등 그 수도 증가해왔다. 19대 국회에선 42명으로 주춤했으나, 20대 국회서 49명으로 다시 증가했다. 대략 국회의원 6명 중 1명이 법조인 출신인 셈이다.

법조인 강세는 한국당만의 일은 아니다. 20대 국회 법조인 출신 당선자 49명 중 민주당은 22명으로 한국당 15명을 앞질렀다. 


면면을 봐도 화려하다. 19대 대선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추미애 전 대표는 광주고등법원 판사 출신이다. 행정안전부장관인 진영 의원 역시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를 역임한 바 있다.

한국당은
판·검사

민주당과 한국당의 차이라면 민주당은 변호사 출신이 많은 반면, 한국당은 판검사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우리 당에는) 판검사 출신이 너무 많아 법조 출신 공천을 대폭 줄여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민주당에서는 특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종걸을 비롯, 박범계·전해철·금태섭·박주민·김해영·안호영·백혜련·전현희 의원 등이 민변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장관도 민변 여성인권위원장 출신이다.

야당에선 바른미래당 박주현 의원과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이 대표적 민변 출신 국회의원으로 꼽힌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가 여야 법조인 출신들의 출동 지점으로 예상된다. 최근 국회에선 여야 법조인 출신들이 이들 쟁점과 관련해 저마다 한마디씩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출동하고 있다.
 


공수처 설치법에 대해 한국당 나 원내대표는 “말 안 듣는 판검사 다 잡아넣겠다는 것”이라며 “사법부를 장악하겠다는 공수처법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한국당)가 절규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민변 출신들을 대거 공수처 검사로 임명을 해서 국가 사정기구도 제도적으로 장악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고 한 판단을 근거로 공수처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재정 대변인은 지난 21일 “검찰은 국민 신뢰를 회복할 기회를 연이어 놓치고 있다”며 “공수처 도입 등 검찰 개혁을 완수해 검찰의 과오가 검찰에 의해 은폐되는 현실을 바꿔내겠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민변 사무차장 출신이다.

검경수사권조정 문제는 여야가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셈법이 다르다. 당정청은 지난 20일 경찰 권한 남용과 비대화를 막기 위해 일반경찰과 수사경찰을 분리하는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 등을 신설하고 정보경찰의 정치관여와 사찰을 원천 차단하는 통제 시스템을 마련키로 했다.

법률지원단 300명 왜?
고발정국, 맞불 필요성↑

이는 검찰에게 ‘경찰개혁’이라는 대안을 제시함과 검경수사권조정에 반발하는 검찰을 압박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실제 국수본이 발표된, 민주당의 ‘경찰개혁의 성과와 과제 당정협의’에서는 검찰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당시 “견제와 통제가 없는 권력기관의 권한 남용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권한 분산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에 대한 검찰 일부의 반응은 지극히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을 향해서는 “2년 임기 내에 검찰 스스로 국민 기대에 미칠 만한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는 따가운 국민 평가를 총장은 경청하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앞서 문 총장은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해 공개 반발한 바 있다.
 

▲ ‘공안통’으로 불렸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경찰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이 원내대표는 “버닝썬 수사 결과에 국민이 실망하고 있다. 부실 수사로는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경찰 내부의 유착 고리가 있다면 단호히 끊어내야 한다”며 “검찰의 권한을 조정하는 만큼 경찰의 책임성도 높여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국당은 국수본에 대해 즉각적인 우려를 표했다. 나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당정청은)어제(20일) 경찰에 대해서 국수본을 설치하고 인권위의 경찰통제를 강화하겠다고 했다”며 “지금 나온 이런 안들이 공수처라는 무소불위의 ‘대통령 검찰청’에 이어서 ‘대통령 하명수사본부’를 만드는 꼴이 아닌가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간사 한국당 윤한홍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사법개혁의 본질인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 공정한 수사를 위한 것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며 “공수처와 검찰, 경찰, 국수본까지 가세해 (당정청이) 수사총량을 더욱 늘릴 것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수본에
야당 반발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은 장단점을 갖고 있다. 원칙에 따른 의정활동에는 능하지만, 시시비비를 가리길 좋아해 통합을 이뤄내는 데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법조인 출신에 비해 정치적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타협’이 생명인 정치의 본질과 시시비비를 좋아하는 법조인의 성질이 맞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일례로 법조인 출신이 대거 포진해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선 양보 없는 정치 공방으로 민생 법안이 번번이 막히기 일쑤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경찰개혁 핵심은?

당정청이 발표한 ‘경찰개혁’의 핵심은 쪼개기를 통한 권력 분산이다. 국가경찰, 수사경찰, 자치경찰로 조직을 세 개로 쪼개 운영하겠다는 것인데 주된 업무가 서로 다르다.

국가경찰은 행정·정보·보안·경비·외사 등의 업무를 주로 맡을 것으로 보여진다.

수사경찰은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가 관할한다. 이들은 이름처럼 광역범죄, 일반 형사 및 수사사건 등 수사만을 전담한다.

자치경찰의 업무는 국가경찰, 수사경찰에 비해 국민들과의 거리가 가깝다. 여성·청소년·아동·장애인 보호 및 교통법규 위반 단속, 지역 경비 활동 등을 주로 할 전망이다.

당정청은 국수본부장의 임기를 3년 단임으로, 자격요건을 경찰에 국한하지 않고 법조인·대학 교수 등으로 확대해 경찰청장의 인사권을 제한하겠다는 복안이다.

국수본은 검경수사권조정으로 경찰 권력이 비대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한 당정청의 대안 중 하나다.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이날 회의서 “경찰 수사에 대한 공정·엄정성에 여전히 의심이 있다. 일반 경찰과 수사 경찰을 분리하는 국수본 신설이 필요하다”고 당위성을 설명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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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