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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1월25일 11시01분

정치

‘노무현 서거 10주기’ 시달린 친노 기업들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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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풍에 흔들리다 ‘순풍에 돛’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5월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식으로 가득했다. 서거 10주기를 맞아 다양한 기획과 행사가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 기각이 15년째 된다는 점도 그 의미를 더했다. <일요시사>는 5월 마지막 주, 노 전 대통령의 자취가 묻어 있는 기업들을 짚어봤다.
 

▲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사정의 칼날은 주변인들로까지 번졌다. 당시 여러 기업인들이 검찰 수사를 받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정당한 수사였다는 평가와 표적수사라는 비판이 혼재했다. 노 전 대통령의 타개로 이를 둘러싼 논쟁은 첨예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고 적었다.

정당수사?
표적수사?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킨 사람이다. 강 회장은 부산으로 건너가 30년 가까이 섬유업에 종사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전북 부안 출신인 강 회장은 지역적 편견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이를 극복하려 애썼다.

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자처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꿈이었던 ‘지역주의 타파’는 강 회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강 회장은 아무런 대가 없이 노 전 대통령을 도운 인물이다. 강 회장은 “나는 젊었을 때부터 호남사람으로서 부산에 건너와 사업을 했다. 늘 호남에 대한 끝없는 편견과 선입견에 시달려야 했다. 호남 놈이 얼마나 신용 있고 의리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 부산 사람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줬던 호남에 대한 의리가 있었다면, 나 또한 역시 호남사람으로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강 회장은 2003년 12월 배임과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강 회장은 영장실질심사서 “내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건 검찰이 다 안다”며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강 회장은 영장이 발부되자 “모든 것을 가슴에 묻고 가겠다”며 서울 구치소에 수감됐다.

검찰은 이듬해 4월 강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40억원, 몰수채권 3억원 그리고 추징금 14억원을 구형했다. 강 회장은 이날 “지금까지 노 전 대통령에게 부탁한 적 없고, 정치권에 돈을 준 적도 없다”며 “대통령 주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역차별 받는 것 같아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1심 재판부는 강 회장에게 징역 3년과 집행유예 4년, 벌금 15억원과 추징금 2억원, 몰수 채권 3억원을 선고했다. 강 회장과 검찰은 모두 항소했지만 재판부는 “원심은 적절하다”며 이를 모두 기각했다.

이곳저곳 남아 있는 노의 흔적
수사 등 친분 기업인들 수난

강 회장은 2009년 4월 횡령 등의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강 회장은 대전교도소로 향하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대통령을 도왔다고 이렇게 정치 탄압을 하니 달게 받겠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다. 한국 법이 그렇다면 법대로 하겠다”고 강변했다.

구속 수사를 받던 강 회장은 보석을 신청했다. 강 회장은 2007년 뇌종양 진단을 받아 투병 중이었다. 강 회장은 영장실질검사 때 건강진단서를 제출했지만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이후에도 강 회장은 보석을 신청했지만 사건 전담 재판부가 미정됐다는 이유와 진단서 사실조회를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 회장은 옥중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게 됐으며 보석 석방 후 봉하마을 빈소를 찾아 대성통곡했다.

검찰은 같은 해 9월 강 회장에 대해 징역 6년과 벌금 12억원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12월 강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검찰과 강 회장은 모두 항소했지만 재판부는 이듬해 6월 이를 모두 기각했다. 2012년 5월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강 회장은 3개월 뒤 세상을 떠났다. 주변에선 뇌종양 치료시기를 놓쳤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문재인 고문과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빈소를 찾아 눈시울을 붉혔다. 강 회장은 ‘바보 노무현’에 빗대 ‘바보 강금원’으로 불렸다.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귀향했을 때 그와 보좌진 등을 위해 ‘경남 김해 봉하 연립주택’을 지었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은 지난해 5월 봉하 연립주택을 ‘강금원 기념 봉화연수원’으로 바꾸고 개관했다.

차례로…
줄줄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견인이었다. 박 회장은 정관계 인사들에게 거액의 금품을 건넨,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의 장본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박 회장은 지난 2008년 12월 조세포탈 및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박 회장은 “착잡하지만 억울하지 않다”며 “조세포탈 부분은 시인한다”고 털어놨다. 다만 뇌물공여와 ‘박연차 리스트’에 대해서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듬해 6월 박 회장은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 정관계 인사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박 회장 역시 강 회장과 마찬가지로 구치소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었다. 당시 박 회장은 큰 충격으로 건강상태가 악화됐다.

박 회장은 같은 해 9월 1심서 징역 3년6개월에 벌금 30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박 회장은 협심증과 허리디스크를 이유로 보석을 신청했고, 거주지를 병실로 제한하는 조건으로 보석이 허가됐다. 이듬해 1월 박 회장은 2심서 징역 2년6개월과 벌금 300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박 회장에 대한 일부 혐의를 다시 판단하라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서울고법은 박 회장에 대해 징역 2년6개월과 벌금 190억원을 선고했지만, 이번에도 대법원은 일부 혐의에 대한 판결에 위법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보냈다.

이후 서울고법은 박 회장에 대해 징역 2년6개월과 벌금 291억원을 선고했다.

체포·조사
구속·선고

박 회장은 2013년 7월 가석방 대상이 됐다. 당시 가석방심사위원회는 박 회장이 형기를 80% 이상 채웠고, 모범수라는 점을 들어 가석방을 의결했다. 위원회는 당시 황교안 법무부장관에게 가석방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황 장관은 불허를 결정, 결국 박 회장은 남은 형기를 모두 채우고 출소했다.

프라임그룹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프라임그룹은 ‘정권 특혜설’이 나돌았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친노 인사들은 “참여정부를 겨냥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은 ‘국정감사 주요 공격이슈’ 문건을 작성, 참여정부 15대 사건 중 하나로 ‘프라임그룹 비자금 조성’을 적시했다.

검찰은 2008년 9월 프라임 그룹을 비자금 조성 정황 등을 이유로 압수수색했다.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은 출국금지 조치를 당했다. 백 회장의 동생 백종진 당시 벤처산업협회 회장은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 이명박 전 대통령

검찰은 같은 해 10월 백 회장을 소환 조사하고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후 백 회장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됐다. 백 회장은 12월 기업 사정을 감안해달라며 보석을 신청해 석방됐다.

검찰은 이듬해 6월 백 회장에 대해 징역 7년과 추징금 8000만원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7월 백 회장에 대해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300시간을 명령했다. 백 회장은 이듬해 1월 항소심서 1심보다 낮은 징역 2년6개월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11월 대법원은 원심(2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맺어진 인연 탓? 눈엣가시 탓?
과거는 묻어두고 재도약 시동

고초를 겪었던 세 기업은 현재 꾸준히 사업을 영위 중이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창신섬유의 매출액은 2015~2017년 기준 3년 동안 꾸준히 증가했다. 매출액은 24억원서 30억700만원, 30억1300만원으로 늘었다. 매출원가는 19억원, 22억원, 21억원이고 매출총이익은 5억원, 7억원, 8억원 순이었다. 판관비는 4억원, 4억원, 3억원이고 영업이익은 5900만원, 3억원, 5억원이었다.

창신섬유의 당기순이익은 7600만원, 3억원, 4억원으로 상승세다.

태광실업의 경우 최근 3년(2016∼2018)간의 연결기준 매출액은 1조5588억원, 1조6544억원, 1조9791억원으로 증가했다. 매출원가는 1조3468억원, 1조4286억원, 1조7162억원이고 매출총이익은 2120억원, 2257억원, 2628억원이다. 판관비는 854억원, 860억원, 902억원이고 영업이익은 1266억원, 1397억원, 1726억원이었다. 태광실업의 당기순이익은 1085억원, 1680억원, 2026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풍파 딛고
사업 계속

프라임산업(테크노마트주식회사)의 3년(2016∼2018) 연결기준 매출액은 432억원, 440억원, 434억원이고 매출원가는 421억원, 427억원, 420억원 순이다. 매출총이익은 10억원, 13억원, 14억원이다. 판관비는 5억원, 6억원, 2억원이고 영업이익은 5억원, 6억원, 11억원이다. 프라임그룹의 당기순이익은 4억원, 15억원, 12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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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줄 타는 안철수 사생결단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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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정권교체에 대한 여론은 정권 재창출에 대한 여론보다 높다. 그러나, 여당의 이재명 대선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지고 있진 않은 모양새다. 야권 대선후보가 여러 명이기 때문이다.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은 야권 대선후보를 하나로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대선후보들은 구체적인 단일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선 전 단일화는 철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요 화두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대선후보들은 그동안 후보 단일화를 첫 번째 승리 조건으로 여기곤 했다. 2022년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식 대선후보 등록이 시작도 되기 전에 야권에서는 벌써부터 단일화 이야기가 돌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국민의힘의 내홍 논란을 딛고 약진을 이어간 후부터다. 좁혀진 차이 자존심 싸움 합친다고 무조건 당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야권 대선후보들은 단일화에 유독 집착한다. 1987년 대선에서 단일화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난 탓이다. 1987년에 제6차 국민투표로 대통령 5년 단임제가 확정된 후, ‘양김’의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여권 대선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이기려면 야권 대선후보가 한 명이어야만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후보는 본인의 승리를 장담했다.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열망을 두 눈으로 확인한 후보들은 그 표가 다 본인에게 올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김대중 후보는 ‘사자필승론’을 주장하며 다자구도가 오히려 본인에게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김대중 후보는 지역 표심을 중심으로 대선판을 그렸다. 그는 노태우·김영삼이 영남 표를 나눠 받고, 김종필이 충청 표를, 그리고 본인이 호남 표를 독식해 당선된다는 계산을 했다. 하지만 야권 단일화는 실패했고, 최종 대선에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모든 후보가 출마했다. 김 후보가 그렸던 대선 판세와는 달리, 실제 대선에선 지역색보다는 정치색이 후보들의 희비를 갈랐다. 보수 지지자들의 표는 한 명의 여당 후보에게 결집된 반면, 진보 지지자들의 표가 두 명의 야당 후보에게 분열된 것이다. 결국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으로 최종 당선됐다. 이때의 이변을 대한민국 역대 대선후보들은 잊지 않았다.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의 역사가 이후로 끊임없이 쓰여졌다. 1997년엔 김대중·김종필 후보가, 2002년엔 노무현·정몽준 후보가(정 후보 후에 지지 철회), 2012년에는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했다. 김대중 후보와 노무현 후보는 단일화 후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2012년 문재인 후보는 낙선했다. 사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입장에서는 안 후보와의 단일화가 썩 반가운 주제는 아니다. 단일화설이 나온다는 의미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 좁혀졌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후보 간의 지지율 추이는 과거에 비해 많이 좁혀졌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만해도 윤 후보는 야권의 압도적인 차기 대통령 감이었다. 지난해 5, 6월에 실시된 대통령 적합도 관련 모든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는 지금의 대선후보들을 크게 따돌리며 단독 질주했다. 지지율 급상승…선두권 합류 한계 ‘혼자는 어려워’ 어느 쪽 선택할까 여야를 가리지 않고 비리 의혹이 있는 정치계 인물 모두를 기소하는 강골 검사로 이름을 알렸던 윤 후보는 국민들에게 ‘공정과 정의’라는 기치로 큰 인기를 누렸다. 검찰총장 임기 시절 막바지에는 문재인 대통령,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과 대립각을 세우며 인기는 배가 됐다. 문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청와대 인사인 조국 전 민정수석의 비리를 조사하는 모양새는 윤 후보에게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이미지를 강하게 주는 동시에 야권의 정치인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수개월간 이어진 ‘조국 수사 논란’은 윤 후보를 자연스레 야권의 잠룡으로 만들었다. 그런 그의 인기가 점차 사그라든 것은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부터다. 공직자에서 정치인으로 직업을 한 번에 바꾼 윤 후보에게 정치인의 언행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윤 후보는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선거운동을 이어갈 때마다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고, 정치부 기자들은 그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대중에게 여과 없이 전달했다. ‘주 120시간 노동’ 발언이나 ‘부정식품이라도 먹어야 한다’는 발언 ‘개사과 논란’ 등 윤 후보는 정치인으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여러 차례 노출하며 유권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지지율 2%였던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에게 경선 막판까지 쫓기는 초접전 양상을 허용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경선 때의 실책은 윤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에도 이어졌다. “노동자 사망은 노동자 탓”이나 “부득이하게 국민의힘을 선택했다” “전두환을 지지하는 호남 사람들도 많다” 등의 실언을 쏟아내며 당 안팎에서 윤 후보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이 쏟아졌고, 이는 지지율 하락세로 이어졌다. 특히,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극심한 마찰을 겪을 당시에는 지지층인 ‘이대남’을 안 후보에게 내주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몇 주간 지지율 1위 자리를 허용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60%에 육박하는데도 여당의 후보에게 진다는 것은 윤 후보에게 매우 뼈아픈 지점이었다. 이는 “정권교체는 원하지만 윤 후보는 싫다”는 뜻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후보 교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왔고, 이때 안 후보와의 격차는 많이 좁혀졌다. “안 후보와 단일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크게 대두된 것도 이때다. 국민의힘? 국민의당? 요즘 야권 대선 레이스 양상은 홍 의원과의 경선 때를 떠올리게 한다. 야권 후보 중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던 윤 후보가 미미했던 지지율의 안 후보에게 추격 받고 있는 중이다. 경선 레이스와 대선 레이스의 한 가지 다른 점은 안 후보를 이긴다 해도 대선의 ‘최종 승자’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지지율을 안 후보에게 빼앗겨 야권 표가 분열되면 이 후보에게 대권을 내어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윤 후보에게 단일화는 ‘달갑지는 않지만 꼭 해야 하는’ 숙제로 다가온다. 윤 후보에게 단일화는 자신의 지지율 하락을 인정하고, 승리를 위해서 야권의 선택지를 하나로 줄여야 하는 과정이다. 지난해만 해도, 윤 후보는 단일화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단일화에 대한 생각이 일절 없다”고 일관해왔다. ‘국힘 원팀’을 만드는 것도 버거운 상황에서 국민의당까지 챙겨야 한다는 의견에 늘 난색을 표해온 것이다. 그러던 그가 지난 11일 “단일화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며 입장을 미온적으로 바꾸었다. 시험이 다가오자 숙제를 끝내는 학생처럼, 윤 후보도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 앞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압박을 서서히 받고 있는 것이다. 반면 안 후보 측의 입장은 아직도 강경하다. 본인으로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수차례 단일화를 경험한 안 후보는 그때마다 좋지 않은 기억을 쌓았다. 안 후보는 나름 큰 희생을 감수했는데, 그만한 결과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단일화의 기억을 회상한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그랬고, 2012년 대선 때도 그랬다. 안 좋은 기억 속에서 그는 항상 “안철수로 단일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지난 16일 안 후보는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안일화(안철수로 단일화)라는 말이 시중에 떠돈다고 하더라”며 “정권교체를 바라는 야권 지지자들이 어떤 후보가 더 적합한 후보인지, 더 확장성 있는 후보인지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 말했다. 이어 “내가 야권의 대표선수로 나가야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고, 국민 통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안 후보에게는 ‘중도 확장성’이라는 주요한 무기가 있다. 유권자들에게 안 후보는 보수색보다는 중도 색이 강한 후보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으로부터 자유롭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는 늘 대립각을 세워왔다. 따라서 안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정권교체를 한다는 명분도 서고, 보수당을 찍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도 된다. 안 후보는 현재 대선 레이스에서 지지율이 윤 후보에게 크게 밀리고 있지만, 야권 단일화 적합도에서는 윤 후보보다 10%포인트 넘게 웃돈다. 안 후보가 말했듯이, 야권 대선후보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또 양보? 당선 포기? 반면, 윤 후보에게는 조직력이 있다. 비례대표 3석이 전부인 국민의당과는 달리 국민의힘은 국회 106석을 확보하고 있다. 전국에 지역구가 있으며 선거운동을 할 인력도 압도적으로 많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대선에서 ‘이겨왔던’ 전례가 많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출한 경험이 있다. 민주당과 대립하며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는지, 전략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많은 데이터가 쌓여 있다. 또, 지지율 측면에서도 윤 후보가 안 후보보다 많이 앞서 있다.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로 올라온 안 후보지만, 국민의힘이 내홍을 끝내면서 윤 후보가 지지율을 거의 다 회복하고 있다. 윤 후보는 지난 7일 이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총회 자리에서 극적으로 화해하며 원팀 의지를 굳건히 했다. 이후 홍보전에 이 대표가 큰 힘을 실어주며 하락세를 그리던 윤 후보의 지지율은 회복세로 접어들었다. 순항이 이어지는 윤석열표 대선호가 안 후보와 단일화하는 것은 여러 모로 명분에 맞지 않는 상황이다. 정계 전문가들은 ‘윤일화’도, ‘안일화’도 아닌 ‘무일화’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고 있다. 양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하지 않고 끝까지 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후보 단일화를 하려면 여러 이해관계들이 맞아야 하고, 희생정신도 강해야 한다. 김대중·김종필의 이른바 ‘DJP연합’ 때처럼 말이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야권의 1위 대권주자로 달리고 있었다. 1997년 9월 <조선일보>가 공표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대중 후보는 30%에 육박하는 지지율 받았고, 김종필 후보는 약 3%의 지지율을 받았다. 단순 수치만 봐도 10배가량 차이나는 것이었다. 단일화 없이도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김대중 후보였지만, 그는 김종필 후보에게 많은 부분을 양보하며 연합을 이뤄냈다. 김대중 후보가 김종필 후보 자택에 직접 찾아가 연합할 것을 제안하면서다. 현재의 안 후보처럼 아쉬울 게 없다며 갈지자 행보를 이어가던 김종필 후보는 김대중 후보를 만난 후, 연합에 동의하며 김대중정부에 들어가 일할 것을 약속했다. ‘실리냐 고집이냐’ 딜레마 완주하고 지방선거 출마? 김종필 후보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양보’ 덕분이었다. 이날 DJP연합 논의에서 김종필 후보는 내각제 개헌과 경제 부처 인사권이 보장된 ‘실세형 총리’의 자리를 약속받았다. 후에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국민의정부의 경제 관료들은 실제로 김종필 후보가 지명한 인사로 채워졌다.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대표적인 예다. 윤 후보가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성사시키려면, 안 후보에게 많은 것을 양보한 단일화를 제안해야 한다. 김대중 후보가 그랬듯, 차기 정부 인사들의 일부 인사권을 넘겨주고 힘 있는 자리를 약속하지 못한다면, ‘윤일화’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당시 김대중 후보만큼 윤 후보가 당내의 권력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본인의 권력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윤 후보 혼자 당내의 반대를 무릅쓰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안 후보 측 또한 김종필 후보처럼 윤 후보의 제안을 선뜻 수락하지는 않을 모양새다. ‘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대선에 참여했다’는 기존 입장이 여전히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단일화를 하고 대선을 완주한 경험과 하지 않고 완주한 경험 모두 갖고 있다. 낙선을 하더라도 끝까지 대선을 완주해 이름값을 높인 뒤, 곧 있을 지방선거나 재보궐선거에 나가는 것도 그에게는 좋은 방법이다. 1997년 당시의 김종필 후보와는 달리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셈이다. 지지율이 높은 후보가 많은 것을 양보해서 지지율이 낮은 후보와 연합을 하는 ‘DJP연합’의 그림은 지금의 윤 후보와 안 후보가 ‘그려야 할’ 그림과 많이 닮아있지만, 맞지 않는 이해관계와 양보 의지가 없는 양 후보에게 ‘그릴 수 없는’ 그림이 돼있다. 국민의힘 이 대표는 MBC 라디오에 출연해 “저희의 지지층이 일시적으로 이전돼 수치가 상승한 것에 너무 고무돼 안일화 이런 말도 만드셨더라”며 “인터넷 가 보면 안일화보다는 간일화(간 보는 단일화)라는 단어가 더 뜬다”고 주장했다. “이번엔 다르다” 자신만만한 국민의힘 측의 입장과 안 후보에 대한 조롱이 섞인 발언이다. 이에 대해 안 후보는 “이 대표는 내가 무서운 것”이라며 “정치인들은 아무런 신경 쓸 게 없으면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위협이 될 때만 발언한다”며 맞받았다. 양측은 현재 단일화는커녕 갈등 양상으로 가기 직전이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권 단일화는? 야권이 만일 단일화에 기적적으로 성공한다면 여권도 단일화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선거에서는 같은 색의 후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진보색을 강하게 띠고 있는 정의당의 심상정 대선후보 또한 여권 단일화에 대한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이 후보는 지난해 10월 “중요한 분기점인 내년 대선은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기 때문에 개혁 진영이 최대한 힘을 모아야 한다”며 “여권 대통합을 해야 한다. 심 후보 본인은 완주 의지를 표명하는데, 정치는 국민이 하는 것이다. 그때 가서 우리가 함께 이길 수 있는 길을 국민이 제시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빙의 상황 속에서 상대가 단일화한다면, 개혁 진영도 뭉쳐야 한다는 게 이 후보의 의견이다. 그러나, 심 후보는 민주당과의 단일화를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는 “많은 국민이 ‘이런 대선은 본 적이 없다’며 혀를 차고 있다”며 “34년 양당 정치가 보여준 민낯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다고들 하신다. 그럼에도 염치없는 양당정치는 또 차악의 선택을 강요하려고 단일화에 대한 미련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지율 정체에 따른 정의당 선거대책위원회 해산과 며칠간의 칩거 후, 심 후보의 입장도 많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심 후보가 대선을 끝까지 완주해서 얻는 정치적 자산보다 단일화로 얻는 정치적 자산이 더욱 크다면, 여권의 단일화도 완전히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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