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단독 후… 한국자산신탁 불공정약관 철퇴 막전막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5.27 10:11:36
  • 호수 12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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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특약 무효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자산신탁의 신탁계약서가 ‘불공정약관’이라며 철퇴를 가했다. <일요시사>는 앞서 한국자산신탁의 갑질과 불공정약관 의혹 등을 연속 보도한 바 있다. 한국자산신탁의 신탁계약서가 불공정약관으로 판명되면서 유사한 신탁계약서를 사용했던 부동산신탁업계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한국자산신탁(이하 한자신)의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서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한자신의 신탁계약서와 특약사항은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법)의 적용을 받는 약관에 해당된다. 공정위는 한자신의 신탁계약서 특약사항의 일부 조항이 약관법을 위반한 불공정약관이기 때문에 무효로써 수정 및 삭제 조치를 내렸다. 

30년 만에 
처음 판단 

<일요시사>는 앞서 한자신이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13번지 지상 오피스텔 및 근린생활시설 신축 및 분양사업’(이하 대구 두산동 신축 분양사업)서 위탁자의 돈을 쌈짓돈처럼 사용한 의혹을 제기했다(<일요시사> 1160호 ‘한자신의 이상한 영업’ 참조).

한자신은 부도난 시공사에게 허위 공사대금을 위탁자 동의 없이 지급한 의혹이 있다. 시공사의 하도대금 미지급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방조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더불어 추가공사가 없었음에도 공사비를 증액하는 등 신탁사로서 선관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6월 한자신이 선관주의·충실의무를 위반해 위탁자의 신탁재산에 손실을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대구 두산동 신축 분양사업의 위탁자인 정유경씨는 “한자신이 선량한 위탁자의 재산을 마음대로 유용해 피해를 입었다”며 “신탁계약서에 있는 부당한 면책 조항으로 위탁자를 상대로 갑질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갑질 의혹 최초 보도 이후 공정위 조사
신탁계약서 무효 판단…업계 파장 예상

정씨는 지난해 8월31일 공정위에 한자신의 신탁계약서와 특약사항이 불공정약관이라며, 약관심사를 청구했다. 공정위는 9개월여 만인 지난 17일 정씨와 한자신이 체결한 신탁계약서가 불공정약관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공정위 문건에 따르면 정씨가 약관심사를 청구한 18개 조항 중 13개(약관 4개 조항, 특약사항 9개 조항)가 불공정약관으로 무효인 것으로 나타났다. 
 

▲ 공정거래위원회의 약관심사 결과 통지문

▲약관 제11조(건물·건축 등) 제3항= 수탁자가 신탁재산으로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에는 위탁자가 시공사에 대한 공사대금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무효)

▲약관 제15조(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수탁자가 신탁건물의 건축공사, 신탁재산의 처분·관리·운용, 그밖의 신탁사무에 대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해 처리한 경우 신탁기간 중 또는 신탁 종료 후 위탁자, 수익자, 우선 수익자 및 그 상속인에게 손해가 발생되더라도 그 책임을 지지 않는다.(무효)

금감원도
“문제 있다”

▲약관 제21조(하자담보 책임 등)= ①위탁자는 신탁기간 중 또는 신탁 종료 후 그 신탁한 토지에 하자가 있거나 그로 인해 손해가 발생된 경우 그 책임을 진다.(무효)


②수탁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로써… 신탁부동산에 대해 발생된 하자 및 그 하자가 있음을 원인으로 위탁자 또는 수익자에게 발생된 손해 등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무효)

▲특약사항 제22조(시공사의 부도, 파산 등)= ① 丙(병-시공사)은 공사를 중도 포기할 수 없다. 다만 丙의 부도, 파산, 인수, 합병 등의 사유로 인해 공사 중단, 지연으로 예정 공기에 공사를 완공하기 어렵다고 乙(을-신탁사)이 판단하는 경우 丙은 건축물의 공사를 중지하고, 공사 현장을 乙이 지정하는 자에게 즉시 명도해야 한다. 이 경우 乙은 공사 도급 계약을 해지·해제하고 예정 가격 및 계약 조건을 제시해 乙의 내부 규정서 정하는 방법 및 절차에 따라 시공사를 재선정할 수 있다. 甲(갑-위탁자)과 丙은 이에 일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무효)

③ 제1항과 같이 공사중단, 지연 또는 丙이 공사를 계속할 수 없는 경우 ‘본 사업’ 및 ‘본 신탁계약’과 관련된 丙의 모든 권리행사는 즉시 중단된다. 丙은 새로운 시공사 선정 등으로 인한 입주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등 乙에게 발생한 모든 손해를 부담해야 하며, 본 사업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은 본 사업의 정산 시에 일괄 정산하기로 한다.(무효)
 

▲ 일요시사는 지난해 한국자산신탁의 신탁계약서 11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불공정약관 의혹을 제기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한국자산신탁의 신탁계약서가 불공정약관이라고 판단했다.

⑥ 본조에 의한 공사도급계약의 해지, 시공사 변경 및 그에 따른 사업비(공사비 등)의 증가 등 본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乙이 행한 일체의 행위 및 그 결과(공사비 정산 포함)에 대해 甲, 丙 및 丁은 乙에게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무효)

▲특약사항 제29조(사업시행자의 권한)= 乙이 본 신탁계약의 각 규정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령 및 사업인허가 조건의 이행, 본 사업 관련 민원의 발생 및 분양관련 일체의 사항, 각종 용역계약 및 소송, 자금조달 등으로 비용 또는 책임을 부담하는 경우에는 그 면책을 위해 乙이 본 사업에 관한 의사결정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乙이 부담하는 비용 발생 시 乙은 이를 甲의 부담으로 신탁재산에서 집행하되, 신탁재산으로부터의 집행이 어려울 경우 丙이 이를 책임지고 甲에게 대여하거나 직접 乙에게 대지급하기로 한다.(무효)

▲특약사항 제30조(면책조항)= ① 乙이 본 사업을 원만히 수행하기 위해 처리하는 모든 업무 및 그 결과는 甲에게 귀속된다. 이에 대해 甲은 일체의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무효)

② 본 사업과 관련해 乙의 귀책사유가 아닌 사유로 乙이 부담하는 비용 또는 乙에게 손해배상(손실)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귀책사유가 있는 甲 또는 丙이 이를 부담하지 않을 경우, 乙은 乙의 부담비용 또는 손해배상(손실) 상당액을 신탁재산서 우선 충당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수익자는 일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무효)

③ 신탁등기의 유효성은 우선 수익자가 점검, 확인해야 한다. 수탁자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신탁법」 제8조에 의한 사해신탁에 의거 본 신탁계약이 취소되거나, 「신탁법」 제22조서 규정한 신탁 전의 원인으로 발생된 권리의 실행으로 신탁부동산에 관한 소유권변동이 있는 경우 乙은 (우선)수익자에 대해 그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무효)

선관주의
충실의무 위반

▲특약사항 제32조(기타)= ① 어떠한 원인에서든지 본 신탁계약의 일부 용어, 약정, 조건 또는 규정이 불법이거나 무효이거나 집행 불가능하더라도,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본 신탁계약의 나머지 조항은 유효하고 집행 가능하며 완전한 효력을 갖는다.(무효)

② 본 신탁계약의 내용은 법령에 위배되지 않으며, 乙에게 효력을 가지는 법원의 재판, 행정기관의 행정처분이나 신탁감독기관의 관련 지침과 지도 등에 위배되지 않도록 변경·처리될 수 있음을 甲, 丙 및 丁은 이해하고 보장한다.(무효)

<일요시사>는 한자신의 신탁계약서 견본 2부(분양형·차입형)와 복수의 위탁자와 체결한 신탁계약서 11건을 입수해 비교·분석한 결과, 한자신의 신탁계약서가 공정위서 정한 불공정약관의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일요시사> 1183호 ‘한자신 불공정약관 의혹 추적’ 참조). 


약관 심사한 18개 조항 중 13개 불공정
11개 부동산신탁사 계약서 수정 불가피

당시 <일요시사>는 한자신의 신탁계약서 특약사항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거나 부당한 면책 조항으로 위탁자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갑질 계약이라고 보도했다. 법조계에선 한자신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을 특약에 넣음으로써 약관규제법을 우회적으로 피해갔다고 지적했다.

공정위의 약관심사 결과 <일요시사> 보도가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공정위가 한자신의 신탁계약서 일부 조항을 무효라고 결정하면서, 위탁자들의 피해 구제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법 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에 따르면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해 현저하게 공정성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정했다.

한자신은 공정위 결정에 대해 말을 아꼈다. 한자신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한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정위가 부동산신탁 시장이 열린지 30년 만에 처음으로 특약사항을 약관으로 본 것이다. 부동산신탁업계 전체가 함께 논의해야 될 사안”이라고 밝혔다. 

전면 수정
후폭풍 예고


한자신 신탁계약서의 특약사항 일부가 불공정약관이라고 판단한 공정위의 결정은 부동산신탁업계에 큰 파장을 낳을 전망이다. 국내 11개의 부동산신탁사들이 한자신과 비슷한 신탁계약서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신탁사 고위 관계자는 “부동산신탁사들은 여타 금융업과 달리 다루는 상품이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신탁계약서도 대동소이하다”고 설명했다. 향후 11개의 부동산신탁사들의 신탁계약서 수정 및 삭제 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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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