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앞 등불’ 바미당 안철수 등판론

보따리는 싸놨고…총대는 누가?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바른미래당의 운명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당의 존폐 여부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당 지도부의 리더십은 추락했다. 의원들 사이서 알게 모르게 그어놓은 선은 선명해지는 형국이다. 브레이크 없는 내홍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이번 사태 이후 당의 모습은 ‘바미하지 않을’ 전망이다.
 

▲ 유승민·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사진공동취재단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은 창당과 동시에 ‘한 지붕 두 가족’ 꼬리표를 쉽게 떼지 못했다. 애당초 이 같은 표현은 우려 차원서 나왔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서로 다른 노선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기대감도 있었지만 바미당은 노선갈등으로 꾸준히 파열음을 냈다. 정치권 관계자는 바미당의 현주소에 대해 “언젠가 크게 한 번 터질 일이었다”고 전했다.

분? 합?
앞날은?

바미당 내 갈등의 표면화는 지난 4·3보궐선거를 기점으로 한다. 4월 보궐선거의 결과는 참담했다. 지난해 6·13지방선거서 겪은 참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미당은 원내 3당임에도 불구, 3.57%를 득표해 민중당에게 밀린 4위를 기록했다.

선거 이튿날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는 분란의 신호탄이었다. 이날 손학규 대표는 선거결과에 대해 “참패로 끝났다”면서도 “불모지인 경남도에 바미당의 위치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고 자평했다. 이어 “당을 흔들려는 일각의 시도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하태경·이준석·권은희 최고위원 등 바른정당계 인사들은 손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 최고위원은 “즉시 모든 의원들은 조기 전당대회 준비로 의견을 모아달라”며 “최소한 재신임 투표라도 하자”고 밝혔다.


손 대표의 측근인 이찬열 의원은 강하게 반대했다. 이 의원은 “몇몇 의원들의 내부 총질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깨끗하게 갈라서서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서로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속 의원들끼리 한데 모여 충돌한 것이다. 당시 바미당이 분열의 기로에 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언주 의원은 이날 ‘당원권 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 의원은 지난달 선거를 앞두고 보수성향 인터넷 방송 <고성국 TV>에 출연, 손 대표를 겨냥해 “창원서 숙식하는 것도 제가 보면 정말 찌질하다”며 “아무것도 없이 ‘나 살려주세요’ 이렇게 하면 짜증 난다”고 말했다. 당시 손 대표는 지원유세를 위해 창원성산에 방을 얻은 바 있다. 

당원권 정지 1년은 바미당 중앙윤리위원회서 내릴 수 있는 징계 중 ‘제명’ 다음으로 높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의원의 징계가 확정된 것을 두고 “사실상 이 의원에게 당을 나가라는 이야기”라며 “이 의원의 탈당에 명분을 제공해줬다”고 말했다.

패스트트랙 후폭풍, 갈수록 점입가경
노선갈등·선거참패…곪던 갈등 폭발

바미당은 패스트트랙 지정 표결로 한 차례 더 부딪혔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당내 이견으로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바미당은 표결로 패스트트랙 추인을 결정키로 했다.

지난 23일 열린 의원총회서 표결이 이뤄졌다. 표결 결과는 찬성 12표와 반대 11표. 패스트트랙은 우여곡절 끝에 합의됐지만 팽팽한 표차로 당 분열은 가팔라지는 모양새였다.

의총 직후 유승민 전 공동대표는 “당의 의사결정이 이런 식으로 이뤄진 것은 굉장히 심각하다”며 “당의 현실에 자괴감이 든다. 동지들과 함께 당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사진 오른쪽)와 김관영 원내대표

 


한편 당원권 정지 1년 징계를 받은 이 의원은 의총 한 시간여 뒤 바미당을 탈당했다. 이 의원은 기자회견 자리서 패스트트랙에 대해 “당 내부에 이견이 있는데도 의총서 상정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행태”라며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표결 결과가 단 한 표차이로 갈라졌음을 미뤄볼 때 이 의원이 징계를 받지 않고 의총에 참여했다면 상황은 다소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 의원은 선거제 개편안 등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것에 반대한 바 있다.

이준석 최고위원은 이날 자신의 SNS 페이스북을 통해 “이 의원의 한 표가 있었으면 12대 12로 부결”이라며 “왜 그토록 당원권 정지에 목을 맸는지 드러난다”고 비판했다.

바미당의 합의안 추인으로 선거제 개편안과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안 패스트트랙은 동력을 얻는 듯했으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 위원인 바미당 오신환 의원이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오 의원은 패스트트랙 추인 여부를 결정한 의총 이튿날 자신의 SNS 페이스북을 통해 “12대 11이란 표결 결과가 말해주듯 합의안 추인 의견은 온전한 ‘당의 입장’이라기보다 ‘절반의 입장’이 됐다”며 “누더기 공수처법안을 위해 당의 분열에 눈감으며 제 소신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다.

12대 11
후폭풍

패스트트랙의 안건은 소관위원회 위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지정 가능하다. 공수처의 소관위는 사개특위다. 사개특위 위원 수는 총 18명으로 11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사개특위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9명과 한국당 7명, 바미당 1명, 그리고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1명으로 구성돼있다. 공수처 패스트트랙에 찬성한 민주당과 평화당 등 10명은 찬성, 한국당 7명은 반대 입장이다.

캐스팅보트를 바미당이 쥐고 있는 셈이다. 결국 오 의원이 반대하면 이른바 ‘패스트트랙 패키지’ 불발로 이어진다.

오 의원이 공수처 반대 입장을 드러내자 당 지도부는 이날 ‘사보임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보임은 사임과 보임을 일컫는다. 사임과 보임은 각각 맡은 자리서 물러나는 것과 어떤 직책에 임명하는 것을 뜻한다. 즉 사보임이란 국회 상임위원회나 특별위원회 등에서 기존 위원을 물러나게 하고 새 위원을 임명하는 것이다.

사보임은 원내대표의 고유권한으로 원내대표는 상임위 등에 소속 의원들을 임명하거나 물러나게 할 수 있다. 원내대표는 이를 국회의장에게 신청한 뒤 국회의장의 승인 여부에 따라 사보임이 결정된다. 국회법에 따라 특위 위원은 임시회 회기 중 사보임이 불가능하지만, 부득이할 경우 의장의 허가를 받으면 가능하다.

지난 24일 공수처 등 패스트트랙을 강하게 반대한 한국당이 의장실을 점거,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오 의원의 사보임 저지를 촉구한 까닭이다.
 

▲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위원서 사보임 처리된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

오 의원의 반대표로 패스트트랙이 무산 위기에 처하자 김관영 원내대표는 사보임을 추진했다. 김 원내대표는 오 의원 대신 채이배 의원을 사개특위에 배치하기로 했고, 오 의원은 즉각 반발했다.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국회 본청 의사과를 찾아 이를 저지했다. 의사과는 사보임 서류를 접수하는 곳이다.


바른정당계 좌장인 유 전 공동대표는 의사과 앞 복도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떤 이유로든 사보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고, 김 원내대표가 사보임을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약속했다”며 “동료 의원들을 거짓말로 속이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당내 균열은 점차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바미당은 다음 날 25일 소속 의원들 간 내분 격화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사보임을 강행했다. 바미당은 오 의원 대신 채 의원을 사개특위 위원으로 교체하는 내용의 사보임 신청서를 팩스로 의사과에 제출했다.

유 전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유 전 공동대표를 비롯해 오신환·이혜훈·정병국·하태경 의원은 문 의장이 입원해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향했다. 문 의장은 전날 한국당 의원들과의 충돌로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러나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병원 관계자의 설명에 문 의장과의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정계 개편?
현상 유지?

유 전 공동대표는 이날 “팩스로 사보임계를 제출했다는 것 자체가 당이 정상이 아니다”며 “의장이 사보임을 절대 허락하지 않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 의장은 병동서 사보임 신청서를 결재했다.

바미당은 그간 정계개편이라는 키워드서 자유롭지 못했다. 노선갈등은 정계개편의 군불을 지폈고, 소속 의원들의 탈당은 기름을 부었다. 저조한 선거 결과도 한몫했다. 다만 가능성만 거론됐을 뿐 당 전체가 흔들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4월 보궐선거 참패와 패스트트랙 이견 표출로 당은 획기적인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차기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았다는 점도 배제하기 어렵다. 바미당의 현상 유지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패스트트랙 과정서 분당이나 합당이라는 말들이 거리낌 없이 나왔다”며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분당 가능성이 제기됐다. 창당 이후 당의 완전한 통합이 요원했던 터라 이번 시점서 갈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정치권 안팎의 반응을 종합해볼 때 바미당이 당장 공중분해될 가능성은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해석이다.
 

▲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바른정당계인 이혜훈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통합 당시 합리적 중도와 개혁적 보수가 같이하기로 합의가 됐고 당의 헌법에도 그렇게 규정했다”며 “통합 이후 우리는 진보인데 중도를 빼고 보수와 진보의 결합으로 바꿔달라고 계속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보수와 진보는 서로 각기 다른 방향을 달리는 2개의 말이라고 볼 수 있다”며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말 두 마리를 동시에 끌고 갈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국민의당 전체가 아니고 일부”라고 덧붙였다.

정당보조금이 꽤 남아 있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바미당은 원내 3당임에도 불구, 20석을 넘겨 교섭단체를 형성했다. 교섭단체와 비교섭단체의 보조금 차이는 상당하다. 일각에선 바미당이 내년 총선을 대비해 50억원가량의 자금을 구비 중이라고 전했다.

탈당하고 혈혈단신, 현실적 한계는?
지도부 리더십 타격, 주목받는 유-안

바미당 이상돈 의원은 지난 22일 YTN 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갈라선다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정당법에는 분당이란 개념이 없다. 당의 주류에 불만이 있는 의원들이 그냥 맨몸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바미당이 국가서 보장을 많이 받고, 교섭단체 프리미엄도 있다”며 “바미당서 내분이 있어도 한쪽이나 다른 쪽에서 쉽게 나가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교섭단체기 때문에 계속 정부 보조금이 나온다. 그걸 포기하고 맨몸으로 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3지대론 형성’도 주목을 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패스트트랙 사태가 있기 전 바미당은 평화당과 함께 3지대론으로 이목을 끌었다. 바미당 소속 호남출신 의원들은 평화당 의원들과 접촉한 바 있다. 바미당 박주선·김동철 의원이 대표적이다.

바미당 박주선 의원은 지난 19일 가톨릭평화방송(CPBC)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해 “손 대표에게 ‘임기가 있기 때문에 물러나지 못하겠다고 하는 말만 가지고는 안 되고, 지지율이 땅바닥을 치고 있는데 어떻게 다시 지지율을 높여 총선서 승리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 취재진 질의에 답변하는 바른정당계 바른미래당 의원들

박 의원은 손 대표에게 “그 대안으로 바미당이 주도해 제3지대서 빅텐트를 치고, 국민의당에 있었던 평화당 소속 의원들이 참여를 하겠다고 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바미당의 중심축 중 하나인 유 전 공동대표는 3지대론에 대해 부정적이다.

유 전 공동대표는 지난 18일 의총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지역당이 되겠다는 차원서 평화당과 합쳐서 호남 선거만 생각하면 당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바미당 스스로 개혁적 중도보수정당으로 일어서고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며 3지대론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일각에선 3지대론에 바미당과 평화당의 공통분모가 존재한다고 본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장 총선을 앞두고 3지대 구축을 언급하는 것은 당 내외적으로 비판이 될 수 있다”면서도 “‘거대 양당체제의 기득권 타파’라는 명분으로 불씨는 언제든지 살릴 수 있다.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고 볼 수 없다”고 전했다.

한편에선 바미당의 최대주주인 유 전 공동대표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복귀를 점친다. 바미당 창당의 두 핵심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손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리더십이 타격을 받은 점도 유효했다.

공통분모
역할론은?

이준석 최고위원은 지난 25일 BBS 라디오 <이상휘의 아침저널>서 “손 대표의 유일한 대안이 ‘유승민-안철수 역할론’이라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대안 중에서 유의미하고 많은 분들이 기대하고 있는 대안인 것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손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폭주에 대해 유 전 공동대표나 안 전 공동대표와 정치하는 사람들의 공감대가 오랜만에 형성됐다”며 “역할론이 뒤바뀔 때가 됐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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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