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협위원장 총사퇴’ 황교안의 무리수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4.08 10:51:24
  • 호수 12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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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냐 아군이냐 PK ‘황’ 주의보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잔칫집이어야 할 곳이 초상집 분위기다. 자유한국당은 4·3재보궐 선거서 1승1패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지만, 같은 기간 ‘당협위원장 총사퇴’라는 핵폭탄급 이슈도 맞이했다. 벌써부터 설왕설래로 당 내부가 시끄럽다. 일각에서는 ‘오세훈 등판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정점식 당선인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내년 4월15일로 예정된 21대 국회의원 총선거 준비에 돌입했다. 황교안 대표는 신상진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특위는 산하에 ‘정치’ ‘정당’ ‘공천’ 등 3개 소위원회를 마련했다. 이들 소위는 각 영역의 혁신방안을 마련해 추진할 계획이다. 특위는 최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이용구 중앙대 교수, 유석춘 연세대 교수 등으로부터 향후 혁신과제에 대한 의견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21대 총선
준비 시작

한국당은 정치, 정당, 공천 중 공천혁신소위에 특히 주목한다. 공천혁신소위는 21대 총선의 공천룰을 개정하는 임무를 맡았다. 소위 위원장은 재선의 김선동 의원이다. 위원에는 원내인사로 박완수·송희경 의원, 원외인사로 박민식 전 의원, 박마루, 박준현, 장지호씨 등을 임명했다.

지난 3일 공천혁신소위는 국회서 첫 번째 회의를 열었다. 회의 후 김 위원장은 “(이날 회의서)우리가 어떤 일을 어떤 스케줄로 해야 하느냐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진정성 있는 안들을 도출해내는 데 지혜를 다해서 모으자는 그런 정도(를 얘기했다)”라고 전했다.

21대 총선 승리를 위한 한국당의 첫걸음이다. 주목할 부분은 한국당 지도부가 공천룰뿐 아니라 각 당원협의회의 활동성과를 평가할 당무감사도 병행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이는 당협위원장의 교체 가능성을 암시한다.


한국당 일각에서는 황교안 지도부가 전국 250여개 당협위원장으로부터 일괄 사퇴서를 받은 뒤, 당무감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돈다.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당 당직자는 “본격적인 공천 심사 전 정기 당무감사를 진행한다고 알고 있다”며 “당무감사라는 기회를 통해 현재의 당협위원장들이 자연스레 정리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해당 당직자는 그 근거로 “당헌·당규상 선거 1년 전 당협위원장직을 모두 내려놓은 상태서 공천을 진행하게 돼있다”고 설명했다.

당무감사는 당 사무총장이 진행한다. 한국당의 사무총장은 친박(친 박근혜)계 한선교 의원이다. 한 사무총장은 당협위원장의 교체 권한뿐 아니라 공천관리위에 당연직으로 포함돼 다가올 총선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예정이다.

당헌·당규
설왕설래

반면 김 위원장은 즉각 선을 그었다. 공천혁신소위의 첫 회의를 주재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당헌·당규상 선거 1년 전 당협위원장직을 모두 내려놓은 상태서 공천을 진행해야 한다는 내용에 대해 “당협위원장 일괄사퇴 및 당무감사의 소관은 당 사무총장과 지도부에서 할 일이지만, 총선 1년 전에 해야 한다는 당헌·당규상의 규정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해당 내용이) 당헌·당규에 없다. 확인해봤다”고 말했다.

한국당의 당규인 ‘지방조직운영 규정’ 제3장 27조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의 선출 및 승인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공직선거 출마를 위해 후보자 공모에 신청할 때 당협위원장직서 사퇴하거나 직무가 정지된다”고만 돼있다. 김 위원장의 말처럼 당협위원장은 총선 1년 전 총사퇴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그럼에도 한국당 내부에서는 황교안 지도부가 대대적인 물갈이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받고 있다. 총선이 있기 전 당 장악력을 높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임명된 당협위원장 중 상당수가 출신과 계파, 비전이 서로 달라 다가오는 총선서 ‘원팀’이 되기 힘들다는 위기의식이 한국당 내에서 팽배하다.


공천혁신소위 출범 공천룰 ‘만지작’
당무감사 예고, 1년도 안 지났는데?

황 대표는 특히 부산·경남(PK)을 21대 총선의 핵심공략 지역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일 소위 측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황 대표는) PK로의 금의환향을 노리고 있다. 이번 재보궐 선거서 통영 후보로 정점식을 낙점한 것도 그가 대표적 친황(친 황교안)계이기 때문이다. 당협위원장 교체가 실제로 실시된다면 황 대표는 PK 당협위원장을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 채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황 대표와 PK는 인연이 깊다. 그는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차장검사, 창원지방검찰청 검사장,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등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 
 

▲ 신상진 신정치특별위원장

이 관계자는 정점식 통영 고성 국회의원 당선자가 PK 지역 당협위원장 교체의 중심이자 핵심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정 당선자는 황 대표의 검찰 후배이자 ‘황교안 키즈’로 불리는 최측근이다.

1994년 대구지검서 검사생활을 시작한 정 당선자는 황 대표와 마찬가지로 검사 시절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통했다. 검사 생활 24년 중 20년가량 공안 업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정 당선자는 지난 2013년 9월 황 대표가 법무부장관이던 시절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태스크포스’ 팀장에 임명됐고, 황 대표가 치적으로 삼는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해산을 이끈 바 있다.

황 노림수 
PK 정조준

정 당선자를 향한 황 대표의 신뢰는 남다르다. 황 대표는 재보궐 선거 전 창원서 가진 현장최고위원회의서 “통영 고성의 전문 일꾼 정점식은 검사 출신으로 통진당 해산을 이끌어낸 능력이 있다”며 “문재인정권에 의해 검사직을 그만두게 되자 고향서 봉사하겠다는 각오로 이번 선거에 출마했다. 반드시 그 뜻을 이루리라 생각한다”고 힘을 실어줬다.

이번 재보궐 선거는 무승부로 끝났다. 한국당은 두 곳 중 통영·고성 한 곳서만 당선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문재인정권에 큰 힘을 실어주던 PK 민심이 흔들리고 있는 점을 확인했다는 측면서 정치적 소득은 적지 않다.

한국당은 창원 성산서 정의당과 막판까지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한때 정의당 여영국 당선자를 패배 직전까지 몰아붙이기도 했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4일 <일요시사>와 한 통화서 “결과는 1대 1 무승부이지만, 사실상 우리가 2대 0으로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황 대표는 당을 총선까지 이끌어갈 동력을 얻는 데 성공했다. 여론조사에서 크게 밀리던 창원 성산서 박빙의 승부를 만들어냈고, 황교안표 1호 당선자를 배출했다. ‘경남FC 경기장 유세’라는 구설에 올랐음에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저력을 보여줬다.

PK에 친황 깃발 펄럭
오세훈 등판론 솔솔∼


가능성을 보여준 황교안 지도부는 앞으로의 행보에도 힘을 받게 됐다. 재보궐 선거 이후 당내서 당협위원장의 교체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다. 황 대표가 실제로 당협위원장 교체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당협위원장 교체의 명분과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월 공모를 통해 당협위원장을 교체한 바 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실시하는 당무감사는 당내 큰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실제 한국당 혁신위원장을 맡았던 한 인사는 이번 혁신 작업에 대해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당협위원장 교체 카드를 밀어붙이는 것은 무리수”라며 “수많은 현역 당협위원장들의 거센 반발로 (황 대표 체제가)총선 전에 꼬꾸라질 수 있다. 그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등판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내다봤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역시 한국당 내에서 흘러나오는 ‘당협위원장 교체설’에 일침을 가했다. 지난 1일 바미당 김현동 청년대변인 논평을 통해 “불과 3개월 전, 토론 배틀을 통해 실력위주로 당협위원장을 구성했다는 한국당의 광고는 보여주기식 쇼에 불과한 것인가”라며 “토론을 통해 기회를 얻은 수많은 청년 당협위원장들은 소신과 실력만으로 도달한 등용문이 사실은 사상누각이었음에 절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지고
‘오’ 등판


공천혁신소위는 앞으로 공천 심사 규정을 들여다본다. 상향식 공천을 위한 오픈프라이머리와 전략공천의 허용 범위, 정치 신인에 대한 가산점 부여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 당무감사 시기와 방법 등 조직 정비와 관련한 내용까지 포괄적으로 검토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경남FC의 반격

경남FC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황교안 대표 측의 프로축구 경기장 내 선거 유세로 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로부터 제재금 20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선거 유세를 막지 못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경남FC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제재금 2000만원을 한국당 측이 대납하는 조치를 촉구했다. 한국당이 대납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경남FC가 한국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법조계는 경남FC가 실제로 위자료 형식의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경남FC는 지난 3일 입장문을 통해 “한국당의 적절한 조치가 없으면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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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