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과 도박, 그리고 판돈 막전막후

하룻밤 수십억 왔다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돈이 많은 기업인들은 상대적으로 도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밑천이 두둑하기 때문. 이들이 거는 액수는 보통 사람이 평생 만져보지도 못한 액수인 경우가 많다. 하룻밤 새 판돈이 수천억에 달하는 도박판이 부지기수다. 서민들을 허탈감에 빠뜨리는 기업인들의 도박 ‘사이즈’를 확인했다.
 

중견기업 오너 일가 2세 A씨가 원정도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법의 심판을 받았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 과정서 회삿돈으로 밑천을 마련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판돈이 100억원에 달해 세간의 눈길이 쏠렸다.

판돈 수천억
서민은 허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지난달 29일 상습도박 및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중견기업 A사의 최대주주 박모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횡령한 자금은 상당 부분 도박과 관련이 있다”며 “이번 상습도박의 규모와 방법을 감안하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 미치는 간접적인 해악도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A씨는 수사 초기부터 범행 대부분을 자백하고 반성했다”며 “횡령금액은 거액이지만 오랜 기간 횡령 후에 다시 돈을 채우는 과정을 반복하여 실제 피해금액보다 자금이 불어난 측면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회삿돈으로 조성한 비자금으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필리핀 등 해외서 도박을 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기업인들은 도박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쉽다는 점 때문에 도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서민층의 도박판과는 스케일 면에서부터가 다르다. 20년 전에는 100억원대 해외카지노 도박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1997년 서울지검은 카지노서 거액을 빌려 도박을 한 혐의로 오종섭 대전 동양백화점 부회장과 박종섭 서울 강남구 스위스안경점 대표 등 4명을 기소했다. 오 전 부회장은 1996년 5월부터 1997년 6월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서 한국인 마케터 최모씨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355만달러를 빌려 도박으로 탕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그를 구속 기소했으나, 보석금 1억원을 내고 풀려났다. 당시 거액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악화되기도 했다.

동양백화점은 대전 지역의 향토기업으로 지역민의 오랜 사랑을 받았지만 경영난으로 한화갤러리아에 매각됐다. 오 전 회장은 2011년 향년 5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회삿돈 들고 도박판으로 ‘고∼’
필리핀 등 해외 원정도박 적발

김인태 경남종합건설 전 대표는 1997년 20만달러의 도박자금을 해외로 밀반출한 혐의로 도피행각을 벌이다 2002년 구속됐다. 김 회장은 마카오 등지서 수억원의 도박을 벌이며 외화를 반출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김 대표는 수차례 마카오호텔 카지노 등에서 원정도박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도박 판돈 액수가 기업인치고 많다고 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지만 사건이 알려졌을 당시 IMF 등으로 전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 등으로 외화벌이에 나선 때라 국민들의 분노는 컸다.


김 전 대표는 50만달러를 빌려 도박을 하고 같은 해 12월 위조여권을 사용해 해외서 도피행각을 벌인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한때 재계 서열 3위였던 그룹의 회장도 도박 구설에 올랐다. 1978년 김창원 거화그룹 회장도 원정도박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김 전 회장은 1984년 1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당시 23만달러를 카지노 도박으로 날린 혐의를 받고 검찰의 수사망에 올랐다.
 

거화그룹은 김 전 회장의 구속으로 흔들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계열사 거화자동차와 신진자동차는 쌍용차와 대우차로 각각 매각됐다. 이후 주력 계열사들이 그룹의 품을 떠나면서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77년 7월 설경동 대한그룹 창업주의 차남 설원철씨가 대규모 도박판을 벌인 혐의가 드러났다. 설씨 등 6명은 상습도박을 벌이고 도박장을 개장한 혐의로 구속됐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서울 중구 충무로 2가에 있는 L관광호텔서 하룻밤 새 1000여만원이 넘는 판돈을 놓고 포커를 쳤다. 모두 열두 번에 걸쳐 오고 간 판돈 총액은 2억8000만원에 달했다.

회사 어려워도 
카지노에 펑펑

당시 자장면 가격이 200원이었던 점을 감안해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하룻밤 새 오고 간 판돈은 대략 75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당시 검찰은 도박판 현장에 급습해 미화 5199달러, 엔화 2만2500엔, 한화 110만원 등을 회수했다. 설씨는 도박 사건 이후 경영권서 멀어졌다.

설경동 창업주는 장남 설원식 전 회장에게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을 물려주고 3남에게는 대한전선을 줬다. 4남인 설원봉 회장은 대한제당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설원철씨는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의 고문직을 맡기는 했지만 직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적은 없다.

일각에선 당시의 도박 논란이 후계 구도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한보그룹 역시 도박 스캔들이 있었다. 1997년 당시 정태수 총회장의 차남인 정원근 상아제약 회장은 1996년 9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도박으로 거액을 탕진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당했다.

서울지검 회사부에 따르면 정 회장은 30만달러의 자금을 빌려 카지노 도박을 했다. 당시 외국환관리법에 따르면 1만달러 이상의 외화를 송금할 경우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정 회장은 이를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정 회장이 도박 스캔들에 연루된 시기가 한보그룹이 경영난을 겪고 있던 와중이라 비난의 목소리는 높았다. 1997년 한보그룹의 주력 계열사 한보철강은 15억원의 자금을 해결하지 못해 부도가 났다. 이후 지급 보증을 섰던 다른 계열사가 쓰러지면 한보그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돈 많은 호구
설계자 타깃

여성 기업인도 도박판 스캔들에 연루된 적이 있었다. 1992년 검찰에 따르면 이춘자 한국광학 대표는 1987년부터 강남 일대서 벌어진 판돈 100억원 규모의 도박을 한 혐의로 수배자 신세가 됐다. 이 대표를 비롯해 도박에 빠진 도박꾼들은 하루 평균 300만∼1800만원의 판돈이 걸린 도박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7년에는 북악파크호텔의 기업인이 도박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구판서 북악파크호텔 회장의 4남 구상회(당시 37세)씨가 100만달러를 빼돌려 상습적으로 도박을 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구씨는 대학을 중퇴하고 미국서 대학을 졸업한 뒤 국내로 비디오테이프를 수입하는 사업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북악파크호텔은 70~80년 북악을 대표하는 호텔이었으나 1990년 중후반을 기점으로 쇠락의 길에 접어들어 2003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던 1966년에 하루 판돈 2000만원이 넘는 돈이 오간 도박판도 있었다. 당시 유화열 인천올림포스호텔 회장을 비롯해 전락원 구왕건설사 대표 등 3명이 대규모 카드 도박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에 따르면 유 회장 일행은 호텔 등을 전전하며 도박판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유 회장은 카지노를 이용해 탈세를 저지른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유 회장은 사위 함양섭 회계계장이 손님으로 가장해 딜러가 보관 중인 게임용 칩을 현금으로 바꿔 수입금액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90년부터 3년 동안 14억3000만원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았다.


후계자 밀리거나
회사 사라지거나

박순석 신안그룹 회장은 수억원대 원정도박을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2016년 항소심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박 회장도 정킷방서 도박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지법 형사항소1부(부장판사 이근수)는 2017년 상습도박 혐의로 기소된 박 회장에 대한 항소심서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해외서 자금을 조달해가며 도박을 벌여 죄질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피고인의 연령·건강 상태와 범행을 반성하는 태도 등을 참작해 형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2014년 2월부터 3월까지 마카오 한 호텔의 정킷방서 판돈 190만홍콩달러(약 2억6000여만원)를 베팅하는 등 두 차례에 걸쳐 바카라 도박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2014년 5월 서울 한 호텔서 고스톱 도박을 하던 이모(64)씨 등에게 2800여만원의 판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상습적으로 도박하고 도박 참여자들에게 도박자금으로 수백만원서 수천만원까지 대여해 이득을 취하는 등 죄질이 무겁다”며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논란이 된 점은 박 회장이 상습도박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이다. 앞서 박 회장은 2002년 상습도박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2013년 6월과 2014년 6~7월 총 3차례에 걸쳐 총 48억원을 대출받도록 알선해준 대가로 한 생수업체 대표로부터 4억9460만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기소돼 징역 1년2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화장품 업계의 신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도 원정도박 혐의로 ‘옥살이’를 하고 있다.

검찰은 정 전 대표가 2012년 3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마카오, 필리핀의 카지노 호텔에 설치된 정킷방서 100억원대의 도박을 한 것으로 보고 구속 기소했다. 정씨는 해당 정킷방서 한 판에 500∼2000만홍콩달러의 판돈을 베팅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 대표는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해 극구 부인하며 지루한 법정 공방을 예고했지만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마무리됐다.

정 전 대표는 1심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2심서 8개월로 감형됐다. 이후 검찰과 정 전 대표 측이 대법원 상고를 원치 않아 사건은 일단락됐고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재미 삼아…
두 번 세 번

재계의 한 관계자는 “도박판에 걸려 거액의 빚을 진 참여자가 다른 물주를 물색하는 조건으로 갚을 돈을 탕감해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이런 과정서 기업인들이 주요 타깃이 돼 도박판에 참여하게 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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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