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국회 ‘좀비 특위’ 현주소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진통 끝에 연장된 국회 비상설특별위원회는 정상 가동 중일까. 지난해 말 여야 합의로 연장된 특위들의 활동은 오는 6월 말 종료된다. 특위의 종료 시한이 임박할수록 국회는 ‘총선모드’로 진입, 그 관심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특위 활동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 그간 특위는 유명무실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번 특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남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 에너지특별위원회, 윤리특별위원회 등 6개 비상설특별위원회 연장안을 통과시켰다. 특위 연장은 사실상 불가피했다. 출범 이후 이렇다할 구체적인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6개 특위 구성 결의안은 이미 지난해 7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당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정개특위 위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다. 특위의 시계는 그대로 멈췄고, 결국 특위는 약 3개월이란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출범할 수 있었다.

출범 지연

정개특위는 지난해 10월24일 닻을 올렸다. 정개특위는 국회 최대 쟁점 중 하나인 ‘선거제 개편’을 논의 중이다. 전체회의는 특위원장과 간사를 선임하는 1차 회의를 포함해 총 8차례 열렸다(지난달 31일 기준, 이하 특위 동일 적용).

정개특위는 2개의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1소위는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을 논의하고, 2소위는 ‘공직선거법과 정당·정치자금법 심사’를 맡았다. 소위는 각각 15차례와 7차례, 모두 22차례 개의했다. 이 외에 공청회와 소위 비공개 회의 등을 진행했다.

정개특위는 1월 마지막 회의서 ‘선거제도 개혁 논의 경과 보고’를 통해 접점을 찾으려 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 그리고 야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제각각의 주장을 펼치는 데 그쳤다.


사개특위는 지난해 11월1일 출범해 전체회의는 1차 회의를 포함해 총 8차례 열렸다. 사개특위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그리고 ‘법원행정처 개혁’을 중점 사안으로 뒀다.

사개특위 역시 정개특위와 마찬가지로 검찰·경찰개혁 소위와 법원·법조개혁 소위 등 2개의 소위를 꾸렸다. 검경 소위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법원·법조 소위는 법원 행정처 개혁을 다루고 있다. 검경 소위는 6차례, 법원법조 소위는 4차례씩 열려 모두 10차례 소위가 개최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여야 합의 가능성이 높은 사안으로 거론됐다. 검경 소위 위원들은 그간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합의 정도를 언급하며 수사권 조정이 초읽기에 다다랐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한국당 소속 위원들의 반대로 제동이 걸렸다. 사개특위는 정개특위와 함께 입법권을 부여받았지만 연일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남북경협특위는 지난해 10월30일 첫 회의를 시작했다. 남북경협특위는 정개특위와 사개특위와 달리 소위원회가 없다. 남북경협특위는 총 4차례 전체회의를 열었다. 남북경협특위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구성된 바 있지만 ‘이념 대립’으로 대부분 결의안 채택에 그쳤다. 

연장된 6개 특위…아직 성과는 없어
실질적 시한 국회 총선모드 돌입 전

이번 남북경협특위에는 과거와 달리 큰 기대가 실렸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한반도 평화무드가 결정적이었다. 물론 지난날에도 남북대결구도가 완화된 바 있지만 이번 남북관계 회복 국면은 차이점을 보였다. 비핵화의 실질적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북미정상의 만남이 대표적이다.

긍정적 상황과 달리 특위의 역할은 축소되는 모양새다. 여야 의원들의 첨예한 입장 차가 크게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의록을 살펴보면 여야 의원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이나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을 두고 치열하게 맞붙었다. 지난해 있었던 4·27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한반도 분위기는 남북경협특위가 성과를 낼 수 있는 절호의 시기로 여겨지지만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4차산업특위는 지난해 11월14일 출범해 2차례 전체회의를 열었다. 4차산업특위는 2개의 소위를 두고 있다. 소위의 명칭은 ‘인공지능소위’와 ‘빅데이터소위’로 총 5차례 열렸다. 인공지능 소위는 3차례, 빅데이터 소위는 2차례 개회됐다.

4차산업특위의 주제는 방대하지만 특위가 ‘늑장 출범’하는 까닭에 일각에선 특위의 성과 창출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회의록을 살펴보면 4차산업특위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 질의응답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까닭에 뚜렷한 대책이나 대안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국민 세금으로 4차 산업혁명 강의를 듣고 있다”고 꼬집었다.

에너지특위에서는 ‘탈원전’을 중심으로 여야 간 불꽃이 튀고 있다. 에너지특위는 지난해 11월1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3차례 전체회의를 열었다. 에너지특위는 정부의 원전 정책을 두고 여야 위원들의 고성과 함께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다. 한국당 위원들은 탈원전 정책을 ‘재앙’이라 평가했고, 정부와 여당 위원들은 탈원전과 신재생 에너지를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내세우며 물러서지 않았다. 

윤리특위는 지난해 11월15일 1차례 전체회의를 열었다. 윤리특위는 징계심사소위, 자격심사소위, 국회윤리제도개선소위 등 모두 3개의 소위를 꾸렸다.

국회의원의 징계 절차는 윤리특위와 본회의 의결이 필요하다. 현재 국회의원 징계안 21건이 윤리특위에 접수됐지만 가결된 건은 전무하다. 윤리특위는 징계 심사 전 외부 인사로 구성된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듣도록 돼있다. 그러나 윤리자문위가 의견을 제시해도 윤리특위는 이에 대한 수용 여부를 곧바로 결정하지 않는다. 윤리특위의 처리 시한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한 4개월

국회 6개 비상설특위는 기한 연장으로 오는 6월30일 종료된다. 앞으로 약 4개월의 시간이 남은 셈이다. 일각에선 활동 종료 시한을 더 짧게 본다. 내년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차기 총선은 내년 4월에 치러진다. 통상 국회는 총선 1년을 앞두고 총선모드로 전환된다. 결국 6개 특위의 실질적 기한은 총선 1년 전인 오는 4월까지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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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