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물켜는 한국당, 어디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1.26 10:57:25
  • 호수 11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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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들어오는데…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재명 ‘혜경궁 김씨’ 사태가 터졌다. 박원순 ‘자기정치’ 사태가 터졌다. 여당은 곳곳서 터지는 사건들로 정신이 없다. 설상가상 문재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인 ‘이영자’가 흔들리고 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 그러나 헛물만 켜며 귀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전국 법관회의

‘혜경궁 김씨’의 트위터 계정에 등록된 G메일 아이디(khk631000)가 포털사이트 ‘다음’서도 사용됐고, 이 아이디의 마지막 접속지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자택이라는 증거를 경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혜경궁 김씨가 이 지사의 아내인 김혜경씨라는 점을 증명할 만한 다수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영자 효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국노총 집회에 참석했다. ‘소통령’이라 불리는 서울시장이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려는 정부와 갈등을 벌이는 노동단체의 집회에 참석한 일은 정치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곧바로 박 시장이 ‘자기정치’를 한다는 비판이 여당서 나왔다. 일단 서울시 측은 “한 달 전에 정해진 일정”이라며 정치적 해석에 선을 그은 상태다.

경중은 있지만, 두 사람에게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 지사는 탈당은 물론 경기도지사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박 시장은 정부여당 측 정책과 반대되는 집회에 참석함으로써 당내 주류와 엇박자를 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히는 두 사람이 당과 반목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부침을 겪고 있다. 특히 핵심 지지층인 ‘이영자’ 측에서의 하락이 심상치 않다. 이영자는 20대·영남·자영업자를 의미한다. 민주당서도 이영자 이탈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에 따르면, 민주당의 20대 지지율은 올해 1월 1주차 주간동향에서는 53.7%를 기록했지만, 지난 19일 발표된 11월 2주차 주간동향에선 42.0%로 근 1년새 10%포인트 이상 이탈했다.

같은 기간 영남권의 지지율도 부산·울산·경남(PK)에서는 43.9%서 39.0%로, 대구·경북(TK)은 39.1%서 29.0%로 하락했다. 자영업자 지지율 역시 51.1%서 33.8%로 2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민주당 입장에서는 악재지만, 한국당 입장에서는 호재다. 지난 20대 총선 때부터 민주당에 밀려왔던 상황을 역전시킬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논평으로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게 화해치유재단 해산에 대한 논평이다.

“화해재단 해산 우려” 국민정서와 괴리
기회 왔지만…리더는 없고 갈등만 있다

한국당은 재단 해산에 대해 “정부는 한일 양국 간의 합의로 설립된 재단의 해산이 지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이어 한일관계를 더욱 냉각시킬 수 있는 사안이라고 인식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으로 확대하면서까지 한일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재단 해산을 환영했다.


민주당은 “화해와 치유 대신 불화와 상처만 안긴 재단의 해산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으며, 바른미래당은 “‘갈등상처재단’이 된 재단의 공식 해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 역시 “재단 해산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 당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재단이었다”며 “출연금 10억엔도 즉각 반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당도 “국민 편에서 국익을 위한다는 외교원칙의 기본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열렬히 환영한다”고 전했다.

대법관 탄핵에 대한 논평도 한국당만 엇박자를 냈다. 여야 4당은 사법부의 ‘환골탈태’를 환영한다는 반응을 내놓은 반면, 한국당은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법관들이 국회의 권한인 탄핵을 간섭했다는 논리다.
 

▲ 화해치유재단

당내 내홍이 격화되면서 논평은 더욱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와 친박(친 박근혜)계, 비박(비 박근혜)계, 반문(반 문재인)연대가 뒤섞여 혼전을 벌이고 있다.

김병준 비대위는 친박계와 갈등을 벌인다. 친박계는 성과 없는 김병준 비대위가 빠른 시일 내에 조기 전당대회를 연 뒤 자리서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김병준 비대위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이하 조강특위)는 당협위원장 교체 기준에 ‘진박’ ‘최순실 국정 농단 연루자’ ‘영남 다선’ 등을 넣었다. 친박계와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친박계는 또 반문연대 세력과 갈등을 벌인다. 김무성 전 대표, 윤상현 의원 등 보수통합파는 반문연대에 적극적이다. 윤 의원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은 김영삼 대통령 서거 3주기다. 대도무문, 고인의 좌우명은 지금 울림이 더욱 크다. 우리는 거침없이 단결하고 연대해야 한다. 반문연대를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표는 기자들에게 “국민들은 우리 한국당이 분열하지 말고 화해하고 통합하라고 요구한다. 당이 잘못되는 과정서 양보와 희생을 하고 통합하는 길만이 다음 집권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도 적극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친박계는 ‘탄핵 책임론’을 다시금 거론하며 보수통합파와 맞서는 중이다.

이게 정당?

한국당 내 대선주자급 인사들도 부침을 이어가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가 정계 복귀를 알렸지만, 진보 진영은 위기감을 나타내기보다 도리어 환영의 메시지를 보냈다. 홍 전 대표의 막말정치가 보수에 반감을 부추긴다는 계산이 환영 메시지 저변에 깔려있다. 이렇다할 당권주자가 보이지 않는 점도 한국당의 현 상태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당 조강특위서 해촉된 전원책 변호사는 지난 19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당권 도전 가능성에 대해 “어느 날 갑자기 입당해서 당 대표까지 넘본다면 그게 정당이냐”며 힐난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영자를 잡아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이영자’ 잡기에 혈안이다. 이영자는 20대·영남·자영업자의 줄임말로 최근 민주당 이탈이 심하다.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지난 18일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발대식에 총출동했다. 참석자들은 문 대통령의 20대 지지율이 올 초에 비해 20%포인트 넘게 하락한 부분을 지적하며 “가슴 아프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지도부는 김현권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대구·경북발전특별위원회를 구성, 본격 가동에 돌입했다. 아울러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을 위해 ‘제로페이’를 비롯한 각종 지원 대책 마련에도 나섰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자영업자 지원 관련 법안들도 정기국회 내에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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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