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당수 팔단의 하회탈’ 황우여 신임 새누리당 대표

  • 홍정순 jshong@ilyosisa.co.kr
  • 등록 2012.05.22 0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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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심 사로잡은 ‘황당우려’ 민심까지 잡을까?

[일요시사=홍정순 기자] 새누리당 초대 대표에 황우여 전 원내대표가 선출됐다. 새누리당은 연말 대통령선거를 7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친박성향의 황우여 대표 체제를 전격 출범시켰다. 정권재창출이란 대명제를 안고 출범한 ‘황우여호’는 앞서 선출된 친박계 이한구 원내대표와 호흡을 맞추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유의 친화력과 트레이드마크인 ‘하회탈 미소’로 당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특급지휘봉을 손에 넣은 황 대표. 과연 그의 서글서글한 미소가 민심까지 사로잡고 정권재창출을 이뤄낼 수 있을까.

새누리당이 완벽한 ‘박근혜당’으로 탈바꿈한 모양새다. 지난 15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1차 전당대회에서 5선의 친박계 황우여 의원이 초대 대표로 선출된 것. 황 대표는 선거인단 투표와 여론조사를 합쳐 30.7%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 황 대표의 뒤를 이어 이혜훈(14.8%)?심재철(11.8%)?정우택(11.5%)?유기준(10.0%) 후보가 나란히 지도부 입성에 성공했다.

박근혜 친정체제
더욱더 공고해져

지도부 5명 중 친이계인 심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친박계인 셈이다. 지난 9일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이한구 원내대표-진영 정책위의장이 당선되며 ‘친박 원내사령탑’을 구축한 데 이어 새 지도부 역시 친박계 인사로 구성된 셈이다. 때문에 새누리당은 명실상부한 ‘박근혜 친정체제’를 완결했다는 평이다.

여기에 ‘박근혜 체제’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명직 최고위원 2명에는 호남 몫으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핵심 측근인 이정현 의원이 거론되고 있어서다. 이로써 난파직전의 새누리당을 건져 올리려 지난해 말 출범했던 비상대책위는 5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간판을 내리게 됐다.  

새누리당의 초대 대표로 선출된 황 대표는 인천에서 나고 자라 내리 5선에 성공한 ‘인천토박이’다. 그는 제물포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를 거쳐 제10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서울지법 판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다 지난 1996년 이회창 신한국당 선대위원장의 영입으로 15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황 대표는 이어 16대 총선부터 인천 연수구에 출마해 내리 4선에 성공했다.


옛 한나라당 시절 정책위 부의장과 국회 교육위원장, 인천시당 위원장, 사무총장, 원내대표 등 중책을 두루 거쳤음은 물론이다. 특히 판사시절의 경험은 그를 국회에서 헌법전문가로 손꼽히게 만들었다.

친박계의 압도적 지지 등에 업고 새누리 초대 대표에 올라
박근혜 특급지휘봉 넘겨받은 황우여…최대과제는 ‘정권재창출’

역대 여당을 통틀어 원내대표직에서 당 대표로 초고속으로 승진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황 대표는 지난 1년간 원내사령탑을 맡으면서 발군의 위기돌파력과 순발력, 정치 감각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원내대표 시절 한미FTA 비준안과 국회 선진화법안 등을 관철 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특히 당이 어려울 때 갈등관리에 장점을 지닌 ‘화합형 리더’로 꼽힌다. 당내 최대 계파인 친박계와 중도성향의 쇄신파까지 아우르고 있어서다. 특히 그는 ‘어수룩해 보여도 당수(唐手)가 팔단’이라는 뜻의 ‘어당팔’로 불릴 정도로 유들유들한 소통력을 자랑한다.

황 대표는 또 ‘이슈 만들기’에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반값등록금을 공론화하고 정부 정책에 반영했다. 여기에 북한 인권법 주장, 지난 4·11 총선 직후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제도 폐지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원내대표직 수행 당시의 업적으로 지도력을 인정받아 당내 입지를 확보해왔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당초 황 대표는 뚜렷한 계파색을 보이지 않는 중도파로 당내 지위를 확보해왔다. 친박성향도 친이성향도 아니었던 그는 원내대표를 맡으면서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을 선보여 박 전 위원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이것이 신(新)친박계로 부상한 결정적 계기였던 것.

사실 그의 당권 도전은 익히 예견된 행보였다. 황 대표는 ▲당 화합 ▲국민 눈높이에 맞춘 개혁 ▲국민행복 실현 등 3가지 공약을 제시하며 당권에 도전했다.

전대 이후 극심해진
비박주자들의 공격


지난해 5월 친박계와 쇄신파 의원들의 지지로 원내대표에 오른 뒤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도 친박계 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압도적인 득표력을 과시하며 당권 확보에 성공했다. 당권주자 9명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며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뒤 초대 대표 자리에 무난히 오른 것이다.

연말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그가 새누리당의 새 대표에 오른 데에는 지난 17대 대선 당시 사무총장직을 맡아 친이계, 친박계 간 물밑 조율을 잘 이끌어내며 경선 룰을 만들어내는 등 대선후보 경선을 성공적으로 관리한 점이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이제 황 대표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권재창출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떠안게 됐다. 먼저 ‘친박 지도부 독식’에 따른 친이 및 비박세력의 반발을 잠재우는 게 황 대표의 첫 번째 임무다. 특히 이재오?김문수?정몽준?임태희 등 비박 대권주자들을 비롯한 친이계와 화합 여부가 관건이다.

이를 의식한 황 대표 역시 대표직 수락 연설에서 “당 화합을 제1의 과제로 삼겠다”고 말했다. 비박계는 전대를 계기로 친박에 더욱 각을 세울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특히 이들은 ‘완전국민경선제’를 고리로 박 전 위원장과의 대립각을 강화해 나가는 모양새다. 당장 황 대표는 이들과 당내 대선후보 경선 룰을 둘러싼 협상에 임해야 한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경선 룰이 바뀌면서 다소 손해를 봤다는 견해가 많았다. 무엇보다 황 대표는 전대에서 친박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대세론을 형성하며 당권을 거머쥐었다. 경선 룰을 정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은 지도부의 몫이라는 점에서 황 대표가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친박 vs 비박 갈등하는 ‘완전국민경선제’ 어떻게 처리할까?
유들유들한 화합형 리더…대여공세 차단 위해 ‘강단’ 주문 

황 대표는 당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완전국민경선제에 대해 “후보들의 문제제기를 정식으로 수렴하겠다”면서 “(지도부에서) 수렴방식과 절차에 대해서 검토하고 의견을 나눈 후 당의 공식적 입장을 정하겠다”고 원칙적인 수위를 지켰다.

하지만 황 대표는 경선 과정에서 “지금의 경선규칙인 반(半)폐쇄형, 세미프라이머리도 굉장히 발전된 제도”라며 “대선후보 결정에서 하자가 있거나 부실하면 심각한 문제이므로 오픈프라이머리보다는 현실에 발을 딛고 부작용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완전국민경선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결국 비박 주자들이 요구하는 경선 룰 변경에 당 지도부가 ‘제동’을 걸 가능성이 커 이를 둘러싸고 극심한 당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친박일색’이라는 당내외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경선관리가 제대로 안 될 경우 자칫 일부 세력의 이탈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새롭게 친박계로 자리매김한 황 대표가 여러 명의 후보가 난립하고 있는 대선정국에서 얼마나 공정하게 경선 관리를 해낼 수 있느냐가 대표로서 정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다음으로는 19대 국회가 열리면 4·11 총선 때의 공약을 이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 전 위원장이 누차 강조했던 ‘가족행복 5대 약속’ 실현을 위해 곧바로 입법에 돌입해야 한다. 입법에 있어선 원내대표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이를 잘 풀어나갈 수 있도록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건 당 대표의 몫이다.

19대 국회에서
총선 공약 이행

이에 대해 그는 지난 16일 여의도 당사에서 주재한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은 국민 눈높이에 맞춰 민생을 돌보고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며 우리의 약속한 바를 실천하는데 매진하겠다”고 총선 공약이행을 강조했다.


그밖의 대야관계 설정도 중요한 임무다. 황 대표는 원내대표 시절에도 무난한 성격으로 여야관계를 대화로 이끌었다.

하지만 역으로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이번에 선출된 지도부는 12월 대선을 관리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녔기에 야당의 정략에 끌려가서는 곤란하다는 게 새누리당 내 시각이다. 따라서 보다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현재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오는 6월9일 전대를 통해 새 지도부를 구성한다. 새 당대표는 이해찬 상임고문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이 고문은 정치9단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정치력을 지닌 전략가인데다, 박지원 원내대표 역시 노련하기가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전략가로 꼽힌다. 야당의 치열한 공세를 막기 위해선 황 대표도 보다 강단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 나오는 이유이다.

막중한 임무를 띠고 새누리당의 특급지휘봉을 잡은 황 대표. 별명인 ‘황당우려’를 말끔히 떨쳐내고 당심에 이어 민심까지 사로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황우여 대표 프로필>

▲1965 제물포고등학교 
▲1969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1982 서울대학교 대학원 헌법학 박사 
▲1969 제10회 사법시험 합격
▲1974 서울지방법원 판사
▲1993~1996 감사원 감사위원
▲15·16·17·18·19대 국회의원
▲2006 한나라당 사무총장
▲2011 한나라당 원내대표
▲2012 새누리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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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