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08③>연말연시 서민들의 고달픈 애환<돌격르포>

“하루벌이 하루살이에 쓴 소주만 들이켜요”


흉흉한 시국으로 다소 썰렁하긴 해도 연말은 연말이다. 백화점은 세일이 끝나기 전 겨울옷을 장만하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유흥업소가 즐비한 골목은 취객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에게 흥청망청한 분위기는 남의 나라 일일 뿐이다. 경제가 휘청거릴 때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저소득층 서민들과 실직자, 노숙자, 노점상 등이 그들. 이들에게 연말은 새해엔 나아질 거란 희망조차 품기 어려운 추운 날들이다.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받으려 동분서주하는 대리운전기사, 구직을 위해 쓸개까지 빼놓은 실직자, 내일의 일거리가 보장되지 않아 밤마다 쓴 소주를 삼키는 일용직 노동자 등 처절한 연말을 보내는 이들의 사연을 현장에서 들어봤다.

분주한 연말 분위기 속 생계걱정에 여념 없는 서민들
술자리 많은 연말 대목 노린 대리운전기사들의 힘든 일상
실업자 늘면서 대리운전기사, 노점 상인들 경쟁 치열해져
일정 수입 없는 실직자·노숙인 등 ‘더욱 가까운 불황’


10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반 강제로 퇴사하고 지난 10월부터 대리운전을 시작한 박모(37)씨. 그의 하루는 오늘도 해가 떨어진 뒤 시작된다.
지난 15일 저녁 7시, 그날도 어김없이 박씨는 PDA를 들고 강남 유흥가 골목에서 손님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평소대로라면 손님이 뜸할 월요일 저녁이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연말특수를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햇다.

대리운전자 늘어나
대목특수 사라져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 PDA는 울리지 않았다. 초조감이 극에 달할 무렵 첫 번째 ‘오더’가 왔다. 내용은 ‘강남역-신설동 15K’. 강남역에서 신설동까지 1만5000원이란 뜻이다.
박씨는 콜센터 접수를 마치자마자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고 부리나케 강남역으로 이동, 얼큰하게 취한 남자손님을 태웠다. 무사히 첫 번째 손님을 집까지 태워준 뒤 1만5000원을 받은 박씨는 벤치에 앉아 다음 손님을 기다렸다.
마침 인근에 있는 손님으로부터 주문이 왔고 웬 횡재냐 싶었던 박씨는 급히 손님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나 이미 손님은 먼저 온 대리운전 기사의 차를 타고 떠난 뒤였다. 대리운전을 부르는 사람들은 몇 개 업체에 전화를 걸어 먼저 오는 운전자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일이 허다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었다.

그 후 박씨는 용산에서 일산으로, 마포역에서 강서구청 등으로 불려 다니며 5건의 대리운전을 해 새벽 5시경 약 8만원의 수입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그 가운데 택시비와 회사에 내야 하는 사납금, 식사비 등을 제하고 4만원가량의 순수익을 손에 넣은 채 지친 몸으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박씨는 “그나마 연말이라 손님이 좀 있는 편이어서 집사람에게 몇 만원이라도 쥐어줄 수 있어 다행”이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박씨와 같은 대리운전기사들에게 연말은 송년회 등 각종 모임으로 취객이 늘어나는 대목일 뿐이다. 크리스마스나 새해 첫 해맞이 등의 행사는 이들을 설레게 하지 않는다. 더 많은 이들이 흥청망청한 연말을 보내 PDA가 한 번이라도 더 울려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연말특수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대리운전업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데다 실직 등의 이유로 대리운전기사를 택한 이들이 늘어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전국대리운전자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1월30일 기준으로 전국의 대리운전자 수는 7만6000여 명이다. 이는 지난 6월과 비교해 5000명이나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암암리에서 활동하는 대리운전기사가 적지 않은 만큼 얼마나 많은 이들이 대리운전 업계에 뛰어들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해지자 허탕을 칠 뿐만 아니라 쓸모없는 지출만 하고 돌아오는 대리운전자들도 허다하다. 대부분 대리운전 이용자들은 몇 군데의 업체에 전화를 건 뒤 가장 먼저 오는 대리운전자에게 자신의 차를 맡긴다.
때문에 기동성 싸움에서 진 운전기사들은 허탕을 칠 뿐만 아니라 쓸데없이 택시비만 낭비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심지어 대리운전업체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격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 집단 폭력사태로 이어지는 사건 등이 이를 말해 준다.

여성 대리운전자의 경우 더 큰 고충을 감수하며 밤거리를 나선다. 술에 취한 남자손님들이 공공연히 보내는 야릇한 시선과 짓궂은 농담 등을 견디는 것은 여성 대리운전자들이 넘어야 할 산이다. 때로는 시선과 언어성희롱에서 그치지 않고 육탄공세를 펴는 취객도 있는 것이 현실.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운전대를 잡게 됐다는 대리운전 경력 6개월 차의 주부 이모(35)씨. 처음엔 뭇 남성들의 농담을 받아주는 것이 몸의 피로함보다 훨씬 힘들었지만 몇 개월이 지나자 성적농담에 대응하는 요령도 터득했다. 그러나 지난달 손님에게 당한 성추행으로 큰 충격을 받고 결국 대리운전을 그만두게 됐다.

여성운전자에 쏟아지는
야릇한 시선과 짓궂은 농담

그날 밤도 술에 얼큰하게 취한 남자손님을 옆자리에 태우고 가던 이씨. 점잖은 인상에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손님을 본 그녀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차가 출발하기가 무섭게 그 남성은 이씨에게 “2차 한번 가자”는 제안을 한 것.
놀란 이씨는 애써 웃으며 거절을 했지만 남성은 계속해서 2차를 요구했다. 결국 그녀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그 남성은 이씨의 팔을 잡아 당겨 끌어안은 뒤 가슴을 만지려고 했다.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남성을 밀어낸 뒤 도망치듯 차에서 빠져나왔다.
이씨는 “그날 이후로 대리운전은 절대 하지 않는다”며 “술에 취하면 모든 여자를 업소의 여자로 보는 남성들이 있는 한 여자가 대리운전을 하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들뜬 연말분위기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또 다른 이들은 구조조정 등으로 실직하거나 사회에 나오기도 전 불합격이란 쓴잔만을 마시고 있는 구직자들이다. 하루아침에 백수로 전락하거나 면접의 기회조차 뜸한 이들에게 연말은 우울하기만 하다.
올 10월 아빠가 된 이모(28)씨는 그야말로 막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00일 잔치를 하기도 전 실업자 신세가 돼 분유값 걱정을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1년 전 한 무역업체에 취직해 15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으며 세 식구의 가장이 된 이씨. 늘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전셋집이나마 보금자리가 있고 직장이 있고 가족이 있다는 것에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 그에게 사장은 지난달 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는 말이었다. 갑작스런 해고통보에 정신이 아득했던 이씨에게 사장은 봉투 하나를 건넸다. 아기 기저귀 값이라도 하라며 두 달 치 월급을 넣어 줬던 것.
회사가 기울어가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던 데다 자신을 친자식처럼 아꼈던 사장의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다는 것을 아는 이씨는 눈물을 머금고 사무실을 나와야 했다.

그는 그 후 건설현장을 찾아다니며 막노동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일거리를 찾기가 어려워 공치는 날이 늘어간다고 한다. 이씨는 “젊은 놈이 처자식 굶기겠느냐며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어린 딸아이를 보고 있으면 눈물부터 난다”고 말했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대학생 장모(25·여)씨도 초조한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는 이들 중 하나다. 대학 4년 동안 대기업취업만을 목표로 달려왔던 장씨. 그러나 대학시절 동안 취업을 위해 쌓아왔던 각종 이력과 결과물로 밤을 새워 이력서를 작성해도 서류전형조차 통과되지 않자 눈높이는 차츰차츰 낮아졌다.
이제는 중소기업은 물론, 초대졸 사원을 모집한다는 기업에도 서슴없이 원서를 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수십 개의 기업 중 면접시험의 기회를 준 업체는 단 두 곳. 두 업체에서도 장씨는 퇴짜를 맞았다.

넉넉지 못한 집안형편에 취업재수는 꿈도 꾸지 못한다는 장씨는 오늘도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취업사이트와 취업박람회 등의 정보를 검색하며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또 고친다. 내년엔 많은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규모를 대폭 줄인다는 가슴 철렁한 뉴스는 마음 편히 눈조차 붙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장씨는 “졸업 전 취업해 졸업식 날 부모님에게 사각모를 씌워 드리는 것이 꿈이었는데 졸업식장에도 가지 못할 것 같다”며 “왜 하필 올해 졸업해 사회에 발을 들이기도 전 절망감부터 맛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장사를 하는 노점상인에게도 이 겨울은 유난히 춥다. 경기도 부천에서 5년째 붕어빵을 구워 파는 남모(46·여)씨는 어느 해보다 수입이 줄었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남씨가 장사를 하는 장소와 불과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붕어빵 노점상이 3개나 생긴 탓이다.
재료비 상승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000원에 4개의 붕어빵을 팔고 있는데 비해 인근의 한 노점상은 1000원에 무려 8개의 붕어빵을 주고 있어 경쟁에서 밀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근처에 20대 여성 2명이 다코야끼라는 일본과자를 구워 팔아 젊은 층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어 손님의 발길이 한층 더 뜸해졌다고 한다.

남씨는 “손님을 끌기 위해 손해를 보면서 팔 수도 없고 장사를 그만둘 수도 없으니 하루하루가 힘들기만 하다”며 “내년에 대학교에 가는 첫째아들을 생각하면 한숨만 늘어간다”고 토로했다.
강추위와 싸우며 한뎃잠을 자는 노숙인들에게도 이번 연말이 달가울 리 없다. 서울역, 잠실역, 영등포역 등 노숙인의 메카(?)로 자리 잡은 곳에는 대낮부터 소주병을 끼고 행인 사이를 지나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추위가 거세질수록 종이상자와 신문지로 몸을 감싼 채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모여 들어 술로 추위와 절망감을 떨치고 있었다.

실직자 증가하면서
노숙인, 노점상도 늘어

갈수록 더해가는 불황은 20~30대의 청년들과 여성들까지 거리로 내모는 등 노숙인들의 풍경을 바꿔놓기도 하고 있다.
문제는 내년 초가 되면 노숙인들의 수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노숙인들이 거리생활을 하기 전 PC방이나 고시원, 쪽방 등을 전전하다 길거리로 나오는데 현재 이 장소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짐작케 한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밖에도 보일러를 틀 형편이 되지 않아 냉방에서 두꺼운 이불 몇 장에 의지해 생활하는 쪽방촌 노인들, 보증금이 없어 언제 터질지 모를 사건에 대한 불안감을 안은 채 고시원에서 지내는 노동자들, 일거리를 찾으러 새벽부터 인력시장에 나선 이들 등 서민들의 연말은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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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