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08③>연말연시 서민들의 고달픈 애환<돌격르포>

“하루벌이 하루살이에 쓴 소주만 들이켜요”


흉흉한 시국으로 다소 썰렁하긴 해도 연말은 연말이다. 백화점은 세일이 끝나기 전 겨울옷을 장만하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유흥업소가 즐비한 골목은 취객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에게 흥청망청한 분위기는 남의 나라 일일 뿐이다. 경제가 휘청거릴 때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저소득층 서민들과 실직자, 노숙자, 노점상 등이 그들. 이들에게 연말은 새해엔 나아질 거란 희망조차 품기 어려운 추운 날들이다.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받으려 동분서주하는 대리운전기사, 구직을 위해 쓸개까지 빼놓은 실직자, 내일의 일거리가 보장되지 않아 밤마다 쓴 소주를 삼키는 일용직 노동자 등 처절한 연말을 보내는 이들의 사연을 현장에서 들어봤다.

분주한 연말 분위기 속 생계걱정에 여념 없는 서민들
술자리 많은 연말 대목 노린 대리운전기사들의 힘든 일상
실업자 늘면서 대리운전기사, 노점 상인들 경쟁 치열해져
일정 수입 없는 실직자·노숙인 등 ‘더욱 가까운 불황’


10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반 강제로 퇴사하고 지난 10월부터 대리운전을 시작한 박모(37)씨. 그의 하루는 오늘도 해가 떨어진 뒤 시작된다.
지난 15일 저녁 7시, 그날도 어김없이 박씨는 PDA를 들고 강남 유흥가 골목에서 손님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평소대로라면 손님이 뜸할 월요일 저녁이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연말특수를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햇다.

대리운전자 늘어나
대목특수 사라져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 PDA는 울리지 않았다. 초조감이 극에 달할 무렵 첫 번째 ‘오더’가 왔다. 내용은 ‘강남역-신설동 15K’. 강남역에서 신설동까지 1만5000원이란 뜻이다.
박씨는 콜센터 접수를 마치자마자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고 부리나케 강남역으로 이동, 얼큰하게 취한 남자손님을 태웠다. 무사히 첫 번째 손님을 집까지 태워준 뒤 1만5000원을 받은 박씨는 벤치에 앉아 다음 손님을 기다렸다.
마침 인근에 있는 손님으로부터 주문이 왔고 웬 횡재냐 싶었던 박씨는 급히 손님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나 이미 손님은 먼저 온 대리운전 기사의 차를 타고 떠난 뒤였다. 대리운전을 부르는 사람들은 몇 개 업체에 전화를 걸어 먼저 오는 운전자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일이 허다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었다.

그 후 박씨는 용산에서 일산으로, 마포역에서 강서구청 등으로 불려 다니며 5건의 대리운전을 해 새벽 5시경 약 8만원의 수입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그 가운데 택시비와 회사에 내야 하는 사납금, 식사비 등을 제하고 4만원가량의 순수익을 손에 넣은 채 지친 몸으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박씨는 “그나마 연말이라 손님이 좀 있는 편이어서 집사람에게 몇 만원이라도 쥐어줄 수 있어 다행”이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박씨와 같은 대리운전기사들에게 연말은 송년회 등 각종 모임으로 취객이 늘어나는 대목일 뿐이다. 크리스마스나 새해 첫 해맞이 등의 행사는 이들을 설레게 하지 않는다. 더 많은 이들이 흥청망청한 연말을 보내 PDA가 한 번이라도 더 울려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연말특수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대리운전업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데다 실직 등의 이유로 대리운전기사를 택한 이들이 늘어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전국대리운전자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1월30일 기준으로 전국의 대리운전자 수는 7만6000여 명이다. 이는 지난 6월과 비교해 5000명이나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암암리에서 활동하는 대리운전기사가 적지 않은 만큼 얼마나 많은 이들이 대리운전 업계에 뛰어들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해지자 허탕을 칠 뿐만 아니라 쓸모없는 지출만 하고 돌아오는 대리운전자들도 허다하다. 대부분 대리운전 이용자들은 몇 군데의 업체에 전화를 건 뒤 가장 먼저 오는 대리운전자에게 자신의 차를 맡긴다.
때문에 기동성 싸움에서 진 운전기사들은 허탕을 칠 뿐만 아니라 쓸데없이 택시비만 낭비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심지어 대리운전업체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격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 집단 폭력사태로 이어지는 사건 등이 이를 말해 준다.

여성 대리운전자의 경우 더 큰 고충을 감수하며 밤거리를 나선다. 술에 취한 남자손님들이 공공연히 보내는 야릇한 시선과 짓궂은 농담 등을 견디는 것은 여성 대리운전자들이 넘어야 할 산이다. 때로는 시선과 언어성희롱에서 그치지 않고 육탄공세를 펴는 취객도 있는 것이 현실.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운전대를 잡게 됐다는 대리운전 경력 6개월 차의 주부 이모(35)씨. 처음엔 뭇 남성들의 농담을 받아주는 것이 몸의 피로함보다 훨씬 힘들었지만 몇 개월이 지나자 성적농담에 대응하는 요령도 터득했다. 그러나 지난달 손님에게 당한 성추행으로 큰 충격을 받고 결국 대리운전을 그만두게 됐다.

여성운전자에 쏟아지는
야릇한 시선과 짓궂은 농담

그날 밤도 술에 얼큰하게 취한 남자손님을 옆자리에 태우고 가던 이씨. 점잖은 인상에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손님을 본 그녀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차가 출발하기가 무섭게 그 남성은 이씨에게 “2차 한번 가자”는 제안을 한 것.
놀란 이씨는 애써 웃으며 거절을 했지만 남성은 계속해서 2차를 요구했다. 결국 그녀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그 남성은 이씨의 팔을 잡아 당겨 끌어안은 뒤 가슴을 만지려고 했다.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남성을 밀어낸 뒤 도망치듯 차에서 빠져나왔다.
이씨는 “그날 이후로 대리운전은 절대 하지 않는다”며 “술에 취하면 모든 여자를 업소의 여자로 보는 남성들이 있는 한 여자가 대리운전을 하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들뜬 연말분위기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또 다른 이들은 구조조정 등으로 실직하거나 사회에 나오기도 전 불합격이란 쓴잔만을 마시고 있는 구직자들이다. 하루아침에 백수로 전락하거나 면접의 기회조차 뜸한 이들에게 연말은 우울하기만 하다.
올 10월 아빠가 된 이모(28)씨는 그야말로 막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00일 잔치를 하기도 전 실업자 신세가 돼 분유값 걱정을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1년 전 한 무역업체에 취직해 15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으며 세 식구의 가장이 된 이씨. 늘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전셋집이나마 보금자리가 있고 직장이 있고 가족이 있다는 것에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 그에게 사장은 지난달 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는 말이었다. 갑작스런 해고통보에 정신이 아득했던 이씨에게 사장은 봉투 하나를 건넸다. 아기 기저귀 값이라도 하라며 두 달 치 월급을 넣어 줬던 것.
회사가 기울어가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던 데다 자신을 친자식처럼 아꼈던 사장의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다는 것을 아는 이씨는 눈물을 머금고 사무실을 나와야 했다.

그는 그 후 건설현장을 찾아다니며 막노동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일거리를 찾기가 어려워 공치는 날이 늘어간다고 한다. 이씨는 “젊은 놈이 처자식 굶기겠느냐며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어린 딸아이를 보고 있으면 눈물부터 난다”고 말했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대학생 장모(25·여)씨도 초조한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는 이들 중 하나다. 대학 4년 동안 대기업취업만을 목표로 달려왔던 장씨. 그러나 대학시절 동안 취업을 위해 쌓아왔던 각종 이력과 결과물로 밤을 새워 이력서를 작성해도 서류전형조차 통과되지 않자 눈높이는 차츰차츰 낮아졌다.
이제는 중소기업은 물론, 초대졸 사원을 모집한다는 기업에도 서슴없이 원서를 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수십 개의 기업 중 면접시험의 기회를 준 업체는 단 두 곳. 두 업체에서도 장씨는 퇴짜를 맞았다.

넉넉지 못한 집안형편에 취업재수는 꿈도 꾸지 못한다는 장씨는 오늘도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취업사이트와 취업박람회 등의 정보를 검색하며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또 고친다. 내년엔 많은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규모를 대폭 줄인다는 가슴 철렁한 뉴스는 마음 편히 눈조차 붙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장씨는 “졸업 전 취업해 졸업식 날 부모님에게 사각모를 씌워 드리는 것이 꿈이었는데 졸업식장에도 가지 못할 것 같다”며 “왜 하필 올해 졸업해 사회에 발을 들이기도 전 절망감부터 맛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장사를 하는 노점상인에게도 이 겨울은 유난히 춥다. 경기도 부천에서 5년째 붕어빵을 구워 파는 남모(46·여)씨는 어느 해보다 수입이 줄었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남씨가 장사를 하는 장소와 불과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붕어빵 노점상이 3개나 생긴 탓이다.
재료비 상승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000원에 4개의 붕어빵을 팔고 있는데 비해 인근의 한 노점상은 1000원에 무려 8개의 붕어빵을 주고 있어 경쟁에서 밀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근처에 20대 여성 2명이 다코야끼라는 일본과자를 구워 팔아 젊은 층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어 손님의 발길이 한층 더 뜸해졌다고 한다.

남씨는 “손님을 끌기 위해 손해를 보면서 팔 수도 없고 장사를 그만둘 수도 없으니 하루하루가 힘들기만 하다”며 “내년에 대학교에 가는 첫째아들을 생각하면 한숨만 늘어간다”고 토로했다.
강추위와 싸우며 한뎃잠을 자는 노숙인들에게도 이번 연말이 달가울 리 없다. 서울역, 잠실역, 영등포역 등 노숙인의 메카(?)로 자리 잡은 곳에는 대낮부터 소주병을 끼고 행인 사이를 지나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추위가 거세질수록 종이상자와 신문지로 몸을 감싼 채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모여 들어 술로 추위와 절망감을 떨치고 있었다.

실직자 증가하면서
노숙인, 노점상도 늘어

갈수록 더해가는 불황은 20~30대의 청년들과 여성들까지 거리로 내모는 등 노숙인들의 풍경을 바꿔놓기도 하고 있다.
문제는 내년 초가 되면 노숙인들의 수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노숙인들이 거리생활을 하기 전 PC방이나 고시원, 쪽방 등을 전전하다 길거리로 나오는데 현재 이 장소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짐작케 한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밖에도 보일러를 틀 형편이 되지 않아 냉방에서 두꺼운 이불 몇 장에 의지해 생활하는 쪽방촌 노인들, 보증금이 없어 언제 터질지 모를 사건에 대한 불안감을 안은 채 고시원에서 지내는 노동자들, 일거리를 찾으러 새벽부터 인력시장에 나선 이들 등 서민들의 연말은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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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