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간판도 없는 삼양식품 ‘비밀곳간’ 추적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2.03.12 14: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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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황태자 키워라!”…‘전인장 지령’ 받은 찜질방 주인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사무실이 없다. 직원도 없다. 그 흔한 홈페이지도 없다. 보통 이런 법인을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로 의심한다. 이른바 ‘유령회사’다. 50년 전통의 ‘라면 명가’ 삼양식품이 수상한 회사를 끼고 있다. 정확하게는 받들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사명만 노출됐을 뿐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는 삼양식품의 ‘비밀곳간’. 그 실체를 캐봤다.

삼양 지배구조 핵심 비글스 ‘유령법인’ 의혹
사무실·종업원 따로 없어…“회사 실체 모호”

서울 양천구 목동 목동파라곤 105동 지하 601호. 50년 전통의 ‘라면 명가’ 삼양식품 지배구조의 핵심으로 떠오른 ‘비글스’ 주소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오전 11시 찾아간 이곳에서 비글스 사무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하 6층을 샅샅이 뒤져봐도 마찬가지였다. 간판조차 걸려있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스파’가 자리 잡고 있다. 지하 6층 전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확한 명칭은 ‘파라곤스파’. 말이 좋아 스파지 여느 찜질방과 다를 바 없이 운영됐다.

“찜질방에 무슨
회사가 있겠냐”

스파 직원들도 비글스란 회사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한 관리인은 “찜질방에 무슨 회사가 있겠냐”며 “여기는 그런(비글스) 회사가 없으니 딴 데 가서 알아보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직원들의 날카로운 시선에 쫓겨나듯 스파를 나왔다. 그리고 이튿날 비글스 본사 전화번호인 2654-○○○○로 연락해봤다.


‘예 스파입니다.’

전날 방문했던 스파였다. 비글스의 전화번호도 스파와 같았던 것이다. 스파 안내데스크라며 전화를 받은 직원은 “스파 전화번호가 여러 개 있는데, 이 번호도 그중 하나”라고 했다.

삼양식품의 ‘비밀곳간’인 비글스를 두고 말들이 많다. 식품업계에 실체가 모호하다는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의 취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무실이 없다. 직원도 없다. 그 흔한 홈페이지도 없다. 기업공개는커녕 외부감사와 공시도 하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로 의심해볼 만하다는 게 감독당국의 지적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페이퍼컴퍼니, 즉 유령회사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먼저 사무실과 직원 존재를 파악한다”며 “특히 매출이 없거나 허위매출이 발생하고 있다면 거의 맞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꽁꽁’ 베일에 싸인 비글스는 어떤 회사일까. 1961년 설립된 삼양식품은 1963년 한국 최초로 라면을 생산, 이를 기반으로 유지, 장류, 유가공, 사료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1989년 ‘우지파동’ 사건과 무리한 사업다각화로 1998년 IMF 당시 화의를 신청했고,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 끝에 2005년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최근엔 ‘나가사키짬뽕’ 히트로 옛 명성을 되찾는 등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우여곡절 와중에 2세 체제가 안착됐다. 전중윤 창업주의 2남5녀 중 장남인 전인장 회장은 1992년 영업담당 이사를 시작으로 경영관리실, 기획조정실 사장 등을 거쳐 2005년 부회장에 오른데 이어 2010년 회장으로 취임했다. 전 창업주는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전 회장이 ‘경영 바통’을 물려받기 직전 소리 소문 없이 생긴 게 바로 비글스다. 2007년 1월 설립된 비글스는 농산물 도소매 업체다. 경영컨설팅 및 기업투자관리, 해외기술알선 등도 사업목적에 포함돼 있다. 당초 강남구 청담동 고급빌라 퍼즐하우스에 ‘둥지’를 틀었다가 2008년 10월 현 주소인 목동파라곤으로 이전했다.

비글스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삼양식품 지배구조의 축으로 떠오르면서다. 프루웰(79.87%), 삼양베이커(50%), 원주운수(20%), 삼양축산(48.49%), 삼양유통(63.09%), 삼양티에이치에스(100%) 등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는 삼양식품의 최대주주는 삼양농수산(33.26%).

비글스는 이 삼양농수산(26.9%)을 장악하고 있다. 결국 비글스가 삼양농수산을 통해 삼양식품과 그 계열사들을 거느리는 위치에 있는 셈이다. 삼양식품 지분(1.66%)도 있는 비글스는 2008년까지만 해도 계열 출자구도의 정점에 있는 삼양농수산 지분이 없었지만, 이듬해 계열사들이 갖고 있던 지분을 넘겨받았다.

이후 비글스가 삼양식품 오너일가의 개인회사로 드러나면서 더욱더 세간의 시선이 쏠렸다. 전 회장의 장남 병우군이 비글스 지분 100%를 소유한 사실이 알려진 것. 이에 따라 비글스는 삼양식품 3세 체제를 위한 ‘전진기지’란 분석이 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비글스는 ‘눈치 없는’주식 매매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비글스는 지난해 12월 나가사키짬뽕의 인기로 삼양식품 주가가 폭등하자 주식 12만4690주를 팔아치워 4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거뒀다. 뿐만 아니다. 앞서 비글스는 지난해 평창이 동계올림픽 수혜주로 거론되면서 대관령목장을 소유한 삼양식품 주가가 2배 가까이 뛰자 잽싸게 지분 14만3290주를 매각해 약 35억원을 챙겼다.

이를 두고 ‘얌체 매매’란 빈축과 함께 ‘먹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삼양식품 측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회사 관계자는 “비글스가 매각한 지분은 삼양식품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회사가 주식을 사고파는 것은 당연한 기업행위”라고 일축했다.

비글스가 삼양식품의 ‘비밀곳간’으로 부상하면서 동시에 비글스를 둘러싼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이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그 실체가 모호하다.

대법원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비글스 사무실은 서울시 양천구 목동 917번지 목동파라곤 105동 지하 601호다. 국세청과 금융감독원 등 당국에 신고된 주소지도 같다.

오너 최측근 가신
대표이사직 겸임

그런데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해당 주소지엔 식품사업과 전혀 연관이 없는 찜질방이 영업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찜질방을 운영하고 있는 업체는 ‘휴네트개발’. 비글스와 휴네트개발이 한 주소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두 회사는 전화번호도 같았다. 자본금 5000만원으로 1996년 4월 설립된 휴네트개발은 당초 학습교재를 제작하다 2003년 11월 부동산과 서비스 업체로 전환됐다.

비글스와 휴네트개발의 대표이사도 동일 인물로 드러났다. 비글스 대표이사인 심의전씨는 휴네트개발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심씨가 휴네트개발 경영(사내이사)에 참여한 것은 2003년 4월. 대표이사는 2007년 12월부터 역임했다.

이듬해 10월 심씨는 비글스 대표이사까지 맡았다. 비글스가 청담동 퍼즐하우스에서 목동파라곤으로 이전한 시점(2008년 10월17일)은 심씨의 취임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는 사전에 논의 후 비글스가 휴네트개발로 주소지만 옮겼다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심씨는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회사 내부에선 ‘전인장 그림자’로 통한다고 한다. 인천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심씨는 비글스 외에도 전 회장, 김정수 사장(전 회장 부인)과 함께 삼양농수산 등기임원에 올라있다. 지난해 3월 임기 3년의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특히 심씨는 삼양식품과 삼양농수산에 라면, 스낵, 유제품 등의 포장지를 납품하고 있는 테라윈프린팅 대표이사도 역임 중이다. 1968년 삼양식품 인쇄사업부로 출범한 테라윈프린팅은 2008년 분사했지만, 여전히 삼양식품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이 회사 경영에 참여한 심씨는 2006년 9월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비글스의 직원이 없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중소기업으로 분류된 비글스가 세무당국에 신고한 종업원은 단 1명이다.(2010년 말 기준) 통상적으로 종업원수에 대표이사도 포함되는 사실을 감안하면 심씨 혼자 회사를 꾸리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굴지의 식품기업인 삼양식품을 ‘수하’에 두고 있는 사실상 지주사가 직원 한명 없는 ‘1인 회사’란 점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휴네트개발 한 직원은 “이곳(지하 6층 스파)에 비글스 사무실과 직원은 따로 없다”며 “딱 구분돼 있지 않지만 다 같이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비글스에 대해 묻자 “뭐 때문에 꼬치꼬치 캐묻냐. 여기서 뭘 하든지 무슨 상관이냐”며 “(비글스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알아도 알려줄 수 없다”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별도의 사무실과 직원이 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무슨 사업으로 실적이 얼마나 되냐는 것이다. 이 역시 지금까지 언론 등에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주소지 목동스파로 확인 직원은 ‘사장님’ 단 1명
회사측 ‘모르쇠’ 일관 “오히려 더 의문 키워”

<일요시사>가 입수한 비글스 재무현황 등에 따르면 과일과 채소 등 농산물 도소매가 주사업인 비글스는 2008년 5600만원의 매출을 거뒀다. 2009년과 2010년엔 각각 6억6400만원, 6억700만원을 기록했다. 비글스는 삼양농수산 등 계열사와의 거래로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비글스의 영업이익은 2008∼2010년 각각 1000만원, 1억700만원, 1억원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인건비는 단 한 푼도 지출되지 않았다. 이는 직원이 없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순이익의 경우 2008년 1000만원, 2009년 3300만원에서 2010년 적자(-2700만원)로 돌아섰다. 같은 기간 총자산은 1억900만원에서 29억8300만원으로, 총자본은 5800만원에서 6400만원으로 늘었다. 부채도 5100만원에서 29억1900만원으로 불었다.

비글스 설립 자금의 출처도 불분명하다. 비글스의 자본금은 5000만원이다. 병우군이 지분 100% 소유한 것은 이 돈을 전액 출자했다는 뜻이다.

1994년생인 병우군의 올해 나이는 18세. 2007년 비글스 설립 당시엔 13세였다. 초등학생이었던 병우군이 어떻게 5000만원을 마련했는지 의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병우군은 5세 때인 1999년 삼양식품 지분(0.69%·1만주)을 처음 매입할 당시 취득 방법을 증여나 상속이 아닌 ‘매수’라고 공시해 의아해하는 시선이 많았다.
삼양식품과 휴네트개발 등은 이렇다 할 해명이나 반박을 하지 않아 오히려 더 의문을 키우고 있다. 이들 회사는 모두 <일요시사>의 취재를 사실상 거부했다. 하나같이 피하기에 급급했다.

삼양식품은 비글스와의 관계 등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회사 홍보실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장남 병우군 소유
13세때 회사 차려

삼양식품 홍보실장은 “비글스에 대해 전혀 아는 사실이 없다. 어디서 뭘 하는 회사인지도 알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삼양식품도 비글스의 실체를 모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이어 “다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유령회사란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요시사>는 ‘키맨’심씨에게도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어떠한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휴네트개발 관계자에게 수차례 메모를 남겨도 소용없었다. 이 관계자는 “메모를 전달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현재 심씨 외 유일하게 비글스 등기명부에 감사로 등재돼 있는 김모씨(대학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비글스 감사를 맡고 있는 것은 맞다. 어찌 어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지금은 학교 일로 바쁘다. 나중에 통화하자”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후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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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지방선거 관전 포인트

미리 보는 지방선거 관전 포인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이 끝났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승자와 패자가 뚜렷하게 갈렸다. 각 정당은 선거 결과에 따라 여당과 야당의 역할에 골몰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선거를 치른 정치권은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지방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지방선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서 시작된 대선 정국이 마무리됐다. 2022년 5년 만에 정권교체를 당했던 진보 진영은 3년 만에 다시 여당의 지위를 되찾았다. 보수 진영은 비상계엄과 탄핵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 대선이 대통령 궐위로 치러진 보궐선거인 만큼 당선인은 인수·인계 기간 없이 바로 임기에 돌입했다. 또 한 번 정권교체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6개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한 지 60일 만에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지난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49.4%,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2%,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8.34%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0.98%, 무소속 송진호 후보는 0.1%였다. 지상파 3사(KBS·MBC·SBS)가 진행한 출구조사 결과와 차이를 보였지만 당락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는 한국리서치·입소스·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서 본투표 당일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국 325개 투표소의 투표자 8만146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0.8%포인트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는 이 대통령 51.7%, 김 후보 39.3%, 이 후보 7.7%였다. 출구조사와 비교해 이 대통령은 낮았고 김 후보와 이 후보는 더 득표했다. 이 대통령은 1728만7513표를 얻어 역대 대선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지만 과반 득표율에는 실패했다. 역대 대선에서 과반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선관위가 지난 4일 오전 6시21분 이 후보를 대통령 당선인으로 공식 확정하면서 이 대통령의 5년 임기가 시작됐다. 임기 개시와 동시에 국군 통수권을 비롯한 대통령의 모든 고유 권한이 이 대통령에게 자동 이양됐다. 이 대통령의 임기는 2030년 6월3일까지다. 비상계엄부터 대통령 탄핵, 대선까지 숨 가쁜 6개월을 보낸 정치권은 대선 후폭풍에 직면했다. 문재인정부 이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던 민주당은 3년 만에 여당으로 복귀했다. 민주당 단독으로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범진보 진영(192석)으로 보면 200석에 육박하는 ‘거대 여권’의 등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에 이어 대선서도 패배하면서 존망의 갈림길에 섰다. 당장 대선 패배 책임론이 불거졌고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이전투구 양상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범진보 진영과 비교해 107석이라는 ‘초라한’ 국회 의석수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차지한 이재명정부를 견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3년 만에 정권 탈환 국민의힘, 총선 이어 또 졌다 대선 후폭풍이 걷히면 정치권은 또다시 ‘선거 모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내년 6월3일 지방선거가 예정돼있다. 채 1년이 남지 않은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지 않았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윤석열정부 임기 중에 치러질 예정이었다. 윤정부서만 두 번의 지방선거가 열리는 셈이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윤정부에 대한 평가이자 대선 전초전 격이었을 선거가 이재명정부의 첫 대형 선거가 된 것이다. 이미 여당이 행정과 입법을 완전히 장악한 상황서 지방 권력까지 확보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재명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른바 ‘절대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가능성은 작지 않다. 대선 이후 몇 개월 만에 치러지는 선거서 여당이 진 적은 거의 없다. 바로 직전 지방선거서 국민의힘이 압승한 게 대표적이다. 2022년 6월, 윤정부 출범 한 달 만에 열린 지방선거서 국민의힘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서울·인천 등 12곳에서 이겼다. 민주당은 경기·광주·전남·전북·제주 등 5곳에서만 승리했다. 기초단체장 선거도 국민의힘이 완승했다. 전국 226곳 중 145곳에서 이겼다. 서울에서는 25개 자치구 중 17곳에서 승리했다. 2018년 지방선거서 서초구를 제외한 24곳에서 민주당이 이겼던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이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열린 재보궐선거서도 7곳 중 5곳을 차지했다. 당시 이 대통령이 출마한 인천 계양을과 제주을을 제외한 대구 수성을·경남 창원의창·경기 성남시 분당구갑·강원 원주갑·충남 보령·서천 등에 국민의힘 깃발이 꽂혔다. 지난 지방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고 불릴 정도로 네거티브가 난무했던 20대 대선 직후에 열리면서 당시 투표율은 50%를 간신히 넘는 낮은 수준이었다. 역대 지방선거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낮은 수치였다. 새 정부 탄생과 거의 동시에 치러진 만큼 ‘허니문’ 성격이 강했던 점도 국민의힘 승리에 영향을 미쳤다. 민심이 새 정부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계엄·탄핵 보수 폭망 불과 3년 만에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대선 승리를 등에 업고 지방 권력까지 차지했던 국민의힘은 순식간에 야당으로 전락했고 민주당은 기세를 탄 상황이다. 이재명정부는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지방선거 승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한 호흡으로 같이 나가려면 기울어진 지방 권력 구도를 돌려놔야 한다는 취지다. 내년 6월3일 열릴 지방선거는 대선 이후 1년 뒤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이전 허니문 선거와 비교해 기간이 긴 게 변수로 꼽힌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임기 초인 만큼 여당에 유리한 이슈가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두고 진행 중인 재판이 1년 내내 사회를 달굴 가능성이 크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14일부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직을 상실하면서 불소추특권도 사라졌기에 혐의가 더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심판 심리 때부터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에 대해 철저하게 부인해 왔다. 재판서도 같은 태도를 보여 1심 선고까지는 1년 넘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당선 수락 연설에서도, 취임사에서도 내란 종식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오전 국회 본청 로텐더홀서 진행한 취임 선서에서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주권을 빼앗는 내란은 이제 다시는 재발해선 안 된다.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합당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확고히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 문제도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현재 안팎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 내수 시장은 ‘폭망’ 상태에 접어들었고 외부에선 관세 등으로 시장을 흔들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경제 이슈는 선거판을 늘 좌지우지했다. 텃밭 빼고 다 뒤집혀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먹사니즘’이라는 표현으로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 회복을 첫손에 꼽았다. 특히 이 대통령은 국가 재정 투입을 예고했다. 취임 선서에서도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돌리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이재명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다.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며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하겠다. 기업인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시장서 경쟁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구상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비상계엄 사태 극복과 경제 회복을 전면에 내세워 민심을 다잡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야당이 된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은 ‘견제론’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 의회 권력과 행정부를 장악한 이재명정부를 지방 권력으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총선은 2028년, 이 대통령의 임기 중반 이후에나 치러진다. ‘거대 야권’ 국면이 이 대통령의 임기 내내 지속된다는 뜻이다. 그사이 판을 흔들만한 대형 선거가 없기에 보수 진영으로선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지다. 특히 총선이 지방의회 상황에 영향을 받는 만큼 국회 의석 상황을 바꾸려면 지방선거 결과가 중요하다. 문제는 내부 상황이 지나치게 어지럽다는 점이다. 보수 진영서 배출한 대통령이 벌써 두 번째 파면됐고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국민에게 외면받았다. 보수 세력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총선 때부터 나왔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선서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여준 윤 전 대통령 측 세력과 결별하는 과정서 보수 진영의 주도권을 둘러싼 혈전이 예상된다. 새 정부 1년 만에 맞대결 3년 전에는 여당이 압승 대선을 완주한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 의원은 비록 한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대선 기간 내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상당한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을 모두 처리하고 난 뒤에야 보수 진영은 지방선거에 몰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대선 과정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선거에 임하거나 지지층만 믿고 막무가내식 행보를 보이면 총선, 대선서 이어 지방선거까지 3연패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대선과 8대 지방선거, 이번 대선서 각 정당 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보수 진영의 상황이 얼마나 ‘최악’인지가 드러난다. 국민의힘 후보로 윤 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이 대통령이 나선 20대 대선 당시 승부를 가른 건 ‘서울’이었다. 민주당은 선거를 치르면서 서울서 진 적이 많지 않았는데 2022년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로 민심을 까먹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50.6%, 이 대통령은 45.7%를 받았다. 표수로는 31만표 차이였다.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전체 표 차인 24만7000표(0.73%p 차이)보다 컸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을 필두로 강원·대전·충청·TK(대구·경북)·PK(부산·경남)·울산서 승리해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지방선거 때에는 대선서 패했던 인천과 세종에서도 국민의힘이 이겼다. 서울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국민의힘)이 민주당 송영길 후보를 무려 20%p 차이로 이겼다. 대선서 45.6%(윤 전 대통령) 대 50.9%(이 대통령)로 5.3%p 차이가 났던 경기도조차 48.9%(국민의힘 김은혜 후보) 대 49.1%(민주당 김동연 후보)로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그로부터 3년 뒤 이번 대선서 국민의힘은 강원·TK·PK·울산을 제외한 모든 지역서 졌다. 지역별로 보면 6곳에서만 김 후보가 이 대통령에 앞섰다. 국민의힘 텃밭이라고 불릴만한 지역과 보수세가 강한 지역서 선전했을 뿐 수도권과 표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충청권서 모조리 패배했다. 여러 차례 대통령을 배출한 전국 정당이 ‘영남당’으로 쪼그라든 순간이다. 안정론? 견제론? 발 빠른 인사들은 벌써부터 지방선거를 정조준하고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대선 패배 연설서 “저희가 잘했던 것과 못했던 것을 잘 분석해 정확히 1년 뒤 다가올 지방선거서 개혁신당이 한 단계 약진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어느 정도 승부가 예측됐던 이번 대선과 달리 내년 지방선거가 진짜 대결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헌 국민투표 가능성 ‘동시에 진행될까?’ 이재명정부는 개헌을 할 수 있을까? 대선일로부터 꼭 1년 뒤인 내년 6월3일 열리는 9대 지방선거서 개헌 이슈가 다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대선 이후 첫 대형 선거인 만큼 이날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의견은 대선 기간 내내 나왔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은 지난 4월 “2026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로 제7공화국의 문을 열자”며 “대선후보들은 개헌을 약속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정 회장은 “느닷없는 계엄령이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절감했다”며 “다가오는 대통령선거는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설 결정적 기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87체제’ 종말 초읽기? 그러면서 “개헌 시점은 늦더라도 2026년 6월이어야 한다”며 “이번 대선 이후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협력 아래 정부가 지원하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에 부칠 개헌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대선후보 당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국무총리 국회 추천 등을 골자로 한 개헌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에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제안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