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5>

200년 전 올드코스가 망했다면?

200여년 전 스코틀랜드의 골프장들이 줄 도산을 하는 통에 하마터면 21세기엔 골프장이 존재하지도, 현재의 골퍼들은 골프가 무엇인지조차 알 수도 없을 뻔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19세기 중엽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인근의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다수의 전통 있는 골프장이 자취를 감추었다. 한때 왕들과 귀족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왕실 전용의 리스(Leith)를 비롯해 글래스고우, 킹스반 등 유서 깊은 골프장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황폐화된 현실

터스틀이 파산했고, 스캇스크레이그는 1834년 이미 밀가루 밭으로 변해 버렸다. 심지어 잉글랜드 최초의 골프장이었던 수백년 역사의 로얄 블랙히스마저 파산을 준비 중이었다. 산업혁명 초기에 1000여개에 달하던 골프동우회가 1830년에는 스코틀랜드에 14개, 잉글랜드에 2개, 인도 캘커타에 1개 등 고작 17개 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봐도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발생한 악성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아무도 보살피지 않는 잡초투성이의 골프장들은 예전의 영광만을 간직한 채 황량하게 변해가면서 개발화의 명분으로 밀가루 농장이나 옥수수 밭으로 개간되는 운명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797년 파산 신청을 한 세인트 앤드루스 시정부는 재정이 없어 시가 관리하는 올드코스의 경비를 충당할 수 없었다. 헐값에 부지를 구입한 찰스와 캐스카트라는 두명의 농장주들은 골프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골프장에 토끼 수백마리를 방목해 놓았다. 


그 귀한 코스 여기저기 페어웨이와 그린에는 토끼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골퍼들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토끼들이 보일때 마다 욕을 해대며 죽이거나 쫓아 버렸다. 토끼 방목을 못마땅히 여긴 주민들도 가세했다. 골프장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애써 지어 놓은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었다.

280에이커의 방대한 농장을 소유하고 있던 개간업자는 불과 10에이커도 안 되는 그깟 골프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업자들은 에딘버러 법정으로 사건을 끌고 갔다. 업자들에 대항해 주민들도 맞고소를 했다. 

주민들과 토끼 사육사들 가운데 이른바 ‘토끼전쟁(Rabbit Wars)’이라고 불린 싸움이 시작됐다. 6년간 계속된 법정 싸움 끝에 1805 년 에딘버러 법원은 주민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농사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토끼들을 임의대로 죽이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라는 판결이었다. 주민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올드코스는 폐쇄될 위기를 면했다. 이런 와중에서 패소한 올드코스 개발업자들은 틈만 있으면 코스를 토끼사육장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그러던 차에 1821년 구원자가 나타났다. 실버컵 골프 대회에서 우승한 적 있던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협회의 캡틴 제임스 치프는 “올드코스를 구입함으로써 법정 싸움이 종식되기를 희망한다”며 돈을 지불하고 올드코스를 넘겨받아 일단 골프장을 살려냈다. 이로써 16년간 지속됐던 토끼전쟁은 막을 내렸고, 올드코스는 또 한 번 위기를 넘겼다. 

운명을 바꾼 ‘토끼전쟁’
살아남은 마지막 골프장

그러나 개인 돈으로 광활한 사유 재산 지역을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올드코스는 다시 재정난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난관에 부딪힌 올드코스를 회생시키기 위해 이번엔 골퍼들이 합심했다. 

에딘버러 골프회원들은 1824년 은행에서 두차례에 걸쳐 700파운드를 융자했으나 이자가 너무 높아 더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동안 인근 여러 곳의 골프장은 우후죽순으로 도산을 해버리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올드코스도 폐쇄의 기로에 서 있었다.


1841년 4월, 영국의 자존심이자 마지막 남은 골프의 메카를 지키자며 이번에는 젠틀맨스 클럽 멤버들이 모였다. 올드코스는 다시 한 번 법정에 서게 됐다. 지난 세기에 골프의 체계화에 공헌한 프리메이슨들이 주축이 되었다. 젠틀맨스 클럽위원회 22명 모두가 프리 메이슨 단원이었다. 이번에도 에딘버러 법정은 올드코스 편이었다. 개간업자들이 보란듯이 페어웨이를 갈아서 밀밭으로 만들어 놓기 며칠 전, 법정은 극적으로 올드코스의 손을 다시 들어주었다.

그렇게 마지막 골프장은 살아남았다. 이후 10여년 뒤 골프는 갑작스런 부흥기를 맞으면서 미국으로 건너갔고, 21세기의 현재로 발전할 수 있었다. 올드코스가 19세기에 옥수수 밭으로 개간 됐다면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뇌리에서 골프는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미국으로 대륙이동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며 21세기는 골프가 뭔지도 모른 채 크리켓이나 테니스 정도에 만족하며 사는 끔찍한 시대가 됐을 것이다.

수백년 전 5홀짜리 왕실전용 골프장이었던 리스골프장의 흔적이라도 될만한 단서라도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2015년 7월 필자는 에딘버러 항구를 방문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예전 골프장의 흔적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 살아남다

주변은 황폐화 되었고, 타운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슬럼가의 분위기가 풍기면서 저소득층의 중국계들이 입주한 허름한 건물들에 한문 간판들만 즐비했다. 바닷가에 인접한 예전의 항구는 폐쇄된 어선들만 남은채, 인근 주변은 쓰레기 하치장 같이 방치되어 있었다. 그나마 깨끗한 지역이라고는 개인 요트를 정박시키는 시설과 작은 카지노 뿐이었다. 왕실 골프장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리스골프장의 폐쇄는 영국의 입장에서는 뼈아픈 상처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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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