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베이스볼> 서울 길동초 야구부 김재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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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17.11.13 10:34:38
  • 호수 1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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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날이 찾아왔어요”

<일요시사>가 야구 꿈나무들을 응원합니다. 야구학교와 함께 멀지 않은 미래, 그라운드를 누빌 새싹들을 소개합니다.
 

1995년 2월 당시 코치였던 김재일 감독은 지휘봉을 이어받았다. 부임 후 4년 동안 이렇다할 성적이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끈기를 하늘도 알아준 것일까. 길동초 야구부에 다시 봄날이 찾아왔다. 부흥기를 이끈 김 감독을 만나봤다.

-감독님의 이력이 궁금하다

▲효재초등학교-보성중학교-보성고등학교를 거쳐 선수 생활을 하다가 송호대 2년제를 다녔다. 그러다 91년에 여기(길동초)로 코치로 오게 됐다. 물론 군 문제 때문에 7개월 정도 있다가 군대를 갔지만... 제대 후에도 길동초로 돌아왔다. 친정집 방문하듯 왔다가 93년도에 코치로 2년 정도 있었고, 95년 2월에 감독 부임한 후 지금까지 이곳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제 청춘이 이곳 길동에 있다고 보면 된다.

-23년째 길동초와 함께 하고 있는데...

▲91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길동초등학교 야구부와 함께 하고 있는데, 25세때 처음 지도자로 시작을 했다. 당시 팀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95년 2월에 길동초등학교 감독으로 부임하게 됐다. 아무래도 코치가 감독을 맡는다고 하니 보는 눈들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더군다나 선수도 많지 않고, 갑작스레 맡다보니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부임하고 한 4년 동안 성적이 없었다. 8강도 힘들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제가 감독이긴 했어도 어딜 가나 제가 막내였다. 제 밑으로는 안 오시고 다들 제 위로만 오시더라. 제 스승님과도 결승을 했었으니 말 다 했다. 지도자하면서 막내 생활만 거의 10년은 한 것 같다.

-지도자로 쉽지 않은 길을 걸은 듯하다.

▲처음에는 시스템을 몰라 고생한 일이 많았다. 불리한 판정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3∼4년 하니깐 시스템을 알겠더라. 그 후부터는 성적이 나기 시작했다. 99년을 시작으로 4강에 들더니 2000년도에 처음으로 제 1회 LG 트윈스기 왕중왕전 우승을 했디. 2004년에도 제 5회 LG 트윈스기 왕중왕전 우승했는데 그때가 부임 이래 제일 성적이 좋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2000년대가 부흥기였던 것 같다. 2004년도에는 선수가 많지 않았다. 6학년이 4명뿐이라 김성훈 선수랑 동생이 5학년 사이에서 뛰고도 3관왕을 했었다. 다들 기적이라고 하더라. 그 뒤로 또 다시 침체기를 걸었다.

-든든한 동반자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초등학교 야구부 지원은 상당히 미미한 편이다. 그런데 반해 저희는 학교서 매년 야구부가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을 책정해주시고, 쓰게끔 해준다. 근방에 있는 초등학교 야구부 중에선 저희가 제일 많은 지원을 받고 있지 않나 싶다. 솔직히 사립도 아니고 공립서 지원을 많이 해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금전적인 것 외에도 성적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는다. 성적보다는 아이들이 부상 없이 경기를 뛰기를 바란다. 교장선생님이라는 느낌보다는 누나 같은 느낌이랄까?


교장선생님만큼이나 체육부장 선생님이 도움을 많이 준다.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도와준다. 특히 저희가 주말에는 잘 못 쉬고 월요일에 쉬는 편인데 야구부에 대한 교육을 전적으로 맡아서 한다. 매주 계획을 짜셔서 아이들에게 교육도 시켜주시고, 아이들이 쉴 때면 견학 같은 것도 해주신다. 

재작년에 부장님이 하시다가 육아휴직을 내서 1년을 쉬셨다가 올해 복직 후 다시 도와주고 계신다. 사실 힘든 일이라는 거 너무 잘 안다. 담임선생님 역할도 하고, 체육부장 역할도 하시다 보니 이중으로 일을 하고 계신다. 그래서 더 많이 죄송하고 감사하다.

1982년 창단해 2000년대 부흥
잠시 주춤하다 올들어 재도약

-올해 큰 대회서 좋은 성적을 냈다.

▲서울시 대회에서는 성적이 좋지 못했다. 팀 내 부상자도 많다보니 자연스레 U-12 전국 유소년 야구대회도 큰 기대를 하고 가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아이들이 한 경기, 한 경기 하다 보니 내재된 실력들이 나오더라. 그날 투수들이 잘 던졌다. 방어율이 거의 2점대도 안 됐고, 매 게임 한두 점 정도 나왔다. 결승경기서도 1:0으로 한 점도 안 줬다. 투수들이 제 역할을 잘해준 덕이라고 생각한다.

경기 직후에 들었는데 아이들이 장염에 걸렸었다. 팀 내 3∼4명 정도가 심했는데 그 중에 주전 선수들은 증세가 심한데도 불구하고 참고 경기에 임했더라. 본인이 뛰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해서 말릴 수가 없더라. 그래서 그때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다.

-리그에선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겨울 동계훈련을 갈 때만 해도 기대가 컸다. 투수력도 좋고, 연습경기도 한두 경기를 제외하고 다 이겼었다. 그러다가 2월에 23일부터 27일까지 서울 구의야구장서 열린 전국 초등학교 야구부 30개팀이 참가한 ‘2017 이스턴배 대한스포츠기 전국 초등학교 스피링 리그 야구대회’가 있었다. 

그때 아이들이 무리를 했던 것 같다. 매일 하루에 2게임씩 하다 보니 피로가 쌓였던 거다. 그래서 정작 소년체전 때는 에이스들이 부상을 당하면서 주춤하게 됐다. 올해 멤버가 워낙 좋아서 저 나름대로 욕심을 부렸는데 그게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던 것 같다. 멀리 보고 운영을 했어야 했는데 앞에 놓여진 것만 보고 달리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감독님의 손을 거쳐 간 선수들이 많을 것 같다.

▲최근 KT WIZ의 지명을 받은 조대현 선수도 있고, 기아 타이거즈에 지명된 문장은 선수도 있다. 문장은 선수는 1학년 때부터 저한테 야구를 배운 친구다. 조대현 선수의 경우에는 우선 청소년 대표가 됐다. 본인이 잘 해왔기 때문에 프로 지명을 두 선수 다 받은 거라고 생각한다. 이 친구들 외에도 전 프로야구 선수 두산 베어스의 유재웅, LG 트윈스 김기표, 박기남 선수도 제자들이다.

-그런 제자들을 보면 기분이 어떤가?


▲사실 저는 야구선수로 성공한 삶은 아니었다. 그래서 선수로 성공하고 싶은 그 마음을 너무 잘 아니까 그런 친구들을 한 번 가르쳐보면 어떨까라는 마음에 지도자를 시작하게 됐다. 오래 전이지만 저를 거쳐 프로 진출을 한 선수들이 종종 연락한다. 그때마다 같이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때론 인생 선배로 조언도 해준다. 

그 친구들은 이제는 꿈에 한발 더 다가 선 친구들이니까 지금처럼 성실하게 자기 일을 묵묵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 오리라 믿는다. 저 친구들을 보면서 저도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전보다 발전하는 모습으로 매년 아이들을 맞이하려고 노력한다.

제가 23년 동안 이 자리에 있다는 건 성실하게 열심히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 제자들도 성실하게 열심히 하다 보면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좋은 자리가 날 거라고 생각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초등학교 감독, 그 무게감이 상당할 것 같다.

▲다들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쉽지 않은 자리임을 알려드리고 싶다. 이제 야구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나씩 알려줘야 한다. 제가 처음 지도자를 시작할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조금 강압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제약이 많다 보니 과거보다 아이들 가르치기가 더 힘들다. 규제도 많고 아이들도, 시스템도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에 매 해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다.

요 근래에는 ‘내 아들들이다’라는 마음을 갖고 아이들에게 다가가되, 훈련을 할 때에는 아빠처럼 엄격하게 지도하고, 훈련이 끝난 후에는 엄마처럼 어루만져주는 감독이 되고자 노력 중이다. 23년 동안 초등학교 지도자를 해보니 다른 것보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올 시즌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5학년 선수들이 총 10명이다. 그런데 야구는 9명이서 하다 보니 선수들끼리 경쟁도 다른 팀보다 더 심하고, 저 또한 엔트리를 짤 때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왜냐면 저도 부모다 보니 내 아이가 경기에 뛰었으면 좋겠고 그런 마음이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엔트리에 못 들면 실망할 테고… 그래서 지금은 비슷한 실력의 친구들을 번갈아가며 경기를 경험하게끔 만들고 있다. 지금도 아이들이 알게 모르게 경쟁하는 모습이 보인다.

저희가 서울시 우승은 많이 했는데 전국대회는 이번이 첫 우승이다. 저 이전에 다른 감독님이 계셨고, 저도 감독하면서 전국대회 우승은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그래서 상당히 제 나름대로 포부도 있고, 긍지로 삼고 있다. 5학년 친구들이 지금 6학년 친구들에 비해 투수력은 약하지만 타력이나 기본기를 충실히 다져 둔다면 올해보다 더 괜찮은 경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직까지 이곳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저를 믿고 따라 와주는 선수들과 학부모님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팀은 빠른 시일 안에 멤버 구성도 끝나고, 저희와 달리 경쟁력이 생겨 성적이 잘 난다. 반면에 저희는 구색을 맞추다 보니 다른 학교에 비해 약하다. 

그러다 보니 1년이 금방 가버리더라. 우승권은 꿈도 못 꿨다. 그러다 2년 전부터 6학년들이 9∼10명씩 되니까 다른 팀과도 경쟁력이 생기더라. 그래서 성적도 나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제가 지도자를 시작할 당시에 마음에 새겼던 말이 ‘최선을 다하자’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제가 졸업생들을 위한 졸업선물에도 꼭 쓰는 말인데, 중·고등학교를 가든 사회에 나가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다보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말한다. 

이건 제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저도, 아이들도 어떤 자리에 있든 최선을 다 하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위치서 열심히만 한다면 그 외 부수적인 것들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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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길동초 야구부는? 작지만 강하다!

서울 강동구 양재대로에 위치한 길동초등학교는 공립 초등학교로 1974년 개교한 뒤 1982년 3월 야구부를 창단했다. 창단 36년째에 접어든 길동초 야구부는 전 프로야구선수 김기표·박기남(LG트윈스), 유재웅(두산베어스) 등과 2018년 KBO 신인 지명을 받은 문장은(기아타이거즈)·조대현(KT WIZ) 등을 배출했다.

2000년대 부흥기 이후 잠시 주춤하던 길동초 야구부는 지난 7월22일부터 8월1일 국내 최대 규모의 유소년야구대회(U-12)에서 우승을 하며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 8월21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대구광역시장배(제47회 회장기) 전국 초등학교 야구대회에서도 3위를 차지하며 재도약에 시동을 걸었다.

길동초 야구부 5학년은 총 10명으로 내년 시즌 캡틴 자리에 오를 중견수 지강, 유격수와 투수를 보는 장동효와 한재희, 포수 김태양, 좌익수 홍성현, 우익수 겸 2루수 강지훈, 1루수 이도우, 2루수 김홍민, 3루수 겸 투수 홍성우가 있다. 정유찬은 지난 대회 부상으로 인해 훈련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4학년은 최근 4명이 전학을 와 2명에서 6명으로 인원이 늘었다. 포수 유지훈, 1루수 고민제, 2루수 서은철, 3루수 원영서, 좌익수 원민, 유격수 양지웅이 있다.

올해를 끝으로 학교를 떠나는 6학년의은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올 시즌 캡틴이었던 투수 홍윤재를 비롯해 포수 김보선, 1루수 원종해, 2루수 고민수, 3루수 이서준, 좌익수 한결, 유격수 정윤호, 중견수 김노준, 유격수 유재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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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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