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레드모델바’ 김동이 대표의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34>

대박, 무너져 버린 꿈, 신세계

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000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냈다. <일요시사>가 김 대표의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백수가 된 나는 흡사 흐느적거리는 낙지와 비슷했다”
‘여성 전용바’ 창업에 박차를 가하지만 자금난에 부딪혀


■ 또 다시 무너진 꿈

그렇게 YX클럽은 승승장구를 하고 있었다. 문화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여성음주문화를 바꿔나가는 선두 주자의 역할을 했으며 경영학적으로는 새로운 ‘블루오션’의 개척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써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3개월 동안 밤의 세계는 YX가 휘어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회장님이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그의 얼굴에는 이미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부사장, 이곳에서 더는 영업을 못하겠어. 이 호텔이 헐린다고 하네. 업장을 옮겨야 되겠는데.”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옮겨야 하면 옮겨야 했다. 이제 겨우 반석 위에 올려놓은 여성음주 문화를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나와 성사장님은 강남역을 이 잡듯이 뒤집고 다녔다. 그래서 겨우 찾은 것이 강남역 인근의 아데나라는 나이트였다.
이곳은 한때 큰 호황을 누렸지만 주변에 우후죽숙처럼 클럽들이 생겼고 그에 따라 과거의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전체적인 공간으로 봐서는 아데나가 훨씬 작았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그마저도 황송할 따름이었다. 가장 큰 타격은 쇼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에 이제 더 이상 쇼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50테이블 이상이 꽉꽉차는 영업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나로서는 기사회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다시 일주일 후, 또다시 절망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오후 2시, 밤샘 영업을 한 후 한참 잠들어 있을 시간에 끊임없이 핸드폰이 불안한 벨소리를 울렸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벌떡 일어섰다.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상황에서 헐레벌떡 영업장으로 뛰어갔다.
업장에 있던 모든 집기들은 큰 트럭에 실려 있었고 입구는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대못질이 되어 있었다. 바닥에 그만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이유는 ‘명도 소송’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경매를 통해 부동산을 낙찰받았음에도 불구하고 6개월 동안 점유자가 자진해서 집기를 비워주지 않을 때는 재판을 통해 강제로 점유자를 내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전전세로 들어온 우리들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아데나에서의 꿈은 또 다시 무너져 버렸다. 하늘도, 땅도 야속했고 원망스러웠다. 세상은 이 김동이 편이 아니었다. 수많은 마담과 선수들의 눈빛이 아련했다. 그들을 책임지고 싶었지만 이제 더 이상 나에게 그럴 만한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나 둘씩 떠나가기 시작했고 여성음주 문화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려는 나의 꿈마저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꿈을 잃은 사람은 방황을 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세상이 싫어지고 사람도 만나기 싫은 게 당연하다. 하루 아침에 ‘부사장’에서 백수가 된 나는 흡사 흐느적거리는 낙지와 비슷했다.
“동이야 뭐해?” 호스트빠에서 알게 된 순수한 여자 친구 지희였다. 만나자고 했지만 만나고 싶지 않았고 술을 사주겠다고 했지만 술을 먹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끈질겼다. 맥빠져 있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단단히 마음 먹고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다.
포장마차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희가 소주를 따라줬다. “나 요즘 재미있는데서 술마신다” 뭔 뜬금없는 이야기냐. 관심도 없었고 흥미도 없었다. “그냥 일반적인 포장마차인데, 잘생긴 남자애들이 써빙을 하고 말동무도 해주고 그래. 거기 장사 엄청 잘되거든” 눈이 번쩍 뜨였다. “가자, 거기 어디야?” 지희의 말을 듣는 순간 그곳에 새로운 답이 존재하고 있다는 육감이 떠올랐다. 그리 멀리 않은 곳이라 곧 그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총 다섯명의 잘생긴 미남들은 손님들과 편안하고 능숙하게 대하면서도 분위기를 유쾌하고 이끌어가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맑았고 그들이 하는 행동에는 가식이라곤 전혀 보이질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 또 하나의 영감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빠에 찌들어 살았던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저것이었다. 여성 손님과 남성 웨이터 간의 건전하고 밝은 문화, 음주를 즐기지만 절제가 있고, 서로의 아름다움을 유쾌하게 즐길 줄 아는 문화. 또한 거기에는 그 어떤 인위적인 것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었고, 손님은 손님으로서 그 모든 서비스들을 누릴 뿐이었다.
“지희야 집에 가자”
“왜 벌써 가려고?”
“미안하다. 다음에 보자. 집에 가서 할 일이 좀 있을 것 같아서”

■ 새로운 세계 경험
컴퓨터에 워드프로그램을 띄워 놓고 한자 한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여성 전용바 창업 계획서’
드디어 ‘김동이의 레드모델바’의 전신이라고할 수 있는 ‘레드모델바’에 대한 컨셉이 완성됐다. 그때부터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나만의 사업을 하나씩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우선 어렵사리 돈을 구해 업장을 마련했고 나 스스로가 인테리어에 참여했다. 돈이 많았으면 일급 인테리어업자에게 모두 맡기면 편하겠지만, 당시 나의 상황은 그게 아니었다.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목수 두명과 함께 인테리어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는 유난히도 추운 겨울이었다. 공사가 밤늦게까지 계속될 때는 한쪽에서 톱밥 냄새를 맡으며 쪽잠을 자기까지 했다. 너무 추운 날에는 5만원 짜리 석유 난로를 구입하기도 했다. 꽁꽁 언 손을 녹여가며 망치질을 하고 합판을 이리 저리 옮기며 하나씩 완성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은 구석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 속에서 한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는 것은 ‘직원과 고객을 위한 인테리어’라는 것이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고급스러움이 덜 할지 모르지만, 직원들이 편하게 일하고 고객들이 즐겁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 30분을 있어도 3시간을 있어도 즐거울 수 있는 인테리어. 그것이 고객감동이고 고객본위의 영업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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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