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PGA' 더 CJ컵@나인브릿지 이모저모

흥행은 성공, 매너는 글쎄

‘더 CJ컵@나인브릿지’는 한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PGA투어 대회로 시작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PGA의 간판스타 저스틴 토머스와 제이슨 데이 등 톱스타들이 총출동하며 3만5000여명의 갤러리들을 흥분시켰고, 이번 투어를 위해 만전을 기한 주최 측의 준비와 진행으로 대회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달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간 ‘더 CJ컵@나인브릿지’가 제주 나인브릿지 골프장에서 진행됐다. 국내서 처음 열린 PGA투어인 이번 대회에는 세계 남자 골프무대에서 가장 핫한 저스틴 토머스, 제이슨 데이 등 내로라하는 골프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저스틴 토마스
챔피언 등극

올 시즌 PGA투어 세 번째 대회인 더 CJ컵@나인브릿지는 총상금만 925만달러(약 105억원)다. 마스터스 등 메이저 대회와 WGC,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정도를 빼고는 상금 규모가 가장 크다. 출전 선수 모두 78명. 올해 PGA챔피언십 우승자 저스틴 토머스(24·미국)와 전 세계 1위 제이슨 데이(30·호주), 2013년 마스터스 챔피언 애덤 스콧(37·호주)이 일찌감치 참가 신청을 했다.

제주의 바람을 뚫고 초대 챔피언에 오른 선수는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세계랭킹 3위의 저스틴 토머스였다. PGA 통산 7승을 달성한 토머스는 “첫날 9언더파를 쳤는데 사흘 동안 타수를 줄이지 못하고도 우승했다”며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 바람은 내게 아주 괴상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제주 바람은 대회 마지막 날에도 거셌다. 태풍‘란’의 영향으로 시속 40㎞의 강풍이 불었고 바람의 방향도 수시로 바뀌면서 타수를 까먹은 선수들이 속출했다. ‘데일리 베스트 스코어’가 전날보다 1타 준 4언더파 68타(팻 페레즈)에 그칠 정도였다. 잘 치는 것보다 실수를 덜 해야 하는 형국이었다.


3라운드까지 합계 9언더파 207타를 쳐 스콧 브라운(미국)과 공동선두로 최종라운드에 나선 토머스는 3번홀(파5)에서 티샷을 왼쪽 해저드에 빠뜨리며 더블 보기를 범해 선두에서 내려왔으나 9번홀(파5)부터 3연속 버디를 낚고 중간합계 10언더파를 이루면서 1위로 올라섰다.

초대 챔피언은 저스틴 토머스
손에 땀 쥐게 만든 연장 승부

이후 13번홀(파3)과 17번홀(파3)에서 각각 1타씩 잃은 뒤 18번홀에서 버디를 잡고 공동선두로 마쳤다. 토머스는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2개, 더블보기 1개로 이븐파 72타를 쳐 합계 9언더파 279타로 마크 리슈먼(호주)과 공동 선두를 이룬 뒤 두 번째 연장전에서 승리해 상금 166만달러(약 18억8000만원)를 차지했다.

나인브릿지의 상징홀인 18번홀(파5·568야드)에서 펼쳐진 연장전은 세계 골프팬들에게 짜릿한 흥분과 스릴을 안겨주었다. 나인브릿지 18번홀은 연못을 두고 왼쪽으로 휘는 도그레그홀로 우승을 노리는 선수라면 반드시 투 온에 성공한 뒤 버디 이상의 스코어를 올려야 하는 승부처다.

첫 번째 연장 18번홀에선 압박감에 모두 티샷 실수를 저질렀다. 토머스는 러프에 빠졌고, 리슈먼은 카트 도로에 들어갔다. 하지만 리슈먼은 돌담과 나무 사이를 꿰뚫은 트러블샷의 진수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승부는 두 번째 연장홀에서 갈렸다. 리슈먼의 두 번째 우드 샷이 워터해저드에 빠진 반면 토머스의 두 번째 우드샷은 그린 가까이 붙었다. 결국 버디를 잡은 토머스가 2017~2018시즌 첫 우승을 신고했다.

지난 시즌 페덱스컵 우승으로 1000만 달러를 거머쥐고 2017 PGA 투어 ‘올해의 선수’에 뽑히는 등 최고로 올라선 토머스는 상금과 보너스로 지난 시즌에만 약 225억원을 벌었다. 토머스는 “독특한 우승컵에 한글로 이름을 새겨주셨는데, 이 기회에 한글로 내 이름 쓰는 법을 배워볼까 한다”며 웃었다.

한국 선수로는 김민휘(35)가 합계 6언더파 282타 4위로 가장 성적을 거뒀다. 최종 라운드에서 역전 우승에 도전했던 김민휘(25)는 이븐파 72타를 쳐 끝내 선두와 3타차 간격을 좁히지 못했다. 한때 선두에 1타차까지 따라붙었던 안병훈(26)은 버디를 6개나 잡았지만 1·13번 홀 트리플보기와 16번 홀 보기로 타수를 1타 까먹어 4언더파 284타 공동 11위에 그쳤다. 김경태(31)가 2오버파 290타로 공동 28위, 노승열(26)과 최진호(33)가 4오버파 292타로 공동 36위에 자리했다. 최진호는 “제주 바람은 (PGA투어 선수보다) 우리가 익숙한데 그 점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선수들은 1m도 채 안 되는 짧은 퍼트에서도 그린의 고유 굴곡인 한라산 브레이크와 바람을 함께 읽어내느라 보통 15분 정도인 한 홀을 끝내는 데 20분 이상을 써야 했다.

변수로 작용한 
변화무쌍 바람

지난 시즌 PGA는 저스틴 토머스를 빼고 논할 수 없는 한해였다. 26살 저스틴 토머스는 지난 8월 막을 내린 PGA투어 2016-2017시즌에 상금왕, 다승왕, 올해의 선수를 휩쓸었다. 2017-2018시즌 두 번째 대회 ‘더 CJ컵@나인브릿지’에서 우승을 신고하며 이번 시즌 힘찬 시동을 걸었다.

올 시즌 일취월장한 기량으로 최강자에 오른 토머스의 길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자신의 실력으로 이름을 알리기보다는 2015년 마스터스와 US 오픈 등 메이저 챔피언, 페덱스컵 챔피언으로 이미 명성을 날리던 조던 스피스(미국)의 절친이라는 수식어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토머스는 대학시절에는 스피스 못지않은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2009년 PGA투어 윈덤 챔피언십에서 역대 세 번째 어린 나이(16세3개월24일)로 컷 통과에 성공했다. 2012년 앨라배마 대학교에 진학한 토머스는 1학년 때 그 해 가장 뛰어난 대학생 골퍼에게 주는 상을 받았다.

흥행 성공
기대 증폭

2013년 프로 전향 후 2부 투어인 웹닷컴을 전전하다 2015년에야 PGA투어에 데뷔했다. 그는 친구인 조던 스피스가 메이저 2승 등 통산 8승을 올리며 세계 랭킹 5위에 오르는 동안 별다른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2015년 10월 CIMB클래식에서 처음으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2015년에는 톱10에 7번 들었고 페덱스컵 랭킹 32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신인 치고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2015-2016 시즌에는 더 강해졌다. 시즌 두 번째 대회인 CIMB 클래식에 출전해 PGA 투어 첫 승을 신고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상승세는 계속됐다. 2016-2017 시즌에는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CIMB 클래식에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고 SBS 토너먼트 오픈과 소니 오픈을 석권하며 PGA의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특히 소니 오픈에서는 1라운드에서 ‘꿈의 59타’를 시작으로 36홀 최저타 신기록(123타), 54홀 최저타 타이(188타), 72홀 최저타 신기록(253타)을 연거푸 작성했다. 6월 US 오픈에서는 3라운드에서 9언더파를 몰아치며 117년 US 오픈 역사상 단일라운드 최다언더파 신기록을 세웠다. PGA 챔피언십까지 거머쥐며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

더 CJ컵@나인브릿지 첫날 대회가 열린 제주 서귀포의 클럽나인브릿지(파72)에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멋진 샷을 보기 위한 관중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10만원인 입장권은 1만장 이상 팔렸고 대회 첫날부터 4000명 넘는 갤러리들이 입장해 흥행을 예고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PGA 정규투어 대회이자 스타 플레이어들의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인 만큼 많은 골프팬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저스틴 토마스(미국)가 12번홀(파5)에서 호쾌한 까치발 스윙으로 투 온에 성공하자 지켜보던 갤러리들 사이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전 세계랭킹 1위 제이슨 데이(호주)가 정교한 샷으로 4연속 버디에 성공할 때는 아낌없는 박수가 터졌다. 

연습라운드와 프로암 때도 수많은 관중들이 대회장을 찾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첫날 가장 관심을 끈 토머스와 배상문(31), 팻 페레즈(미국) 조에는 수백명의 갤러리가 따라붙었다. 선수들의 샷 하나하나에 반응했고, 스윙 동작을 담기 위해 멀리서 동영상 촬영을 했다. 선수들이 페어웨이를 지날 때면 배경 삼아 셀카를 찍기 바빴다.


비싼 티켓값에도 연일 인산인해
미성숙한 갤러리 문화 ‘옥에 티’

대회를 주최한 CJ그룹은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특급 대회인 만큼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만전을 기했다. 곳곳에 자원봉사자들을 배치해 선수들은 물론 관람객들의 안전과 질서유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협소한 주차공간 대신 경기장에서 약 4㎞ 떨어진 곳에 임시 주차장을 설치해 대회장 주변 교통난을 해소했고 주차장과 대회장을 오가는 셔틀 버스가 관중들을 끊임없이 실어 나르며 이동 편의를 제공했다.

대회 조직위에 따르면 1라운드가 시작한 지난달 19일부터 나흘 동안 대회장을 방문한 갤러리들은 총 3만5000여명으로 집계됐다. 평일 오전 시간대에 치러졌음에도 1라운드에 5500여명의 갤러리들이 운집했고 최종 라운드가 열린 22일에는 10만원에 육박하는 비싼 티켓 가격에도 1만3500여명이 대회장을 가득 메웠을 정도로 흥행했다.

최초로 국내에서 진행되는 더 CJ컵@나인브릿지에 대해 PGA투어 제이 모나한 커미셔너는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하며 전체적인 운영에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대회 마지막 날인 지난달 22일 제이 모나한 커미셔너는 PGA투어 국제사업부 타이 보타우 부사장과 함께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에서 개최되는 첫 PGA투어 공식 대회인데, 선수들이 제주도에서 플레이를 하며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있다”며 “아시아에서 이번이 세 번째 대회인데, 아시아 시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타이 보타우 부사장 역시 “앞으로 이 대회에 대해 KPGA의 역할을 좀 더 확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지속적인 논의를 할 예정”이라며 “이 대회는 10년 계약이 이미 체결된 것처럼 굉장히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수준 높은 경기와 갤러리들의 많은 관심 속에 대회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도 있었다. 인기 있는 선수들에게 관중이 집중되다보니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 선수들의 조에는 따라 붙는 갤러리 한 명 없이 그들만의 경기를 하는 모습도 아쉬웠다.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도중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자원봉사자들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토머스가 1라운드 도중 갤러리들에게 직접 자제를 당부했을 정도였다. 그 때부터 “노 카메라”는 새로운 홀에 들어서는 캐디들의 인사말이 됐다. 뿐만 아니라 티 샷을 앞둔 선수 앞에서  전화 통화를 하는 갤러리가 있는가 하면 마지막 날 11번홀에서 토마스가 티샷 한 볼이 러프에 떨어지자 갤러리가 주워서 던져주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갤러리 문화
여전한 숙제

방송 중계권 확대 등은 숙제로 남았다. 지상파 방송사 SBS의 중계 시간은 주말 라운드 오후 1~3시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고 케이블 채널 SBS스포츠도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생중계했지만 포털사이트와의 중계권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모바일로는 시청이 불가능해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인 기세를 앞세워 쟁점 법안들을 한순간에 처리하려고 한다. 수많은 위험과 과제를 풀어야 하는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엔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주요 후보 4명이 출마할 예정이다. 약점도 4인 4색이다.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다음 달 19일 충북 청주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임기 만료로 물러난 이후 주목받았던 유력 당권주자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 의원 ▲나경원 의원 등 4명이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 좌장으로 알려진 6선 조경태 의원과 장성민 경기 안산갑 당협위원장도 출마를 선언했다. 돌고 돌아 4파전 예고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에겐 매우 어려운 숙제들이 수북하게 쌓여 기다리고 있다.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 직후의 기세와 압도적인 의석수를 토대로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농업 4법 ▲상법 추가 개정안 등 쟁점 법안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서둘러 처리할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달 11일엔 검찰을 완전히 폐지한 후 기존 권한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옮기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의 의석수는 107석에 불과해서 실질적으로 해당 법안을 막을 힘이 없다. 또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 당 대표 유력 후보 중 1명인 박찬대 전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민의힘을 겨냥해 “내란범을 배출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끊는다”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발의했다. 이를 놓고, 박 전 원내대표는 “아직도 반성 없이 내란을 옹호하는 정당에 국민 혈세가 투입돼 내란을 옹호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내란 종식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당해산심판 청구 및 인용 가능성을 피부로 느끼도록 위협하면서 자금줄을 끊는 조치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건희 특검팀은 같은 날 지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개입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자택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은 지난 7일엔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의 출국을 금지했다. 특검의 수사 상황에 따라 ‘줄초상’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승부수로 제시했다가 좌초된 5대 개혁안에 담긴 국민의힘의 체질 개선 문제도 새 당 대표의 골머리를 썩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 친윤(친 윤석열)계는 5대 개혁안을 좌초시키면서 친윤계 일원인 송언석 의원을 원내대표로 당선시키는 등 여전한 힘을 드러냈다. 5대 개혁안 중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추진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국민의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안건이었다. 신임 당 대표가 이를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숙제는 내년 6월 진행될 지방선거다. 국민의힘이 승리할 가능성은 벌써 낮게 진단되고 있다. 실제로 패배하면, 다음 달 선출되는 당 대표는 이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사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숙제와 뻔한 죽음이 예상되는 ‘독이 든 성배’라고 할 수 있다.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4명은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정치인들로 이들 모두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앞으로 국민의힘은 어려운 숙제를 잔뜩 안고,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새 정부와 거대 여당을 상대해야 한다. 그래서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대표가 절실히 필요하다. 전대 다가오는데 또 같은 얼굴들 대표 유력 주자 약점 들춰보니… 하지만 후보 4명은 각자 결함과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새 지도부가 구성됐다고 해서 저 많은 과제가 술술 풀릴 가능성은 매우 작다.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김 전 장관은 지난 4일 서울희망포럼 강연에서 “이재명 대통령에 맞서 내가 싸우겠다”며 “국민이나 당이 위축될 때 침묵하지 않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의 당 대표 출마 선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매개로 김 전 비대위원장을 지명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시도했던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김 전 장관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이를 회의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장관의 측근인 국민의힘 김재원 전 대선후보 비서실장은 지난달 13일 YTN <뉴스파이팅>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이재명정부의 국정 전횡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등 야당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당무감사가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인지 회의적”이란 견해를 밝혔다. 김 전 장관이 몰두하는 것은 ‘빅텐트’다. 김 전 장관이 사실상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제시한 비전은 ▲권력의 잘못에 맞설 수 있도록 107명이 제대로 뭉친 국민의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낙연 전 총리·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대표 등과의 빅텐트 및 연대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당 체질 개선이란 측면에서 김 전 장관의 ‘빅텐트’에 대한 집착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에도 빅텐트를 거론했다. 김 전 장관은 이 전 총리의 지지 선언은 이끌었지만,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는 끝내 성사시키지 못했다.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도 스스로 제안했다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태도를 바꿔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의 불씨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후보와 친윤계의 갈등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대선에서 41%를 득표하는 등 비교적 선전했지만, 이 ‘비교적 선전’은 국민의힘의 처참한 상황에 비해 선전했다는 것일 뿐, 진짜로 선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여전히 빅텐트에 집착하고 있다. 빅텐트 정당은 다양한 세력을 묶고 그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 당내 화합조차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다. 국민의힘의 전신 새누리당을 탈당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단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다시 빅텐트 김문수 집착 심지어 김 전 장관이 대선후보 시절 구상했던 빅 텐트엔 전 목사 등 광장 세력도 포함됐다. 이처럼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관악산에서 열심히 턱걸이를 해도 고령에 따른 판단력 문제가 따라다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 전 장관이 윤석열정부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연이어 발탁됐던 이유로는 “고령의 보수 정치인에 대한 예우”란 평가가 계속 나왔다. 이 평가엔 “정치적 영향력과 지도력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에 부담 없이 발탁했다”는 의미가 있다. 대선후보 교체 시도 당시 당사 후보실을 점거하는 등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연상시키는 과감한 선택은 일부 돋보였다. 하지만 과감한 정치적 선택도 정확한 판단력과 맞물려야 그 빛을 발한다. 대권·당권주자가 없단 약점이 있는 친윤계가 그나마 지향점이 비슷한 김 전 장관을 당 대표로 옹립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중도를 공략해 다시 정권을 되찾으려면 당 체질은 필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따라서 김 전 장관이 빅텐트에 집착하는 옛 관성을 버리지 못하면, 여당과 제대로 맞설 제1야당 대표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남는다.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선 “어려운 상황에서 정면 승부하는 결기가 부족하다”는 일부의 평가가 있다. 한 전 대표는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편한 길을 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해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당시 대표를 심판 대상으로 규정한 ‘이조 심판론’이란 구호를 내걸었다가 ‘108석 당선’이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여당 대표가 야당 대표들에 대한 심판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할 이유로 제시한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가 정치 인생에서 제일 빛났던 순간은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였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반대하면서 “국민과 함께 이를 막겠다”고 천명했다. 이어 친한계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한 후 민주당과 협조해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원로 인사들은 한 전 대표를 극찬했다. 조 대표는 지난 2월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여당 대표가 계엄을 좌절시키긴 어렵다”며 “보통 이런 걸 ‘별의 순간’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친윤계와 합의해 지난해 12월7일 진행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1차 표결 불참을 결정했다. 이어 다음날엔 한 전 총리와 함께 “총리와 여당 대표의 당정 협의를 강화해 국정 공백을 메운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헌법재판소가 한 전 총리 탄핵 심판 결정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각계각층에선 한 전 대표를 일컬어 “권력 찬탈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격렬하게 비판했다. 한동훈 급부상 당시 한 전 대표는 ▲조속한 직무 정지 ▲탄핵소추 표결 불참 ▲탄핵 찬성 등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의견을 계속 바꿨다. 그러다가 탄핵소추가 가결된 직후 친윤계의 반발과 최고위원 전원 사퇴 등이 이어지면서 당 대표직에서 쫓겨나듯 물러났다. 이후 한 전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 패배 후 대선 유세에 참여했고, 친한계를 움직여 대선후보 강제 교체 반대에 참여하는 등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친윤계와의 뿌리 깊은 갈등은 여전하고, 당 대표 출마에 대한 의견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 등 ‘결기 부족’이란 일각의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김민석 총리 지명 철회 등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하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농성이 되고 말았다. 나 의원은 냉방이 잘 되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비교적 가격이 비싼 김밥과 유명 메이커 커피를 곁들이고 탁상용 선풍기까지 갖췄다. 이런 상황을 알린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촬영해 스스로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나 의원 자신이었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캠핑이나 바캉스 같다”고 비웃었다. 지난 2018년 5월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면서 단식 농성을 했던 자유한국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도 지난 1일 MBC <뉴스외전>에서 “로텐더홀에서 출판기념회 하듯이 농성한다”고 비판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피서 농성”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나 의원은 “주말엔 로텐더홀에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달 30일 YTN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나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인상을 남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지층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정작 농성의 대상인 김 총리는 같은 날 나 의원을 방문해 “식사는 했느냐”면서 “단식은 하지 말라”고 비웃었다. 김 총리의 기세는 하나도 꺾이지 않았고, 민주당은 지난 3일 김 총리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대선 경선 그대로 옮겨지나 수많은 난제…독이 든 성배? 그러자 나 의원은 다음날 농성을 해제했다. 나 의원이 6일 동안 진행한 농성은 나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된 후 진행될 대정부 투쟁의 회의적 가능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당 대표 당선 가능성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지 의문이 커진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7일 오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후 겨우 8분 만에 사퇴했다. 안 의원은 지난 2일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국민의힘은 악성 종양이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라면서 “메스를 들어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안 의원은 송 비대위원장에게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와 관련해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 대한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건의를 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중도·수도권·청년 중심으로 혁신위를 구성하려던 안 의원의 구상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국민의힘 혁신 당 대표가 되기 위해 도전할 것”이라며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안 의원은 혁신위원장 내정 이전부터 당 대표 출마 가능성이 크게 점쳐졌다. 따라서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친윤계와 손을 잡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어 일찌감치 “친윤계가 이전처럼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왜 혁신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함께 돌아다녔다. 안 의원은 “‘쌍권(권영세·권성동)’ 숙청을 혁신안으로 제시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따라서 “혁신하는 당 대표가 될 수 있다”는 명분은 챙겼다. 하지만 여전히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나 홀로 버티고 있다. 친윤계와의 연대설이 돌아다녔던 이유도 안 의원에게 세가 없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안 의원도 김 전 장관처럼 친윤계와 치명적으로 갈등한 이력이 생겼다. 김 전 장관과 달리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명분은 얻었을지 몰라도, 실리는 스스로 걷어찬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당 대표로 당선되더라도, 메스를 들어 고름과 종기를 적출할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남는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 계보를 거느린 한 전 대표도 친윤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조 의원과 장 당협위원장의 출마 선언은 주요 후보 4명에 비하면 비중 있게 취급되진 않는다. 다만 조 의원에 대해선 “한 전 대표가 불출마하고, 좌장인 조 의원이 대신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수장과 좌장이 동시에 출마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많은 숙제 뻔한 결말? 여러 폭탄을 끌어안고 죽을 가능성이 더 큰 당 대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출혈은 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제대로 혁신하지 못하는 틈을 타 압도적인 기세를 타고 쟁점 법안들을 연이어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독이 든 성배 취급을 받는 국민의힘 대표 자리에 앉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자중지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 내부의 먹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