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떠도는 ‘터미널 괴담’ 오해와 진실

‘게이에 당했다’ 소문이 사실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동서울터미널은 예전부터 ‘동성애자들의 일탈 창구’ ‘남자 몰카 위험지대’ 등 갖은 루머에 시달렸다. 최근 그저 떠도는 괴담이라고만 치부했던 괴담이 사실로 드러났다. 옆 칸 남성을 몰래 촬영하던 남성이 현행범으로 체포된 것. 이 사건 이후 동서울터미널 관련 경험담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동서울터미널 측에서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미 바닥을 친 이미지가 회복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일 서울 광진경찰서는 지난 21일, 동서울터미널 3층 남자화장실서 다른 남성을 불법 촬영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40대 남성 A씨를 현장서 검거했다고 밝혔다. 

옆 칸서 촬영
경고 무용지물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오후 5시께 해당 화장실 끝 칸에 숨어 스마트폰을 이용해 칸막이 위로 옆칸 남성을 촬영했다. 경찰은 당시 같은 화장실서 손을 씻고 있던 박모씨(23)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현장서 벗어나려던 A씨를 붙잡았다. 

박씨는 “한 남성이 망을 보듯 주위를 둘러보며 화장실 안을 맴돌아 수상하게 생각했다”며 “최근 남성 대상 몰카 범죄가 많다는 소문이 떠올라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영상을 유포해 금전적 이익을 취득할 의도는 없었으며 본인 소장을 목적으로 영상을 촬영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추가 영상이나 피해자가 있는지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미 오래 전부터 동서울터미널 2·3층 남자화장실은 동성애자들의 성적 일탈 창구로 유명세를 떨쳤다. 동서울터미널 2, 3층 화장실 벽면에는 군인을 유혹하는 동성애자들의 낙서가 가득하다. 

‘군인, 학생, 청년들 노크 3번 하면 문 열어주세요!’ 등의 손글씨가 전화번호, 메신저 아이디(ID)와 함께 적혀 있다.

‘○○섹스’ 등 성관계를 암시하는 손글씨와 나란히 적힌 전화번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워낙 자주 낙서가 쓰이기 때문에 화장실 곳곳에는 관리실 측이 지운 흔적도 많다. 동서울터미널 남자화장실에선 동성애자뿐 아니라 부대 복귀를 앞둔 군인들 대상의 몰래카메라(몰카)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승·하차장이 있는 1층에 비해 비교적 한산한 2·3층 남자화장실서 부대 복귀를 앞둔 군인들이 성욕을 해소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다 보니 남자화장실로는 이례적으로 “이 곳은 모두가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항상 청결하고 다음사람을 배려하여 주십시오.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불쾌한 행동을 할 시에 그 즉시 불이익을 받게 됨을 양지해 주십시오. 저희는 주기적으로 순찰중이며, 비정상적 고객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점 숙지해주시고,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남자 화장실 몰래 촬영한 40대남 체포
스마트폰 이용 칸막이 위로 옆칸 촬영

몰카 범죄가 끊이질 않다 보니 터미널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남자화장실을 순찰하고 있다. 이곳서 당구장을 운영하는 B씨는 지난달 화장실에 갔다 20대 남성이 소변을 보는 척하며 용변기 칸 안을 문틈으로 훔쳐보는 걸 목격했다. 


이 남성은 B씨가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달아났다. 

7월에는 한 남성이 양변기를 밟고 올라서 옆칸에서 용변 보던 다른 남성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걸 목격해 붙잡으려다 실패했다. 

B씨는 “남자화장실 몰카 때문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편의점 주인 C씨는 “전국서 사람이 모이고 군인도 많다 보니 남자화장실 몰카범을 포함해 희한한 사람이 꽤 되지만 현장서 적발하지 않으면 사실상 못 잡는다”며 “종종 화장실을 순찰해도 허탕치는 게 다반사”라고 말했다. 

같은 건물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D씨는 “몰카 찍지 말라는 스티커만 붙이면 어떡하느냐”며 “관리나 단속이 전혀 안된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화장실 벽면은 지나친 낙서와 광고지 때문에 주기적으로 페인트칠을 새로 하고 있지만, 다시 그 위에 광고지가 붙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한 가게 점원은 “3층 남자화장실의 경우에는 군 장병 라운지가 있고 인적이 드물어 동성애 관련 광고 등이 더 심하게 붙는다”며 “터미널서 스티커와 낙서를 떼다 못해 아예 페인트를 새로 칠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생긴다”고 말했다. 

군인이 타깃
동성애 천국

동서울터미널 남자화장실서 찍은 몰카와 동성애 동영상이 온라인상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텀블러의 블로그 ‘동서울터미널 군인 전문’에는 남자화장실을 이용하는 군인들을 몰래 촬영한 동영상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주로 군복을 입은 남성이 화장실서 스마트폰으로 음란 동영상을 시청하며 자위행위를 하는 모습을 누군가가 옆칸서 몰래 찍은 것이다. ‘국내 100% 리얼 짜릿 영상’이라고 홍보하는 이 블로그 속 동영상에는 몰카를 찍고 있는 중년 남성이 스테인리스 소재 가림막에 어렴풋이 비친다. 
 

이 화장실서 군복을 입은 남성에게 유사성행위를 해주는 동영상도 텀블러에 여럿 올라와 있다. 늘 황금색 마스크를 쓴 채 등장하는 한 남성은 ‘2017년 10월7일 찍은 따끈한 영상입니다. 연휴 기간 동안 총 3번 했네요. 너무 좋습니다’라며 음란 동영상을 올렸다. 

이 남성이 올린 동영상 배경 수십 곳이 모두 동서울터미널 화장실이었다. 

얼마 전에는 한 누리꾼이 직접 경험했다고 고백한, 동서울 터미널 화장실 괴담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혼자 할머니댁에 가기 위해 터미널에 간 그는 갑작스럽게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갔지만 1·2층 화장실 모두 사람이 가득했다. 


그렇게 가게 된 3층 화장실. 근데 분위기가 묘했다. 누리꾼은 “변기칸 문에 남자 성기랑 게이 관련된 낙서도 많고 뭔가 게이? 집합소? 느낌이 났다. 화장실 안엔 저랑 어떤 뚱보 아저씨밖에 없었다. 그 아저씨는 저랑 몇 칸 떨어진 곳에 들어갔고 전 별일 있겠어? 하고 일을 봤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런데 몇 칸 떨어진 곳에 간 아저씨가 갑자기 누리꾼의 바로 옆 칸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살짝 무서웠다고. 

스티커, 낙서…
단속도 소용없다

누리꾼은 “잠시 뒤 무슨 소리가 나서 위를 올려다봤는데 벽 위로 머리 하나가 나오더니 저랑 딱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동영상인지 찍더라. 마치 영화 <도가니>서 나온 그 장면처럼 저를 감상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온 몸이 덜덜 떨리고 땀이 나고 온갖 생각이 다 들고 엄청 무서웠다. 막 마취시켜서 성폭행하려는 건 아닌지. 칼로 갑자기 찌르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들고. 112에 전화하려다가 그 전에 해코지 당할까봐 전화도 못하고. 뭘 쳐다보냐고 하니까 다행히 머리를 내리긴 했지만 그래도 무섭더라”라고 아찔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어렵게 털어놨다. 

대충 짐을 챙겨 밖으로 뛰쳐나온 그는 이후로도 잘 때도 누가 자신을 보는 것 같고 선풍기마저 자신을 쳐다보는 듯한 이상한 기분에 한동안 힘들었다고 한다. 


끝으로 “트라우마라는 게 왜 생기는지 알겠더라. 그때 왜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는지 너무 후회된다”라고 글을 마무리 지었다. 실제로 이를 접한 일부 누리꾼들은 해당 괴담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타 커뮤니티 및 SNS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쏟아졌다. 이를 접한 한 누리꾼은 “대한민국 남자화장실 중 몰카 조심해야하는 장소 중 하나가 동서울 터미널 3층 화장실이다. 화장실 곳곳에 몰카 설치돼있고 거기서 볼일 보면 그 장면 그대로 동영상으로 녹화돼 사이트에 올라간다”라고 경고했다. 

특히 “뭣 모르고 갔다가 파트너 찾으러 나온 게이로 오해받을 수도 있고 정말 위험한 장소니 늦은 시간대에는 절대 가지 말기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몰카범 소문이 퍼지면서 터미널 내는 초상집 분위기다. 상인들은 “구멍이 뚫린다는 소문이 돌면서 아예 벽면을 철제로 바꾼 지 오래”라며 “그럼에도 화장실을 사용할 때마다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답했다. 

관리소 이례적으로 경고문 부착
상인들이 직접 순찰 나서기도

일부에선 “경찰이 스티커만 붙이고 추가 대책을 내놓지 않아 문제가 반복되는 것 같다”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동서울터미널 화장실에는 여전히 퇴폐 유흥업소 광고와 성적인 내용이 담긴 낙서가 가득하다. 최근 몰카 논란에 경찰이 화장실 칸마다 몰카 경고 스티커를 붙여놨지만 스티커 위에 다시 유흥업소 광고가 붙어 있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화장실에 붙어 있는 광고지는 대부분 ‘남성 사우나’ 또는 ‘찜방’으로 불리는 동성애 유흥업소 광고로, 전화번호와 함께 선정적인 문구가 쓰여 있다. 

한 업소는 “스티커를 보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며 “스티커를 보고 전화를 건 사람들에게 주소를 알려주는 식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경찰 관계자는 동서울터미널 화장실 논란에 대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순찰을 돌고 있다”며 “최근 논란이 된 화장실에 대해서도 자주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자화장실 몰카 유통창구인 텀블러를 운영하는 야후는 미국 법을 들어 성인음란물 수사에 비협조적이라 몰카범 체포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미국 법률은 아동음란물은 매우 엄격히 처벌하면서도 성인음란물에는 관대한 편이다. 

야후가 2012년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수사 협조를 요청할 창구도 마땅치 않다. 경찰 관계자는 “텀블러를 통한 음란물 유포가 심각해지자 일각에선 텀블러 접속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남자 몰카 피해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보통 성범죄 사건은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저지르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최근에는 동성 간의 성범죄, 특히 남성 간의 성범죄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남자 몰카 피해자는 2015년 120명서 지난해 160명으로 늘었으며 올해 1∼8월에는 이미 125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한다. 즉, 남성 몰카 피해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남성 간의 성범죄 사건이 늘어나고 있지만 사실상 피해자들의 대처는 아직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에서 남성들은 성폭력 피해사실을 남에게 알리는 경우가 여성에 비해 매우 드물었다고 나타났다. 

남자는 대부분 몰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이 거의 없어 주의를 덜 기울이는 점 등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피해자가 더 많을 거라고 경찰은 예상했다. 

남 몰카 증가
경각심 부족

성범죄와 관련된 법조항을 보면 피해자를 ‘부녀’로 한정하지 않고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즉 남성도 성범죄 피해자에 포함이 되며, 처벌도 똑같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한 변호사는 “오해에 의한 남성 간의 성범죄 혐의를 받고 있을 때 스스로 가벼운 사안이라 여겼다가 사건이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며 “성범죄의 경우 처벌이 강력해지는 추세이므로 사건 초기부터 성범죄 전담 변호사의 조력은 필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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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사태’ 결정적 장면 셋

‘하이브 사태’ 결정적 장면 셋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시작은 분명 하이브였다. 하지만 나락에 떨어지고 있는 것도 하이브다. 연예기획사 최초로 대기업에 지정되는 등 업계 1위로 군림하던 상황이라 추락의 속도가 더 빠른 모양새다. 불과 6개월 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요시사>가 ‘하이브 사태’의 결정적 장면을 꼽았다. 내부서 시작된 갈등이 외부로 분출됐다. 여론이 움직이고 대중의 뭇매가 이어졌다. 정치권이 나서자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그사이 연예기획사 하이브는 이른바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오랜 시간 모래 위에 성을 쌓아온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민낯도 드러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하이브가 케이팝에 독물을 풀었다’는 말이 돌았다. 업계 1위 나락 갔다 시작은 민희진 당시 어도어 대표이사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었다. 하이브는 멀티레이블 체제를 도입해 시행했다. 국·내외서 큰 성공을 거둔 방탄소년단(BTS)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리스크를 낮추겠다는 의도였다. 모회사인 하이브는 산하에 레이블을 인수하거나 편입하는 식으로 체제를 완성했다. 각 레이블은 소속 아티스트의 활동을 전담하고 하이브는 지원 업무를 담당했다. 멀티레이블은 ‘독립적 운영’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졌다. 이 같은 방식은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듯했다. 실제 BTS의 ‘군백기(군대+공백기)’에도 하이브의 매출은 성장세를 보였다. 어도어는 하이브 산하 레이블 중 하나로 그룹 뉴진스가 소속돼있다. 어도어의 지분은 하이브가 80%, 민 전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이 20%(민 전 대표 18%)를 보유하고 있다. 민 전 대표는 과거 SM엔터테인먼트서 샤이니, 에프엑스 등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와 브랜드를 맡은 제작자로, 2019년 하이브에 합류했고 2021년 어도어 대표가 됐다. 지난 4월 하이브는 민 전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이 레이블의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내부 감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민 전 대표 측은 하이브의 감사는 내부고발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인 빌리프랩의 소속 가수 아일릿이 뉴진스를 카피했다고 주장했다. 아일릿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프로듀싱을 맡은 걸그룹이다. 민 전 대표 측의 주장으로 전선이 다른 레이블로까지 확대됐다. 대형 연예기획사와 산하 레이블 대표 간의 갈등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달궜다. 폭로와 반박이 나올 때마다 여론이 휘청였고 온갖 의혹이 난무했다. 민 전 대표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공개됐고 이 과정서 한 무속인의 존재가 드러났다. 민 전 대표가 자신의 중대사를 무속인과 논의했다는 의혹이 퍼졌다. 4월22일부터 4월25일까지 불과 나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그때 민 전 대표의 기자회견 소식이 전해졌다. 민 전 대표는 4월25일 법무법인 세종 소속 변호사 2명과 함께 한국컨퍼런스센터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가 자청한 회견이었다. 파란 모자에 녹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민 전 대표는 하이브의 주장에 ‘억울하다’는 입장을 드러내며 반박했다. 민희진에 대한 감사 나비효과 국감에서 다뤄지며 뭇매 맞아 민 전 대표는 중간중간 욕설을 섞거나 눈물을 흘리는 등 감정을 ‘날것’ 그대로 쏟아냈다. 2시간 남짓한 기자회견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여론이 급격하게 민 전 대표 쪽으로 기울었고 그가 착용한 모자와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는 등 엄청난 화제로 기록됐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대목이다. 이후 둘의 갈등은 법정 공방으로도 비화했다. 첫판은 민 전 대표의 판정승이었다. 민 전 대표는 자신을 해임하기 위한 어도어 주주총회서 하이브가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하이브가 민 대표의 해임 사유를 충분히 소명하지 못했다고 판단된다”며 인용 결정을 내렸다. 또 하이브가 주장했던 민 전 대표의 ‘경영권 찬탈’ 의혹에 대해 “민 대표가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의 지배 범위를 이탈하거나 압박해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을 팔게 만들어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민 전 대표가 어도어를 독립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런 방법의 모색 단계를 넘어 구체적 실행 단계로 나아갔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민 대표의 행위가 하이브에 대한 배신적 행위가 될 수는 있겠지만 어도어에 대한 배임 행위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민 전 대표는 가처분 승소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어도어 대표로서 계속 일하고 싶다. 뉴진스와 함께 계획한 것들을 하고 싶다. 그게 하이브에도 이익이다. 그만 싸우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자”며 화해를 제안했다. 하지만 하이브는 앞서 열린 임시주총서 민 전 대표 측 이사 2명을 해임하고 3명을 새로운 이사로 선임하는 등 압박을 가했다. 여기에 아일릿의 레이블 빌리프랩서 민 전 대표가 주장한 뉴진스 카피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사건이 확대됐다. 빌리프랩은 민 전 대표에 대한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레이블 간의 다툼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때부터 팬덤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소속 가수가 직접적인 공격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어도어와 또 다른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쏘스뮤직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쏘스뮤직에는 그룹 르세라핌이 소속돼있다. 한 언론 매체를 통해 어도어 측이 쏘스뮤직의 연습생을 빼앗아 뉴진스를 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레이블 간의 반박, 재반박이 거듭됐다. 또 레이블서 직접 민 전 대표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등 진흙탕 싸움이 이어졌다. 기자회견 첫 분기점 ‘민-방(민희진-방시혁) 대전’ ‘민-합(민희진-하이브) 대전’은 8~9월 분기점을 맞았다. 역시 선공격은 하이브의 몫이었다. 지난 8월27일 어도어는 “김주영 어도어 사내이사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며 “김 신임 대표이사는 다양한 업계서 경험을 쌓은 인사관리 전문가로서 어도어의 조직 안정화와 내부 정비를 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지난 5월 어도어 사내이사가 교체될 때 하이브 쪽 추천으로 들어간 인사다. 민 전 대표는 대표직에서는 해임됐지만 사내이사직은 유지했다. 어도어는 민 전 대표가 뉴진스의 프로듀싱 업무도 그대로 맡게 된다고 밝혔다. 제작과 경영을 분리한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어도어만 예외적으로 제작과 경영을 모두 총괄해 왔다”고 강조했다. 민 전 대표의 권한을 제작으로만 축소하겠다는 뜻이었다. 민 전 대표는 “일방적인 해임”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또 주주 간 계약의 중대한 위반이라고도 했다. 민 전 대표가 뉴진스의 프로듀싱을 맡는 문제도 일방적인 통보라고 주장했다. 어도어의 선공격과 민 전 대표의 반박으로 공은 또다시 법정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변수가 등장했다. 뉴진스가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이다. 지난 4월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이후부터 지난 9월까지 뉴진스가 전면에 나선 적은 없었다. 시상식 등에서 민 전 대표와의 유대감을 표현하거나 뉴진스 멤버의 부모가 목소리를 낸 경우는 있었지만 직접 입장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다. 9월11일 뉴진스는 유튜브 계정을 열고 하이브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토로했다. 이들은 “라이브를 결정한 이유는 (민희진)대표님의 해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스태프들이)부당한 요구와 압박 속에서 마음고생하는 것을 보는 게 힘들었다. 그리고 저희 다섯명의 미래가 걱정돼 용기를 내게 됐다”고 밝혔다. 또 버니즈(뉴진스의 팬덤명)까지 나서서 도와주고 있는데 우리만 숨어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방송 배경을 밝혔다. 뉴진스는 “경영과 프로듀싱이 통합된 원래 어도어를 저희는 바란다. 이것이 하이브와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라며 “오는 25일까지 어도어를 원래대로 복구시키는 현명한 결정을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날짜를 못 박았다. 당시 뉴진스가 민 전 대표를 복귀시키라면서 특정 날짜를 언급하는 등 ‘최후통첩’에 가까운 발언을 하면서 하이브와 법정 공방을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라이브 방송 변곡점 됐다 특히 이날 방송서 뉴진스 멤버 하니가 “(하이브 사옥서)혼자 복도서 기다리고 있었다”며 “다른 팀원들이랑 매니저가 지나갔다. 서로 인사했는데, 그분들이 나오셨을 때 그쪽 매니저가 ‘무시해’라고 했다. 제 앞에서. 다 들리고 보이는데 ‘무시해’라고 했다. 제가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어이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부분이 ‘직장 내 괴롭힘’ 의혹으로 번졌다. 뉴진스가 전면에 나서 진행한 라이브 방송의 파급력은 컸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 민 전 대표+뉴진스와 하이브 간의 갈등으로 재규정된 순간이었다. 방송 자체는 3시간 만에 삭제됐지만 뉴진스의 발언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던 정치권이 하니의 주장을 문제 삼으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하니를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하이브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에 대해 파헤치겠다는 취지였다. 동시에 인사책임자인 김주영 어도어 대표이사의 증인 출석도 요구했다. 아이돌 따돌림, 직장 내 괴롭힘 문제와 관련해 하니에게 묻고 김 대표에게 대응에 대해 질문하겠다는 것이다. 하니가 국감에 출석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화제가 일었다. 이날 국감에서는 하니와 김 대표 간의 공방이 벌어졌다. 하니는 다른 레이블 소속 매니저로부터 ‘무시해’라는 발언을 들었고 하이브가 CCTV를 삭제하는 등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김 대표는 서로의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라고 맞섰다. 하니의 국감 출석으로 아티스트의 근로자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아티스트는 현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상태다.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정 의원은 “(아티스트가)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니까 대응할 수가 없다고 하면 이 문제는 영원히 도돌이표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하이브는 아이돌 굿즈 관련한 문제로도 국감서 지적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의혹이 쟁점이 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하이브 국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이브에 대한 정치권의 공격은 거셌다. 이 과정서 하이브의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하이브에서는 ‘모니터링’ 문서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업계 동향 보고서’다. 해당 문건의 존재와 내용이 공개되면서 하이브는 바닥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양새다. 한때 케이팝을 선도한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연예기획사가 타사 아이돌의 외모를 품평하고 방송 출연 모습을 일일이 꼬투리 잡아 원색적인 비난을 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팬덤은 물론 대중도 경악하고 있다. 모니터링 문건 대중 반응 최악 뒤에 숨어있는 방시혁 나와야? 엔터 업계서 오랜 시간 일했다는 관계자들도 ‘이런 사례는 보지 못했다’며 손사래를 칠 정도다. 해당 문건에 대한 하이브의 대응은 엄청난 역풍을 불렀다. 앞서 지난달 24일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서 ‘위클리 음악산업 리포트’라는 이름의 문건을 공개했다. 민 의원이 공개한 문건 내용이 파장을 일으키자 하이브는 국감 도중에 입장문을 내고 대응에 나섰다. 문제는 입장문 내용이 ‘적반하장’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당시 하이브는 “국감서 공개된 당사의 모니터링 보고서는 팬덤 및 업계의 다양한 반응과 여론을 취합한 문서”라며 “업계 동향과 이슈를 내부 소수 인원에게 참고용으로 공유하기 위해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발췌해 작성됐으며 하이브의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보고서에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서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들, 팬들의 긍정적인 평가도 포함돼있다”며 “보고서 중 일부 자극적인 내용들만 짜깁기해 마치 하이브가 아티스트를 비판한 자료를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외부에 유출한 세력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이브의 입장문에 국회의원들은 “국회가 만만하냐”며 불쾌감을 표했다. 국감 도중에 입장문을 발표한 것도 모자라 제보자를 색출하겠다는 하이브의 태도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결국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있던 김태호 하이브 최고운영책임자 겸 빌리프랩 대표는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회발로 시작된 문건의 파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수천장에 달하는 문건 중 극히 일부만 공개된 상황이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 케이팝 팬들까지 반응하고 있다. 문건을 만든 사람, 본 사람, 공유한 사람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고, 민 전 대표가 이미 지난 4월 첫 번째 기자회견을 했을 때 언급했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대중의 관심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하이브는 지난달 29일 이재상 최고경영자(CEO) 명의로 입장문을 게재했다. 문건이 처음 공개된 지 닷새 만에 나온 사과문이다. 이 CEO는 “당사의 모니터링 문서에 대해 아티스트분들, 업계 관계자분들, 그리고 팬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죄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또 부적절한 내용의 문건을 작성한 점을 인정하고 내부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하이브의 사과문을 두고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상황에 기름을 부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언론을 통해 추가 문건이 공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일부 하이브 소속 가수가 SNS를 통해 말을 얹으면서 사태가 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사이 하이브의 이미지는 물론 소속 가수의 호감도 또한 수직 낙하하는 중이다. 정치권발 카운터펀치 결국 방시혁 의장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방 의장은 BJ 과즙세연과의 LA 목격담 이후 두문불출 중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도 전면에 나선 적이 없다. 하지만 대중의 시선은 계속해서 ‘위’를 향하고 있다. 결국 하이브를 총괄 지배하는 사람은 방 의장이기 때문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