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골프 위상 알린 US여자오픈 '이모저모'

‘상위권 싹쓸이’ 태극낭자들의 잔치

지난달 17일 미국 뉴저지 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GC에서 끝난 제72회 US여자오픈은 한국 골프팬들을 열광시켰고 미 대통령 트럼프마저 우승자 박성현을 향해 기립 박수케 했다. 올해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LPGA에 진출한 스타 골퍼 박성현은 LPGA 첫 승을,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 우승으로 장식했다. 아마추어 최혜진이 준우승을 거둔 것을 비롯해 10위 안에 8명의 한국 선수들이 포진했다. 한국에게 잔치마당이 된 US여자오픈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봤다.

올해 미국 진출한 박성현(24  ·KEB하나은행)은 그 이름에 걸맞게 첫 우승을 메이저 대회로 장식했다. 첫날 58위에서 매 라운드 둘째날 21위, 셋째날 4위에 이어 최총라운드에서 1위에 오른 박성현은 닥공(닥치고 공격)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기적의 역전승
수퍼루키의 힘

3타차 단독 4위로 마지막 라운드에 오른 박성현은 전반에만 2타를 줄여 우승 경쟁에 본격적으로 가세했다. 12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 공동 선두에 오른 박성현은 15번홀(파5)에서 5m가량의 버디 퍼트를 성공시켜 1타차 단독선두로 나갔다. 기세가 오른 박성현은 가장 어렵다는 17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핀 2m 지점에 떨어뜨려 버디로 연결하면서 2위 그룹을 2타차로 따돌렸다.

그러나 우승을 코앞에 두고 박성현은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위기를 맞았다. 세 번째 샷이 홀을 훌쩍 넘어간 것. 핀까지 15m가량의 거리였지만 그린 초입까지는 오르막 경사였다가 뒤로는 내리막이어서 어프로치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막힌 범프 앤 런샷으로 네번째 샷을 홀에 가깝게 붙여 파세이브에 성공하면서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최종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선두와 3타 차 역전승이었다. 두 자릿수 언더파 우승은 2004년(멕 맬런 10언더파) 이후 13년 만이다. 

올해의 LPGA투어 신인상도 사실상 확실시 된다. 우승 상금 90만달러를 획득한 박성현은 시즌 상금 145만636달러로 유소연(170만2905달러)에 이어 단숨에 2위로 올라섰다.


박성현의 이번 우승에 캐디와의 호흡도 한몫 했다. 박성현은 첫 캐디 칸과 결별했다. 칸은 폴라 크리머(미국)와 12년간 함께 호흡을 맞췄고 애니카 소렌스탐(스웨덴), 박세리의 캐디도 맡았던 베테랑 캐디지만 박성현과는 좋은 호흡을 보이지 못했다. 박성현은 세심한 스타일의 칸보다 공격적 성향을 살려줄 캐디가 필요하다 판단했다. 결국 박성현은 6월 초 개막한 숍라이트클래식부터 전인지의 메이저 우승 도운 데이비드 존스와 함께했다. 공격적 성향인 박성현의 캐디로 낙점된 존스는 US여자오픈 우승으로 합격점을 받았다.

이번 박성현의 우승으로 72회째를 맞은 US여자오픈의 역대 한국 우승자는 8명, 우승컵은 9개가 됐다. 

1998년 박세리가 첫 우승자가 된 후 김주연(2005), 박인비(2008·2013), 지은희(2009), 유소연(2011), 최나연(2012), 전인지(2015), 박성현(2017)이 우승 계보를 이어갔다.

트림프마저 아낌없는 찬사
속 좁은 크리스티 평가절하

아마추어 골퍼 최혜진(18·학산고)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US여자오픈에서 단독 2위에 오르며 대형 신인의 등장을 알렸다. 부산 학산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최혜진은 4라운드를 선두 펑샨샨(28·중국)에 1타 뒤진 공동 2위로 출발했다. 

전반 2타를 줄이며 한 때 단독1위에 오르기도 한 최혜진은 16번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빠트리며 더블 보기를 범해 3위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고 마지막 18번 홀에서 버디를 기록, 최종합계 279타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아마추어에게는 상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라 54만달러(약 6억원) 상금은 공동 3위 유소연(27)과 허미정(28)에게 나눠서 돌아갔다. 하지만 최혜진의 279타는 아마추어 최저타 기록으로 남았다.


1967년 캐서린 라코스테(프랑스) 이후 50년 만에 아마추어 우승에 도전했기에 아쉬움은 컸다. 16번홀만 아니었더라면 리디아 고(20·PXG)가 보유한 메이저대회 최연소 신기록(18년4개월)과 US여자오픈 최연소 우승 기록을 동시에 갈아 치울 수 있었던 최혜진이다.

최혜진의 US여자오픈 출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US여자오픈 한국 지역 예선에서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고, 본 대회에서는 아마추어로 가장 높은 34위에 올랐다. 올해도 예선을 거쳐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다. 최혜진은 이번 대회 4라운드 모두 언더파를 기록했고, 그린 적중률 공동 5위(75.0%), 퍼트 공동 8위(평균1.58개), 평균 비거리 12위(245.96야드), 페어웨이 적중률 공동 13위(82.1%)에 올랐다.

중학교 3학년 때 태극마크를 달았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 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거는 등 일찌감치 아마추어 최강으로 군림해온 최혜진은 이번 시즌 한국여자오픈 4위에 이어 초정 탄산수 용평리조트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5년 만에 국내 무대 정상에 오른 아마추어가 됐다. 오는 8월 만 18세가 된 뒤 9월쯤 프로로 전향할 계획이다.

최혜진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상금을 받지 못해 유감인가’라는 질문에 “내가 우선시 한 목표는 이곳에 출전해 경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내가 2위로 마쳤다는 것이 더 의미 있고 더 큰 영광이다. 상금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혜진의 롤모델은 골프 여제 박인비다. 지난해 리우 올림픽에서 박인비가 부상을 딛고 금메달을 따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고 이후‘세계 1위, LPGA 진출’ 등의 목표 외에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추가됐다.

올 KLPGA투어 대상 포인트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정은(21·토니모리)은 첫 출전에서 공동 5위에 올랐다. 김세영(24·미래에셋), 이미림(27·NH투자증권), 양희영(28·PNS창호)이 공동 8위(최종합계 5언더파 283타)에 입상하는 등 이번 대회 톱 10에 8명의 한국 선수가 포진했다.

떠오르는 샛별
그녀를 주목하라

사흘내 단독선두에 자리하며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 기대됐던 펑산산은 동반자인 최혜진에게 시종일관 끌려 다니는 플레이 끝에 3타를 잃고 공동 5위(최종합계 6언더파 282타)로 대회를 마쳤다. 세계랭킹 1위 유소연은 공동 3위(최종합계 7언더파 281타)에 입상하면서 1인자 자리를 굳건히 했다. 허미정(28  ·대방건설)도 이날 4타를 줄여 자신의 US여자오픈 최고 성적인 공동 3위로 대회를 마쳤다.

LPGA 베테랑 선수 크리스티 커(40·미국)는 한국 여자골프의 강세 이유를 분석하면서 한국을 다소 비하하는 듯한 발언으로 질투심을 드러냈다. 미국 골프전문 매체 <골프닷컴>은 US여자오픈이 끝난 지난달 18일 “최근 10년간 US여자오픈에서 한국 선수가 7차례 우승했고, 올해 대회에선 1위부터 4위까지 한국 선수들이었다”며 “미국 선수 중에서는 공동 11위 마리나 알렉스가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고 비교했다.

한국 독무대
최강 재확인

<골프닷컴>은 한국 여자골프 선수들이 중요한 대회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내는 이유를 크리스티 커에게 물었다. 커는 “한국 선수들의 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라고 답했으나 <골프닷컴>은 “이번 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는 28명, 미국 선수는 54명이었다”며 제대로 된 분석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골프닷컴>은 “두 나라의 운동 유망주들이 어떤 종목에 끌리는지 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골프닷컴>은 “미국은 운동에 재능이 있는 소녀들이 미국여자프로농구(WNBA)를 바라보거나 상금이 큰 테니스 쪽으로 진출한다”며 “또는 축구나 수구를 하는 등 여러 선택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성현 LPGA 첫승 신고…신인왕 예약
아마추어 돌풍 최혜진…10위권 내 8명

그러자 커는 “한국에서는 골프 아니면 공부”라며 동의의 뜻을 나타냈다. 즉 미국에서는 좋은 운동 신경을 가진 여자 선수들이 여러 종목으로 퍼져 나가지만 한국은 골프에 집중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크리스티 커는 2015년 8월에는 한국 선수들을 가리켜 “하루에 10시간씩 훈련하는 기계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에 박인비는 다른 기자회견에서 “커가 한국 선수들을 기계에 비유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들(미국 선수들)은 더 좋은 기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US여자오픈이 열린 골프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소유한 미국 뉴저지 주 베드민스터 트럼프 내셔널 골프장이었다. 개막을 앞두고 미국 현지에서는 장소 논란이 뜨거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여성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선 이후에도 US여자오픈 개최 장소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크 데이비스 미국골프협회(USGA) 이사를 만나 “개최지를 바꾸면 고소하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결국 대회는 트럼프 내셔널GC에서 열렸고, 그는 제72회 US여자오픈 골프대회를 2라운드부터 사흘 연속 관람했다. 주요 20개국(G20) 회담을 마치고 유럽에서 돌아온 날 곧바로 대회장으로 날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15번홀(파5) 옆에 마련한 프레지던츠 박스에 렉시 톰슨, 크리스티 커, 폴라 크리머 등 미국 선수들을 초청해 대화를 나누고 격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회 시상식에도 참석해 우승자에게 트로피를 건네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을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골프사랑은 각별했다. 미국 대통령이 미국골프협회 주최 대회를 참관한 것은 역대 3번째이며, US여자오픈 방문은 처음이었다.

압도적 기량
트럼프도 놀라

박성현이 코스를 이동하는 순간 유리창 너머로 트럼프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서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비쳤고 최혜진이 15번홀까지 공동 선두를 달리던 상황에서 트위터를 통해 “US여자오픈 현장에 와 있다. 아마추어 선수가 몇십년 만에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무척 흥미롭다”고 적었다. 경기 후에는 “박성현의 대회 우승을 축하한다”라고 글을 올렸다. 미국 선수들은 그들의 내셔널 타이틀 대회에서 누구도 톱10에 오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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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