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억울한 사람들> (55)두 번 쫓겨난 사연

“나는 성희롱을 하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예정입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어느 누구든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쉰다섯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성희롱 혐의로 조직서 쫓겨난 후 고군분투 중인 국민생활체육전국당구연합회 전 사무처장 A씨입니다.
 

A씨의 가방에는 문서가 가득했다. 국민생활체육전국당구연합회(이하 연합회)나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이하 연맹),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 등에서 받은 자료였다. 그 외에도 A씨는 사건을 나름대로 정리한 문서를 한 뭉텅이 꺼냈다. 날짜별, 시간별로 꼼꼼하게 정리된 사건 일지였다.

성희롱 쟁점

2015년 5월 A씨는 연합회 이사로 임명됐다. 그 전까지 A씨에게 당구는 취미에 불과했다. 평범하게 당구를 즐기던 그가 동호인을 관리하는 조직에 들어가게 된 것은 지인의 요청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자리를 메우기 위해 받은 직책이었다. 문제는 A씨가 이사에 임명될 무렵 연합회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장 이사 임명 2개월 뒤인 2015년 7월부터 연합회 사무처장에 대한 투서가 들어오는 등 조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투서에는 사무처장의 연합회 사조직화, 잡지 수익 횡령 등 비리 의혹이 적혀 있었다. 

사무처장은 연합회에 사표를 내려 했지만 대의원총회에선 이를 수리하지 않았다. 대신 진상조사위원회를 열어 상황을 파악하기로 결정했다. A씨는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에 선정됐다. 이사로 임명된 지 4개월 만에 연합회 터줏대감이던 사무처장의 비리 의혹을 조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때 진상조사위원을 맡았던 게 모든 일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시 연합회는 작은 조직이었지만 파벌 싸움이 극심했습니다. 저는 내부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조직서 누구에게도 빚진 게 없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인 요청에 이사직 맡아
사무처장 됐지만 ‘왕따’

연합회 사무처장은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파면이 결정됐다. A씨는 그 자리서 연합회 안정화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사무처장 자리가 징계로 공석이 됐고 연맹과 통합 등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인 상황서 조직을 안정화 시켜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 셈이다. 

2개월 뒤 연합회 이사회는 A씨를 신임 사무처장으로 승인했다. 하지만 사무처장 인준을 받은 건 3개월이 지나서였다.

“정말 긴 3개월이었습니다. 저는 사무국 사람들 사이서 완벽하게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점심시간에도 밥을 같이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무국 직원들은 제게 ‘A씨 여기는 민간인이 오는 곳이 아니에요. 어디 다른 데 가 있으세요’ 같은 말을 서슴없이 했습니다. 저를 사무처장으로 대접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지난해 3월 사무처장 인준을 받은 뒤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실무를 담당해야 하는 사무처장이었지만 사무국 직원들은 그의 말을 외면했다. 연합회와 연맹의 통합, 각종 대회 등으로 조직이 분주한 상황에서도 A씨는 완벽하게 고립돼있었다. 

그러던 중 A씨는 같은 해 7월 스포츠비리신고센터로부터 조사 통보를 받는다. 사무국 여직원이 그가 3∼4월경 자신을 성희롱을 했다며 6월에 민원을 넣었다는 것이다.
 


“제가 여직원 성희롱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스포츠비리신고센터에 가서야 알게 됐습니다. 처음엔 정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3개월 전 얘기라 기억도 희미했습니다. 특히 여직원 입장에서는 제가 가해자가 되는 건데 저희는 3개월 간 한 공간에 있었어요. 상식적으로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사 당일 이사회 등 일정이 빡빡했던 A씨는 조사관이 내민 문서에 덜컥 서명을 했다고 한다. A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었다. 자신이 문서에 서명을 하면서 성희롱 혐의에 대해 인정한 꼴이 됐다는 주장이었다. 

기분이 찜찜했던 A씨는 사흘 뒤 다시 스포츠비리신고센터를 찾아가 첫 조사에 대해 해명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A씨가 서명한 문서는 2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연맹의 통합 회장이 선출됐다. 3월 천신만고 끝에 통합된 이후 5개월 만에 뽑힌 초대 회장이었다. 통합 연맹에서 A씨의 자리는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사무국 업무를 맡아야 했지만 9월 이후 모든 업무서 배제됐다. 

통합 연맹 초대 회장은 언론과 인터뷰서 “비리에 관련된 사람들은 조직에 두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고, A씨는 그 대상으로 지목된 상태였다.

“회장님, 부회장님, 전무님 할 것 없이 고위직 분들은 저를 볼 때마다 ‘너 아직도 안 나갔냐?’라며 사직을 종용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사표를 낼만큼 저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여직원 성희롱 혐의로 ‘파면’
지노위 승소했지만 또 쫓겨나

A씨가 사표를 내지 않고 버티면서 그의 직위는 곤두박질쳤다. 그는 지난해 10월1∼3일 치러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기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채 통합 연맹 사무실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을 찾고 이삿짐을 나르고, 정리하는 등의 업무를 맡았다. 보통 행사 때 사무처장이 담당하는 참석자 의전과는 한참 동떨어진 업무다.

이후 10월27일 인사위원회가 열렸고 A씨는 결국 파면 처리됐다. 전날 통합 연맹 부회장이 찾아와 “성희롱 혐의 받으면서 더럽게 나갈 거냐, 깨끗하게 나갈 거냐”라며 신변을 정리하라는 제안을 거절한 뒤였다. 

A씨는 재심을 청구했지만 올해 1월 결국 최종 파면 결정이 났다. 2015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1년8개월간 단 한 번도 직급에 대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끝난 시간이었다.

최종 파면 결정 이후 A씨는 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청구했다. 2월20일 연맹 측 관계자와 노무사, A씨가 동석해 심문이 이뤄졌고, 그 날 저녁 ‘인정’ 처분이 나왔다. A씨가 청구한 구제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지노위 조사관은 A씨에게 “승소”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노위 판정에 안도하면서도 한 달 뒤 집으로 온 판정서에 대해서는 분통을 터트렸다.


“판정서에는 두 가지 내용이 한꺼번에 기록돼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제가 여직원을 성희롱한 게 맞다고 기재했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성희롱까지는 보기 어렵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복직은 허용했어요, 또. 지노위 판정대로면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공간에 근무하게 되는 셈입니다. 이게 어떤 의도의 판정서인지 정말 답답합니다.”

A씨는 일단 4월21일 복직 명령에 따라 출근했지만 2시간 만에 대기발령 처분을 받았고, 24일 인사위원회에서 재파면 당했다. A씨가 제시한 문서에 따르면 그가 복직하기 전 대기발령 처분 관련 문서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애초부터 조직은 그를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또다시 파면

“제 나이가 올해로 55세입니다. 집에는 80대 노모가 몸이 아파 고생 중입니다. 두 사람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공사판서 4월까지 안전 요원으로 일했습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5시까지 꼬박 일하면 일당 8만원이 주어집니다. 복직 명령이 떨어져 그 일도 그만뒀는데 또 다시 파면 당했습니다. 이제 제 인생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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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