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계 달군 시청자 제보 '비화'

초유의 4벌타, TV는 제2의 심판

지난달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ANA인스퍼레이션은 뜨거운 논쟁을 남겼다. 우승이 확실시 되던 미국의 렉시 톰슨이 TV 시청자의 제보로 4벌타를 받으며 판세가 뒤집혔기 때문이다. 이후 ‘렉시법’이라는 이름으로 룰이 개정될 만큼 큰 사건이었다.

렉시 톰슨은 마지막 날 4라운드 12번홀까지 3타 차 선두를 달렸다. 당일 톰슨의 경기력 등을 감안했을 때 우승을 눈앞에 둔 순간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톰슨이 리더보드 맨 위에서 사라졌고 경기 중이던 톰슨은 경기위원회로부터 4벌타를 받았다. 그 바람에 유소연과 연장까지 치렀지만 결국 우승하지 못했다.

결과 뒤엎는
제보의 위력

갑작스러운 4벌타는 렉시 톰슨이 전날 3라운드 17번홀에서 마크를 했던 지점에서 약 2.5㎝ 정도 홀 가까운 곳에 공을 놓고 퍼트했다는 TV 시청자 제보에 의해서였다. 4라운드 경기 도중 제보를 받은 경기위원회는 녹화 화면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선두를 달린 톰슨에게 규정 위반으로 2벌타, 스코어 카드 오기로 2벌타 등 4벌타를 부과했다.

4벌타는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골프 규정에 의한 페널티였다. 골프 규칙 6-6에 보면 ‘경기자가 스코어 카드 제출 전에 규칙 위반을 몰랐을 경우는 경기 실격은 아니지만 적용규칙에 정해진 벌을 받고 경기자가 규칙을 위반한 각 홀에 2벌타를 추가한다’고 돼 있다. 20-7에도 ‘경기자가 오소(잘못된 장소)에서 스트로크한 경우 그는 해당하는 규칙에 의하여 2벌타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2016년 이전에 일어났다면 톰슨은 4벌타를 받지 않는 대신 2벌타와 스코어 카드 오기로 실격이다. 과거 수많은 선수가 스코어 카드 오기로 실격당했다. 2016년부터 실격이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본인이 몰랐을 경우 2벌타로 줄였다. 톰슨은 실격 대신 경감된 2+2벌타를 공개적으로 받은 첫 선수다. 골프팬들은 4벌타에 충격을 받았지만 오히려 실격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최근 남녀골프 메이저 대회에서는 최종 라운드 도중 선두권 선수에 대한 벌타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 지난달 10일 끝난 마스터스에서는 ‘메이저 무관’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가 감동 드라마를 빚어내며 우승했지만 TV 시청자의 제보로 벌타를 받을 뻔한 사실이 하루 뒤 밝혀졌다. 렉시 톰슨의 ‘4벌타’ 사건에 이어 TV 시청자가 경기 결과를 바꿀 뻔한 상황이 일주일 만에 또 벌어진 것이다.

그린 핫이슈 된 렉시 톰슨 사태
마스터스컵 주인도 바뀔 뻔했다

가르시아가 4라운드 13번홀(파5)에서 공 주변을 정리하다 공이 살짝 움직이는 듯한 장면이 TV 화면에 잡혔고, 이 장면을 담은 2초 분량의 동영상이 트위터 등으로 확산됐다. 마스터스대회 조직위원회는 곧바로 경기위원회를 열고 “룰 위반은 없었다”고 밝혀 가르시아는 우승컵을 지킬 수 있었다. 만일 시청자 제보를 받아들였다면 가르시아는 오소 플레이에 해당돼 2벌 타를 받고 연장에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시청자 제보에 의해 벌타를 받은 경우는 여럿 있다. 2013년 10월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한국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5언더파 선두로 홀아웃한 김형태는 13번홀 2벌타가 뒤늦게 알려져 정상에서 내려왔다. 티샷이 해저드 구역에 떨어졌고, 두 번째 샷을 할 때 클럽을 지면에 댔다는 제보로 17번홀에서 2벌타를 통보받았다. 먼저 경기를 마친 호주 출신 선수들이 클럽하우스에서 TV로 중계를 지켜보다 경기위원회에 제보해 김형태는 제동이 걸렸다. 미셸 위(미국)는 2005년 데뷔전이던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의 제보로 실격당한 적이 있다.

이 사건을 둘러싼 골프계의 논란은 네 가지로 압축된다. TV 시청자가 심판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나중에 승패까지 뒤집는 게 온당한 것인가, 선수도 모르는 실수를 찾아내는 건 옳은 일인가, 이 같은 결정이 심판 없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경기하는 ‘골프 정신’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TV 심판’을 두고 골프계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시청자들의 골프 판정 개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타이거 우즈(미국)는 자신의 SNS에 “집에서 TV를 보는 사람이 심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도 SNS에 “전화로 경기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규칙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키 파울러는 “대회 주최 측이 카메라, 감시위원 등을 배치해 플레이를 모니터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며 “다른 스포츠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연락한 뒤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어떤 스포츠에도 없다”고 덧붙였다. 메이저대회서 4번이나 우승한 베테랑 여자골퍼 로라 데이비스(영국)는 “모든 샷이 감시를 받는 게 아니라 선두권에 있는 선수들이 주로 TV에 비치지 않나”며 “이건 불공정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승부 좌우하는
공정성 논란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리치 빔(미국)도 “톰슨이 선두권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를 좇는 카메라도 없었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어느 누구도 문제가 된 장면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셸 위 역시 “시청자들이 어디에 전화를 거는지 궁금하다. 도대체 시청자들이 전화 건다는 곳의 번호는 무엇이냐”고 불편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반해 규칙을 적용하는 골프 단체의 의견은 달랐다. 김태연 KPGA투어 경기위원장은 형평성의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 TV 시청자 제보도 받아들여 경기 운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넓은 운동장을 사용하는 골프의 특성상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규정을 위반해 이득을 보는 선수가 있다면 공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렉시 톰슨 사건 때 LPGA 측도 “어떤 상황에서든 규정을 위반했다면 처벌하는 게 원칙”이라는 입장이었다.

가장 뜨거운 논란은 판정을 소급해 적용하는 것(승패까지 바꾸는 것)이 가능하냐는 점이다. 임경빈 골프아카데미원장은 “골프는 사실상 심판 없이 경기를 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사후 처벌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경기가 끝난 뒤 결과를 바꿔 버린다면 혼란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했다.

판정 개입
찬반 팽팽

김 위원장도 “경기를 마치고 난 뒤 벌 타를 소급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라운드가 진행 중일 때는 어떤 제보라도 받아들여야 하지만 일단 끝나고 나면 축구나 야구 등 다른 스포츠처럼 경기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3자 제보가 처음 나온 건 1957년으로 알려져 있다. 브리티시오픈 마지막 날 18번홀에서 우승을 앞둔 바비 로크(남아프리카공화국)는 그린에서 마크한 뒤 공을 집어 들었지만, 상대의 퍼트 라인에 걸려 마크를 옮겼다. 이후 자신의 퍼트 차례에서 공을 원위치로 되돌려놓지 않고 옮겨둔 곳에서 플레이했다.

경기는 그대로 끝났지만 이를 본 관중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대회를 주관한 R&A는 오소 플레이에 의해 2벌타를 부과해도 로크의 우승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골프대회에서 발생한 최초의 시청자 또는 관중의 제보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시청자와 관중의 제보가 활발해졌으며 경기위원회도 이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직접 본 관중의 제보 외에는 실제로 미셸 위의 의문처럼 시청자들이 어디에 제보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국내의 상황을 봐도 따로 시청자 또는 관중의 제보를 받는 곳은 없고 대회가 열리는 현장에도 제보센터 등은 마련돼 있지 않다. 대회를 주관하는 협회에 제보를 전담하는 직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홈페이지 등에도 별도의 공간이 없다.

“영향력 어떻게 볼 것인가”
시청자 개입에 엇갈린 반응

시청자 제보의 대부분은 시청자 게시판 또는 직접 전화를 거는 등 방송국을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가 들어오면 이런 내용이 경기위원회에 전달되고, 경기위원들은 당시 상황을 조사한 뒤 해당 선수에게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판정을 내린다.

골프는 골프 규칙, 매너, 에티켓까지 따질 정도로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골프는 넓은 경기장에서 펼쳐진다. 하지만 드넓은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만큼 모든 홀에 심판(경기위원)을 배치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골프에서는 선수 스스로가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경기위원들이 선수가 판정을 내리기 애매한 상황에 관여하고, 시청자의 제보를 받아들이는 건 경기위원들이 모든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공정한 방식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렉시 톰슨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시청자들이 심판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골프 규정을 관할하는 영국 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일명 ‘렉시법’이라 불리는 규정 변경 내용을 지난달 26일 발표했다. 새로 도입된 이 규정은 즉시 시행됐다.

비디오 기술력보다는 선수의 정직성에 더 무게를 두고 벌타 부과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렉시법의 핵심이다. 비디오 재생 화면에서 선수의 규정 위반이 발견됐다 하더라도, 규정위원회가 ‘이 위반 사실은 맨눈으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해당 선수는 벌칙을 받지 않는다.

승부보다 중요
에티켓 준수

골프라는 종목의 특성을 존중하는 게 우선이라는 이들도 있다. 고덕호 SBS골프 해설위원은 “규정 위반을 한 선수를 TV 시청자의 제보로 잡아내 벌타 등 징계를 내리는 시스템이 공정하다고는 생각한다”며 “그러나 선수들의 플레이 자체를 어느 정도 존중해줘야 한다. PGA투어도 그런 차원에서 최근 스코어 오기에 대한 실격 처리를 없앴다. 선수들이 스스로 규정을 위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골프지도자협회(USGTF) 정회원이자 2PM 골프스쿨 소속인 최원석 프로 역시 “골프는 서로의 양심을 믿고 하는 스포츠다. 인성 등이 특히 강조되는 ‘매너 스포츠’인 만큼 선수들의 기본 소양이 가장 중요하다. 필 미켈슨(미국)은 ‘필드의 신사’라는 이미지로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인다”며 “‘TV 심판’이니 그런 말들이 나오기 전에 선수 개인이 알아서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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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