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계 달군 시청자 제보 '비화'

초유의 4벌타, TV는 제2의 심판

지난달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ANA인스퍼레이션은 뜨거운 논쟁을 남겼다. 우승이 확실시 되던 미국의 렉시 톰슨이 TV 시청자의 제보로 4벌타를 받으며 판세가 뒤집혔기 때문이다. 이후 ‘렉시법’이라는 이름으로 룰이 개정될 만큼 큰 사건이었다.

렉시 톰슨은 마지막 날 4라운드 12번홀까지 3타 차 선두를 달렸다. 당일 톰슨의 경기력 등을 감안했을 때 우승을 눈앞에 둔 순간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톰슨이 리더보드 맨 위에서 사라졌고 경기 중이던 톰슨은 경기위원회로부터 4벌타를 받았다. 그 바람에 유소연과 연장까지 치렀지만 결국 우승하지 못했다.

결과 뒤엎는
제보의 위력

갑작스러운 4벌타는 렉시 톰슨이 전날 3라운드 17번홀에서 마크를 했던 지점에서 약 2.5㎝ 정도 홀 가까운 곳에 공을 놓고 퍼트했다는 TV 시청자 제보에 의해서였다. 4라운드 경기 도중 제보를 받은 경기위원회는 녹화 화면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선두를 달린 톰슨에게 규정 위반으로 2벌타, 스코어 카드 오기로 2벌타 등 4벌타를 부과했다.

4벌타는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골프 규정에 의한 페널티였다. 골프 규칙 6-6에 보면 ‘경기자가 스코어 카드 제출 전에 규칙 위반을 몰랐을 경우는 경기 실격은 아니지만 적용규칙에 정해진 벌을 받고 경기자가 규칙을 위반한 각 홀에 2벌타를 추가한다’고 돼 있다. 20-7에도 ‘경기자가 오소(잘못된 장소)에서 스트로크한 경우 그는 해당하는 규칙에 의하여 2벌타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2016년 이전에 일어났다면 톰슨은 4벌타를 받지 않는 대신 2벌타와 스코어 카드 오기로 실격이다. 과거 수많은 선수가 스코어 카드 오기로 실격당했다. 2016년부터 실격이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본인이 몰랐을 경우 2벌타로 줄였다. 톰슨은 실격 대신 경감된 2+2벌타를 공개적으로 받은 첫 선수다. 골프팬들은 4벌타에 충격을 받았지만 오히려 실격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최근 남녀골프 메이저 대회에서는 최종 라운드 도중 선두권 선수에 대한 벌타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 지난달 10일 끝난 마스터스에서는 ‘메이저 무관’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가 감동 드라마를 빚어내며 우승했지만 TV 시청자의 제보로 벌타를 받을 뻔한 사실이 하루 뒤 밝혀졌다. 렉시 톰슨의 ‘4벌타’ 사건에 이어 TV 시청자가 경기 결과를 바꿀 뻔한 상황이 일주일 만에 또 벌어진 것이다.

그린 핫이슈 된 렉시 톰슨 사태
마스터스컵 주인도 바뀔 뻔했다

가르시아가 4라운드 13번홀(파5)에서 공 주변을 정리하다 공이 살짝 움직이는 듯한 장면이 TV 화면에 잡혔고, 이 장면을 담은 2초 분량의 동영상이 트위터 등으로 확산됐다. 마스터스대회 조직위원회는 곧바로 경기위원회를 열고 “룰 위반은 없었다”고 밝혀 가르시아는 우승컵을 지킬 수 있었다. 만일 시청자 제보를 받아들였다면 가르시아는 오소 플레이에 해당돼 2벌 타를 받고 연장에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시청자 제보에 의해 벌타를 받은 경우는 여럿 있다. 2013년 10월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한국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5언더파 선두로 홀아웃한 김형태는 13번홀 2벌타가 뒤늦게 알려져 정상에서 내려왔다. 티샷이 해저드 구역에 떨어졌고, 두 번째 샷을 할 때 클럽을 지면에 댔다는 제보로 17번홀에서 2벌타를 통보받았다. 먼저 경기를 마친 호주 출신 선수들이 클럽하우스에서 TV로 중계를 지켜보다 경기위원회에 제보해 김형태는 제동이 걸렸다. 미셸 위(미국)는 2005년 데뷔전이던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의 제보로 실격당한 적이 있다.

이 사건을 둘러싼 골프계의 논란은 네 가지로 압축된다. TV 시청자가 심판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나중에 승패까지 뒤집는 게 온당한 것인가, 선수도 모르는 실수를 찾아내는 건 옳은 일인가, 이 같은 결정이 심판 없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경기하는 ‘골프 정신’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TV 심판’을 두고 골프계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시청자들의 골프 판정 개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타이거 우즈(미국)는 자신의 SNS에 “집에서 TV를 보는 사람이 심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도 SNS에 “전화로 경기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규칙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키 파울러는 “대회 주최 측이 카메라, 감시위원 등을 배치해 플레이를 모니터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며 “다른 스포츠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연락한 뒤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어떤 스포츠에도 없다”고 덧붙였다. 메이저대회서 4번이나 우승한 베테랑 여자골퍼 로라 데이비스(영국)는 “모든 샷이 감시를 받는 게 아니라 선두권에 있는 선수들이 주로 TV에 비치지 않나”며 “이건 불공정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승부 좌우하는
공정성 논란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리치 빔(미국)도 “톰슨이 선두권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를 좇는 카메라도 없었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어느 누구도 문제가 된 장면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셸 위 역시 “시청자들이 어디에 전화를 거는지 궁금하다. 도대체 시청자들이 전화 건다는 곳의 번호는 무엇이냐”고 불편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반해 규칙을 적용하는 골프 단체의 의견은 달랐다. 김태연 KPGA투어 경기위원장은 형평성의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 TV 시청자 제보도 받아들여 경기 운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넓은 운동장을 사용하는 골프의 특성상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규정을 위반해 이득을 보는 선수가 있다면 공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렉시 톰슨 사건 때 LPGA 측도 “어떤 상황에서든 규정을 위반했다면 처벌하는 게 원칙”이라는 입장이었다.

가장 뜨거운 논란은 판정을 소급해 적용하는 것(승패까지 바꾸는 것)이 가능하냐는 점이다. 임경빈 골프아카데미원장은 “골프는 사실상 심판 없이 경기를 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사후 처벌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경기가 끝난 뒤 결과를 바꿔 버린다면 혼란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했다.

판정 개입
찬반 팽팽

김 위원장도 “경기를 마치고 난 뒤 벌 타를 소급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라운드가 진행 중일 때는 어떤 제보라도 받아들여야 하지만 일단 끝나고 나면 축구나 야구 등 다른 스포츠처럼 경기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3자 제보가 처음 나온 건 1957년으로 알려져 있다. 브리티시오픈 마지막 날 18번홀에서 우승을 앞둔 바비 로크(남아프리카공화국)는 그린에서 마크한 뒤 공을 집어 들었지만, 상대의 퍼트 라인에 걸려 마크를 옮겼다. 이후 자신의 퍼트 차례에서 공을 원위치로 되돌려놓지 않고 옮겨둔 곳에서 플레이했다.

경기는 그대로 끝났지만 이를 본 관중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대회를 주관한 R&A는 오소 플레이에 의해 2벌타를 부과해도 로크의 우승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골프대회에서 발생한 최초의 시청자 또는 관중의 제보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시청자와 관중의 제보가 활발해졌으며 경기위원회도 이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직접 본 관중의 제보 외에는 실제로 미셸 위의 의문처럼 시청자들이 어디에 제보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국내의 상황을 봐도 따로 시청자 또는 관중의 제보를 받는 곳은 없고 대회가 열리는 현장에도 제보센터 등은 마련돼 있지 않다. 대회를 주관하는 협회에 제보를 전담하는 직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홈페이지 등에도 별도의 공간이 없다.

“영향력 어떻게 볼 것인가”
시청자 개입에 엇갈린 반응

시청자 제보의 대부분은 시청자 게시판 또는 직접 전화를 거는 등 방송국을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가 들어오면 이런 내용이 경기위원회에 전달되고, 경기위원들은 당시 상황을 조사한 뒤 해당 선수에게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판정을 내린다.

골프는 골프 규칙, 매너, 에티켓까지 따질 정도로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골프는 넓은 경기장에서 펼쳐진다. 하지만 드넓은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만큼 모든 홀에 심판(경기위원)을 배치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골프에서는 선수 스스로가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경기위원들이 선수가 판정을 내리기 애매한 상황에 관여하고, 시청자의 제보를 받아들이는 건 경기위원들이 모든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공정한 방식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렉시 톰슨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시청자들이 심판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골프 규정을 관할하는 영국 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일명 ‘렉시법’이라 불리는 규정 변경 내용을 지난달 26일 발표했다. 새로 도입된 이 규정은 즉시 시행됐다.

비디오 기술력보다는 선수의 정직성에 더 무게를 두고 벌타 부과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렉시법의 핵심이다. 비디오 재생 화면에서 선수의 규정 위반이 발견됐다 하더라도, 규정위원회가 ‘이 위반 사실은 맨눈으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해당 선수는 벌칙을 받지 않는다.

승부보다 중요
에티켓 준수

골프라는 종목의 특성을 존중하는 게 우선이라는 이들도 있다. 고덕호 SBS골프 해설위원은 “규정 위반을 한 선수를 TV 시청자의 제보로 잡아내 벌타 등 징계를 내리는 시스템이 공정하다고는 생각한다”며 “그러나 선수들의 플레이 자체를 어느 정도 존중해줘야 한다. PGA투어도 그런 차원에서 최근 스코어 오기에 대한 실격 처리를 없앴다. 선수들이 스스로 규정을 위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골프지도자협회(USGTF) 정회원이자 2PM 골프스쿨 소속인 최원석 프로 역시 “골프는 서로의 양심을 믿고 하는 스포츠다. 인성 등이 특히 강조되는 ‘매너 스포츠’인 만큼 선수들의 기본 소양이 가장 중요하다. 필 미켈슨(미국)은 ‘필드의 신사’라는 이미지로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인다”며 “‘TV 심판’이니 그런 말들이 나오기 전에 선수 개인이 알아서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