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 특권 해부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5.08 11:36:56
  • 호수 11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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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왕은 왕∼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우리나라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로 인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다. 국회에선 대통령의 과도한 특권을 줄이고자 개헌 특위를 구성했지만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일요시사>는 ‘장미대선’을 맞아 차기 대통령이 누릴 주요 특권을 꼽아봤다.

대통령 특권 중의 특권은 ‘임면권’이다. 현행법상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직의 수는 70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헌법기관 고위직, 행정부 고위직(3급 이상 고위 공무원), 공기업·준정부기관·공공기관, 특정직 공무원(검찰·경찰·외무·소방)을 포함한 숫자다.

박근혜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임면권 논란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4년 동안 ‘수첩인사’ ‘깜깜이 인사’ ‘회전문 인사’ 등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박근혜정부 4년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장 중 4분의 1 이상이 낙하산 인사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명박정부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부동산+부자) 인사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집권 내내 ‘코드 인사’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인식한 듯 대탕평 내각 구성을 천명했다.

지난 2일 문 후보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합리적 진보부터 개혁적인 보수까지 다 함께 할 수 있다”며 “좋은 분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모시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총리와 장관 임명권을 내려놓겠다”며 책임총리를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권 창출에 공을 세운 이들이 한 자리씩 요구할 경우 차기 대통령이 쉽사리 내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불소추특권’의 경우 대한민국 국민 중 오직 대통령만이 누릴 수 있는 권한이다. 불소추특권은 헌법상 보장된 권한으로 내란·외환의 죄 이외의 범죄에 대해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형사상 범죄 혐의가 드러났지만 기소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특검의 대면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수사조차 불가능해 사실상 범죄를 저질러도 제재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박 전 대통령 사례로 인해 불소추특권 폐지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높다. 하지만 개헌이 이뤄져 공론화되지 않는 이상 불소추특권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핵심 특혜는?…임면권·불소추특권
사면권 남발 우려…말 많은 거부권

‘사면권’도 대통령의 권한 중 핵심으로 꼽힌다. 사면권은 특정 범죄인에 대해 국가 원수가 국회의 동의절차 없이 자신의 특권으로 형의 전부나 일부를 소멸시키거나 형을 선고받지 않은 사람의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다.

역대 정권에선 사면권이 남발돼 국민들의 빈축을 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특별사면한 일은 사면권이 남용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박 전 대통령은 “비리 경제인에 대한 사면은 재임 중에 없을 것”이라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과 지난해 각각 최태원 SK회장, 이재현 CJ회장을 사면하면서 약속을 어겼다. 특히 최 회장 사면이 청탁에 의해 이뤄진 정황이 드러나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지난달 13일 TV토론에선 대선후보들이 박 전 대통령 사면권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문 후보는 “구속되자마자 사면 얘기는 납득이 안 된다”며 즉답을 피했다. 안 후보는 “사면권은 남용되지 않아야 한다”며 원칙을 강조했다. 다만 홍 후보는 “유·무죄도 안 났는데 (사면권 거론)하는 것은 잘못된 질문”이라며 박 전 대통령 사면 가능성을 열어뒀다.
 

대통령 사면권에 대해 김재윤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군사독재정권 시대엔 대통령이 무소불위로 특별사면을 발동해 권력유지의 도구로 사용했다”며 “대다수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한 사이버 국민화합형 특별사면과 정략적 차원의 끼워넣기형 특별사면, 셀프형 특별사면으로 정치적 오·남용을 일삼았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의 특권 중엔 '국군통수권'도 있다.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을 통해 전군을 지휘 통솔하고, 급변 시 최종 결정권자가 된다.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군정권과 군령권을 포괄하는 군 통수권을 핫라인을 통해 넘겨받는다. 오는 9일 치르는 이번 대선은 이튿날인 10일 새벽 개표가 끝나고 선관위가 당선인을 공고하면 국군통수권을 넘겨받게 된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의 경우 국회 의결사항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권리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최초 이승만 대통령이 양곡매입법안 거부권을 행사한 이래로 총 66번의 대통령 법률안 거부권이 행사됐다.

지난해 박 전 대통령은 ‘상시 청문회’ 개최를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당시 정부는 거부권 행사 이유로 “소관 현안을 조사하기 위한 청문회는 행정부와 사법부 등에 대한 새로운 통제수단을 신설한 것”이라며 “권력분립의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3권 분립 위배이자 의회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중대한 권한 침해”라고 비판했다.

이후 국회는 재의를 하지 않아 거부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모양새가 됐다. 대통령 거부권은 개헌의 주요 쟁점 중 하나다. 대통령 거부권이 행정부의 입법부 견제장치라고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국회 개헌특위에선 정부에 법률안 제출권이 있음에도 법률안 거부권까지 인정하는 것은 정부에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문민정부 이후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은 각종 비리로 연결됐다. 이에 학계 및 시민단체는 우리나라의 현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제왕적?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해 “대통령 권력이 강해지는 현상은 작동해야 할 기존의 제도들이 작동하지 않은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현재 대통령 후보들은 말로는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겠다고 주장하지만 공약의 면면을 살펴보면 행정권을 강화시키는 것이 다수”라며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을 앞두고 또 다시 불운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정치인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감시와 견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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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전직 대통령 대우는?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과 유족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연금, 비서관 임명, 경호 등의 각종 대우를 받는다. 연금의 경우 매월 지급되고, 연금지급액은 지급 당시 대통령 월급의 95% 상당액으로 한다.

기념사업도 지원받는다. 기념사업을 민간단체 등이 추진하는 경우에는 관계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 전직 대통령은 비서관도 둘 수 있는데 3인으로 한다. 비서관은 전직대통령이 추천하고, 1인은 1급 상당 별정직국가공무원으로 하며, 2인은 2급 상당 별정직국가공무원으로 한다.

다만 탄핵결정을 받아 퇴임한 경우, 금고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형사처분을 회피할 목적으로 외국정부에 대해 도피처 또는 보호를 요청한 경우,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경우는 경호·경비 외에는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받지 못한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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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