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박근혜’ 심리상태 분석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4.03 10:39:34
  • 호수 1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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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선택할 사람은 아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사태가 또 벌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역대 세 번째이자 22년 만에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됐다. 전날 역대 최장인 8시간41분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았고,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판사는 지난달 31일 오전 3시경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 전 대통령은 곧바로 서울구치소로 호송됐다. 이날 서울중앙지검 10층에 마련된 임시 유치시설서 대기하던 박 전 대통령은 구속영장이 발부된 후 검찰의 K7 승용차를 타고 검찰청을 나섰다. 이 승용차는 오전 4시45분께 경기 의왕시 소재 서울구치소 정문을 통과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서 삼성동 자택으로 옮긴 지 20일 만이다.

올림머리 어쩌나

박 전 대통령의 심리는 표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던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 한없이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엔 상실감마저 묻어났다. 수사관들 사이에 앉은 박 전 대통령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침통함이 비쳤다. 긴 심문시간 때문인지 피곤한 기색도 역력했다. 안전상 이유로 머리핀을 뺀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은 청와대서와는 달랐다.

표정서 묻어나는 ‘상실감’ ‘침통함’ 등은 힘든 구치소생활을 암시하는 듯 보였다. 관련 법률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신분확인 절차와 건강진단 등을 받았다. 지난달 23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은 팟캐스트 ‘정치, 알아야 바꾼다’에 출연 “서울구치소에 들어가면 검신을 한다. 모든 옷을 벗어 문신이 있는지, 병이 있는지 등을 보는데 이 과정이 수치스럽다”고 전했다.

이어 조대진 변호사는 “구치소에 가면 심리가 불안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고위층의 경우 몸을 위해할 수 있는 흉기나 약물을 숨겨올 수 있다. 이런 것들을 확인하기 위해 항문도 검사한다”고 언급했다.


소지품은 ‘법무부장관이 정하는 범위서 수용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소지할 수 있다’는 관련법에 따라 모두 반납한다. 이어 목욕 후 수인번호가 새겨진 수의로 갈아입는다. 여성 미결수는 연두색상이다. 신원 확인을 위한 ‘머그샷’이라 불리는 수용기록부 사진도 찍는다.

서울구치소 독방은 10.6㎡(약 3.2평) 규모다. 방 내부에는 접이식 매트리스(담요 포함)와 관물대, TV, 1인용 책상 겸 밥상과 함께 세면대와 화장실이 설치돼있다. 식사는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400원대 메뉴에 따라야 한다. 식사가 끝나면 직접 설거지를 한 뒤 식기를 반납해야 한다.

지하 1층에 지상 2층 단독주택으로 대지면적 484㎡에 건물면적 317.35㎡ 규모의 삼성동 자택서 생활했던 박 전 대통령이 느낄 박탈감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3.2평’ ‘1400원 식사’ 적응할까?
일각 제기되는 자살 가능성 낮아

서울구치소는 소위 ‘범털’의 집합소다. 이명박 전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 소위 한가락 하는 인사들이 거쳐간 곳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수감자들이 많아서인지 다른 구치소에 비해 시설이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수감되기 전 이미 많은 것들을 누린 그들이기에 수감됐을 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크다는 게 중론이다.
 

이를 증명하듯 수감생활 초반에 적응하지 못한 범털들의 사례가 들려온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는 지난해 2월 변호사를 폭행하고 교도관들에게 막말을 하며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정 전 대표는 교도관들에게 “밖에선 눈도 못 마주칠 것들…”이라며 모욕적인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한 달 전 검찰이 항소심서 정 전 대표에게 징역 2년6월을 구형한 것이 그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든 원인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도 한동안 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구치소에서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방을 쓰고 있는 신 이사장은 억울함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70대 중반의 고령인 신 이사장은 수감생활을 하게 되리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에 수감 일주일 만에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것이다. 처음 겪는 수감 생활에 망연자실해하며 부적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서울구치소에는 ‘최순실 게이트’ 관련자들이 다수 갇혀 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대표적이다. 이들도 수감 생활을 힘들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실장의 경우 달라진 환경 탓에 구속 다음 날부터 건강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조 전 장관의 경우 입소 후 곡기를 사실상 끊고 귤에만 의존하고 있어 체중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서울구치소 관계자에 따르면 조 전 장관은 입소 초기 교도관에게 5분 간격으로 “지금 몇 시예요?”라고 묻는 등 강박 증세를 보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박 전 대통령의 심리를 고려했을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 국민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를 경험한 바 있다. 지난 2009년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이후 검찰이 3주 넘게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모든 것이 통제되는 구치소 안에서 극단적 선택이 발생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그러나 구치소 내 자살 사태가 왕왕 일어나는 만큼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순 없는 노릇이다. 지난해 7월 대구구치소에 수감된 50대 A씨는 자살을 시도했다. 앞서 독방으로 옮겨진 그는 교도관의 눈을 피해 목숨을 끊으려 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기간 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교정시설 사망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 1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서울구치소에서 자살한 수감자는 총 7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전국 구치소에서는 총 880건의 자살 시도가 있었다.

개인변기 없는데…

반면 박 전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한다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지난달 30일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서 “극단적인 선택도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 한다. 그러나 박근혜씨는 그 정도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과거 연산군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려 달라’고 빌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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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