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대망 접은 반기문 20일 천하 풀스토리

괜히 나섰다가 망신만 당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1일 대선레이스에서 중도이탈했다. 10년간 맡았던 유엔 사무총장직을 내려놓고 지난달 12일 귀국한 뒤 20일 만이다. 반 전 총장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대선판도는 안갯 속으로 접어들었다.

가뜩이나 후보가 없는 여권은 다시금 자중지란 속으로, 후보가 넘쳐 나는 야권은 누가 대항마가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입국부터 사퇴까지 ‘20일 천하’가 돼버린 반 전 총장의 행적을 되짚어봤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귀국하자마자 최고의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 그의 행보는 연일 기삿거리를 양산했고 발언은 언론 지상을 뒤덮었다. 그만큼 반 전 총장은 입국부터 사퇴까지 20일간 숱한 논란에 휘말렸다.

반 전 총장과 관련된 논란은 귀국길부터 시작됐다. 그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귀국 소감을 묻는 언론의 질문에 “가슴이 벅차고 설렌다. 국가 발전을 위해 10년간의 경험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면도 많다”고 말했다.

못 견디고
중도 사퇴

귀국보다 더 큰 관심을 받은 건 반 전 총장의 친인척 비리 문제였다. 반 전 총장의 동생 반기상씨와 조카 주현씨는 경남빌딩 매각과 관련해 뇌물, 사기, 돈세탁 등의 혐의로 그의 귀국 하루 전 뉴욕연방법원에 기소됐다.

반 전 총장은 이 자리서 “아는 것이 없다. 장성한 조카여서 사업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었고 만나지도 않았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가까운 가족이 연루된 것에 당황스럽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하다”고 밝혔다.

지난달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반 전 총장은 “국민들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한다”는 말을 시작으로 귀국 연설문을 발표했다.

그는 “국민대통합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겪은 여러 가지 경험과 식견을 가지고 젊은이의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 길잡이 노릇을 하겠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가 이뤄질 때라고 생각한다” 등 국민통합과 정치교체에 방점을 찍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국민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한 몸을 불사를 용의가 있다”며 사실상 대권 도전 의지를 피력했다.

반 전 총장이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도 귀국 메시지보다 의전 논란이 더 관심을 받았다. 반 전 총장 측은 귀국 전 인천공항에 대통령 등 3부 요인급에게 제공되는 의전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 전 총장 측은 인천공항에 내려 승용차로 자택에 가려던 일정을 공항철도를 이용하는 방향으로 변경했다. 그가 시민들과 만나고 싶다면서 바꾼 일정이었다. 일정이 변경되면서 수백명의 지지자들이 공항철도로 몰려들었고 일대는 혼란에 빠졌다. 반 전 총장의 동선에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통제하는 등 과잉 의전으로 퇴근길 시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귀국 이후 광폭행보 이어갔지만

과거 발언·친인척 비리에 발목

누리꾼의 풍자 대상이 된 ‘2만원 논란’도 이날 나왔다. 반 전 총장은 인천공항역에서 7500원짜리 표를 사면서 무인발매기에 1만원권 두 장을 동시에 집어넣었다. 이 모습을 포착한 누리꾼은 반 전 총장의 행보를 ‘서민 코스프레’라고 비난했다. 이날의 해프닝은 이후 이어질 ‘1일 1논란’의 서막에 불과했다.

귀국 다음 날에는 반 전 총장의 피선거권 논란이 불거졌다. 공직선거법 제16조 1항에 따르면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의 피선거권이 있다. 이 경우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기간과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기간 외국에 체류한 기간은 국내 거주기간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이를 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일 현재 5년 이상의 기간을 국내에 거주한 사실이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은 국내에 계속 거주와 관계없이 대통령의 피선거권이 있다”며 “제19대 대통령선거일까지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사실이 있다면 공무 외국 파견 또는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 기간 외국체류 여부를 불문하고 피선거권이 있다”고 해석했다.

중앙선관위의 해석을 놓고 법조계 등 각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귀국 사흘째인 지난달 14일에는 충북 음성의 사회복지시설인 꽃동네를 방문했다. 반 전 총장은 어르신들의 수발을 드는 과정에서 본인이 턱받이를 한 모습이 보도돼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게다가 똑바로 누워 있는 할머니에게 죽을 건네고 그마저도 얼굴에 흘리는 등 좌충우돌하는 모습으로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반기문 턱받이’ 논란은 하루 종일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 상위권에 오르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입국·사퇴
속전속결

논란이 커지자 반 전 총장 측은 “(턱받이는) 꽃동네 측에서 요청한 복장”이라고 해명했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반기문의 어이없는 서민 친화 코스프레. 정치가들의 거짓말과 속임수에 이제는 진력이 났다”며 “제발 국민들께 진실을 좀 보여 주시지요”라고 맹비난했다.

같은 날 조류인플루엔자(AI) 거점 소독소 방문 일정서도 반 전 총장을 비롯, 일부만 방역복을 입고 소독약을 분사해 안전성 논란에 휩싸였다. 이날을 기점으로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행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반 전 총장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와 관련해 지난달 15일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를 방문한 일정에서 “한반도 현실이 거의 준전시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가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은 마땅하다”고 밝힌 바 있다.

반 전 총장의 발언은 즉각 야권 인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미국 앞에서 작아지는 지도자가 어찌 국익을 지킬 수 있겠느냐”며 “미국이 우리 최대 동맹국이고 앞으로도 최고의 우방이어야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자신의 고향인 충북 음성에 사드 배치를 유치할 의사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적 지지를 잃고 청와대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함께 탄핵당할 정책을 옹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6일에는 반 전 총장이 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날 전화 통화에서 반 전 총장은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부디 잘 대처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귀국 이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유엔 사무총장으로 10년간 노고가 많으셨다”고 화답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죽이 잘 맞는 것 아닌가”라며 일침을 가했다.

보여주기 행보
과잉의전 구설

국민통합 행보로 경남 봉하마을에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과 세월호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잇달아 방문했던 지난달 17일에도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반 전 총장은 노무현정부 시절 대통령 외교보좌관과 외교통상부장관을 지냈다.


그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은 반 전 총장을 유엔사무총장으로 적극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반 전 총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을 하지 않아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봉하마을을 찾은 그의 행보에 대해 일각에선 대통령이 되기 위한 ‘야권 달래기’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SNS에 “(반 전 총장은) 자신의 모든 노력을 다했던 노 전 대통령의 그 슬픈 죽음에 현직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조문조차 못 했던 분”이라며 “정치에 기웃거리지 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 반 전 총장이 봉하마을을 찾았을 땐 분위기가 싸늘했다. 또 반 전 총장은 방명록에 ‘사람 사는 사회’라고 작성해 논란을 자초했다. 김보협 <한겨레신문> 기자는 “그분이 꿈꿨던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세월호참사가 발생한 진도 팽목항에 방문해서는 미수습자 가족들과도 만났다. 그 과정에서 바른정당 박순자 의원이 미수습자 가족들을 불러 반 전 총장과 사진을 찍게 한 사실이 알려졌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SNS에 “반기문, 오늘 팽목항을 방문했다. 2014년 참사 직후 뉴욕 분향소 조문 외에 그는 세월호에 대해 단 하나의 언동도 하지 않았다”며 “팽목항은 대권용 쇼를 위한 장소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일부 단체 회원들은 반 전 총장의 방문을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1일 1논란’ 검증 칼날에 화들짝
현실정치 벽에 걸려 중도 낙마

지난달 14일에는 충북 음성의 부친 묘소 성묘 때 불거진 퇴주잔 논란도 도마에 올랐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진 영상에는 반 전 총장이 퇴주잔으로 보이는 술잔을 받아 마시는 장면이 담겨 있다.

누리꾼은 통상 묘소에 방문하면 술을 따라 올린 후 묘소 주변에 뿌리며 퇴주하는 것이 풍습이라며 그의 행동을 질타했다. 반 전 총장 측은 SNS에 당시 상황이 담긴 전체 영상을 공개하며 적극적으로 진화에 나섰다.

여기서 끝날 줄 알았던 퇴주잔 논란은 영상을 게재한 누리꾼이 선관위 조사를 받게 되면서 다시 불거졌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선관위는 지난달 26일 영상을 게재한 누리꾼이 공직선거법(허위사실 공표죄)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며 출석을 요구했다. 정식 선거운동 기간이 아니고 반 전 총장이 후보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선거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선관위는 “반 전 총장은 모두가 입후보할 상황으로 보는 입후보 예정자이기 때문에 후보로 해석할 수 있다”며 유권해석을 내렸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나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악의적인 루머에 시달릴 때는 이 같은 사례가 없었던 점을 들어 선관위가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두고는 기자들과 갈등을 빚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은 짧은 시간동안 자주 변했다. 지난 2015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이후 반 전 총장은 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박근혜 대통령께서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환영의 뜻을 비쳤다. 당시 발언은 후로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귀국 직후 인터뷰에선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해 기존 입장과 배치된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꾼다는 비판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기자들은 반 전 총장의 일정 때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요구했다.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던 반 전 총장은 지난달 18일 “위안부에 관해서 제가 역사적인 과오를 저지른 것처럼 말하는데 절대 아니다”며 “앞으로는 어떤 언론이 묻더라도 답변하지 않겠다”고 벽을 세웠다. 그 자리에 캠프의 이도운 대변인에게 “이 사람들이 와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 물어보니까 내가 마치 역사의 잘못을 한 것 같다. 나쁜 놈들이에요”라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기자들의 사과 요구에도 며칠간 묵묵부답이던 반 전 총장은 지난달 23일 “시차 적응도 잘 안 되고 갑자기 지방을 돌다보니 수많은 기자들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감정적인 표현을 한 점이 있었다”며 “후회하고 있고 해당 언론인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기자들에게 사과의 말을 하기까지 “페이크 뉴스라든지 가짜 뉴스, 남을 헐뜯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그러는 건 대한민국 국민이 할 일이 아니다” “유엔에선 이런 식으로 취재하지 않는다” 등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대선 불출마 선언 직전인 지난달 31일에는 “촛불 민심이 변질됐다”는 발언으로 누리꾼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반 전 총장은 귀국 당시만 해도 촛불 집회에 대해 “자랑스러웠다” “역사가 2016년을 기억할 것” “광장이 만들어낸 기적” 등의 찬사로 광장에 모인 국민들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3주 만에 “광장의 민심이 초기의 순수한 뜻보다는 약간 변질한 면도 없지 않다.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TV 화면에서 볼 때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의 발언은 안 그래도 나빠진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반 전 총장은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일어난 이후부터 지지율이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렸다. 귀국 직후에도 제대로 된 컨벤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진 구설에 반등 동력조차 잃어가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나온 촛불 변질 발언이 쐐기를 박았다.

결국 유권자
마음 못 얻어

반 전 총장은 지난해 <한국대학신문>이 전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학생 의식조사 및 기업·상품 선호도 조사에서 피겨선수 김연아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2014년 조사에서는 1위였는데, 흥미로운 점은 전국의 대학생들이 가장 불신하는 집단으로 무려 85.3%가 ‘정치인’을 꼽았다는 점이다.

반 전 총장은 20일간의 ‘정치인 체험’으로 수십 년간 쌓아온 모든 명성과 존경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여기에 친동생 반기호씨가 미얀마 사업체 운영 당시 ‘유엔 현지 방문대표단’ 직함을 사용해 특혜를 봤다는 의혹 등 친인척 비리와 관련해 수사기관의 칼날이 반 전 총장을 향한다면 그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낙동강 오리알’ 나경원·오세훈 다음 수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멘붕’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반 전 총장의 대권행보에 발을 걸쳤던 인물들이다. 나 의원은 반 전 총장의 서울 사당동 자택 복귀 환영식에 참석하는 등 꾸준히 그의 곁에서 지지를 보내왔다.

그는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소식을 듣고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반 전 총장 개인이나 대한민국의 긴 역사를 볼 때 오히려 더 나은 결정인 것 같다”며 표정 관리에 나섰다.

바른정당 최고위원에 뽑혔지만 반 전 총장 캠프 선대본부장으로 갈 수도 있다고 밝혀 비판을 받았던 오 전 시장의 입장도 난감해진 건 마찬가지다.

오 전 시장은 지난 2일 국회서 열린 바른정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원래 예정대로라면 오늘 최고위원회의가 제가 참석하는 마지막 회의가 됐을 것”이라며 “(반 전 총장이) 바른정당 후보들과 연대 의지가 확고한 것을 보고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바른정당과 반 캠프 사이를 저울질하던 오 전 시장은 자연스럽게 당에 남게 됐다. <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