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암울한 경제’ 희망의 경제 메시지

힘 합쳐 다시 일어섭시다 ‘으쌰으쌰’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지난해 국내 산업계는 대외적으로 글로벌 경기불황 장기화, 보호무역주의, 환율악화 등 각종 악재에 시달렸다. 여기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라는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가 더해지기도 했다. 올해 역시 상황 역시 그리 녹록지 않다. 그러나 악재만 가득한 건 아니다. 몇몇 호재는 올 한해 경제 전망을 긍정적으로 예상하게끔 만든다.

대한민국의 대외 수출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한국무역협회는 2016년 대외 수출이 2015년보다 5.6% 감소한 4970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수출이 2년 연속 역성장한 것은 1957∼1958년 이후 58년 만이다. 세계 10대 수출국 중에서 한국의 수출 감소율은 브렉시트 파장을 겪고 있는 영국(-12.3%)에 이어 두 번째였다.

녹록지 않은
경제 분위기

2017년 역시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세계 경제는 여전히 회복이 불투명하고 ‘트럼프 리스크’는 보호무역주의 악재의 위험성을 더욱 증폭시킬 전망이다. 최순실 게이트 관련 기업들에 대한 특검 수사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 따른 국정공백 등 부정적 요인들도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LG경제연구원과 현대경제연구원은 각각 2.2% 및 2.3%로 올해 성장률을 전망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국내 259개 업체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진행한 ‘2017년 최고경영자 경제전망 조사’에서도 2.3%라는 전망치가 나왔다. 올해(2.6%)보다 성장이 더 둔화되는 것은 물론 세계 경제성장률과의 격차도 더 벌어진다는 예상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9월 2.2%로 예상했다가 지난달 18일 2.1%로 다시 낮췄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2.0%서 1.8%로 하향 조정했다. 소비심리 위축과 고용시장 악화 등 경기적 요인과 가계부채 원리금 상환부담, 주거비 부담 증가 등 구조적 요인이 가계 소비를 위축시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가는 1.5% 상승해 당초 전망(1.4%)보다 소폭 올라갈 것으로 봤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원화 가치 하락으로 올해(0.9%)보다 상승세가 소폭 확대될 전망이지만, 국제 유가의 제한적 상승, 국내 수요 부진 확대, 주택경기 둔화 등으로 상승 폭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수출 동력이
변수 만든다

그러나 마냥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한동안 감소추세를 보였던 수출물량은 2017년에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바탕으로 긍정적인 예상치를 내놓는 곳들도 제법 눈에 띈다.

한국무역협회는 ‘2016년 수출입 평가 및 2017년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17년 수출은 전년보다 3.9% 증가한 5165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다 본 2017년 수출 증가율은 연간 3.8%(상반기 5.8%, 하반기 2%)다. 포스코경제연구소와 산업 연구원(KIET)은 각각 3.2%, 2.1%로 증가율을 예측했다.
 

수출 현장서도 2016년보다는 나아질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한국은행은 전국 250개 수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 2017년 중 제조업 수출이 올해 대비 다소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사대상 기업의 67.9%가 2017년 수출이 올해보다 늘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수출 회복을 견인할 요인 중 하나는 수출 단가의 상승이다. 수출처의 물가가 오르면 수출 단가도 상승한다. 수출 회복세가 더뎌졌던 한국으로선 반길 일이다. 미국에선 트럼프의 경기 부양책이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트럼플레이션(Trump+Inflation)’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서도 생산자 물가가 오르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다.

수출만이 살길…호재 이용 관건
정부 먼저 내수 살리기 총력전


신흥국들의 경제 성장이 예상되는 것도 한국 수출 산업에 호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선진국과 신흥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1.8%, 4.6%로 내다봤다. 올해 예상치 1.6%, 4.2%보다 더 높아진 것이다. 2017년 세계 경제의 무게 중심이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이동하면 한국의 수출 회복세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오름세로 돌아선 국제유가도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초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8년 만에 산유량 감축을 결정했고 덩달아 국제유가가 급등했다. 중동과 러시아 등 산유국 경제가 살아나면 수출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에 호재라는 분석이다.

산업연구원이 지난달 27일 내놓은 ‘2017년 경제·산업전망’ 보고서를 보면 우선 내년엔 신기술에 기반한 제품들의 수출 증가가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서 기술경쟁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IT산업군이 우리나라 수출을 주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전의 경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정보통신기기는 SSD, 웨어러블 기기, OLED 디스플레이 등이 대표적이다. 3D 낸드플래시, 시스템 반도체와 같은 고부가가치 반도체의 수출 호조도 예상했다.

고급화, 개인화, 고기능성화로 경쟁력이 높아진 한국산 음식료는 중간 식재료 뿐만 아니라 가공식품서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 것이란 분석이다. 섬유도 코트, 자켓, 셔츠, 유아복 중심으로 수출이 확대될 것이란 기대다.

더욱이 12대 주력산업 중에선 자동차, 조선, 가전을 제외한 모든 분야서 내년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올해 -21.3%나 빠진 정유는 내년엔 올해보다 10.7% 가량 수출이 늘어날 전망이다. 역시 올해 마이너스(-)에 머물렀던 석유화학도 내년엔 5.5% 수출 성장이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OPEC 감산 합의 효과가 지속될 경우 그동안 위축됐던 중동, CIS(소련 연방의 일원이던 독립국가), 중남미 시장 수요가 다소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유가 상승으로 이들 나라의 수요가 살아나면 한국의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수출은 물론 건설·플랜트 수주도 늘어날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부 차원의
대대적 지원

정부 차원의 내수 지원 정책이 적극적으로 시행될 거란 기대감도 올해 경제 전망을 낙관적으로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제5차 경제현안점검회의서 “경기 하방에 대응하기 위해 1분기 내 재정을 조기투입할 예정”이라며 “특히 17조원에 달하는 청년 일자리 예산을 조기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내년 1분기 약 30% 안팎(중앙재정 기준, 올해 경방 준용시)의 재정이 대거 민간에 풀릴 전망이다.

이밖에도 한국전력공사 등 투자여력이 있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신산업 투자도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민생안전 대책도 나온다. 우선 정부는 노인·청년 등 취약계층이 몰려 있는 1∼2인 가구에 대한 지원책을 새로 만들 예정이다. 또한 최저임금 미준수 임금체불 등을 막기 위한 근로감독과 파견 강화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선 저출산 대책이 포함된다. 이와 관련해 현재 정부는 공공기관이 육아휴직을 얼마나 실시하고 있는지를 '알리오(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공시하도록 하고 이를 공공기관 평가에 반영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늘리기 위한 정책도 추진된다. 정부는 개별여행객을 겨냥한 마케팅을 펼치고 고가 여행상품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 부유층 관광객을 늘리기 위해 '한류비자'를 발급한다. 개별관광객의 여행 편의를 도모하고자 안내판 등을 보행자 중심으로 바꾸고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등을 만들 계획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동남아 시장 각각에 맞는 마케팅을 펼쳐 관광 시장을 다변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산 넘어 산’ 올해도 쉽지 않다
내성 키우는 선별작업 필수

물론 무조건적인 장밋빛 전망은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신정부 정책 기조와 금리인상, 중국의 성장둔화폭 확대 가능성, 지정학적 불안이, 국내적으로는 가계부채 문제와 구조조정 여파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 사태에 따른 국내 정치 불안정이 지속되면서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위축되고, 효과적인 정책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경기 악화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환율 역시 올해보다 기업 환경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LG경제연구원은 내년 원달러 환율이 1170원 수준으로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절하되겠지만, 유로나 엔, 위안화 등에 대해서는 강세를 보여 실효환율은 올해보다 2%가량 절상될 것으로 내다봤다.

포스코경제연구소는 글로벌 교역 환경을 둘러싼 대외 리스크가 수출 경기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봤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대외 여건이 불안해지는 등 부정적 요인도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산업연구원도 보고서를 통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과 자국 산업 보호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트럼프가 한국 주력 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전한 불확실
대외리스크

수출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도 여전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중국 등 개도국의 기술 추격, 국가 간 수출 경쟁 심화, 신성장동력 부재 등의 영향으로 한국의 실질 수출 증가율은 2014년 2분기 이후 2015년 4분기를 제외하고 글로벌 교역 증가율을 장기간 밑돌고 있음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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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