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분수령’ 조기대선론 내막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6.11.14 11:11:29
  • 호수 1088호
  • 댓글 0개

“퇴진 프로그램 가동 된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을 강타하면서 박 대통령 사퇴 여론이 득세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조기대선론’이 힘을 받고 있다. 조기대선론은 1년2개월여 남은 차기 대선을 앞당겨 권력을 이양하자는 정국 시나리오다.

조기대선론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잠룡으로 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처음 들고 나왔다. 박 시장은 지난 3일 한 라디오프로그램서 ‘조기대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작은 혼란과 고통이 있을 것으로 생각 한다”면서도 “모든 새로운 탄생엔 껍질을 벗는 아픔이 있지 않느냐”고 말해 조기대선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통령 내리고
선거 치르자”

다만 박 시장은 “국민의 요구와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당분간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박 시장이 조기대선론을 처음 언급했다면 정의당 심상정 공동대표는 조기대선론을 위한 절차를 가장 먼저 제시했다.

심 대표는 지난 4일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하면, 여야 4당이 국회의장 주재로 과도중립내각을 확정해야 한다”며 “권력이양 일정이 확정되면 ‘조기대선준비특위’를 구성해 선제적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조기대선 실시에 따른 문제점과 혼란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하면 과도중립내각을 구성한 뒤 조기대선을 실시한다는 로드맵이다. 심 대표는 내년 4월10일로 예정된 재보궐 선거에 맞춰 대선을 치르자는 방안도 제시했다.


대통령 사임은 조기대선일 전 60일로 정한다. 즉 대통령이 사임 날을 조기대선일에 맞추는 것이다. 과도중립내각은 권력이양 및 일정관리, 헌정유린 사태 진상규명·헌정유린 사범 단죄, 경제·안보 등 국가위기 관리를 목적으로 운용된다.

같은 당의 노회찬 원내대표도 조기대선론을 강조했다.그는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나 있다가도 여론이 조금이라도 우호적으로 돌아온다 싶으면 언제든지 권한을 행사할 위험성이 있다”며 “현재 보수적인 헌법재판소 구성상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더라도 헌재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따라서 내년 4월 재보궐 선거와 맞물려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까지 대통령이 명예롭게 하야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한시적인 ‘퇴진 프로그램’을 작동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직 국회의장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대통령의 조기대선이 거론됐다. 지난 7일 전직 국회의장 6명은 국회의장 초청으로 오찬 회동을 가졌다. 임채정 전 의장은 “대통령은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고 내각에 모든 권한을 넘겨야 하며 앞당길 수 있으면 대선을 앞당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를 했다”며 “지금 이 상태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출구 전략 거론
박원순 최초 언급…“국민 요구에 달려”

차기 대선주자인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도 조기대선론에 동참했다. 안 전 대표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지난 9일 회동을 갖고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조기대선 실시에 뜻을 같이 했다. 이들은 “나라의 혼란을 가장 빨리 수습하는 방법은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이라며 지난 12일 ‘민중 총궐기’에도 참석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박 대통령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을 언급해 박 대통령이 국회의 의견을 수렴한 책임총리제에 대해서도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최근 SNS를 통해 ‘조기대선이 해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민 의원은 과도거국내각의 성역 없는 수사, 선거관리, 6개월 후 조기대선을 강조했다.

민 의원은 선출 권력이 아닌 과도내각이 1년 이상 지속되는 것은 헌법정신에 위배됨을 들어 대선을 6개월 후로 앞당기자고 말했다. 일정기간의 시간을 둬 차기후보들이 대선 준비를 마치고 경선에 참여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향후 정치 일정이 확정돼 안정된 권력이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 일부 의원이 공개성명을 통해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면서 조기대선안에 힘을 실었다.

이상민, 안민석, 홍익표, 한정애, 소병훈, 금태섭 의원은 “박 대통령의 국정을 이끌어갈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십은 이미 붕괴돼 산산조각이 났고, 다시 복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스스로 퇴진을 하게 된다면 헌법에 따라 60일 내 선거를 통해 임기 5년의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게 되는 만큼 국정혼란 수습과 새 출발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와중에 새누리당이 조기대선론을 주장하는 교수의 강연을 들어 이목이 집중된다. 새누리당 당내 소장파 모임인 ‘최순실 사태 진상규명과 국정 정상화를 위한 새누리당 국회의원 모임(약칭 진정모)’은 지난 8일 김형준 명지대 교수를 초빙해 조언을 들었다.

2선 후퇴 후
대선 치른다?

김 교수는 강연서 “김병준 총리 내정자 지명을 철회한 뒤 현 새누리당 지도부가 사퇴하고, 박 대통령이 거국중립내각 총리에게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며 “내년 상반기 안에 조기대선을 치를 수 있는 체제로 바뀌는 것이 문제 해결의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초빙한 전문가가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않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 내부의 입장변화 조짐이 감지된다. 이처럼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조기대선론은 대통령의 모르쇠와 버티기에 대한 야권의 응수타진으로 풀이된다. 특히 야권은 대통령의 2선 후퇴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은 국회를 방문하며 야당이 주장한 국회 추천 책임총리 방안 수용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야3당은 대통령의 국회 국무총리 추천 요청에 대해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거부했다. 이들은 강력한 검찰수사와 국정조사 및 별도 특검을 신속히 추진한다는 데도 의견을 함께했다.

이들이 박 대통령의 제안을 일축한 이유에 대해서는 2선 후퇴에 대한 명시적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추 대표는 “박 대통령의 요청은 2선 후퇴도, 퇴진도 아니고 그냥 (사태를) 눈감아 달라는 것”이라며 “대통령은 국정에서 한시바삐 손을 떼고 국회 추천 총리에게 권한을 넘기겠다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야권이 주장하는 ‘2선후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야권이 주장하는 2선 후퇴론은 대통령이 내치뿐만 아니라 외치까지 모두 내려놓고 새 총리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야권 인사 중 2선 후퇴론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으로 꼽힌다. 추 대표는 지난 9일 국회에서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외치든 내치든 자격이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청와대는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외교·국방 분야에 대한 권한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엇갈리는 잠룡
조기 뛰어든다?

야권 내부서도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범위를 놓고 노선이 엇갈리고 있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일단은 적어도 내정에 대해서 손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천 전 국무총리 역시 지난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를 운영해보니 총리가 갈 수 있는 회의가 있고 대신할 수 없는 회의가 있다. 대통령이 갈 곳에 총리가 대신 가면 큰 나라 대통령들은 상대도 안해주더라”고 말해 대통령의 외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헌법 제74조를 보면 국군 통수권을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 등 안보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헌법에 따라 군을 통수할 수 있는 권한은 총리에게 없는 셈이다. 다만 야권 일각에서 박 대통령에게 외치까지 손을 떼라고 하는 것을 두고 자진해서 내려오게 하기 위한 압박용 포석이라 분석이 나온다.


또한 박 대통령이 2선 후퇴라는 단어를 명시함으로써 대통령이 책임총리를 간섭할 여지를 없애겠다는 복안이다. 게다가 통치 능력과 권위를 상실한 대통령이 외교와 안보를 통할할 수 있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상 ‘2선 후퇴’라는 용어는 ‘하야’라는 단어를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대통령이 2선 후퇴를 넘어 하야를 한다면 조기대선이 불가피하다. 대통령 궐기 후 60일 이내 대선을 치러야 하는 헌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각 당의 잠룡들도 빠르게 대선정국에 합류할 전망이다. 우선 조기대선론에 대한 각 잠룡들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하야-과도중립내각-조기대선 로드맵
물건너간 거국내각…엇갈리는 잠룡들

당초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이 사임할 경우 현직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 가능하냐에 대한 견해가 분분했다. 지난 5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하야하면 헌법상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하게 되어 있는데, 공직선거법 53조에는 공무원의 경우 (선거전) 90일 이내에 사퇴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며 “이 규정에 의하면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성 성남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자치단체장들은 차기 대선에 출마를 못하게 된다”고 말해 여야 잠룡들을 압박했다.

당초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2일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면서 “대통령이 하야하면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르게 돼 있지만 지자체장이 출마하려면 90일 이전에 사임해야 한다. 나는 모든 것을 버렸다”고 말해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선관위는 “출마가 가능하다”고 정리했다. 선관위는 공직선거법 35조는 대통령 사임으로 대선을 치르게 되는 경우 ‘보궐선거’ 규정을 준용해 자치단체장들이 입후보하는 경우 30일 이전에 사퇴하면 출마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조기대선론에 대해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중대결심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대통령 탄핵이나 하야는 명시하지 않았다. 조기대선도 검토치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문 전 대표 측근 김경수 의원은 “문 전 대표는 국정 운영을 해본 경험이 있고 탄핵 사태까지 경험했다”며 “현재로선 가장 바람직한 차선책은 거국내각”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이 하야하고 조기대선을 치르면 솔직히 문 전 대표가 가장 유리하다고 볼 수 있지만 국정이나 헌정의 문제는 유불리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헌정중단이란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김부겸 의원도 신중한 모습이다. 안 지사 측은 조기대선에 대해 “위기를 어떻게 수습할 지가 문제이지 향후 정치 일정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 의원도 “2선 후퇴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청와대에 각을 세웠지만 하야라는 표현은 자제하는 모양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외교를 포함한 모든 권한을 여야 합의 총리에게 이양하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며 청와대를 압박했다. 다만 조기대선에 대해서는 “지금은 이후를 논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해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권한대행 필요
내년 4월 적기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9일 “현재는 헌법적으로 대통령 ‘사고’ 상태”라며 “따라서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권한대행 총리는 합헌적으로 대통령 권한을 가지면서 국정을 운영하고 조기대선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조국 교수는 “내년 대통령, 국무총리, 여야 대표가 내년 4월12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일, 조기대선을 치른다고 합의 공표하길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통령 햐야’ 갈리는 야권 잠룡들
야권 공조 깨진다?

잠룡들 사이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우선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하야에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지난 9일 조찬회동을 갖고 박 대통령 즉각 퇴진을 요구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박 대통령 하야와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이 시장은 “박근혜는 대통령직을 박탈하고 형사처벌해야 한다”며 “금품갈취 집단범죄의 왕초는 그냥 두고 졸개들만 처벌하고 끝낼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문재인-손학규 부정
박원순-안철수 긍정

반면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와 손학규 전 고문은 하야 요구에 사실상 선을 그었다. 문 전 대표는 “국민들의 요구에 의해서 박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것은 아주 길고 긴 어려운 투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 전 고문은 “국민들의 대통령 하야 요구는 당연하지만 지금 하야했을 때 생기는 정치적 혼란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느냐”며 하야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박 대통령 하야 여부를 놓고 야당 잠룡들의 셈법이 엇갈리면서 공조 분위기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사 속 기사> ‘대통령 퇴진’ 국민의당 당론 보니…

국민의당은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운동에 적극 나서기로 당론을 결정했다. 국민의당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제1차 중앙위원회를 통해 박 대통령 퇴진운동을 공식화 했다. 아울러 오는 12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민중총궐기 촛불집회에 당 차원에서 적극 참여키로 결정했다.

중앙위원들 간에 박 대통령의 탄핵 또는 하야 촉구를 당론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며 2시간이 넘는 격론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논의 끝에 구체적 퇴진 방향은 추후 결정키로 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퇴진 운동 방향에 대해 “먼저 거국내각을 구성해서 그 총리의 책임 하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최순실씨 사단을 인적 청산하고 검찰 수사와 국정조사, 특검으로 진실규명이 되면 그 결과를 갖고 국민 정서를 보면서 해결방법을 내자”고 말했다.

앞서 국민의당은 안철수 전 대표가 시작한 박 대통령의 퇴진 서명운동을 중앙당 및 전국지역위원회 차원으로 확대 실시키로 했다. 박 위원장은 “현재 의원총회와 비대위에서 사실상 퇴진 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이제 서명운동으로 이어나가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문재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문재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이후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미묘한 시기에 사정기관의 칼끝이 문재인정부를 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 기관에 대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고 비판한다. 권력의 향방에 따라 행보를 달리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도기’ 상황에 놓여있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탄핵안 인용으로 파면됐고 새 대통령은 아직 뽑히지 않았다. 헌법은 대통령 궐위 이후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존재하긴 하지만, 한정된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기에 우리나라는 이른바 ‘반쪽짜리 정부’ 상태에 있는 셈이다. 새 정부 앞두고… 대선 정국이 시작되면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움직임은 느려진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와 180도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 보고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 형태로 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음 정부는 여느 정부보다 ‘전 정부 지우기’에 몰두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서 새로운 정책을 펴거나 기존 정책을 발전시키는 행보는 무의미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사정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선거에 미칠 영향 때문에라도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편이다. 특히 유력 후보와 관련한 사건은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칫하다가는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 이번 대선은 선거 기간이 짧아 국민의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작은 사건이 대선에 나비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검찰과 감사원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후보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전 대통령이 표적이 됐다. 이전부터 해온 수사와 조사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하기엔 시기가 미묘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4일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21년 12월 시민단체 고발 이후 3년5개월여 만이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서모씨의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 등을 수사해 왔다. 서씨가 취업했던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도 뇌물공여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 전 대통령의 딸인 다혜씨와 서씨는 기소유예 처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다혜씨, 서씨와 공모해 이 전 의원이 실소유한 이스타항공의 해외법인 격인 타이이스타젯에 서씨를 임원으로 채용하도록 했다. 서씨는 2018년 8월 취업 이후 2020년 3월까지 타이이스타젯에서 급여로 약 1억5000만원, 주거비 명목으로 6500만원을 받았다. 집값 통계 조작 결과 발표 청와대 외압 정황도 나와 검찰은 서씨의 취업으로 문 전 대통령이 그간 다혜씨 부부에게 주던 생활비 지원을 중단한 점을 들어 문 전 대통령이 이 금액만큼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봤다고 판단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 직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의원은 “터무니없고 황당한 기소”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보복성 기소”라는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다. 그는 “법정서 진실을 밝히는 것을 넘어 검찰권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행사되고 남용되고 있는지 밝히는 계기로 삼겠다”며 “수사권 남용 등 검찰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 고소하는 것은 물론, 검찰을 개혁하는 기회로 여기겠다”는 발언도 내놨다. 검찰 기소에 앞서 감사원도 문정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놨다. 문정부 임기 동안 부동산 등 국가 통계를 광범위하게 조작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청와대와 정부가 통계 작성 기관 등에 압박을 가한 사실도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지난달 17일 감사원은 ‘주요 국가 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전국 주택가격 동향 조사(주택통계), 가계동향 조사(소득통계), 경제활동인구 조사(고용통계) 등을 감사한 자료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11명)·국토교통부(7명)·한국부동산원(7명)·통계청(6명) 등 총 31명에 대해 징계 요구(14명)·인사자료 통보(17명) 등 엄중 조치하는 한편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통계청 등에 통계의 정확성·신뢰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향후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제도개선 통보 및 주의 요구를 처분했다. 검찰 기소 왜 지금? 감사원은 2023년 9월 대통령비서실·국토부·통계청·한국부동산원(이하 부동산원) 소속 22명 가운데 일부 주요 관련자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 의뢰한 바 있다. 당시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및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홍장표 전 경제수석,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수사 의뢰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토부는 주택 가격에 대해 부동산원에 ‘통계 결과를 미리 알고 싶다’며 사전 제공하도록 지시했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 결과를 임의로 수정하고 통계 개선 명목으로 표본 가격을 조작하는 등 통계 왜곡을 은폐했다. 이렇게 집값 관련 통계 수치를 조작한 사례는 감사원 확인 결과 102건에 달했다. 청와대와 국토부가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외압은 2018년 1월 서울 양천, 성남 분당의 주택 매매 가격 주간 변동률 왜곡 등에 처음 시작됐고, 2018년 하반기 부동산시장이 요동치자, 객관적 근거도 없이 특정 지역 개발계획 철회 등 정부 발표 내용이 시장 안정에 효과를 준 것처럼 통계에 반영토록 요구했다. 감사원은 “국회·언론은 국정감사 등에서 주택 가격 동향 조사 변동률 등이 시장 상황 및 민간 통계 등과 다르다며 통계의 정확성·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으나 개별 표본 가격 등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공개되지 않아 표본 가격이 시장가격과 격차가 벌어진 사실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감사원 감사 결과 문정부가 핵심 정책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문정부는 출범 때부터 ‘소득 주도 성장’을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도 정부 주도로 진행했다. 문제는 그 효과를 정부 차원에서 왜곡했다는 점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청은 2017년 각각 2·3·4분기 가계소득을 가집계한 결과 전년 대비 감소로 확인되자, 정당한 절차 없이 표본 설계에 없는 가중값을 임의로 적용해 가계소득을 증가시켰다. 부동산·고용 다 건드렸다 소득 불평등과 관련해서도 ‘마사지’가 들어갔다. 청와대는 2018년 1분기 소득5분위 배율이 역대 최악(5.95)으로 나타나자 통계청에 개인정보 등이 포함된 통계자료를 사전 제공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했다. 또 한 노동연구원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별 근로소득 불평등 개선’으로 보고·발표하도록 지시했다. 통계청은 청와대 지시에 따라 통계자료 제공 관련 보도 설명 자료 등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발표했다. 감사원 결과가 나온 이후 정치권은 들끓었다. 국민의힘은 ‘국기 문란 범죄’라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감사원의 ‘표적 감사’라고 맞섰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이 모든 실패를 통계 조작으로 감추고 국민의 고통 위에 거짓의 탑만 쌓아 올렸다. 거짓의 탑이 무너지려고 하자 최재해 감사원장을 탄핵했다”며 “한술 더 떠서 이재명은 감사원을 민주당 자신들이 장악한 국회 아래로 이관해 손아귀에 틀어쥐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표본도, 지수 작성 방식도, 자료 수집 방식도 다른 통계를 동일선상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라며 “이미 전 정권이 돼버린 윤석열정권의 잔당들이 전 정권(문재인정부)의 숨통을 기어이 끊어놓겠다는 의지가 부른 희대의 사건”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발표한 시기도 지적했다. 한 최고위원은 “윤석열정부 출범 4개월 만에 착수한 감사를 새 정부 수립을 불과 47일 앞둔 때에 마무리한 저의가 대체 무엇인가”라며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저열한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이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북한 GP 파괴 두고도 수사 요청 민주 “해체 준하는 개혁” 반발 감사원은 지난달 24일에도 문정부 당시 군 인사 6명을 수사해달라 요청했다. 이들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북한이 파괴한 북한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 대한 우리 측의 불능화 검증을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경두·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국방부·합동참모본부 관계자들이 수사 요청 대상자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2018년 체결한 9·19 군사 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 GP 10개씩을 파괴하고 1개씩은 원형을 보존하면서 병력과 장비를 철수시킨 뒤 상호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당시 군 당국은 북한군 GP 1개당 총 7명씩 총 77명으로 검증단을 파견해 현장 조사를 한 뒤 북한군 GP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북한군 GP 지하시설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우리 군 당국이 이 부분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전직 군 장성 모임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은 지난해 1월 이 내용을 포함한 북한군 GP 불능화 검증 부실 의혹에 대한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그 결과가 이번 감사원의 수사 요청인 셈이다.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와 감사원의 연이은 문정부 ‘공격’에 민주당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검찰과 감사원이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하며 ‘신 관권선거’를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5일 국회 소통관서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감사원이 북한의 GP 파괴 관련 결과를 내놓은 이후다. 조 수석대변인은 “권력기관이 이제 대통령선거에까지 사실상 개입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라며 “마지막까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졸개이기를 자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내란 세력이 벌이는 최후의 저항을 국민과 함께 막아내고 내란 세력을 철저히 뿌리 뽑아 국민 주권을 돌려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대세 영향 미칠까? 앞서 민주당은 집값 등 통계 조작 관련 감사원 발표 이후 ‘해체에 준하는 개혁 대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민주당 전 정권 탄압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서 나온 발언이다. 민주당은 “독립 기관이라는 존재 가치를 상실한 채 내란 옹호 기관이라는 오명을 안은 감사원에 닥칠 결말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문정부 표적 감사, 윤정부 부실 감사 등을 이유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해 최 원장은 직무에 복귀했으나 감사원장이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당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