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억울한 사람들> (43)전국골프존사업자협동조합 송경화

“살기 위해 뭉쳤습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예정입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마흔세 번째 주인공은 골프존 사업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투쟁의 선봉장으로 나선 전국골프존사업자협동조합 송경화 이사장 이야기입니다.

지난 17일 국회의사당 앞 잔디밭에서 만난 전국골프존사업자협동조합(이하 전골협) 송경화 이사장은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날 국회에선 정무위원회 국정감사가 진행됐다. 송 이사장과 조합원들은 골프존유원홀딩스 김영찬 대표이사가 증인으로 출석한 정무위 국감을 위해 전국 각지서 상경했다. 송 이사장은 “저희가 한 번 집회를 가지면 많게는 1200∼1500명 정도 참석한다. 전국서 버스를 2∼3대씩 대절해서 오신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서 상경

이날 국감에선 여야할 것 없이 김 대표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포화상태에 있는 시장상황에도 불구하고 가맹사업전환을 통해 사업자들에게 추가 부담을 지우려는 골프존 횡포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며 “시장을 지옥으로 만들어 놓고 나 몰라라 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같은 당 민병두 의원은 “골프존 사업은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성장한 시장”이라며 “그 과정서 점주들에 대한 엄청난 약탈이 있었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골프존 사업자들이 본사에 대응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 이사장은 “초기 골프존 제품은 완전제품이었다. 그랬기에 사업자들은 가격이 비싸도 구입했다”며 “하지만 2011년 골프존이 시장점유율 90%에 이르는 등 독점적 지위를 얻자 갑질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송 이사장은 기존에 2000원씩 내고 있던 코스 사용료, 이른바 R캐시의 추가 인상 계획에 반발해 전면에 나선 케이스다.

R캐시는 골프존 시스템 사용을 위해 미리 내는 비용이다. 골프존 프로그램은 R캐시를 먼저 넣지 않으면 접속이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R캐시가 생기자 추가 부담이 생긴 고객들은 반발했고, 이는 고스란히 사업자의 몫이 됐다.

송 이사장은 본사가 R캐시를 기존의 2배, 4000원으로 올리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전국의 사업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었다. 전국의 대다수 사업자들이 본사의 R캐시 인상 계획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자 송 이사장은 이들을 모으기로 했다.

당시 대전 지역 사업자들 간 친목모임서 송 이사장이 회장직을 맡고 있었던 것을 계기로 그 덕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투쟁의 전면에 서게 됐다.

본사 vs 사업자 가맹전환 문제로 대립
김영찬 대표 뭇매…의원들 갑질 비판

송 이사장은 “골프존이 무분별하게 제품을 판매하면서 건물 하나에 매장이 두 군데 있는 경우도 생겼다”며 “시장이 과포화상태이기 때문에 영업점 간 경쟁도 과열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기에 본사가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사업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또 “본사는 이미 2000원의 R캐시로 매년 1000억원의 이득을 취하고 있는데 이걸 두 배로 올리면 사업자들은 대체 뭘 먹고 살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R캐시를 받는 프로그램 안에 169개 코스가 있다. 이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20억∼30억원, 많이 잡아서 50억원으로 보더라도 본사에선 이미 5000억원에 달하는 돈을 번 상태”라며 “본사에서 R캐시를 유지하는 건 사업자들에게 1년에 1000억원씩 뽑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현재 골프존 매장은 전국에 약 4800개, 제품은 2만5000여대가량 돌아가고 있다.

이학영 의원은 서울에만 1000여개 매장이 있고 울산의 한 동네에 30여개가 몰려있는 등 포화상태가 된 사업에 대해 지적했다. 전골협 조합원들 역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신규매장 등록 제한’ 즉 과밀화 제한을 꼽았다.

송 이사장은 “무분별한 업그레이드와 R캐시로 인한 금전적 부담 등으로 지난해 500개가 넘는 매장이 문을 닫았다”며 “이대로 가다간 사업자들이 다 거리로 나앉게 생겼다”고 했다.

여기에 골프존 본사가 내놓은 가맹 전환 시도가 기름을 부었다. 가맹 전환 과정서 고가의 업그레이드 비용이 문제가 된 것이다.

박찬대 더민주 의원은 “점주들은 이미 4000만~6000만원 상당의 고가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런데 골프존이 가맹 전환 조건으로 시스템을 또 업그레이드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그 금액은 900만원에 달한다. 한 사업장당 5∼8대 제품을 갖고 있다면 가맹 전환을 위해서는 5000만원이 추가로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가맹점의 장점은 상권 보호, 안정적인 매출 등인데, 골프존 사업은 이미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다”면서 “영업상의 이익이 없는 상황임에도 가맹 전환을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의원들의 공세에 김 대표는 “현재 고령이고 일선에서 물러나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며 답변을 피해갔다. 골프존 측은 가맹 전환은 무료로도 가능한 사업자의 선택사항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송 이사장은 “골프존의 가맹 전환 시도는 제품을 추가로 고가에 팔겠다는 의도”라며 “이미 골프존 사업을 하면서 빚을 진 사람들이 업그레이드 때문에 더 많은 빚을 져야 하는 구조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전골협은 본사의 가맹 전환과 관련해 ‘가맹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해왔다. 다시 말해 가맹 전환이 아니라 현재 운영 중인 매장들이 골프존의 가맹점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송 이사장은 “영업 표지 사용, 가맹비, 로얄티, 교육·경영 지원 등 현재 운영 중인 매장들은 이미 가맹점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며 골프존은 신규 매장을 늘릴 게 아니라 기존 매장의 상권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호는커녕 강탈?

전골협은 ‘을과의 연대’ 등 다양한 방향으로 투쟁을 지속해나갈 계획이다. 지난 10일에는 전국대리기사협회(이하 대리기사협회)와 ‘연대와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두 단체가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전골협의 각 사업장서 발생하는 대리운전 주문은 대리기사협회가 관리하게 됐다.

송 이사장은 “골프존 매장을 운영했던 사업자들 중에 빚을 갚기 위해 대리운전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서 “을끼리 뭉치고 협력해 난국을 해결해보자는 의미에서 업무협약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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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