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레드모델바’ 김동이 대표의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16>

8500만원 사채 빚에 일본 호빠 선수되다

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천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어이쿠, 김동이씨, 제 발로 찾아왔어? 그래 돈은 가져왔나?”
 ‘일본에 있는 한국 호스트빠’가 바로 이런 곳이었구나.


■ 사채 빚 때문에 일본행
그들은 이미 누나를 찾아연락을 해서 돈을 내놓으라고 온갖 협박을 다했다고 한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나의 빚이 처음의 3000만원에서 무려 8500만원으로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사채 빚이 그렇게도 무서운 것이었다. 이제 정말이지 나에게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도대체 내가 어떤 방법으로 8000만원이 넘는 돈을 구한단 말인가. 그들의 억지스러운 이자계산법에 내 목숨이 왔다갔다 할 정도였다. 그때 내 수중에는 8만원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도망만 다닌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나는 결국 사채업자들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덩치 크고 인상은 정말로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 다섯 명이나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어이쿠, 김동이씨, 제 발로 찾아왔어? 그래 돈은 가져왔나?”
“죄송합니다. 돈이 없어서 돈을 갚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참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 중에 한명이 나에게 갑자기 물었다.
“김동이씨, 여권 있어?”
제주도도 못 가본 나에게 여권이 있을 리가 있나. 해외는 구경도 한번 못해본 당시였다. 그렇게 나는 무려 5일간을 그 사무실에 갇혀 지냈다. 그래도 밥은 먹여주었으니 다행이었다. 그렇게 5일 동안 그들은 무척이나 바쁜 듯이 보였고 드디어 5일째 되는 날 그들 중 한명이 나에게 차에 타라고 했다.
“김동이씨, 지금 어디 가는지 알아?”
내가 알도리가 있는가.
“일본에 가는 거야, 일본!”
“네? 일본에는 왜요?”
“호스트빠 가는 거야. 가서 열심히 일해서 내 돈 갚으라고. 알았지?”
모든 게 어리둥절했지만, 그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심지어 그들이 나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나는 작은 반항을 할 수 있을 뿐, 그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는 처지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됐다. 빚 때문에, 타인의 의지로, 구체적인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나는 그냥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래간만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간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다니는 내내 가슴은 무언가로 꽉 막힌 듯 먹먹했다.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두렵고 공포스러운 것인지는 정말로 몰랐었다. 그래도 비행기 안에서는 최소한 그런 심정은 아니었다. 도대체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됐을까. 어디서부터 잘못 풀려서 지금 이 지경까지 된 것일까.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지금 당장 급한 건 그들의 돈을 갚는 일이었다.

■ JAL에서 내려다 본 일본
그렇게 비행기는 1시간 40분 정도를 날아갔다. 내가 내린 곳은 일본 나리타 공항이었다. 외국이라고 해서 무척이나 낯설고 생경한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한국과 비슷한 공기, 비슷한 외모의 사람들, 그리고 비슷한 건물들이 있을 뿐이었다.
개찰구를 빠져나가자 온통 혼돈스러웠다. 나는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의 얼굴조차 모르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하게 있는데 한 아줌마가 나에게 다가왔다.
“김동이씨 되세요?”
“아, 네, 맞아요.”
그녀는 다른 말없이 일단 여권부터 달라고 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여권을 넘기자 그녀는 내가 여권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자신이 챙겨 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그녀가 대신 내 여권을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여권을 강탈해 간 것이었다. 여권이 없으면 한국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불법 체류를 해도 나를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물론 나중에 여권을 분실하면 해외에 있는 우리나라 영사관을 찾아가면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녀는 그때부터 나에게 노골적으로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처음이지?” “나이가 몇 살이야?”등의 질문을 했다. 특히 내가 25살이라고 하자 그녀는 “딱 좋은 나이네!”라며 웃었다. 도대체 뭐가 딱 좋은 나이라는 걸까. 다시 택시를 타고 1시간 정도를 가서 도착한 곳. 내 평생에서 가장 기억하기 싫은 일본의 지명, 바로 ‘지바’라는 곳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 그녀는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듯한 말을 했다.
“동이씨, 월급은 20만 엔이고, 그 중에서 숙소비가 3만 엔, 부식비가 2만 엔이야, 그리고 도항은 한 달에 총 5번은 해야 하는데, 한번 못할 때마다 벌금이 있으니까 열심히 해라. 그래서 빨리 빚 갚아야지.”
당시 나는 엔화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그때까지 일본 돈은 구경도 못했으니 엔이 얼마를 의미하는지 알 리가 없었다. 거기다가 부식비나 숙소비는 알아듣는다 해도 ‘도항’이라는 것이 뭔지도 몰랐다.
드디어 지바라는 낯선 도시에 내렸다. 분위기는 처음 공항에서 느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어투는 늘 반말에다 명령조, 그리고 거기다가 약간의 신경질까지 섞여 있었다. ‘내려’ ‘따라와’ ‘들어가’ ‘올라와’ … 늘 이런 식의 말 뿐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후 간 곳은 한 허름한 주택이었다. 위로 올라가니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야이 새끼들아, 청소 좀 하고 살아라. 이게 집이야? 쓰레기통이지!”
누군가가 그녀에게 ‘사쪼, 오셨어요?’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 그녀의 이름이 사쪼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사쪼는 우리나라 말로 ‘사장’이라는 뜻이었다. 그곳에는 줄잡아 7~8명 정도의 내 또래의 남자들이 기숙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마마’라는 사람도 있었다. 사쪼가 나를 가리키며 마마에게 이야기했다.
“얘, 샤워시키고 옷 사 입히고 교육 잘 시켜가지고 가게로 데리고 와. 너희들도 시간 늦지 말고 가게로 오고.”
그때서야 나는 병구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내가 은영씨, 명자씨와 헤어진 뒤에 만난 병구가 간다고 했던 ‘일본에 있는 한국 호스트빠’가 바로 이런 곳이었구나. 나는 걱정부터 앞섰다. 과연 내가 이곳에서 잘 적응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일해서 그 엄청난 돈을 다 갚을 수는 있을까. 그때 마마라는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름이 뭐냐?”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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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