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재벌후계자 체크 ⑩ 대한전선 설윤석

‘진수성찬’ 급히 먹다 체할라


한 나라의 경제에서 대기업을 빼곤 얘기가 안 된다. 기업의 미래는 후계자에 달렸다. 결국 각 그룹의 후계자들에게 멀지 않은 대한민국 경제가 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할 수 있을까. 우리 경제를 맡겨도 될까. 불안하다.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경영수업 중인 ‘황태자’들을 체크해봤다. 열 번째 주인공은 대한전선그룹 설윤석씨다.

‘초고속’ 입사 6년 만에 부사장…양대 지주사 장악
 경험 부족·부당이익 논란·구조조정 ‘3대 숙제’


재계 순위(공기업 제외·10월 기준) 31위인 대한전선그룹의 오너는 양귀애 명예회장이다. 세상을 떠난 남편 대신 그룹 지휘봉을 잡고 있다. 명예회장 직함을 달고 있지만, 경영 전반을 쥔 실질적인 오너나 다름없다. 그 밑으로 경영수업이 막바지에 접어든 외아들 설윤석씨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29세에 벌써…”

그룹의 후계 상황과 관련해 ‘설윤석’하면 딱 떠오르는 연관어는 ‘초고속 승진’이다. 다른 재벌가 자녀들도 대부분 승진이 빠르나 그들보다 훨씬 빠른 편이다. 올해 29세인 설씨는 지난 2월 전무에 오른 지 3개월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입사로 따지면 6년 만이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설씨는 2005년 대한전선 스테인리스 사업부 마케팅팀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2006년 경영전략실 차장과 2007년 부장을 거쳐 2008년 상무, 지난해 10월 경영기획담당 전무로 승진했다.

설씨의 초고속 승진을 두고 회사 안팎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게 사실이다. 어린 나이와 경험 부족 등 아직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자질 논란까지 불거진다.

하지만 설씨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설씨는 당초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을 떠나 학업을 계속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부친 고 설원량 회장이 2004년 3월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유학일정을 접고 곧바로 대한전선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평범한 주부로 지냈던 양 명예회장으로선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설씨의 초고속 승진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설씨가 그룹의 ‘황태자’로 주목받은 것도 이때부터다. 설씨는 설 회장의 주식을 물려받아 단숨에 대한전선 개인 최대주주가 됐다. 당시 상속세로 1355억원을 납부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설씨는 지난 6월 말 기준 대한전선 지분 11.44%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그의 동생 윤성(3.84%)씨, 양 명예회장(2.16%) 등의 순이다.

다만 대한전선은 그룹의 지주사가 아니다. 그 역할을 하는 회사는 따로 있다. 대한전선보다 상위 포지션에 있는 티이씨(TEC)리딩스(구 삼양금속)다. 대한전선 지분 13.42%를 갖고 있는 티이씨리딩스는 대한전선 등을 ‘징검다리’삼아 20여 개의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어 그룹 지배구조와 후계구도의 핵으로 꼽힌다.

설씨는 이미 티이씨리딩스도 장악한 상태다. 그는 현재 티이씨리딩스 지분 53.77%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티이씨리딩스는 설씨 가족(윤성씨 36.97%·양 명예회장 9.26%)이 100% 지분을 쥔 사실상 오너일가 회사다.

1971년 설립된 뒤 1987년 대한전선그룹에 인수된 티이씨리딩스가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 역시 설 회장이 세상을 뜬 전후다. 설 회장의 대한전선 지분 일부가 티이씨리딩스에 넘어갔는데, 이는 티이씨리딩스가 지주회사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설 회장의 티이씨리딩스 지분도 자녀들에게 상속, 티이씨리딩스를 염두에 둔 후계체제를 구축했다.

문제는 티이씨리딩스의 자생력이다. 대한전선이 자사에 필요한 물량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티이씨리딩스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 이는 곧 오너일가의 배를 채우는 지원성 거래란 지적이다. 상황에 따라선 나중에 설씨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

티이씨리딩스의 지난해 매출은 348억2100만원. 이중 무려 347억7600만원이 대한전선과의 거래에서 발생한 매출이다. 비율로 따지면 99%가 넘는다. 티이씨리딩스의 관계사 매출 비중은 ▲2004년 99%(총매출 658억5500만원~관계사거래 653억400만원) ▲2005년 99%(805억1500만원~795억100만원) ▲2006년 98%(620억100만원~608억5600만원) ▲2007년 97%(460억5400만원~446억2900만원) ▲2008년 96%(479억3200만원~460억3900만원) 등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먼저 설씨에겐 풀어야 할 큰 숙제가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구조조정이다. 대한전선그룹은 경영악화로 유동성 마련에 분주하다. 2000년대 들어 무리하게 몸집을 불린 게 원인이다.

대한전선은 “이제 한 우물만 파던 시대는 끝났다”며 기존 전선업 중심에서 해외투자, 건설, 홈네트워크, 레저 등으로 사세를 키우기 위해 2002년 무주리조트, 2003년 트라이브랜즈(구 쌍방울·2009년 재매각), 2005년 대한테크렌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화된 2007∼2008년에도 캐나다 밴쿠버 힐튼호텔(2010년 재매각), TEC건설(구 명지건설), 남광토건, 대경기계기술, 한국렌탈(2009년 재매각), 선운레이크밸리 골프장 등을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곳간’이 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여기저기 ‘빚잔치’를 벌이는 처지가 됐다. 대한전선의 부채는 2005년 7713억원, 2006년 8383억원, 2007년 1조9095억원, 2008년 2조5161억원, 지난해 2조6414억원으로 매년 늘어났다. 부채비율은 2005년 말 80%대에서 지난해 말 340%대까지 높아졌다. 부채비율이 200% 이상이면 자기자본에 비해 타인자본이 2배 이상 많다는 것으로 재무적 불안정 수준으로 평가된다.

‘아버지가 그립다’

이 와중에 50년 넘게 계속된 ‘흑자 행진’도 멈췄다. 1955년 설립 이후 2008년까지 단 한 해도 적자를 내지 않았던 대한전선은 지난해 처음으로 순손실(2799억원)을 기록하는 굴욕을 당했다. 결국 그룹은 지난해 5월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했고, 꽉 막힌 ‘돈맥경화’를 풀기 위해 현금이 될 만한 자산과 지분, 계열사들을 과감하게 정리하는가 하면 본사 사옥까지 ‘급매물’로 팔아치우는 등 유동성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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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최근 행적이 확인됐다. 지난해 탈옥에 성공한 이후 1년여 만이다. 박씨와 함께 탈옥에 성공했던 인물은 총 3명이다. 이들은 올해 초까지 말레이시아로 여러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박씨는 최근 필리핀 카비테 부근 한 시골 마을로 주거지를 옮겼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초부터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탈옥 가능성을 제기했다. 외교·수사당국은 현지 담당자가 철저하게 관리 중이라며 ‘소극 행정’으로 대처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꼴이다. 1년이 지난 현재, 박씨는 필리핀 서부 지역 한 시골 마을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못 잡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는 필리핀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서 탈옥한 이후 올해 초까지 총 세 차례 이상 말레이시아 사바주로 밀항을 시도했다. 이들이 밀항을 시도한 곳은 필리핀 남서부 잠비앙가와 민다나오 다바오 시티다. 잠비앙가의 경우 여행경보 4단계인 흑색 경보(여행금지) 발령 지역이다.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없이 흑색 경보 지역을 방문·체류하는 경우, 여권법 제26조 등 관련 규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잠비앙가는 우리나라 국민이 여행할 수 없는 곳인 셈이다. 박씨와 송모씨 등 ‘탈옥 멤버’들은 다바오 시티에서 두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잠비앙가로 이동했다. 잠비앙가에서 술루 제도를 통해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루 제도로 이동하던 박씨 일당들은 필리핀 반군에 억류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씨가 밀항을 시도한 잠비앙가를 비롯해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는 이슬람 반군들이 주둔해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도 무력 충돌이 발생해 최소 14명이 사망했다. 당시 민다나오 마긴다나오델수르주의 파갈룽간시에서 필리핀 최대 반군단체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두 지휘관과 수하 병력이 총기와 흉기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970년대부터 분리주의 무장투쟁을 벌여온 MILF는 2014년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를 통해 정부가 민다나오섬에 설치한 이슬람 임시 자치정부인 ‘방사모로 과도당국(BTA)’과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지역(BARMM)’ 구성에 참여했다. 잠비앙가·민다나오서 ‘뒷돈 도주’ 시도 이슬람 반군에 억류 후 풀려나 마닐라로 MILF는 2019년 9월부터 평화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무기 반납을 시작했지만, 무장 해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여전히 총기를 보유한 MILF 병력은 수천 명 이상이다. 박씨는 반군들에게 마약 및 보이스피싱으로 벌어들인 돈 수천만원을 뇌물로 전달한 이후 풀려났다. 지난 5월 초 박씨는 송씨와 헤어진 후 필리핀 루손섬 카비테주 카비테 시티로 이동했다. 지난달 말에는 카비테 시티 외곽 한 시골 마을에 자신의 현지 부인인 A씨까지 불러 정착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그간 마닐라 타기그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에 거주했다. 현지인들은 보니파시오를 BGC 또는 글로벌 시티로 부른다.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불릴 만큼 고층 빌딩, 고급 주거지, 쇼핑 거리 등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파시오의 경우 냉장고와 에어컨 정도만 구비돼있는 콘도 한 유닛의 월세가 필리핀 돈으로 13만~15만페소(약 304만~351만원)에 달한다. 필리핀은 주차장도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주차장을 포함하면 월세도 10만원에서 15만원 정도 더 늘어나게 된다. 같은 도시에 위치한 원룸 형식의 콘도 월세도 5만5000페소(약 128만원)에 달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경찰도 관련 첩보를 파악해 현지 수사당국과 공조 중이다. 아직 정확한 집 주소나 확실한 거주지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이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 넘게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 왔다. 수억 비트코인에 차명 주택 부동산 소유 현지 부인이 조력해 “지속적 현금 조달” 특히,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 그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게 “박씨가 마닐라에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하고 있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했다. 국내 정보기관은 박씨 일당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2023년 12월과 지난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필리핀 교정당국에 박씨의 탈옥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박씨가 탈옥한 것을 두고 필리핀 교정당국은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외교부와 경찰, 법무부 국제형사과 등이 일부 파견을 가 현지에서 한국 범죄자들을 관리하는데, 공문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범죄자와 면담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저 공문만 보내는 것으로는 범죄자들의 탈옥을 막을 수 없다. 당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 잡나 박씨는 A씨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교도소의 취약점을 파악해 탈옥을 계획했다. 사전에 철저히 ‘탈옥 계획’을 구상하고 보안이 허술한 교도소에 잡혔단 뜻이다. 말레이시아로의 밀항 준비도 A씨가 현금 조달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A씨는 박씨가 교도소에서부터 환전한 수억원 이상의 비트코인을 관리해 왔다. 박씨와 같은 교도소에 있었던 한 제보자는 “환전한 비트코인 외에도 A씨가 박씨의 차명 소유 자택 부동산 등 수십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