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기업 덮친 사정폭풍 내막

대기업 탈탈 털어 정치인 싹 잡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20대 총선 이후 검찰의 사정바람이 매섭다. 먼저 대형 건설사 4곳과 부영그룹이 검찰의 타깃이 됐다. 올해 박근혜정부가 4년차를 맞이한 가운데 앞으로 검찰의 칼끝이 어디를 향할지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 19일 검찰은 ‘철도공사 입찰담합’과 관련해 대형 건설사 4곳을 압수수색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검사 이준식)는 지난 19일 평창올림픽을 위한 원주∼강릉간 철도공사에 참여한 한진중공업과 현대건설, 두산중공업, KCC건설 등 건설업체 4곳에 검사와 수사관 등 60여명을 보내 동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내사 끝내고…
기업 수사선상

검찰 관계자는 “공정위로부터 수사의뢰를 받지 않았다”며 “검찰이 인지수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SK건설 담합 사건 이후 다양한 인지수사를 펼쳐왔고 이번 수사도 그런 활동의 연장”이라며 “검찰이 기계적으로 수사의뢰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지수사도 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는 검찰이 대기업 수사에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검찰은 건설사 4곳의 압수수색을 통해 회계장부, 입찰관련 서류,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고 이를 분석해 혐의를 입증할 예정이다. 해당 사업은 전 구간 길이가 58.8km에 달하고 사업비는 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 철도시설공단은 2013년 초에 발주한 강원도 원주∼강릉 간 철도공사에서 4개 건설사가 입찰을 담합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이를 공정위에 신고했다. 철도시설공단 등에 따르면 4개 건설사가 제출한 입찰금액 사유서는 내용이 서로 완전히 일치했다. 또 각 공구별로 1개 건설사씩 낙찰받을 수 있도록 입찰금액을 저가로 써내는 방법으로 담합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각사가 발주처에 제출한 입찰사유서의 설명 부분과 글자 크기, 띄어쓰기 등 금액을 제외한 문서내용·양식이 완벽하게 일치해 철도공단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입찰금액 사유서를 4개 업체가 제출했는데 내용과 양식이 모두 동일했고 입찰 담합을 의심할만한 투자 패턴이 나타났다”면서 “계약심의위원회를 개최해 계약 체결 여부를 논의했다”고 전했다.

당시 계약심의위원회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건설사들과 소송이 벌어져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을 염두해 계약을 체결키로 한 것으로 알려진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해당 건설사 임원을 불러 담합 여부에 관해 물었지만 모두 부인했다”면서 “발주처 입장에서는 조사권이 없어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에 공정위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선거 끝났다” 칼 빼든 검찰
심상찮은 칼날…비리 정조준

입찰금액 사유서라는 것이 수십 쪽에 달하는 보고서가 아니라 한두 쪽 정도 간단한 내용을 담는 것이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서로 참고한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A건설사는 “사유서를 낼 때 건설사들끼리 서로 어떻게 냈는지 물어보고 대충 맞춰서 낸 것이지 어떤 이익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문제는 부당한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인데 글자와 내용이 좀 같다고 담합이라고 하기에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이에 철도공단 측은 “그런 것을 관행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동안 담합하는 관행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이번 입찰담합 건이 사실로 밝혀져 수천억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받게 되면 실적악화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수년전 벌어진 담합 건이다. 수출 외에 내수로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이 바로 건설업”이라며 “고용이라는 관점에서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과징금 폭탄을 거두고 규제개혁에 정부가 앞장서는 등 업계 살리기에 동참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20대 총선이 끝난 뒤 검찰발 기업 사정이 본격화됐다고 보고 있다.


이와 별도로 공정위는 2005년 한국가스공사가 삼척·평택·통영 LNG저장탱크 건설공사 시공사로 선정한 대림산업, 두산중공업, 현대건설 등 3개 컨소시엄에 대해 입찰담합 혐의를 확인하고 13개 건설사에 심사보고서를 보냈다.

공정위는 상반기 중 전원회의를 열어 위법성 여부와 제재 수준을 결정할 계획이다. 건설사들의 입찰담합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지난해 자정결의대회에서 대국민 사과를 통해 밝힌 삼진아웃제, CEO 무한책임 등을 이행할지 여부가 주목된다.

민간임대주택 1위에 올라있는 부영그룹의 이중근 회장은 수십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가 세무당국의 조사에서 드러나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앞으로 이 회장과 부영그룹 관계자들에 대한 검찰의 소환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앞서 국세청은 부영주택이 법인세 수십억원을 포탈한 혐의를 발견하고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국세청은 지난해 12월 서울청 조사4국을 파견해 부영주택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21일 특수1부에 배당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재계 잔뜩 긴장
사업 차질 예상

특수부에 배당한 배경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공정거래조세조사부에 배당하지 않은 것은 해당 부서의 사건 적체가 심하기 때문”이라며 “우선은 고발사건 위주로 살펴볼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검찰 안팎에서는 사정당국이 부영과 관련한 비리첩보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정설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으며, 국세청의 고발 전에 이미 부영과 관련한 비리를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1000억원대 세금부과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조세 포탈 혐의뿐 아니라 부영주택의 외국 송금 의혹들도 제기되고 있다.
 

국세청은 이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것과 별도로 세무조사 결과 부영주택 등이 캄보디아에 송금한 자금의 흐름에 수상한 점을 적발해 부영 측에 수백억원대의 추징금을 통보할 방침이다. 이에 부영 측은 “일부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그간 세금을 충실히 내왔으며 고의적으로 탈세한 일은 없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에 충분히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도 올해 초 전직 부영그룹 직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2·3차례 불러 조사하는 등 자체적으로 수사를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은 국세청 조사내용과 함께 차명계좌를 통한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 국민주택 사업과정에서 부당하게 세금을 감면 받았다는 의혹 등도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부영그룹은 1983년 3월 설립돼 임대주택 사업으로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현재 이 회장의 부영에 대한 지분은 93%이상을 차지한다. 부영은 올해 상호출자제한 기업진단지정 결과 자산 총액이 20조4000억원으로 재계 순위 21위에 올라 있으며, 부영그룹은 호텔업과 레저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오투리조트를 매입했고 임대사업을 위해 서소문 삼성생명 본관 건물도 함께 사들였다. 경남 진해 글로벌테마파크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가운데, 마산 해양신도시 복합개발 시행자로도 참여해 지방까지 전방위로 사업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이번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진행 중인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불어 해외에서 활발하게 사회공헌활동을 펼쳐온 이 회장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에도 아프리카 르완다까지 직접 건너가 디지털 피아노와 칠판 등을 기증하는 등 친선활동과 교육지원사업을 벌여왔다.


부영그룹은 이번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추진 중인 대형사업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 중이며 검찰에서 아직 우리 쪽에 따로 통보한 내용은 없다”며 “그동안 고의적으로 탈세한 일은 없다”고 했다.

부영 비자금 추적
건설사 담합 도마

수사선상에 오른 부영은 임대아파트 분양 때 1조6000억원대 폭리를 취했다는 이유로 줄 소송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제주지법과 청주지법, 부산고법 등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부영과 계열사 부영주택, 동광주택 등을 상대로 낸 소송을 심리 중이다. 임대아파트 분양 전환가격을 높게 책정해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것이 분쟁의 이유다.

공공임대아파트 분양가를 둘러싼 분쟁은 임대주택 분양 전환가격을 산정하는 기준에 의해 불거졌다. 문제는 건축비는 ‘상한 가격을 국토부가 고시한 표준건축비로 한다’고만 언급돼 있을 뿐 구체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임대아파트 사업자들은 관행대로 표준건축비를 건축비로 계산해 분양전환가를 정해 법 테두리 안에서 가장 높게 책정할 수 있는 금액을 적용했다.

대법원은 2011년 LH와 임대주택 입주민 간 소송에서 분양 전환가격의 건설원가는 표준건축비가 아닌 ‘택지비와 건축비의 합’이라고 보고 입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임대아파트 사업자들 대상으로 한 줄 소송이 이어졌다. 부영도 전국적으로 소송을 당했다.
 

부영 측은 공기업으로써 분양 전환가격을 정하는 LH와 달리 민간 사업자인 부영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잇달아 패소했다. 지난해 7월 청주 상당구 금천동 부영1단지와 부영5단지 아파트 주민 500여명이 낸 소송에서 “부영은 주민 1인당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일부 소송에서만 부영이 승소했을 뿐이다.


검찰의 칼끝은 줄기세포 업체 STC라이프도 겨냥했다. 검찰은 줄기세포 업체 STC라이프의 이계호 회장(57)의 수십억대 조세포탈·혐의도 포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세무당국은 이 회장의 10억원대 조세포탈 정황을 잡고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이 회장이 법인자금을 유용한 혐의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초로 만능 줄기세포를 만들고, 이를 활용한 화장품을 제조, 판매해 주목받던 STC라이프는 코스닥 상장 20여년 만인 지난 2011년 상장폐지됐다.

이 회장은 2004년 1500억원대 다단계 사기를 벌인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2009년에는 모 종합일간지 회장이 STC라이프 전환사채 60억원을 인수한다는 미공개 정보를 입수한 뒤 지인 명의로 주식 4만9000여주를 산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지난 2014년 만능 줄기세포를 췌장세포로 분화시키는 연구에 성공하는 등 재기를 시도했지만 이번에 다시 검찰에 비리가 포착된 것이다.

진짜 타깃은…
정계 검은고리?

검찰의 연이은 기업 사정 수사에 한 법조계 관계자는 “그동안 기업 비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검찰 내부의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번 각종 수사를 시작으로 향후 다양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검찰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주변에선 총선이 끝난 만큼 물밑에서 진행됐던 다른 대기업에 대한 수사도 앞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어 재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회에 뜬 ‘재벌 저격수’

노회찬, 채이배…대기업 긴장

재계는 제20대 국회에서 활동하게 될 ‘재계 저승사자’들에 주목하고 있다. 원내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박영선 의원이 4선에 성공했다. 박 의원은 당내 재별개혁특별위원회를 이끌며 주요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등을 문제 삼아왔다.

야권의 재벌 저격수로 유명한 정의당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 각각 3선에 성공했다. 대기업 지배구조에 대해 강성기조를 보여온 공인회계사 출신 국민의당 채이배 당선자의 활약도 지켜볼만 하다.

재계 개혁파 대거 입성

채 당선자는 “기업의 일감몰아주기,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 행위”라며 “19대 국회 연장선상에서 이런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려 한다”고 예고했다. ‘대기업 갑질’에 목소리를 높였던 ‘을지로위원회’의 우원식 의원도 3선에 성공해 재계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서영교 당선자도 지난해 8월 ‘대기업 복합쇼핑몰 규제법’을 발의하는 등 재벌 규제 강화에 앞장선 인물로 꼽힌다. 이밖에 박범계·원혜영·이언주 등 19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의원 상당수가 이번 총선에 대거 당선된 점도 재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재계에서는 ‘여당 내 재계저격수’로 불리는 이혜훈 의원의 국회입성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혜훈 전 의원은 여당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특별범죄가중처벌법과 기업지배관련법 을 강조해 왔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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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마지막 관문 ‘헌법 제84조’ 대해부

이재명 마지막 관문 ‘헌법 제84조’ 대해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앞길에 주황불과 녹색불이 번갈아 들어서고 있다. 2심서 무죄를 받은 공직선거법 판결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면서 여전히 사법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형국이다. 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남은 재판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정치권은 ‘대통령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를 나노 단위로 뜯어 살피고 있다. 지난 1일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당선돼도 찝찝하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2021년 20대 대선후보이던 당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모른다”는 발언과 국정감사에서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과정에 “국토교통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말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이 같은 발언은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구체적으로 1심 재판부는 이 후보의 “김 전 처장과 골프 친 사진은 조작됐다”는 발언을 유죄로 봤지만 2심 재판부는 “김 전 처장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취지고, 아무리 확장 해석해도 같이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해석할 여지는 없다”며 1심을 뒤엎었다. 백현동 발언에 대해서도 “의견 표명에 해당하기 때문에 허위 사실 공표로 해석할 수 없어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무죄 판결이 난 바로 다음 날 검찰은 곧바로 상고했다. 항소심이 끝난 지 하루 만에 상고장을 접수한 만큼 대법원 판단을 빠르게 받아보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대법원서 다루는 상고심은 항소심 재판에 대한 불복 신청을 토대로 하는 만큼 사실관계를 판단하지 않는 법률심이다. 판결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신속하게 원칙에 따라 재판을 해서 정의가 바로잡히기를 기대한다”며 내심 유죄를 희망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대법원서 판결이 뒤집혀야 한다고 보느냐’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항소심 법원의 논리를 잘 이해할 수 없다. 대법원서 바로잡혀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1심과 2심의 판단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대법원서 결정을 내려줘야 법적인 논란이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 된 밥에 또…파기환송 ‘주황불’ “노골적 대선 개입” 대법원장 탄핵? 반면 민주당 사법정의실현 및 검찰독재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윤석열의 즉시항고를 포기한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한 상고도 포기하길 바란다”며 맞불을 놨다. 민주당의 바람과 달리 대법원은 법리 해석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해 무죄였던 2심 판결을 깼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는 “‘골프 발언’과 ‘백현동 관련 발언’은 공직선거법 250조 제1항에 따른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며 “2심 판단에는 공직선거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전합 선고에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 11명 등 총 12명이 참여했다. 대법원은 이 후보의 “사진이 조작됐다”는 취지의 발언은 허위 사실 공표가 맞다고 판단했다. 백현동 용도변경과 관련해서도 “국토부가 성남시에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피고인이 허위 발언을 했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이번 선고는 대법관 10명 다수 의견으로 유죄 취지 파기환송이 결정됐고 2명이 반대 의견을 냈다. 반대 의견을 낸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골프 발언은 6~7년 전에 있었던 기억을 주제로 한 발언에 불과하고, 백현동 관련 발언은 국토부의 의무 조항을 지적한 부분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닥쳐온 위기에 민주당은 “노골적인 대선 개입”이라며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하겠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통상 파기환송심은 상고심 판결에 기속되는 만큼 불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의 탄핵에 속도를 냈지만 이 후보는 “당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며 다소 거리를 뒀다. 문제는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에 관한 해석은 밝히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소추’의 정의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까지 해석이 갈린 것이다. 어떻게 읽어도…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소추는 ‘형사 사건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는 일’로 정의할 수 있다. 소추의 범위가 ‘검찰의 공소 제기’만을 의미하는지, ‘진행 중인 재판’까지 포함하는지가 최대 관건이다. 현직 대통령을 내란, 또는 외환죄가 아니면 새로 기소할 수 없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내·외환죄가 아닌 죄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던 중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자로 풀어서 본다면 소는 기소, 추는 좇다, 즉 소추는 ‘공소와 공소 유지’를 뜻해 재판을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게 첫 번째 해석이다. 기소가 중단될 수는 있지만 진행 중인 재판까지 중단시킬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된다면 이 후보는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더라도 재임 중 5개 사건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현재 이 후보는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선거법 위반·위증교사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유죄가 확정된다면 대통령직서 물러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반면 소추가 기소까지만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된다면 이 후보의 모든 재판은 당선 즉시 중단된다. 이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해석으로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검사의 수사와 소추권을 다룬 ‘검수완박’ 권한쟁의심판 사건의 각하 결정에 대한 반대 의견이 다시 주목된다. 당시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헌법재판관은 “형사상 소추는 심판 기관과 분리된 소추권자가 유죄 판결 및 적정한 처벌을 구하는 활동으로 소추 기능은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의 결정 및 공개된 법정서 피고인의 상대방 당사자로서 수행하는 변론 및 입증 활동, 이에 관한 법원의 재판에 대한 불복 등을 포함한다”고 밝힌 것이다. 만일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재판 진행 여부는 이 후보의 재판을 맡은 각각의 재판부의 몫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법원이 헌법 제84조와 관련해 개별 재판부에 재판을 어떻게 운영하라고 지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각 재판관이 알아서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구조상으로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법률심으로 만약에 그런 쟁점을 다루게 된다면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본다면 고등법원과 지방법원 등 재판부가 헌법 제84조를 해석해야 하지만 최종 결론은 대법원의 몫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이뤄진다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까지 다방면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헌재가 대통령과 법원 사이서 어떤 해석을 내리는지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한차례 끓어 올랐던 헌법 제84조 논란은 이 후보의 최종심 날짜가 연기되면서 일단락하는 분위기다. 지난 7일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가 오는 15일 예정됐던 첫 공판을 대선 이후인 다음 달 18일로 연기한 것이다. 재판부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함”이라며 재판 기일을 대통령선거일 이후로 변경했다. 이로써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는 사실상 해소됐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마찬가지로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 사건 등의 공판기일도 다음 달인 24일로 변경되면서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민주당의 날선 반응도 다소 누그러졌다. 상고심 일정이 연기되면서 한숨 돌리나 싶더니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서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인 형사 재판을 정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삼권분립이 붕괴된 좋지 않은 선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불소추특권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확실히 못을 박는 분위기다. 이 후보의 파기환송이 결정된 다음 날인 지난 2일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자신의 SNS에 “국민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대법원의 비이성적 폭거를 막겠다. 헌법 제84조 정신에 맞게 곧 법 개정안(재판중지)을 법사위서 통과시키겠다”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예고대로 지난 7일 민주당은 형사소송법 제306조에 ‘피고인이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면 당선된 날부터 임기 종료 시까지 공판 절차를 정지한다’는 내용 신설을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원회서 단독 처리했다. 대통령이 재판을? ‘소추’ 범위 물음표 최종심 연기됐지만…개정안 밀어 붙인다 민주당은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헌정 수행 기능 보장을 위한 불소추특권을 규정하고 있으나, 현행 법령 체계에서는 기소 후 재판이 계속되는 경우 이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재판 계속은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형사·사법기관이 대통령을 대상으로 재판을 계속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법안 상정 당시부터 반발하며 퇴장했다. 권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서 “이런 무도한 집단이 깡패집단이지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며 “차라리 ‘이재명 유죄 금지법’을 제정하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왜 애꿎은 허위 사실 공표죄만 개정하느냐. 이참에 위증교사죄도 폐지하라. 대장동·백현동 관련 죄도 폐지해서 이 후보를 무죄로 만들라”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법무부는 “대통령 취임 전에 범한 범죄는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무관함에도 재판을 정지하는 것은 공직 자격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률 규정을 무력화하고 자격이 없는 피고인에게 부당하게 그 임기를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로써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고 헌법 수호 의무를 지는 대통령의 지위와도 배치되는 측면이 있어 국민 신뢰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신인도 및 국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한동훈 전 대표 역시 “이 후보의 재판 날짜를 잡으면 권력을 총동원해서 팔을 비틀고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가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되지 않을 것 같으니 재판을 못하도록 법을 위헌적으로 뜯어고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유죄 판결을 한 대법원장이 보복 특검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눈앞에 와 있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헌법 제84조에 대해 “만사 때가 되면 그때 가서 판단하면 된다. 법과 상식, 국민적 합리성을 가지고 상식대로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어차피 부질없다 헌법 제84조와 소추의 정의를 놓고 저마다 해석에 나섰지만 이 후보의 최종심 날짜가 대선 이후로 연기되면서 의미 없는 논쟁이 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강신업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소추에 대한 정의는)대법원이 결정하면 그만인데, 만약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권한쟁의심판을 할 것이고 해당 문제는 헌재로 가게 된다”며 “(대통령이 된 이 대표가)두 명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 헌재를 장악하는 수순이다. 결국 헌재는 대통령 편을 들 테니 사실상 그때 가서 헌법 제84조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그래도 달리는 이재명 대권 열차 대선 기간 동안은 사법 리스크 부담을 지우게 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본격적으로 민생·경제에 집중할 전망이다. 우선 이 후보는 지난 8일 경제5단체장을 만나 경제위기 극복에 방점을 찍었다. 이날 이 후보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등 각 단체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내수 침체, 민생 경제 등을 논의했다.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12일부터는 ‘빛의 혁명’의 상징인 서울 광화문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선거 유세에 나선다. 한편 이 후보와 별개로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거취를 압박하는 등 사법부를 겨냥한 전방위 공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