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주먹’ 이육래 파란만장 인생사

개과천선한 줄 알았더니… 여전히 '해결사 노릇'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유명 조폭 두목들에게 선배 대접을 받았다는 ‘호남주먹의 대부’ 이육래. 그가 서울 종로에서 명상 강사로 변신했다. 신분을 속인 채 폭력조직 원로의 영향력을 유지해온 그는 결국 경찰에 꼬리가 잡혔다. 조폭부터 명상 강사까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들여다본다.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과 OB파 두목 이동재에게 선배 대접을 받았다는 이육래는 전남 보성 출신으로 호남주먹의 실세로 통했다. 그는 ‘범죄와의 전쟁’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당시 이육래의 혐의는 이권 갈취. 매립지 인가를 받은 부산의 사업가 송모씨를 납치, 서울 이태원의 한 오피스텔에 사흘 동안 감금해 시가 100억원대의 토지에 대한 양도각서를 강제로 받아냈고, 그 과정에 송씨는 이씨에게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조폭계 대부
이중생활 탄로

전국 규모의 우익단체인 호국청년연합회 간부이기도 했던 그는 서울에서 몇몇 카바레와 나이트클럽 지분을 갖고 있으면서 고급 건달 행세를 했다. 매립지 업자 납치폭행사건에는 서모씨, 배모씨 등 호국청년연합회의 일부 간부가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육래를 수사하기 직전 그가 몇몇 호남 출신 검사와 친분이 깊다는 진정서가 청와대에 접수된 일이 있었다. 청와대는 이를 검찰에 넘겼는데, 조사를 벌인 검찰은 진정서에 이름이 거론된 검사들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선 이육래의 검찰 인맥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검사의 모티브가 된 조승식 검사는 “처음엔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육래가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행방을 감췄기 때문.

권력기관에 있는 사람들이 수시로 전화를 걸어와 이육래의 수사 상황을 관심 있게 물어보기도 하고, 검찰 내부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전화가 몇 차례 걸려왔다. 이육래를 잡아넣을 때도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 왔다고 조 검사는 전했다.

실제로 이육래를 수사할 때 여당 중진의원이 전화를 걸어와 ‘관심’을 나타냈다. ‘봐달라’는 소리는 안 했지만, 무언의 압력이었다. 1989년 서울시내 모처에 빌라 형태의 별장에서 검거된 이육래는 검찰에 잡혀 오히려 안도했다고 한다.

그쪽 세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일류대를 나와 머리가 좋았고 각계 인맥도 넓었던 이육래는 그런 배경들 덕분인지 특이하게도 서로 전쟁을 벌이던 양은이파와 서방파, OB파 등 여러 조직을 자유롭게 오가며 책사 노릇을 했다.

범서방파 김태촌·OB파 이동재 호형호제
인맥 관련 소문 무성… 여당 의원에 전화

그러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여러 폭력조직에 다리를 걸치다 보면 결국 바로 그 ‘여러 곳’으로부터 공격당하기 마련. 조직과 조직 사이를 오가며 잇속을 챙기던 그는 결국 언제부턴가 여러 조직의 ‘손봐 줄 대상’이 되고 말았다.

수갑을 든 검찰이나 경찰에 쫓기는 것과 칼을 든 조직에 쫓기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그는 잔뜩 겁을 먹고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별장에 숨는 신세가 됐던 것. 몰릴 대로 몰린 상황에 검찰이 들이닥쳐 어찌 됐든 '일단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100장에 이르는 자술서를 작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거물급 주먹이 그토록 방대한 양의 자술서를 써낸 것 자체가 기록적인 일이라 검찰 내에서 화제가 됐다. 이육래는 자술서에 성장 과정과 주먹세계에서 살아온 얘기를 자세히 털어놓았다. 그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주먹계 세력판도가 파악됐다.

얼마나 자세히 썼던지, 조 검사가 “이육래 자술서에서 깡패 수사의 요령을 배웠다”고 말할 정도였다. 검찰 고위층은 이육래의 자술서를 강력부 검사들에게 교재용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조 검사는 이 자술서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이육래가 자술서에 자신이 아는 몇몇 검사의 이름을 적어놓았기 때문.

범죄와의 전쟁
첫 번째 희생자

대부분 호남 출신인 그들은 조 검사의 선배들이었다. 거기에는 뒷날 김대중정부 시절 검찰 고위직에 오른 두 사람이 포함돼 있었다. 조 검사에 대한 이들의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당사자들은 크게 분개했고 그 일로 조 검사는 두고두고 부담을 안게 됐다.

이육래는 1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후 검찰 상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조사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일로 대검에서 감찰조사를 하려 했으나 무산됐다.

1990년 1월 검찰은 서울지검에 민생특수부를 설치했다. 민생특수부는 검사 5명, 경찰관 15명, 검찰 수사관 24명으로 편성돼 조직폭력 인신매매 음란퇴폐 사범 등을 전담했는데 그해 5월 강력부로 이름을 바꿨다. 심재륜 특수1부장이 민생특수부장을 겸임했다. 심 부장을 따라 조 검사도 민생특수부로 옮겼다.

민생특수부가 발족하면서 전시상태에 돌입했다.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것은 1990년 10월이지만, 실제로는 1989년 여름 이육래를 수사하면서 조폭과의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100장 자술서… 검사들 교재용으로
명상강사로 활동하며 납치·폭행

그런 그가 출소 후 명상 강사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했다. ‘개과천선’을 했나 싶었지만, 알고 보니 진짜 직업은 납치, 협박을 일삼는 ‘채무 해결사’였다. 이육래는 서울 종로의 한 학원에서 가명을 쓰며 직장인들과 학생을 대상으로 명상 수련법을 강의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지인 A씨에게 빌려준 돈 20억원을 받지 못하자, A씨에게 돈을 빌린 사업가 B씨를 표적으로 삼았다. 지난해 8월 B씨를 납치한 이육래 일당은 B씨를 민박집에 가둔 상태에서 마구 폭행했고, 인체에 해가 없는 주사약을 투약하며 성불구자로 만들겠다고 협박했다.
 

B씨는 이육래로부터 직접 돈을 빌린 사람은 아니었다. 지인 A씨에게 빌려준 돈 20억원을 받지 못하게 된 이육래가 그 지인으로부터 돈을 빌린 B씨에게 대신 돈을 받겠다고 마음먹은 것. 이육래의 협박과 폭행을 견디다 못한 B씨는 결국 10억원을 송금했다.

검찰은 이육래가 명상강사로 신분을 속인 채 폭력조직 원로의 영향력을 유지해왔다고 판단해 상습공갈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우리나라 근·현대 조폭계에는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활동하던 ‘낭만파 주먹시대’가 있었다. 그 후 3대 조직이 서울을 장악하기 위해 회칼 등 ‘연장’을 사용하면서 ‘전국구 폭력조직시대’가 시작됐다. 그러다 우두머리들이 구속되고 조직이 해체되면서 이들의 시대도 끝이 났다.

부산 칠성파, 광주 무등산파 등은 전국구에 준하는 조직을 갖추고 있으나 서울 진출을 모색하지 않고 있다. 공권력의 표적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조폭들은 ‘조직’으로 엮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범죄단체 가입’으로 분류되면 형량이 무거워진다. 또 관리대상 명단에 한 번 오르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해야 한다. 행동지침을 만들고 ‘○○파’라고 하면서 세를 형성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진술로
조폭판도 파악

주먹 하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육래의 일대기는 사실상 끝이 났다. 그에게는 평생 폭력·사기·협박 등의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이육래와 호형호제하던 김태촌의 사망 이후 전국구 주먹시대는 막을 내렸다. 전국구 폭력시대는 가고, 대신 ‘기업형 조폭시대’가 본격 도래한 것이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조폭과의 전쟁사

“저는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이를 소탕해나갈 것입니다. 둘째는 민주사회의 기틀을 위협하는 불법과 무질서를 추방할 것입니다. 셋째는 과소비와 투기 또 퇴폐와 향락을 바로 잡아 일하는 사회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1990년 10월 4일 청명 계획이 폭로돼 여론이 끓어오르자 정국을 전환하기 위해 13일 등장한 노태우 전 대통령 특별선언이다.

제5∼6공화국 당시에 공안정국을 조성하면서 경찰력 상당수가 시국사건에 배당돼 치안 공백이 지적되었고 강력범죄가 급증했다. 한편으로 1980년대 호황으로 인해 유흥업 수요가 급증하면서 인신매매와 납치가 여성을 중심으로 극성을 부렸다. 당시 윤락업은 흑산도나 경북 시골에까지 뻗어 있었던 상황이었다. 인신매매 관련 괴담의 상당수가 이때 만들어졌다. 실제로 납치됐다가 경찰의 윤락가 단속 혹은 자력 탈출로 인해 신병이 확인된 여성의 수가 많았다. 더불어 어선 등으로의 남성 납치와 매매도 존재했다.

특별선언 1년 전인 1989년부터 치안본부는 이미 5대 사회악의 특별단속을 지시해 실행 중인 상황이었다. 경찰은 단속강화를 위해 인력 및 장비를 보강했고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인천, 대전 등 6대 도시에 무술유단자 등의 전문요원을 뽑아 사안별로 편성해 운영하는 한편, 광역화된 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공조수사 체제를 구축했다.

검찰 역시도 1989년부터 범죄 단속을 위해 조직을 강화했는데, 대검찰청에 민생치안 문제를 전담하는 강력부를 신설해 인신매매, 가정파괴, 조직폭력, 마약, 부정식품 사범 등 5대 사회악에 강력히 대처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공직자의 뇌물수수 사건 등 공직부패 사범에 대한 국민의 수사 요구가 높아지자 이를 직접 조사하기 위한 조사부를 서울지검 등에 설치했다.

대통령령이기 때문에 그 전에는 적당히 묵인되었던 조직들도 깡그리 소탕됐고 1년 동안 전국 200여개 조직에서 700여명이나 구속됐던 대규모 검거가 이뤄졌다. 다만 이런 과정에서 전국의 경찰국과 경찰서에 실적을 올리라고 압력을 넣는 바람에 애꿎은 사람들이 사소한 트집 하나로 범죄자로 몰려 수없이 체포됐고, 고문수사 역시 늘어나면서 문제시되기도 했다. 또 범죄와의 전쟁 기간에 경찰과 함께 군 병력이 동원되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때 소탕된 범죄조직 수가 적지 않았으며 이 기간에 숨죽이고 있던 범죄자들도 많아 대외적으로는 치안이 상당히 좋아지는 효과가 있었다고는 하나, 이미 1989년부터 진행됐던 검찰 수사로 폭력조직 상당수가 검거된 상황에서 선포된 것으로, 검찰의 수사 실적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범죄율이나 마약사범이 감소했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 별 효과가 없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 체포, 수감됐던 범죄 조직원들이 기간을 채우고 풀려날 2000년대 초중반에 조직이 재건될 것이라고 경찰에서 우려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검거된 범죄자들이 형량을 마치고 점차 풀려나와 조직 재건을 시도하다가 꼬리가 잡히는 경우가 있었지만, 치안에 큰 영향을 줄 정도의 사회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가시적인 피해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조직들은 법인을 내세우는 ‘기업형 조폭’을 표방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조직들을 지탱해오던 수익구조가 시대가 바뀌면서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단순히 폭력을 통한 보호비 갈취가 주였지만 지금은 주식, 부동산, 금융, 이익단체 등에 개입하며 불법적인 성향을 내포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비교적 실체를 파악하기 쉬웠던 범죄와의 전쟁 전의 조폭들과는 달리 요즈음의 조폭들은 점조직의 네트워크로 움직이며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므로 이전처럼 대통령의 결단으로 대대적인 발본색원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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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여당 강세 지역인 만큼 민심은 물론 당심까지 한번에 훑어볼 절호의 기회다. 1차 예비경선도 ‘기승전 이재명’으로 막을 내렸다. ‘찐명’ 타이틀을 거머쥘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여당의 이목이 경기도에 쏠리는 이유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예비경선을 실시했다.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 ▲추미애 의원 ▲한준호 의원 등으로 후보가 압축되면서 3강 체제가 굳어졌다. 권칠승·양기대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진행된 만큼 오직 당심으로만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역인 김동연 후보는 행정력을, 추미애 후보는 검찰개혁 선봉자와 6선의 중량감을, 한준호 후보는 친명(친 이재명)계 조직력을 바탕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심 100% 첫 관문 본경선은 다음 달 5~7일 진행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이 15~17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본경선 투표는 권리당원 50%와 국민 여론조사 50%가 반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 검찰개혁에 앞장선 추 후보는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추 후보 역시 이를 동력 삼아 사법 3법(법 왜곡죄,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과 중수청·공소청 설치 법안 강행 처리를 주도했다. 추 후보는 출마 선언을 통해 선명한 개혁과 강인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난지원금과 청년기본소득을 적극 추진하며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불법 계곡을 정비해 경기도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기도에도 도민을 행정 중심에 놓는 사고의 전환과 강한 결단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 추미애는 개혁이 필요하면 정면으로 돌파했다. 원칙 앞에서 물러선 적이 없었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며 “책임지는 행정, 실천하는 행정으로 경기도정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는 “경기도가 성공해야 이재명정부가 성공한다”며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후보는 “이정부의 실용주의를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성과로 완성하겠다. 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실행, 말이 아니라 결단, 계획이 아니라 책임지는 도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후보는 정부를 이끌 리더십을 강조했다면 한 후보는 보조하는 조력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명심을 내세웠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른 셈”이라며 “민주 당원도 어떤 역할이 이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지 저울질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역인 김 후보는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 대통령에게는 일잘러 도지사가 필요하다”며 행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당시 추진하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등의 정책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례를 성과로 제시했다. 김 후보는 “지금 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속도와 체감’이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로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며 자신이 이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국정 제1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 추 ‘친명’ 한 ‘비명’ 김 앞다퉈 “내가 국정 파트너 적임자” 정치권은 세 사람의 성향이 모두 다른 점에 주목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추미애’ ‘친명 한준호’ ‘비명(비 이재명)이었던 김동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빙자한 ‘친명 선발 토너먼트’인 격”이라며 “최종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당 권력이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니 민주당만의 리그가 됐다. 민주당 최종 후보는 경기도지사직뿐만이 아니라 ‘이재명의 복심’이라는 타이틀까지 얻는 효과를 본다. 민심과 당심의 향배를 모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세 사람 모두 네거티브 경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예비경선 득표율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 측이 “(예비경선) 2위를 확신한다”고 주장하며 불을 지핀 것. 득표율은 후보 본인에게만 공개되지만 본선 진출을 위해 각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경선이 치러진 다음 날인 23일, 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한준호 후보 본경선 전략 브리핑’을 갖고 “당이 후보별 전체 순위와 득표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정치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서도 “한 후보가 상당히 약진했고,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2위를 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재 수치보다 추세와 흐름”이라며 “경기도민과 권리당원들이 경기도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 결과가 이번 예비경선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김 후보는 “순위 발표도 안 됐는데 각자 자기주장 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권리당원의 당심과 경기도민의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의 승리다. 김 후보는 당심이, 나머지 두 후보는 민심에 취약한 만큼 각각 절반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민심과 당심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만큼 후보들은 전략 수정에 나섰다. 그동안 추 후보는 각종 개혁에 앞장서는 등 강성 이미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강성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돼 2024년 하반기 국회의장 선거 당시 낙선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당심은 추 후보를 밀었지만, 의원 투표 결과 온건파인 우원식 후보가 당선되면서 급제동이 걸린 것. 추 후보는 6선의 중진이지만 이번 경기도지사까지 패배하게 되면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역풍 불라” 완급 조절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추 후보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내려놓고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추 후보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입법·사법·행정을 골고루 경험한 유일 후보”라며 “입법을 통해 큰 틀 아이디어를 냈다면 이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완수를 본인의 최대 성과로 내세운 추 후보가 법사위원장을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 것 역시 중도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권리당원 100%로 치러진 예비경선과 달리 본경선은 일반 여론조사와 당원 조사가 각각 50%씩 반영된다. 결국 줄어든 강성 당원의 영향력 만큼 중도층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추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개월간 법사위원장으로서 총 682건의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했다”며 “법 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대법관 증원안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사법개혁 3법과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법안까지 검찰개혁 과제를 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언제나 제 중심에는 국민이 있었고, 어떠한 가시밭길도 외면하지 않았다”며 “2021년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법무부 장관 자리를 떠나야 했던 무거운 발걸음이 아니라 이처럼 뜻깊은 결과를 여러분께 보고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힘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대한민국의 중심 경기도를 승리로 이끌고 이정부와 함께 국민주권시대를 만들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는 오히려 ‘이재명 픽’을 앞세웠다. 이정부를 흔드는 세력을 향해 각을 세우면서 전투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최근 한 후보는 ‘이재명 공소 취소설’의 근원지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자꾸 언급하는 것 자체가 당을 지휘하고 있는 당 대표로서 맞냐는 생각이 있다”며 김어준씨와 정청래 대표 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여권 갈등의 뇌관이 된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 작가는 민주당 지지층을 A(가치 중시), B(본인 이익 추구), C(A, B의 교집합) 등 세가지 그룹으로 분류했으며 특히 B그룹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 후보는 “갈라쳐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반응했고 유 작가가 재반박에 나섰다. 이후 한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가님의 말씀, 무겁게 듣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며 “저를 향한 비판과 비난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하지만 이 대통령님과 정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의 모습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다”며 “선은 분명하다. 그 선은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끊지 못한 명 꼬리표 한 후보는 “53% 싸움”을 내세우며 본경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오는 6월 선출되는 경기도지사의 임기는 4년으로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맞물린다. 따라서 이정부와 합을 잘 맞추는, 명심을 잘 꿰뚫는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게 한 후보 측 지지층의 핵심 메시지다. 한 후보 역시 “‘이재명 지사였다면 벌써 해결했을 일들’을 한준호가 가장 스마트하고 빠르게 해결하겠다”며 “딱 세 표가 부족하다. 나의 한 표에 더해, 가장 가까운 두 분만 더 설득해 달라”고 밝혔다. 김 후보는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위의 김 후보를 추 후보가 뒤쫓고, 한 후보가 마지막 뒤집기 기회를 엿보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중부일보> 의뢰로 경기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는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김 후보는 25%, 추 후보는 22%, 한 후보는 1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방식(CATI)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응답률은 12.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 후보는 당심 100%라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뚫었지만 질긴 비명 꼬리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최대 약점은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본인에게 도움을 줬던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국민 인식이다. 유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당시 이재명) 대표한테 붙어 지사가 된 사람이지 않나. 배은망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24년 임기 후반기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비명 프레임이 굳어졌다. 당시 김 후보는 민주당 전해철 전 의원 등 대표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영입했고, 친명계에서는 “유력 대권후보 주자인 이재명 당 대표에 맞서기 위한 결집 시도” 등 견제가 이어졌다. 김 후보는 표를 분산시키는 친비명 프레임을 깨고 인물론에 승부를 걸었지만 민주당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일부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서 “친명계와 개딸(개혁의 딸)이 벼르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김 후보는 자세를 낮추고 당원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2% 부족한 후보들…해법은? 이제 와서 고개 숙인 김동연 김 후보는 예비경선이 시작된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나는 동지들의 헌신에 보답했는가’ 되묻는다. 많이 부족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후보는 “경기도의 저력도,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도, 당원 동지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갚을 길은 하나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는 선택의 시간 앞에, 당원동지들 앞에 서 있다. 감히 청한다.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라, 당원의 마음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일하라.’ 저 김동연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당원 동지들의 뜻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호소했다. 김 후보는 친비명 논란에 거듭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대통령 중심으로 성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의 친명(친 이재명)·비명은 의미가 없다”며 “경기도는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정 제1파트너로서 충분히 뒷받침하면서, 필요하다면 앞에서 끌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한 후보와 마찬가지로 유 작가의 ABC론을 꼬집었다. 김 후보는 JTBC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가나다’론을 제시하며 “ABC 때문에 논쟁이 벌어진 거 같은데 저는 ‘가나다’로 얘기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는 민주당의 토대다. ‘나’는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고 지지했던 분들, ‘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과 성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론이 조선시대 노론이나 소론도 아니고 가나다로 한데 뭉치고 더하는 민주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가 계파 분열의 초입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에 민주당 원조 친명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은 김 후보를 향한 ‘반명 공세’에 “이 대통령과 어려움을 함께했던 소중한 민주당의 멤버”라며 직접 엄호에 나섰다. 또 김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 김동연 대선후보(새로운 물결)와의 단일화 과정을 회상하며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갔지만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어려운 선거를 함께 뛰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분열은 ‘독’ 친명 지원전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지사의 화합 메시지와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 관계자는 “골수 친명은 김 후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김 후보에게 친문 표가 약 30% 정도 있다고 본다”며 “김 지사가 막판에 승리하려면 이 30%를 유지하면서 당원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명을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다. 등 돌린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