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주먹’ 이육래 파란만장 인생사

개과천선한 줄 알았더니… 여전히 '해결사 노릇'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유명 조폭 두목들에게 선배 대접을 받았다는 ‘호남주먹의 대부’ 이육래. 그가 서울 종로에서 명상 강사로 변신했다. 신분을 속인 채 폭력조직 원로의 영향력을 유지해온 그는 결국 경찰에 꼬리가 잡혔다. 조폭부터 명상 강사까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들여다본다.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과 OB파 두목 이동재에게 선배 대접을 받았다는 이육래는 전남 보성 출신으로 호남주먹의 실세로 통했다. 그는 ‘범죄와의 전쟁’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당시 이육래의 혐의는 이권 갈취. 매립지 인가를 받은 부산의 사업가 송모씨를 납치, 서울 이태원의 한 오피스텔에 사흘 동안 감금해 시가 100억원대의 토지에 대한 양도각서를 강제로 받아냈고, 그 과정에 송씨는 이씨에게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조폭계 대부
이중생활 탄로

전국 규모의 우익단체인 호국청년연합회 간부이기도 했던 그는 서울에서 몇몇 카바레와 나이트클럽 지분을 갖고 있으면서 고급 건달 행세를 했다. 매립지 업자 납치폭행사건에는 서모씨, 배모씨 등 호국청년연합회의 일부 간부가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육래를 수사하기 직전 그가 몇몇 호남 출신 검사와 친분이 깊다는 진정서가 청와대에 접수된 일이 있었다. 청와대는 이를 검찰에 넘겼는데, 조사를 벌인 검찰은 진정서에 이름이 거론된 검사들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선 이육래의 검찰 인맥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검사의 모티브가 된 조승식 검사는 “처음엔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육래가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행방을 감췄기 때문.

권력기관에 있는 사람들이 수시로 전화를 걸어와 이육래의 수사 상황을 관심 있게 물어보기도 하고, 검찰 내부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전화가 몇 차례 걸려왔다. 이육래를 잡아넣을 때도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 왔다고 조 검사는 전했다.

실제로 이육래를 수사할 때 여당 중진의원이 전화를 걸어와 ‘관심’을 나타냈다. ‘봐달라’는 소리는 안 했지만, 무언의 압력이었다. 1989년 서울시내 모처에 빌라 형태의 별장에서 검거된 이육래는 검찰에 잡혀 오히려 안도했다고 한다.

그쪽 세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일류대를 나와 머리가 좋았고 각계 인맥도 넓었던 이육래는 그런 배경들 덕분인지 특이하게도 서로 전쟁을 벌이던 양은이파와 서방파, OB파 등 여러 조직을 자유롭게 오가며 책사 노릇을 했다.

범서방파 김태촌·OB파 이동재 호형호제
인맥 관련 소문 무성… 여당 의원에 전화

그러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여러 폭력조직에 다리를 걸치다 보면 결국 바로 그 ‘여러 곳’으로부터 공격당하기 마련. 조직과 조직 사이를 오가며 잇속을 챙기던 그는 결국 언제부턴가 여러 조직의 ‘손봐 줄 대상’이 되고 말았다.

수갑을 든 검찰이나 경찰에 쫓기는 것과 칼을 든 조직에 쫓기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그는 잔뜩 겁을 먹고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별장에 숨는 신세가 됐던 것. 몰릴 대로 몰린 상황에 검찰이 들이닥쳐 어찌 됐든 '일단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100장에 이르는 자술서를 작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거물급 주먹이 그토록 방대한 양의 자술서를 써낸 것 자체가 기록적인 일이라 검찰 내에서 화제가 됐다. 이육래는 자술서에 성장 과정과 주먹세계에서 살아온 얘기를 자세히 털어놓았다. 그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주먹계 세력판도가 파악됐다.

얼마나 자세히 썼던지, 조 검사가 “이육래 자술서에서 깡패 수사의 요령을 배웠다”고 말할 정도였다. 검찰 고위층은 이육래의 자술서를 강력부 검사들에게 교재용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조 검사는 이 자술서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이육래가 자술서에 자신이 아는 몇몇 검사의 이름을 적어놓았기 때문.

범죄와의 전쟁
첫 번째 희생자

대부분 호남 출신인 그들은 조 검사의 선배들이었다. 거기에는 뒷날 김대중정부 시절 검찰 고위직에 오른 두 사람이 포함돼 있었다. 조 검사에 대한 이들의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당사자들은 크게 분개했고 그 일로 조 검사는 두고두고 부담을 안게 됐다.

이육래는 1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후 검찰 상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조사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일로 대검에서 감찰조사를 하려 했으나 무산됐다.

1990년 1월 검찰은 서울지검에 민생특수부를 설치했다. 민생특수부는 검사 5명, 경찰관 15명, 검찰 수사관 24명으로 편성돼 조직폭력 인신매매 음란퇴폐 사범 등을 전담했는데 그해 5월 강력부로 이름을 바꿨다. 심재륜 특수1부장이 민생특수부장을 겸임했다. 심 부장을 따라 조 검사도 민생특수부로 옮겼다.

민생특수부가 발족하면서 전시상태에 돌입했다.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것은 1990년 10월이지만, 실제로는 1989년 여름 이육래를 수사하면서 조폭과의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100장 자술서… 검사들 교재용으로
명상강사로 활동하며 납치·폭행

그런 그가 출소 후 명상 강사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했다. ‘개과천선’을 했나 싶었지만, 알고 보니 진짜 직업은 납치, 협박을 일삼는 ‘채무 해결사’였다. 이육래는 서울 종로의 한 학원에서 가명을 쓰며 직장인들과 학생을 대상으로 명상 수련법을 강의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지인 A씨에게 빌려준 돈 20억원을 받지 못하자, A씨에게 돈을 빌린 사업가 B씨를 표적으로 삼았다. 지난해 8월 B씨를 납치한 이육래 일당은 B씨를 민박집에 가둔 상태에서 마구 폭행했고, 인체에 해가 없는 주사약을 투약하며 성불구자로 만들겠다고 협박했다.
 

B씨는 이육래로부터 직접 돈을 빌린 사람은 아니었다. 지인 A씨에게 빌려준 돈 20억원을 받지 못하게 된 이육래가 그 지인으로부터 돈을 빌린 B씨에게 대신 돈을 받겠다고 마음먹은 것. 이육래의 협박과 폭행을 견디다 못한 B씨는 결국 10억원을 송금했다.

검찰은 이육래가 명상강사로 신분을 속인 채 폭력조직 원로의 영향력을 유지해왔다고 판단해 상습공갈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우리나라 근·현대 조폭계에는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활동하던 ‘낭만파 주먹시대’가 있었다. 그 후 3대 조직이 서울을 장악하기 위해 회칼 등 ‘연장’을 사용하면서 ‘전국구 폭력조직시대’가 시작됐다. 그러다 우두머리들이 구속되고 조직이 해체되면서 이들의 시대도 끝이 났다.

부산 칠성파, 광주 무등산파 등은 전국구에 준하는 조직을 갖추고 있으나 서울 진출을 모색하지 않고 있다. 공권력의 표적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조폭들은 ‘조직’으로 엮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범죄단체 가입’으로 분류되면 형량이 무거워진다. 또 관리대상 명단에 한 번 오르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해야 한다. 행동지침을 만들고 ‘○○파’라고 하면서 세를 형성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진술로
조폭판도 파악

주먹 하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육래의 일대기는 사실상 끝이 났다. 그에게는 평생 폭력·사기·협박 등의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이육래와 호형호제하던 김태촌의 사망 이후 전국구 주먹시대는 막을 내렸다. 전국구 폭력시대는 가고, 대신 ‘기업형 조폭시대’가 본격 도래한 것이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조폭과의 전쟁사

“저는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이를 소탕해나갈 것입니다. 둘째는 민주사회의 기틀을 위협하는 불법과 무질서를 추방할 것입니다. 셋째는 과소비와 투기 또 퇴폐와 향락을 바로 잡아 일하는 사회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1990년 10월 4일 청명 계획이 폭로돼 여론이 끓어오르자 정국을 전환하기 위해 13일 등장한 노태우 전 대통령 특별선언이다.

제5∼6공화국 당시에 공안정국을 조성하면서 경찰력 상당수가 시국사건에 배당돼 치안 공백이 지적되었고 강력범죄가 급증했다. 한편으로 1980년대 호황으로 인해 유흥업 수요가 급증하면서 인신매매와 납치가 여성을 중심으로 극성을 부렸다. 당시 윤락업은 흑산도나 경북 시골에까지 뻗어 있었던 상황이었다. 인신매매 관련 괴담의 상당수가 이때 만들어졌다. 실제로 납치됐다가 경찰의 윤락가 단속 혹은 자력 탈출로 인해 신병이 확인된 여성의 수가 많았다. 더불어 어선 등으로의 남성 납치와 매매도 존재했다.

특별선언 1년 전인 1989년부터 치안본부는 이미 5대 사회악의 특별단속을 지시해 실행 중인 상황이었다. 경찰은 단속강화를 위해 인력 및 장비를 보강했고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인천, 대전 등 6대 도시에 무술유단자 등의 전문요원을 뽑아 사안별로 편성해 운영하는 한편, 광역화된 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공조수사 체제를 구축했다.

검찰 역시도 1989년부터 범죄 단속을 위해 조직을 강화했는데, 대검찰청에 민생치안 문제를 전담하는 강력부를 신설해 인신매매, 가정파괴, 조직폭력, 마약, 부정식품 사범 등 5대 사회악에 강력히 대처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공직자의 뇌물수수 사건 등 공직부패 사범에 대한 국민의 수사 요구가 높아지자 이를 직접 조사하기 위한 조사부를 서울지검 등에 설치했다.

대통령령이기 때문에 그 전에는 적당히 묵인되었던 조직들도 깡그리 소탕됐고 1년 동안 전국 200여개 조직에서 700여명이나 구속됐던 대규모 검거가 이뤄졌다. 다만 이런 과정에서 전국의 경찰국과 경찰서에 실적을 올리라고 압력을 넣는 바람에 애꿎은 사람들이 사소한 트집 하나로 범죄자로 몰려 수없이 체포됐고, 고문수사 역시 늘어나면서 문제시되기도 했다. 또 범죄와의 전쟁 기간에 경찰과 함께 군 병력이 동원되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때 소탕된 범죄조직 수가 적지 않았으며 이 기간에 숨죽이고 있던 범죄자들도 많아 대외적으로는 치안이 상당히 좋아지는 효과가 있었다고는 하나, 이미 1989년부터 진행됐던 검찰 수사로 폭력조직 상당수가 검거된 상황에서 선포된 것으로, 검찰의 수사 실적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범죄율이나 마약사범이 감소했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 별 효과가 없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 체포, 수감됐던 범죄 조직원들이 기간을 채우고 풀려날 2000년대 초중반에 조직이 재건될 것이라고 경찰에서 우려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검거된 범죄자들이 형량을 마치고 점차 풀려나와 조직 재건을 시도하다가 꼬리가 잡히는 경우가 있었지만, 치안에 큰 영향을 줄 정도의 사회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가시적인 피해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조직들은 법인을 내세우는 ‘기업형 조폭’을 표방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조직들을 지탱해오던 수익구조가 시대가 바뀌면서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단순히 폭력을 통한 보호비 갈취가 주였지만 지금은 주식, 부동산, 금융, 이익단체 등에 개입하며 불법적인 성향을 내포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비교적 실체를 파악하기 쉬웠던 범죄와의 전쟁 전의 조폭들과는 달리 요즈음의 조폭들은 점조직의 네트워크로 움직이며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므로 이전처럼 대통령의 결단으로 대대적인 발본색원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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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확정된 사건이 다시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BBQ 내부망 불법 접속’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ID·비밀번호 메모장’을 둘러싼 위증 여부를 다투는 후속 재판이다. 박현종 전 bhc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관련 증인들을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했다. 핵심은 과연 BBQ 직원의 ID와 비밀번호가 적힌 그 메모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창성 전 bhc 정보전략팀장의 손을 어떻게 거쳐 전달됐는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둘러싼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피고인(박현종 등)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이 반복됐다”는 판단 아래 유 전 팀장 등 관련자 3명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메모장 전달자 통상 위증 여부는 재판부 판단 이후 별도 절차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진술 번복이나 기억 착오 수준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공판의 중심에는 ‘메모장 전달자’로 지목된 유 전 bhc 정보전략팀장이 있다. 그는 과거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박현종 전 bhc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이 메모장은 박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축이었다. 이 메모장의 출처와 작성 경위가 흔들리면, 사건 전체의 구조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건넨 메모장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메모장에 기재된 임직원 계정 정보 뒤에는 ‘퇴사자 임시’라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이는 BBQ 내부망에서만 확인 가능한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에서 추정이나 기억만으로 재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성명불상자가 BBQ 내부망에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해 계정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유 정보팀장을 거쳐 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재판부 역시 “기억과 추리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싣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한 심증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추가 심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인 측은 거칠게 반격했다. 변호인은 검찰 주장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bhc와 BBQ가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상황에서, bhc 소속 직원이 BBQ 내부 직원과 접촉해 계정 정보를 빼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검찰이 실제 내부망 침입을 입증하지 못한 채 추측만을 쌓고 있다고 공격했다. 6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리스크 추가 ‘BBQ 직원 ID·비밀번호 유출’ 둘러싼 공방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기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와 증인 진술 전반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데이터베이스(DB)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사실상 1·2심은 물론 대법원 판단의 기초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이다. 확정 판결 이후 재판에서 “증거 자체가 위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강수로 평가된다. 유 전 팀장은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근무하다가 bhc 매각과 함께 bhc 정보전략팀장으로 이직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박 전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물은 BBQ 재무임원과 재무 실무진이다. 2021년 11월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관련 7차 공판에 유 전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팀장은 박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건넨 이유에 대해 “박현종 회장이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 소송 때문에 BBQ 직원들의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했다”며 “해당 직원들의 개인정보가 업무 수첩에 적혀있어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과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해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팀장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모르겠고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팀장은 BBQ와 bhc의 ICC 중재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소송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 취득 경위와 관련해서는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BBQ 재무임원이 그룹 전산망의 데이터가 다르다고 확인 문의가 왔다”며 “당시 물류 전산망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임원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해 받은 뒤 이를 업무 수첩에 적은 이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이 개인정보를 받았다고 지목한 BBQ 재무임원은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도 전달한 적 없다”며 “업무 처리도 유씨가 아닌 다른 직원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검찰은 유 전 팀장이 그룹 전산망에 접근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부 정보 취득 시점이… 유 전 팀장은 재무임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시점에 대해서도 그간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1년~2012년 즈음에서 2013년 1월로 시점을 바꿨다. 검찰은 증인에게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물류 전산망이 바뀐 시점으로 맞추기 위함이냐고 묻자 유 전 팀장은 “단순 착오”라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으로 일할 당시 BBQ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검찰 질문에 “자신이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의 증언에 BBQ가 퇴사자에게 부여하는 임시 비밀번호를 줄 때 증인이 말한 방식을 쓴 것은 증인 퇴사 이후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BBQ 전·현직 직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bhc가 BBQ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조리 빼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허락하에 BBQ DB를 모두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 진술 이외에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2013년 6월 말 bhc 매각 이후 bhc는 자체 전산망 구축을 위해 BBQ와 bhc 전산망 분리 작업이 필요했다. 그해 7월2일 외부 업체는 해당 작업이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과 부하 직원 한 명, 그리고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던 외부업체는 2013년 7월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불과 12시간 만에 BBQ로부터 분리된 bhc 전산망을 구축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가능했다”며 “BBQ DB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BQ DB 관련 박 회장과 유씨의 진술이 배치되는 데 대해 유 전 팀장에게 묻자 “자신은 박 회장에게 BBQ DB를 가져왔다고 말한 적 없다”며 “박 회장이 검찰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 전 팀장은 노트북 하드 교체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해킹의 목적 첫 증언에서는 bhc 매각 시기인 2013년 이후 노트북 감가상각 5년을 계산해 2018년에 바꿨다고 했지만 이후 2017년으로 고쳤다. 기존 사건이 ‘불법 접속이 있었느냐’는 사실관계 다툼이었다면, 이번 후속 재판은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느냐’는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BQ 직원 계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없었고, 불법적 경로일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무죄였지만,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명확히 유죄로 못 박았다. 그러나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위증을 별도의 범죄로 끌어올린 이상, 수사는 ‘위증교사’를 밝히는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관련자들의 위증을 인정할 경우, 그 진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도했는지가 핵심 수사 대상이 된다. 화살이 결국 박 전 회장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증교사는 기존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로, 추가 기소로 이어질 경우, 사법 리스크도 한층 더 커진다. 문제는 입증이다. 위증교사는 단순한 정황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지시나 교감, 사전 조율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유리한 허위 증언 반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고발까지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제기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BBQ 출신 정보전략팀장 진술 번복 검, 증인들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 이 사건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bhc와 BBQ 사이의 오랜 분쟁이다. 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BBQ 글로벌 대표로 영입됐다. 이어 2013년 BBQ 자회사 bhc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 뒤 bhc 대표로 옮겨가며 양사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등과 함께 bhc를 사들여 오너 경영자가 된 동시에 각종 소송과 형사적 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라, 기업 간 치열한 법적 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검찰에 의하면 박 전 회장은 2015년 7월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bhc 본사에서 BBQ 직원 2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단 도용해 BBQ 전산망에 접속한 뒤 bhc와 BBQ가 연루된 국제 중재 소송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로 인해 박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유 정보팀장으로부터 BBQ 직원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전산망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3차 공판 때 검찰과 변호인은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변호인은 “BBQ가 여러 차례 박현종 회장을 영업비밀 침해 등의 이유로 고소했지만 계속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박현종 회장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며 “왜곡 가능성이 큰 간접 증거만 제시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현종 회장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에 참석해 BBQ 전산망에 접속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bhc가 2013년부터 BBQ 전산망에 무단 접속한 횟수가 236회에 달하지만 행위자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다”며 “박현종 회장은 무단 접속이 명백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지시했나 사면초가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 “2015년 BBQ 직원들이 박현종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했다”는 진술서를 국제 중재 법원에 냈다. 국제 중재 소송에서 질 경우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었던 박 전 회장은 “해당 진술서를 검토하고 반박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박현종 회장 휴대전화에서 BBQ 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 사진이 나왔다. BBQ 전산망 접속 데이터 분석 결과, 박현종 회장이 BBQ 사내 메일을 포워딩(전달)한 개인 메일을 2년 만에 열람한 기록도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 참석자 2명은 박현종 회장을 회의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며 박 전 회장의 알리바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