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끝에 돌아온 손학규 민주당 새 대표

쓸개 곱씹으며 ‘민심탐험’…대권고지까지 ‘첩첩산중’



 지난 3일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민주당의 새 대표로 선출됐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 패배 후 돌입했던 2년간의 칩거생활을 깨고 정계로 복귀한지 불과 2개월만의 일이다.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손 대표에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손학규, 대체 그는 누구인가. <일요시사>가 구석구석 들여다봤다.

노동자들 권익 위해 노동 운동 뛰어들어
인하대·서강대서 제자들 사랑받는 정치학 교수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947년 경기도 시흥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초등학교 교장이었으며 모친 역시 한때 교직에 몸을 담았다. 부친은 손 대표가 세 살이 되던 해에 차량전복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이때부터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모친은 자식들을 위해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새벽에 나가 해가 질 때까지 농사를 지었다. 저녁에는 나무를 하러 나갔다. 안타까움에 주변에서는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 했지만 그의 모친은 “내 남편이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돌아가셨으니 이제 7남매 기르는 것은 내 일”이라며 극구 사양했다.

대입 후 운동권
징역살이 1년

손 대표는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나왔다. 중고등학교 시절 손 대표는 공부 뿐 아니라 서클 활동 역시 열심인 학생이었다.
중학교 시절 손 대표는 밴드부에서 활동했다. 번쩍번쩍 빛나는 금관악기를 들고 행진하는 밴드부의 모습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밴드부에서 손 대표는 트럼펫을 연주했다.

중학교 3년 간 열심히 연습을 했기 때문에 트럼펫 실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연극부에 가입했다.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렸던 손 대표는 연극부 활동에 몰두했다. 혹시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가, 가족들이 걱정할 정도였다.
1965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한 후, 손학규는 사회 현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혼란스런 현실은 그가 온전히 공부에만 힘을 쏟을 수 없게 만들었다.

손 대표는 사회 현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토론은 강의실 뿐 아니라 교정의 잔디밭, 심지어 허름한 대포집까지도 이어졌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차례가 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열변을 토하곤 했다.
손 대표는 당시 한일 협정 반대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운동권’에 발을 들이게 됐다. 시위대 맨 앞줄에서 플래카드를 들거나 돌격대 역할을 했다. 단식 농성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단식 농성을 하더라도 슬쩍슬쩍 나가 배를 채우고 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손 대표만은 언제나 단식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도지사시절 외자·기업유치 일자리 창출로 호평
2년간 칩거생활 깨고 2개월 만에 당권 거머쥐어

대학을 졸업한 손 대표는 저임금으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노동 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구로공단에서 이 공장 저 공장을 떠돌아다니던 손 대표는 박형규 목사의 권유로 기독교 빈민선교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1979년 유신 체제가 막을 내릴 때까지 기독교 사회 운동에 몸을 담았다. 이 때문에 공안 당국에 수배되어 2년 여의 수배자 생활을 해야 했다. 1년간은 감방에 갇히기도 했다.

이후 손 대표는 1980년 불현듯 외국 유학을 결심했다. 주변의 운동권 인사들은 그의 결심을 의아하게만 생각했다. “이제 우리가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왔는데 어디를 나가려는 거냐”는 것이었다. 손 대표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70년대 내내 투쟁으로만 살아온 그였다.
때문에 이제는 머리를 채우고 싶다는 욕망이 솟았다. 그리고 세계를 좀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영국의 ‘크리스천 에이드’라는 교회단체의 도움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게 됐다. 이곳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은 손 대표를 많이 따랐다. 유학생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던 손 대표가 후배들을 무척 아꼈기 때문이다.

후배 유학생들은 손학규 뿐 아니라 손 대표의 부인 이윤영씨 역시 좋아했다. 윤영씨는 늘 조용하고 웃는 얼굴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가 넘쳤다. 손 대표가 윤영씨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로 7년간의 긴 연애 끝에 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
권유로 정계 입문

손 대표는 가난한 유학생이었다. 영국 유학생이라면 쉽게 마음먹을 수 있었던 유럽 관광조차 한 번 나서지 못한 채 공부에만 열중했다.
1988년 박사 학위를 취득한 손 대표는 귀국 후 인하대, 서강대에서 정치학 교수가 됐다. 손 대표는 젊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열정적인 강연을 했다. 제자들과 대화 나누는 것을 즐겼고 아무리 시시한 의견도 끝까지 귀담아 들었다.
이 때문에 손 대표는 사랑받는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치 입문을 권유했다.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던 손 대표였기에 망설임이 없을 수 없었다.

손 대표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정치에 입문할 것을 결정했다. 국민들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정치 개혁에 바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마지막 강의에서 손학규는 제자들에게 “내가 무엇이 되는지를 보지 말고 어떤 일을 하는지를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제자들은 뜨거운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이 날의 박수소리는 손 대표의 가슴 깊이 각인됐다. 정계에 몸을 담고 살아오면서 힘겨운 일을 맞을 때마다 이를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고 한다.
손 대표는 1993년 재·보선에서 민자당 후보로 경기 광명을에서 당선되면서 14대 국회에 입성했다. 이어 15~16대 총선에서 신한국당·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되며 3선 의원이 됐다.

이후 민자당·신한국당 대변인, 신한국당 정책조정위원장·총재 정무특보,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정치인으로서의 경력 외에도 김영삼 정부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 시절 손 대표는 국가적 중요 현안이었던 ‘한약 분쟁’을 무난하게 매듭지어 한의사, 약사 두 협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또한 장애인, 노인, 여성, 서민의 복지 확충을 위한 제도정비에 힘썼다. 4대 보험의 기초가 닦인 것도 그의 재임 기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은 가장 같이 일하고 싶은 장관으로 ‘손학규’를 뽑았다. 재임 기간 중 보여주었던 노력과 열정의 산물이었다.
또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경기도지사를 지내기도 했다. 재임기간 동안 손 대표는 114개의 외국 첨단 기업, 141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하고 8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를 위해 손 대표는 경기도 공무원들과 함께 지구를 10바퀴나 돌며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2006년 6월 경기도지사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100여일간 전국을 돌며 ‘민심대장정’에 나서기도 했다. 말뿐인 정치가 아니라,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기 위해서는 직접 국민들과 부딪치고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로부터 100일 후 민심대장정에서 돌아온 뒤 손 대표는 곧바로 ‘비전투어’에 나섰다. ‘비전투어’란 버스를 토론하기 좋은 구조로 개조, 전국을 누비며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각종 현안에 대한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얻은 결론을 향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비전투어’의 의제는 ‘4+2’였다. 일자리, 노후, 교육, 주거의 네 가지 민생 분야에 정치 개혁과 안보, 두 분야를 추가한 것이다. 손 대표는 총 17차례에 걸쳐 전국 각지를 돌며 각 의제에 대하여 국민들과 토론을 벌였다.
이후 대선을 앞둔 2007년 3월, “새로운 길을 열겠다”며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 대표는 그해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정동영 후보에 밀리면서 고배를 마셨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을 거쳐 통합민주당을 이끌었으나 2008년 18대 총선 패배 이후 민주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강원도 춘천의 산골 농가로 들어간 손 대표는 닭을 키우고 등산을 하는 등 소일하며 2년여 동안 와신상담 해 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몇 차례 정계 복귀 기회가 있었다. 그 때마다 손 대표는 “아직 반성이 끝나지 않았다”며 한사코 거부했다.

배추밭 방문 등
민심 챙기기 나서

올해 8월 마침내 정계 복귀를 선언하면서 칩거를 마친 그는 곧바로 당권 도전에 나섰고, 불과 2개월 만에 당권을 거머쥐게 됐다. 취임 직후 손 대표는 채소값 파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랭지 배추밭을 방문하는 등 ‘민심챙기기’에 적극 나섰다.
손학규호의 닻은 올랐다. 문제는 앞으로다. 내부적으로 다양한 계파를 단합시키는 한편, 민주당을 국민의 정당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손 대표가 어떤 리더십을 보여 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손학교 민주당 대표 프로필

■학력
·1953 시흥초등학교 4년
·1959.3 매동초등학교 졸업
·1959.4~1962.2 경기중학교
·1962~1965 경기 고등학교
·1965~1973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1981~1988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정치학 박사


■경력
·1973 수도권 특수지역선교위원회(위원장 박형규 목사) 빈민선교 간사
·1977~1979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김관석 목사) 인권운동 간사
·1986~1987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1988~1990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0~1993 서강대학교 사회과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3 제 14대 국회의원(경기 광명)
·1996 제 15대 국회의원(경기 광명)
·1996.11~1997.8 제 33대 보건복지부 장관
·1999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2000 제 16대 국회의원(경기 광명)
·2002.7~2006.6 민선 3기 경기도 지사
·2006.6~2006.10 100일 민심대장정
·2008.1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2008.2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수상경력
·2000 백봉 나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제 2회 백봉신사상
·2001 백봉 나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제 3회 백봉신사상
·2001 평등부부상
·2005 한국을 빛낸 CEO-글로벌 경영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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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