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D-6개월> 위기의 효자종목들

금메달 확신하다 큰 코 다칠라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지구인의 축제 올림픽이 오는 8월5일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는 국가 중심의 강력한 엘리트스포츠 정책으로 세계 속의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섰다. 이러한 영광의 중심에는 ‘효자종목’이 있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6개월여 앞둔 현재 우리나라의 메달밭에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는 2000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이후 4회 연속 10위권 진입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유망주 발굴의 미진함과 확실한 메달권 선수들의 은퇴 이밖에 부상, 약물파동, 폭행파문 등으로 10위권 수성에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국대 간판스타들
영광 재연 가능?

박태환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과 200m 은메달을 따내며 수영의 불모지로 불렸던 우리나라에 첫 영광을 안겼다.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400m와 200m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자존심을 지켰다. 하지만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박태환은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 직전인 2014년 9월, 금지약물 검사에서 세계반도핑기구(WADA) 금지약물이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이 검출돼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18개월의 선수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국제수영연맹의 징계는 오는 3월2일 끝나지만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에 의하면 박태환은 3년간 태극마크를 달 수 없는 상황이다. 체육회는 규정 개정을 검토 중이고 국민생활체육회와 체육단체 통합 작업이 끝나는 3월 이후에야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참가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비단, 세계정상급 선수의 문제는 박태환 뿐만이 아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재혁은 지난해 12월31일 후배 유망주 황우만 선수를 폭행해 선수 자격정지 10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로써 오는 8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리우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역도계에서 현역으로 선수생활은 불가능하다. 사재혁은 베이징올림픽 남자 역도 77kg 급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우리나라에 깜짝 금메달을 선물했다.

 

그 다음 올림픽인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팔꿈치가 탈구되는 부상을 당하면서도 투혼을 발휘해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올해 리우올림픽에서는 체급을 올려 금빛 사냥에 나섰지만 후배를 폭행하며 모든 꿈이 사라지고 말았다.

태권도는 우리나라의 국기(國技)이자 상징인 스포츠로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시드니 올림픽 3개의 금메달을 시작으로 아테네올림픽 2개, 베이징올림픽 4개로 3개대회 연속 2개 이상의 금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하나에 그치면서 종주국으로써의 자존심을 구겼다. 런던올림픽에서 기대보다 성적이 안 나온 이유 중 하나는 종주국 한국을 비롯한 특정 국가에 메달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 남녀 2체급씩만 출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런던올림픽에서는 8개의 금메달이 8개국에 골고루 돌아갈 만큼 세계 태권도의 평준화도 한 몫 했다. 이번 대회부터는 올림픽 랭킹에 따른 자동출전권을 부여하면서 한 나라에서 최대 8체급 모두 출전할 수 있게 룰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5체급에 선수들을 내보내게 됐다. 런던에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 할 수 있는 발판은 충분히 마련된 모습이다.

리우올림픽 4회 연속 종합 10위권 목표
“메달 텃밭 예전 같지 않다” 수성 적신호


레슬링의 경우도 전통적 강세종목으로 한국의 올림픽 금메달 역사를 레슬링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첫 레슬링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참가한 올림픽에서 2004년 아테네올림픽때까지 매 대회 금메달 1개 이상을 획득했다.

심권호에서 정지현으로 이어지는 금맥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노골드에 수모를 당하면서 부침을 겪었다. 힘들고 배고픈 운동이라는 인식과 비인기 종목이라는 설움에 2013년에는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퇴출당하는 수모까지 겪으면서 우리나라 레슬링은 고난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7개월 만에 정식종목 채택 투표에서 과반을 얻어 퇴출의 위기를 넘겼다. 2012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김현우 선수가 남자 그레꼬로만형 66kg급에서 눈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조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김 선수는 여러 위기 속에서 체급을 올려 2체급 올림픽 우승을 노리고 있다. 심권호 선수의 영광을 재연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수영·역도·체조
‘설마’ 위태위태

역도의 경우도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이다. 대한민국 역도의 간판스타 장미란이 은퇴하면서 여자 역도에서 금맥이 끊긴 상황이다. 남자는 간판인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재혁 선수가 후배를 폭행해 선수생활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한 나라가 얻을 수 있는 출전권 최대 10장을 모두 손에 넣었지만 최근 극심한 침체에 빠져 리우올림픽에서는 7장의 출전권을 얻는 데 그쳤다.

한국역도는 세대교체에 실패해 메달 획득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다. 윤석천 한국 역도대표팀 감독은 “리우올림픽에서 최상의 성적을 내고,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과 2020년 도쿄올림픽을 겨냥해 신예를 키워야하는 두 가지 숙제를 안고 있다”며 “무척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드민턴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부터 한국의 효자 노릇을 했다. 이후 런던올림픽까지 금메달 6개, 은메달 7개, 동메달 5개를 선사하며 배드민턴 강국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배드민턴은 지난 올림픽서 가장 큰 굴욕을 맛봤다. 여자복식은 4강전에서 강한 상대를 피하기 위해 ‘져주기 논란’이 일면서 실격당했고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당시 토마스 군드 세계배드민턴연맹 사무총장은 “고의적인 ‘져주기 게임’에 연루된 8명의 선수를 대상으로 청문회를 열었다”며 “이들은 전날 경기에서 반복적으로 서비스를 네트에 꽂거나 일부러 스매싱을 멀리 보내는 불성실한 경기를 펼쳐 모두 실격 처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외신들도 “이들 선수가 경기에 이기려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며 “그런 방식의 행동은 분명히 스포츠에 대한 모욕이자 해악”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런던올림픽에서는 져주기 파문과 함께 이용대-정재성 복식조의 동메달 하나에 만족해야 했다.

리우올림픽에서는 이용대-유연성 조가 금빛 사냥에 나선다. 지난해 5월부터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를 꾸준히 지키고 있다. 이득춘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은 “런던에서 동메달 하나에 그치고 승부조작 파문이라는 불미스러운 일까지 있어서 아쉬움이 컸다”며 “리우에서 명예회복을 하려고 대표팀 모두가 남다른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림픽 탁구종목에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금메달 3개, 은매달 3개, 동메달 12개를 거뒀다. 중국이 24개의 금메달을 거둔 것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중국에 이어 2번째로 많은 금메달을 거뒀다는 점에서 우리의 탁구는 중국의 유일한 대항마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8년 개인단식의 유남규와 여자 복식 양영자-현정화에 이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유승민이 남자 단식 금메달을 국민에게 안겼다.

하지만 이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남녀 단체 동메달 1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남자 단체전이 은메달에 그쳐 금맥이 끊긴 상황이다. 올림픽서 중국의 독주를 막기 위해 여러 차례 규정이 변경되기도 했다. 지름 38mm 공에서 40mm 공으로 변경하고 21점이던 세트 점수를 11점으로 낮추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독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문수 대표팀 총감독은 “1980년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은 견제 대상이었다”며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유리한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 한국만의 거친 탁구가 사라졌다”며 “올림픽을 분기점으로 한국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 올려야 한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체조의 경우 우리나라 간판스타 양학선의 금 사냥에 적신호가 켜졌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양학선은 한국 체조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올림픽 체조 종목에 도전한 지 50여년만의 일로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씻었다. 당시 양학선은 ‘비닐하우스 집’에서 자라면서도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고 사람들은 양학선의 노력에 찬사를 보냈다.

믿고 봐도 되나
더이상 효자 없다

양학선은 ‘양1’이라고 불리는 신기술을 개발해 국제체조연맹 채점 규정집에 가장 높은 점수인 난도 7.4에 해당하는 기술로 이름을 올렸고,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2011년 도쿄세계체조선수권 금메달을 따면서 파죽지세를 이어나가 런던에서도 금 사냥에 성공했다.

하지만 양학선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면서 한풀 꺾인 모습이다.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태에서 출전을 강행했고 결국 은메달에 그치며 아시안게임 2연패에 실패했다.

이후 지난해 광주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명예회복을 노렸지만 연기 도중 허벅지 통증을 호소하면서 결국 자존심 회복에도 실패했다. 양학선은 당장 태극마크를 달지는 않지만 리우올림픽에 출전할 가능성은 높은 상태다. 양학선은 지난해 광주유니버시아드 당시 “다음에는 경기에 나가 실수로 금메달을 못 따도 부상으로 컨디션이 안 좋다는 말은 나오지 않게 하겠다”며 명예회복을 다짐했다.


유망주 발굴 미진…주축 선수는 은퇴
부상, 약물 등 파문으로 험난한 여정

우리나라의 독주를 막기 위해 세계양궁연맹은 런던올림픽부터 총점을 보는 기록제 대신 세트점수로 승부를 가리는 세트제 방식으로 본선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세트제 방식에도 불구하고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로 한국의 종합순위 5위를 견인했다.

문형철 대표팀 총감독은 “올림픽 때마다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은 전 종목 석권”이라며 “이는 모든 양궁인들의 꿈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경기 방식이 바뀌면서 상황은 나빠졌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만큼 전 종목 석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궁은 올림픽 메달보다 어렵다는 국내 선발전을 통과해야 리우에 갈 수 있는 만큼 금빛 물결을 향한 선수들의 화살이 과녁을 정조준하고 있다. 유도의 경우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일본, 프랑스에 이어 가장 많은 11개의 금메달을 수확해 유도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1988년도부터 꾸준히 이어오던 금맥이 2000년도에 끊기면서 유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이원희가 금메달을 따면서 금 사냥의 신호탄을 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최민호가 전 경기 한판승을 거두면서 한국유도의 자존심을 지켰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송대남, 김재범이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유도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는 73kg급의 안창림과 90kg급 곽동한이 금 사냥에 나선다.

서정복 유도대표팀 총감독은 언론을 통해 “그동안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가 최고 성적이었지만, 리우에서는 금메달 3개 이상에 도전하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 “열심히 준비해서 리우올림픽에서 최고의 무대를 한 번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올 3월 출범 예정인 통합체육회 정회원 단체 자격규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생활체육회와 대한체육회가 통합해 출범하게 되는 통합체육회는 57개 정회원 단체와 15개 준회원 단체, 11개 인정 단체, 13개 등록 단체로 구성될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6일 “통합체육회의 회원종목 단체들에 대해 종목 경쟁성과 저변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등급을 조정·분류했으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이를 재평가해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2년 뒤 재평가 과정에서 정회원 단체가 되려면 17개 시도종목 단체 가운데 최소한 6개 시도종목 단체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동호인들이 주로 하는 생활체육은 시군구 단위로 구성하기 수월하지만 동호인들이 많지 않은 엘리트 체육의 경우 하부조직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 대한체육회 소속 일부 가맹단체들의 주장이다.

혹시…
양궁·태권도도?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이 규정은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합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기존 대한체육회 규정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지만 이것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림픽 종목단체가 준회원단체로 강등되면 ‘국가올림픽위원회(NOC) 구성 시 올림픽 종목 단체는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 어긋난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도 “정회원 단체나 준회원 단체나 모두 통합체육회 구성원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 동계 종목은 지금…김연아 없는 평창 ‘희망 보인다’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등 빙상 종목에서 세계 정상의 실력을 뽐내며 빙상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반면에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루지 등 썰매 종목은 메달권과 거리를 두며 국민의 관심 밖에 있었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서는 선수들이 60여명에 불과할 정도의 ‘썰매 불모지’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스켈레톤의 신성 윤성빈 선수는 IBSF 2015∼2016 월드컵 6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내 5개 대회 연속 메달의 상승세를 이어가며 세계 랭킹을 2위까지 끌어올렸다.

2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메달이 예상된 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봅슬레이에 원윤종-서영우는 지난 23일 월드컵 5차 대회에서 우승해 세계 랭킹 1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꾸준
봅슬레이·컬링 메달 진입 기대

한국은 물론 아시아 출신이 봅슬레이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처음이었다.

이용 국가대표팀 감독은 “원윤종의 드라이빙 실력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세계 여러 코치들도 봅슬레이에 입문한 지 5년 만에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한국이 처음인 것 같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남자컬링이 첫 출전한 유럽투어에서 준우승을 거두면서 빠르게 세계 정상권으로 도약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는 컬링 남자·여자, 혼성 종목까지 총 3개의 금메달이 걸려있다. 컬링은 2년 안에 세계 정상권과 격차를 충분히 좁힐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컬링연맹 관계자는 “올해 4월에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되는 세계남자컬링선수권대회와 평창동계올림픽에서의 메달 가능성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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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