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장탐구-완결편>좌절? 그게 뭔데! 우근민 제주도지사

“4년 후는 없다! 마지막 도전에 임하는 자세로 간다”


이번 제주도지사 선거는 피를 말리는 ‘대역전극’이었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개표 중반을 넘도록 좀처럼 표차를 줄이지 못하다 읍면지역 투표함이 막판에 열리면서 0.8%포인트 차이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동안 관선, 민선 등 모두 4차례나 제주도지사를 지낸 우 지사는 이로써 다섯 번째 제주도정을 이끌게 됐다.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 하차 등 좌절 딛고 일어나
첫 역점 과제는 ‘제주해군기지 해법 제시’ 될 전망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서 해녀의 아들로 태어난 우근민 제주도지사. 평생을 제주도에서 살아온 토박이로, 그만큼 제주 지역정서에 밝다.

제주 토박이로
제주 정서에 밝아

우 지사는 군장교로 복무하던 1974년 합참의장 출신인 심흥선 총무처 장관의 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총무처 인사국장, 기획관리실장, 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91년 처음 관선 제주지사를 지냈다. 처음 출마한 1995년 민선 초대 제주지사 선거에서는 맞수인 신구범 후보에게 밀리면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1998년, 2002년에는 잇따라 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그간 우 지사는 관선·민선을 합쳐 4번 지사를 지냈다. 여기에 지난 6·2지방선거에서 다시 제주도민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한 번도 하기 힘든 도백을 다섯 차례나 맡게 됐다. 두 차례는 임명직이었던 점을 차치하더라도 이는 지방정치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렇지만 정치인으로서 굴곡이 없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숱한 시련과 역경이 그를 기다렸다.
가장 큰 고비는 2002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토론회에서 “신 전 지사가 축협중앙회장으로 재직할 때 대우 채권 같은 것을 사서 5100억원의 손실을 입혔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가 허위사실 공표 혐의(선거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데 이어 2004년 4월 대법원에서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으면서 중도 하차한 것이다.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사 재임시절의 불미스런 전력은 최근까지도 그의 발목을 붙들었다. 6.2선거를 앞두고 그게 화근이 돼 결국 민주당 공천에서 배제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나중에 공천장을 준다 해도 찢어버리겠다”며 울분을 삼킨 우 지사는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 피 말리는 접전 끝에 현명관 삼성물산 전 회장을 누르고 신승했다.

좌절을 모르는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본인 말마따나 ‘6년 백수’는 결과적으로 절치부심, 와신상담을 위한 공백기였던 셈이다.
우 지사의 이런 강인함의 원천은 어린 시절 모진 가난을 견뎌낸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의견이 많다. 가난한 어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네 살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읜 그가 오로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에 매달리면서 승부 근성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총무처 등 서울 생활을 하면서 쌓은 친화력과 폭넓은 인맥, 특유의 조직관리 능력도 그가 여기까지 오는데 한 몫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 지사는 선거기간은 물론 당선 직후에도 “4년 후는 없다”고 했다. 마지막 도전이라는 자세로 도정에 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불우한 가정환경에
승부근성 생겨나

우 지사의 첫 역점 과제는 ‘제주해군기지’ 해법 제시가 될 전망이다.
우 지사가 이미 후보 당시 공약을 통해 일방적인 해군기지 공사착공 중단을 누차 강조했고, 합리적 해결방안 마련을 공언해온 마당에 해군측이 공사강행 의사를 분명히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는 우 지사가 도민갈등 해소와 소통 도정의 핵심사업으로 거듭 천명해온 해군기지 합리적 해법 도출에 대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이에 따른 우 지사의 대응이 주목되는 가운데 그는 “상대방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마음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며 “해군이 공사 강행만을 강조한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해결 방안을 바라는 도민 여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 지사는 “해군기지 갈등을 풀지 않으면 제주 사회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 한다”며 “제주도민, 국방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윈윈’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 지사가 경제공약으로 내놓은 ‘일자리 2만 개 창출’도 역점 사업 중 하나다. 구체적으로 식품산업과 한방·바이오융합산업 등 5대 향토자원 성장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1500억원을 투자하게 될 ‘고품질 감귤 생산 및 감귤 클러스터 구축’ 방안은 감귤 생산이 많은 지역 특성을 살린 일자리 공약으로 평가된다.

청년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청년희망 프로젝트’가 눈길을 끌었다. 우 지사는 “우수 중소기업에 1년에 500명씩 임금의 절반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2년 동안 일한 청년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향토자원 5대 성장산업 육성 5280개 ▲첨단기술 4대 제조업 600개 ▲국제자유도시 프로젝트 7220개 ▲성장유망·타켓 기업 및 콜센터 유치 1500개 ▲중소기업 육성 연계형 일자리 1700개 ▲미래를 위한 인재육성 분야 3700개 등이 제시됐다.

일자리 2만 개 창출…희망청년 프로젝트에 눈길
“‘수출 1조원 시대 개막’ 임기 내 반드시 이룰 것”


연도별 일자리 창출 계획은 올해 1069명을 시작으로, 2011년 3095명, 2012년 3199명, 2013년 5606명, 2014년 7031명 등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예산 확보 계획은 물론 안정적 일자리 창출방안, 산업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미스매치’ 해결 방안 등이 아직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실천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민·관·산·학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 등 공론화 전략과 함께 국비 확보를 위한 중앙절충 강화가 요구되고 있다.

우 지사가 약속한 ‘수출 1조원 시대 개막’은 임기 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바다. 이에 대해 우 지사는 “제주 수출은 그동안 큰 관심을 받지 못해 수출입국의 변방이었고 사각지대였다”며 “수출정책은 도전과 개척의 경영마인드로 경쟁력을 갖춰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그는 울산, 거제, 창원 등과는 다른 제주의 청정환경, 향토자원, 그리고 농수축산물을 활용해 경쟁력 있는 수출 상품을 만들고, 수출경제의 활성화를 중장기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제조업의 한계에도 도전, 레저용 선박 부품 제조업, 레저스포츠용품 제조업, 스마트그리드 및 재생에너지 부품 제조업, IT융합산업 등 첨단기술 신성장 4대 제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제주의 1차산업을 유통서비스 경영과 결합, 2~3차산업으로 업그레이드시키고, 제주의 청정농수축산물과 향토자원을 활용한 ‘제주의 식품산업’을 대한민국의 대표적 수출산업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또 수출정책을 주도할 ‘통상마케팅본부’를 설치해 ‘통상마케팅본부 준비기획단’을 구성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전략 산업으로 물, 농수축산물과 같은 향토자원을 활용한 5대 신성장산업을 육성할 예정이다.

우 지사는 또 영리병원은 일체의 논의를 중단해 줄 것을 도민사회에 요청했다. 우 지사는 “공공의료 체계가 미흡한 상태에서 경제적 측면만을 고려해 영리병원을 도입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영리병원 도입에 대한 일체의 논의 중단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또한 내국인 카지노와 관련, 우 지사는 “경제적·재정적 이익과 더불어 사회적 비용과 부작용도 면밀하게 검토하고 분석해야 한다”며 “한쪽 측면만 중시하다가는 제주 사회에 상당히 부담될 수 있는 현안이기에 도민 공감대가 형성될 때까지 논의를 보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도민 역량을 결집하고 도민 사회를 통합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환경 정책과 관련해 우 지사는 ‘선보전 후개발’ 방식을 기초로 환경과 경제의 통합, 주민 참여의 활성화, 갈등 예방 등 3대 방향을 적용할 뜻을 분명히 했다.
또 그는 탐라천년 문화권 정립사업을 국책종합사업으로 추진하고, 문화예술정책은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을 확고하게 지킬 것과 저출산 탈피를 위한 출산율 2.0 제주플랜과 무상보육 및 무상급식을 통한 맞춤형 보육시스템 구축에도 나설 것을 약속했다.

특히 우 지사는 특별자치와 국제자유도시라는 두 가지 제도를 충분히 활용, 동아시아 시대의 중심지로 웅비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 가칭 ‘특별자치와 국제자유도시 글로벌 네트워크’를 창설해 제주가 동아시아 지역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온 몸 바쳐 제주
발전에 헌신할 것”

이에 대해 우 지사는 “이는 도정의 힘만으로는 어렵다”며 “종교인, 시민운동가, 언론인 등 도덕성을 요구받는 분들은 더 무거운 책임을 짊어주셔야 한다”고 각계의 협조를 요청했다. 이와 함께 우 지사는 “제가 지사직에서 물러난 후 도민 여러분이 ‘우근민 도지사와 함께 한 시간이 즐거웠고 행복했다’는 말씀을 하실 수 있도록 온 몸을 바쳐 제주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맹세했다.


우근민 제주도지사 프로필
 
학 력
1958 ~ 1961 : 성산수산고등학교
1967 ~ 1971 : 명지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과(학사)
1971 ~ 1973 : 경희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

경 력
1982. 08 ~ 1991. 03 : 총무처 인사국장 및 기획관리실장
1991. 03 ~ 1991. 07 : 제12대 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
1991. 08 ~ 1993. 12 : 제27, 28대 제주도지사
1996. 09 ~ 1997. 03 : 남해화학 주식회사 사장
1997. 03 ~ 1998. 03 : 제17대 총무처 차관
1998. 07 ~ 2002. 06 : 제32대 제주도지사
2002. 07 ~ 2004. 04 : 제33대 제주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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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