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점령하는 외국계 자본 막전막후

국내 명물 휴게소 다 넘어간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고속도로 휴게소가 탈바꿈하고 있다. 졸음운전을 예방하고 허기진 배를 달래던 곳에서 벗어나 이젠 각종 문화행사의 장이자 진정한 휴식터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유동인구가 많은 거점 휴게소의 매출은 급등하고 있으며 휴게소 운영권을 노린 외국계 자본의 유입도 한층 빨라지는 양상이다. 최근 공격적으로 고속도로 휴게소 인수에 나선 '맥쿼리자산운용'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호주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금융그룹인 ‘맥쿼리자산운용’은 지난 2000년 국내에 투자회사 형태로 진출했다. 이후 M&A, 인프라스트럭쳐 파이낸싱, 구조화 금융상품, 인프라펀드운용, 부동산 관련 부채 및 자본 관리, IT 장비 및 기술자산 전문 리스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투자 공룡
침공 시작됐다

M&A에 열을 올리는 여타 외국계 사모펀드와 달리 일찍부터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인프라 공룡’이라는 별칭마저 얻었다. 지난 2002년 이후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광주순환도로, 우면산 터널, 마창대교, 부산신항만 등 12개 민자사업에 투자한 금액만 약 1조원을 웃돈다.

맥쿼리가 잇달아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뛰어든 것은 높은 수익성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수익형(BTO) 민간투자사업의 세전 경상수익률이 10%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12년(9.92%)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1996년 16.32%, 2000년 15.59%를 비롯해 최소 10%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받았다. 2000년 초반 금리하락으로 국고채(3년물)와 회사채(AA-) 수익률이 급락한 것과 비교하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들 사업의 공통점은 각 지역별 교통의 핵심이 되는 시설이라는 점이다. 한발 더 나아가 맥쿼리는 최근 주요 고속도로망에 위치한 거점 휴게소를 사들이는 데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평창휴게소 인수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달 22일 맥쿼리는 한국도로공사가 매물로 내놓은 '평창휴게소'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매각금액은 약 367억원. 지난해 8월 매각공고 이후 4번째 입찰 끝에 평창휴게소를 인수한 맥쿼리는 오는 11월30일까지 대금을 완납하면 20년간 평창휴게소를 운영할 수 있다.

맥쿼리의 평창휴게소 인수는 2018년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라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평창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평창휴게소의 입지를 고려하면 동계올림픽 전후에 관광객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사이 맥쿼리는 평창휴게소 운영업체로부터 임대료를 받게 된다.

국민 휴식터 변모…규모 갈수록 커져
‘큰손’ 맥쿼리 1·2위 휴게소 인수

더욱이 정부의 공공기관 부채 감축 정책에 따라 도로공사가 몇몇 휴게소 매각을 추진 중이었다는 점에서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IB업계 관계자는 “평창휴게소 인수로 맥쿼리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을 찾는 외국인들의 처음과 끝을 모두 연결하게 됐다”며 “향후 수익을 기대한다면 투자가치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사실 맥쿼리의 고속도로 휴게소 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휴게소업계에서 도로공사 다음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고 알짜배기 휴게소들이 맥쿼리 수중에 순차적으로 들어온 상황이다. 지난해 연이어 운영권을 따낸 ‘덕평자연휴게소’와 ‘행담도휴게소’가 대표적이다.


수익성 확실
결국 이윤 극대화

맥쿼리의 휴게소 진출은 행담도휴게소 인수를 통해 구체화됐다. 서해안고속도로에 위치한 행담도휴게소는 매출액 기준 국내 2위 휴게소이다.

지난해 3월 도로공사는 씨티그룹이 보유한 행담도개발주식회사의 지분(90%) 매각을 승인했다. 당시 행담도휴게소의 운영권을 가진 행담도개발의 지분 나머지 10%는 도로공사가 보유한 상태였다.

앞서 씨티그룹은 지난해 맥쿼리자산운용이 국내 기관투자가로부터 자금을 모은 한국증권금융에 지분을 1250억원에 매각하고 다시 3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바 있다. 다만 맥쿼리측은 지분만 소유하고 휴게소 운영은 CJ측에서 맡기로 했다.

행담도휴게소를 손에 넣은 맥쿼리의 행보는 한층 더 빨라졌다. 행담도휴게소의 운영을 맡고 있는 행담도개발 대주주로 맥쿼리가 등장한 뒤 대형 아울렛이 들어서는 등 행담도 휴게소 관광단지화 사업은 속도를 내기 시작한 상황이다. 아직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행담도 내 약 15만6000㎡부지 역시 도로공사가 이미 매각을 결정했다.

여기에 지난 9월부터 서해안고속도로 최초로 행담도휴게소에 양방향 통행이 가능한 회차시설이 설치되면서 휴게소 이용자 증가는 물론 매출 수익 극대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거점 휴게소
독차지 속내?

행담도휴게소에서 시작된 맥쿼리의 휴게소 사업은 덕평자연휴게소 인수로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 맥쿼리는 국내 최대 고속도로휴게소인 덕평자연휴게소를 코오롱글로벌로부터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코오롱글로벌은 덕평자연휴게소 지분 49%를 맥쿼리측에 처분한다고 공시했다. 매각 금액은 133억원에 이른다. 당초 코오롱글로벌은 지분 전체를 맥쿼리에 파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정책 당국과의 협의 과정을 통해 49% 지분을 맥쿼리에 넘기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4월20일 경기도 이천의 영동고속도로 인천기점 70km 지점에 문을 연 덕평자연휴게소는 매출 기준 국내 최대 고속도로 휴게소다. 지난해 매출 551억원, 방문객수 1224만명으로 2위인 서해안고속도로 행담도휴게소보다 두 배 이상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만큼 알짜배기로 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평휴게소가 매물로 나온 것은 소유주였던 코오롱글로벌의 넉넉지 않은 자금 사정 때문이었다.

코오롱글로벌은 2015년 만기까지 상환해야 하는 약 1300억원의 빚을 떠안고 있었다. 덕평자연휴게소를 비롯한 자산매각을 통해 1100억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하면서 채권 상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 코오롱글로벌 관계자는 “연초에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계획했던 자산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됐다”며 “추가 자산 매각을 통해 회사 경영 여건을 정상화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매출 급성장에 외국자본들 ‘눈독’
부채 많은 도로공사 잇단 매각

문제는 맥쿼리의 휴게소 연이은 인수가 대중에게 그리 긍정적으로 비춰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동안 맥쿼리는 싼 값에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해 몇 년 후 비싼 값에 되파는 자본으로 인식된 게 사실이다.


지난 2013년에 서울지하철 9호선의 요금을 인상하려는 주범으로 몰렸던 것도 맥쿼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한몫 했다. 당시 맥쿼리는 최대주주가 아닌 2대주주(24.5%)였고 다른 주요주주들과 함께 요금인상 결정을 내렸지만 비난의 화살은 맥쿼리에 집중됐다. 
 

그러나 맥쿼리는 이 같은 세간의 시선에 억울하다는 입장을 줄곧 표명했다. 맥쿼리는 펀드를 통해 투자를 하며 투자 수익은 펀드 투자자에게 귀속된다는 것이다. 즉, '먹튀'가 아니라 투자를 통해 국내 기관투자가 등에게 양호한 수익을 실현시켜다는 주장이다.

IB업계 관계자는 “맥쿼리는 지난 2002년 이후 인천공항도로 등 국내 인프라에 지속적으로 투자했다”며 “일각에서 맥쿼리가 챙겨간 이익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나왔다”라고 말했다.

최근 민자사업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이어지면서 해당사업 규모 최근 들어 급감하는 분위기다. 재정부담으로 정부가 민자사업자에 대한 수익률을 깐깐하게 단속하기 시작한 게 결정적이었다. 맥쿼리가 휴게소로 눈을 돌린 것도 이 시점이다.

경영? 뻥튀기?
진짜 노림수는?

한편 맥쿼리가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휴게소 투자에 집중하면서 추가적인 휴게소 인수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미 도로공사는 정부의 공공기관 부채 감축 정책에 따라 휴게소 4곳의 소유권 매각을 추진했지만 알짜 자산으로 평가받는 평창휴게소 외에는 새 주인을 찾는 데 실패한 만큼 매물은 충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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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