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 몰린 해피랜드 '삼중고 내막'

행복은 무슨…불행의 서막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절체절명의 위기다. 해피랜드 F&C 앞에 악재가 연속이다. 임용빈 해피랜드 회장은 횡령죄로 검찰에서 수사 중이며, 회사는 국세청에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해피랜드가 밀어내기를 해 갑질 논란까지 휩싸였다. 해피랜드에 드리운 악재를 들여다봤다. 

 
 
해피랜드는 국내 토종 아동복 기업이다. 1990년 문을 연 뒤 25년째 국내 시장에서 아동복 제조·유통을 맡아오고 있다. 하지만 저출산 여파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면서 회사가 존립 위기를 겪고 있다. 후발주자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회사 안팎에서 경고성으로 나타난 위기들이 한꺼번에 곪아 터진 분위기다. 그 중심에는 임용빈 회장이 있었다. 
 
절체절명 위기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김관정)는 최근 해피랜드의 경영진이 회사 돈 수십억원을 횡령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임 회장 등 경영진이 지난 수년간 의류판매 과정에서 수십억원대 회사 자금을 빼돌렸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해피랜드 전직 임원 등은 지난 6∼7월께 이같은 내용의 고발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은 이들의 주장대로 임 회장 등이 다량의 이월 상품을 저가 처리하는 이른바 ‘땡처리’과정에서 매출액을 누락하는 방법으로 회사 돈을 빼돌렸는지 살펴보고 있다. 고발 내용을 검토 중인 검찰은 조만간 해피랜드 경영진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해피랜드는 관련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수사 관련 사항이 보도되자 해피랜드는 즉시 보도자료를 내고 “최근 ‘이월 상품 판매를 통해 비자금을 형성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해피랜드 측은 특히 이번 고발은 전직 임직원들의 음해성 고발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해피랜드 고발인들은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이미 130억원에 달하는 횡령 및 배임으로 검찰에 고발돼 조사나 재판을 받고 있었다. 해피랜드 측은 전직 임원들이 앙심을 품고 허위 내용을 기반으로 해피랜드를 음해하기 위해 거짓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말한다 해피랜드가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공지문에 따르면 해피랜드는 전직 임원 6명을 관련 혐의로 해임하고 직접 수사 기관에 고소했다. 
 
이처럼 해피랜드가 “검찰에서 모든 내용을 잘 소명하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일말의 불안감을 떨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 7월부터 2개월가량  일정으로 해피랜드의 세무조사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지방국세청은 해피랜드의 회계·세무 자료 수 년치를 확보해 탈세 여부 등을 집중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검찰과 세무 당국이 동시에 해피랜드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횡령을 넘어 비자금 의혹을 들여다보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해피랜드 측은 이에 대해서도 “4∼5년 주기로 실시되는 통상적인 정기 세무조사”라며 “매출 누락이나 비자금 형성은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설상가상 대리점 ‘갑질’까지 터져 나왔다.  최근 한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윤리경영을 지향해 온 해피랜드의 민낯이 드러났다. 지난달 30일 MBC 시사보도프로그램인 <시사매거진 2580>에는 해피랜드가 백화점 매니저의 수수료를 갈취하고 대리점에 소위 ‘밀어내기’를 해 왔으며, 임용빈 회장이 친인척들의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방송에서는 해피랜드가 반품을 받지 않는 경영으로 대리점에 재고 물품을 떠넘겼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한 대리점주는 이 보도에서 평균 9000만∼1억원의 재고 물품을 떠안았다고 진술했다. 
 
또한 해피랜드가 대리점의 이월 상품 할인 판매 시 할인된 만큼을 ‘로스’로 처리해 이 비용을 대리점에 청구하고, 동일한 제품의 온라인 판매가를 대리점가의 최대 반값 이상으로 책정해 대리점의 고충을 심화시켰다는 내용도 담겼다. 심지어는 대리점 측이 본사에서 상품을 구입하는 가격보다 온라인 판매가가 더 저렴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결국 본사는 밀어내기로 재고를 대리점에 떠넘기면서 반품은 받아주지 않고, 대리점은 쌓여가는 재고를 감당할 수 없어 로스 비용까지 감내해가면서 할인 판매를 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임용빈 회장 수십억 횡령혐의 수사
대리점에 갑질…국세청 세무조사도
 
수수료 관련 행태도 보도됐다. 애초 해피랜드가 매출의 17%라던 판매 수수료는 실제로는 사은품 비용과 로스 비용 등을 백화점 매니저나 매장의 점주 급여에서 감하다 보니 10%로 뚝 떨어진 것으로 보도됐다. 대리점주가 악순환에 빠져 폐점하려고 하면 모든 제품을 구매해야 폐점을 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1억원 넘는 제품을 구입한 매니저의 사례도 보도됐다. 
 
해피랜드의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너 일가의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그 비용도 대리점의 몫으로 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임 회장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친조카가 운영하는 인테리어 회사에 자사 매장 인테리어를 맡기고, 3년에 한 번씩 대리점 인테리어를 교체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대리점주는 “(조카의 회사가) 다른 업체보다도 가격을 더 비싸게 받았지만, 어쩔 수 없이 본사가 지정한 곳에서 인테리어를 해야했다”며 “그 비용 역시 고스란히 부담해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인테리어 업체 관계자는 “인테리어 교체건은 마트 측에서 매장을 옮길 때마다 의뢰가 들어오는 것일 뿐 본사 측에서 권유하는 부분이 아니다”며 “자사의 가격이 타 업체보다 비싸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보도가 나가자 해피랜드는 각종 포털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웠다. 소비자들 사이에 소문이 빠르고 고객들의 단결력이 강한 업계 특성상 인터넷 육아카페와 커뮤니티에는 해피랜드 제품의 불매 운동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밀어내기’ 논란으로 불매운동이 거세게 일었던 남양의 사례에 비교하는 목소리도 상당히 힘을 얻고 있다. 
 
모든 게 음해?
 
해피랜드는 “그간 매장 계약 조건에 따라 반품을 받는 곳도 있고 안 받는 곳도 있었다”고 해명했다. 모든 매장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계약에 따라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해피랜드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반품에 대해 시정 조치를 내리고 위탁판매자에 대해 현재 모두 반품을 받고 있다”면서 “개선 작업을 더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 'KB금융' 하반기 영업 로드맵
 

KB금융 비은행 계열사들이 하반기 영업력 강화를 위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먼저 KB인베스트먼트는 한국모태펀드가 300억원을 출자하는 1500억 규모의 ‘글로벌 헬스케어 펀드’의 운용사로 최종 선정되는 성과를 달성했다.
 
 
▲KB인베스트먼트 = 이 상품은 의료시스템·제약·바이오·의료기기·화장품 및 국내 의료기관 해외진출 분야에 각각 펀드 결성액의 50% 및 20%를 투자하는 펀드다. 이와 함께 그룹 계열사 출자 참여 예정인 KB 우수 기술기업 투자펀드(1000억원)를 연내에 결성 완료하면 업계 4위의 벤처관리자산(5000억원) 규모로 도약하게 된다.
 
▲KB손해보험 = KB손해보험은 하반기 경영목표 달성을 위해 본업인 보험업에 대한 펀더멘탈 강화, 그룹 계열사간 시너지 극대화, 가치 중심의 경영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판매 채널별 내실화와 시장 내 경영우위 확보, 상품가격 및 가격산출 언더라이팅 역량 제고, 고객관리 및 활용도 제고, 조직문화 및 인사제도 개선 등 4가지 과제를 선정했다.
 
▲KB국민카드 = KB국민카드는 6월 실물 플라스틱 카드 없이 발급 가능한 ‘모바일 단독카드’4종을 출시한 데 이어 7월엔 핀테크 기술을 활용해 NHN엔터테인먼트, 스타벅스, CGV 등 모바일에 최적화된 혜택을 제공하는 KB국민 파인테크카드를 출시했다. 이 카드는 모바일 핀테크 선도 기업들이 가진 경쟁력을 결합해 새로운 핀테크 혜택을 제공한다.
 
▲KB투자증권 = KB투자증권은 상반기 3개의 복합점포를 신설한 데 이어 하반기에는 지방 지역에 거점형 복합점포를 오픈해 신규 모객 유치 및 고객들에게 다양한 자산배분전략을 제공할 계획이다. 또 모바일 트레이팅 시스템(MTS)인 스마톡S의 전면 개편과 해외주식 HTS, MTS 개발을 9월 중 실시해 더욱 차별화된 모바일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KB생명보험 = KB생명은 7월1일 온라인보험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젊은 고객층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사내 과장 이하의 직원을 대상으로 공모하여 ‘KB생명 인터넷보험’으로 명명됐다. 
 

▲KB저축은행 = KB저축은행은 7월2일 영업점 방문 없이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KB저축은행의 대출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 ‘KB착한대출’앱을 출시했다. 회원가입 없이 공인인증서, 신용카드, 휴대폰 등을 이용한 본인인증만으로 KB저축은행의 신용대출 상품인 KB착한대출, KB착한전환대출의 한도와 금리 조건을 한 번에 조회하고 본인에게 적합한 상품을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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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