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전성기 도전 나선 ‘골프여왕’ 박세리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은 지금!”

골프선수 박세리가 ‘여왕’으로 돌아왔다. 박세리는 LPGA 투어 벨 마이크로 클래식에서 통쾌한 승리를 움켜쥐는 것으로 그간의 부진을 씻어냈다. 그는 지난 1998년 US오픈에서 ‘맨발 투혼’을 시작으로 10여 년간 세계무대를 주름잡았지만 2007년을 끝으로 정상을 밟지 못했다.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성적과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의 추격으로 주변에서는 그의 은퇴가 거론되던 시점이었다. 박세리는 최고의 현역 선수들과 겨룬 경기에서 ‘관록의 승리’로 유쾌한 ‘반전’을 선사함과 동시에 선수 인생에서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마련했다. 특히 이번 우승은 LPGA 무대를 장악한 ‘세리 키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낸 결과여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34개월 만에 우승컵 입 맞춘 원조 ‘골프여왕’
새롭게 쓴 연장불패 신화, 드라마틱한 부활샷


지난 1998년 외환위기로 힘들어 하던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던 원조 ‘골프여왕’ 박세리가 부활샷을 쏘아 올렸다.
박세리 선수는 지난 17일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의 매그놀리아 그로브 골프장에서 열린 벨 마이크로 LPGA 클래식에서 브리타니 린시컴, 수잔 페테르센을 꺾고 34개월 만에 우승컵을 움켜쥐었다. ‘가뭄의 단비’ 같은 우승은 드라마틱했다.
 
반전의 묘미 속
골프여왕의 부활

그의 우승은 연장전에서 결정됐다. 3라운드까지 공동 1위를 유지하던 박세리는 4라운드 3번홀에서 공동 3위로 밀려났다. 하지만 악천후로 인해 4라운드가 아예 취소되면서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를 이뤘던 수잔 페테르센, 브리타니 린시컴과 우승자를 가리는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됐다. ‘행운이 여신’이 그를 향해 미소 짓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박세리는 ‘맨발 투혼’으로 더 유명한 지난 1998년 7월 LPGA US오픈에서 20개 홀을 도는 연장전 끝에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이후로도 연장전에서는 승리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빗속에서 치러진 연장전에서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를 잡았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관록’이 그를 도왔다. 첫 번째 위기는 두 번째 홀에서 찾아왔다. 박세리는 세컨샷을 그린 뒤 벙커에 빠뜨렸지만 벙커샷을 핀 2m에 붙인 뒤 쉽지 않은 파퍼트까지 집어넣었다. 

연장 세 번째 홀에서는 티샷을 페어웨이 벙커에 빠뜨렸다. 하지만 박세리는 오히려 결정타를 날렸다. 두 번째샷을 핀 1.5m에 붙여내며 승기를 잡은 것. 린시컴이 파퍼트로 압박해왔지만 침착한 버디 퍼트를 해낸 박세리의 승리였다. 

이로써 그는 통산 25승, 6번째 연장전 승리를 따냈다. ‘연장불패’ 신화를 이어감과 동시에 투어 역사상 연장전에서 최고 승률을 올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번 연장 승부에 대해 박세리는 ‘자신감’을 말했다. “연장전을 치른 18번홀은 사흘 동안 매번 다른 느낌이었다. 건조했을 때는 페어웨이부터 그린까지 꽤 가깝게 느껴졌다. 실제 쇼트 아이언을 잡았다. 그러나 바닥이 젖은 오늘은 딴 판이었다. 세컨드 샷 지점에서 세차례 연속 6번 아이언을 잡아야했다. 세번째 벙커에서 세컨드 샷을 할 때도 6번 아이언을 잡았는데 페어웨이에서 칠 때보다 스핀이 잘 걸리고 시야 확보도 용이해 더 좋았다. 자신감이 있었다. 실제로 홀컵에 잘 붙었고, 자신있게 버디로 연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회 후 연장전 불패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어차피 연장에 가면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라며 “그래서 연장에 가면 더 자신감을 가지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샷도 더 잘 맞는다. 무패 행진에 대한 압박감도 있지만 지금까지도 기록을 의식해서 된 것은 아니다. 가능한 이 기록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답했다.

이번 승리는 그에게 의미가 깊다. ‘맨발 투혼’으로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지난 1998년 US오픈 우승 이후 박세리는 미국 무대를 점령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메이저대회 5승을 포함한 24승, 명예의전당 헌액 등 세계여자골프계를 종횡무진 했다. 하지만 2007년 이후 그의 우승 소식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침체기가 길어지면서 주변에서는 은퇴를 거론하는 이들이 늘어만 갔다. 
 
내리막길은 ‘이제 끝’
껑충껑충 오르막 오른다

하지만 박세리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2007년 7월 LPGA 투어 제이미 파 오웬스 코닝클래식에서 정상에 오른 뒤 2년10개월 만에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으며 ‘인생의 새로운 계기’를 찾았다.  

어렵사리 쏘아올린 부진탈출의 신호탄은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 18일 발표된 세계여자골프랭킹에서는 평균 3.59점을 받아 전주보다 26계단 오른 22위로 껑충 뛰어오른 것.

지난 2005년 102위까지 곤두박질쳤던 상금 순위도 이번 대회 우승 상금 19만5000달러에 힘입어 시즌 상금 23만7000달러를 기록, 7위로 껑충 뛰었다. 역대 통산 상금에서도 1083만달러로 아니카 소렌스탐, 캐리 웹, 로레나 오초아, 줄리 잉스터에 이어 5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박세리는 우승 소감에서 “지난 몇 년 동안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잘 하던 시절로 돌아가려고 노력했고, 열심히 훈련하고 경기에 열중했다. 좋은 날이 올 것으로 믿고 기다리고 또 인내했다”며 “그런 시간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웠다. 요즘은 편안한 마음으로 치다 보니 정말 행복하다”고 밝혔다. 긴 침체기동안 겪었던 적잖은 마음고생을 털어낸 것.  

그는 슬럼프에 대해서도 “다시 우승을 못 할 것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며 “내게 필요한 것은 역시 인내심이었다. 난 여전히 게임에 애착이 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훈련하고 과거 잘 하던 때로 돌아가려고 애를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늘 우승은 왜 내가 앞으로도 계속 연습을 하고 노력해야 하는지 보여준 결과”라며 ‘다음’을 위한 노력이 계속될 것임을 내비쳤다.
쉽지 않았던 시간들을 털어낸 만큼 박세리는 우승의 순간을 더욱 값지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대회가 끝난 후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자평하며 “이번 우승으로 골프에 대한 내 믿음과 열정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는 말로 샘솟기 시작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세계여자골프랭킹 껑충, 자신감은 곱절로 껑충
‘세리키즈’ 자극·힘을 주는 든든한 응원군으로


박세리는 “그동안 내 부진을 걱정해 준 사람이 많았는데 내색을 안 했지만 사실 가장 속이 타는 건 나 자신이었다. 그래도 힘든 기간 중 나에 대한 믿음을 한 번도 저버린 적이 없다. 그 결과 긴 터널을 지나 다시 우승컵을 품에 안은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이번 승리는 신지애, 양희영 등 ‘세리키즈’들의 환호성으로 장식됐다. 박세리가 지난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맨발을 연못에 담근 채 샷을 날려 우승을 차지했던 모습을 보고 골프를 시작했던 ‘세리키즈’들이 10년 사이 무섭게 성장해 LPGA 무대를 장악한 것.
그가 벨 마이크로 LPGA 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도 ‘세리키즈’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박세리는 “도대체 우리 애가 얼마나 되는거죠”라는 농담으로 질문을 받아들였다. 그는 “처음에는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맏언니로서 그들이 자랑스럽다”면서 “지금은 오히려 그런 소리를 듣는 게 좋다. 그들이 나로 인해 꿈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세리키즈’들이 그에게 또 다른 동기를 유발하는 존재가 됐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박세리는 “(신)지애와 (최)나연이 등 ‘세리키즈’로 불리는 한국 어린 골퍼들이 자신의 경기가 끝났는데도 모두 남아서 나를 응원했다. 기분이 너무 좋고 뿌듯했다.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내가 헛되지 않은 생활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세리키즈들에게
새로운 ‘길’ 열어줄까

  
그는 “오늘 나를 응원해준 그들이 있어 정말 행복했다”며 ‘세리키즈’들로부터 받은 힘이 적지 않음을 내비쳤다.
한동안 그의 주변을 맴돌던 ‘은퇴’에 대해서도 당당해졌다. 재미교포와의 교제 소식이 전해지면서 결혼과 함께 골프계를 떠나는 것 아니냐는 추측에 시달렸던 것.

박세리는 결혼과 관련, “기분은 아직도 18세 같지만 실제로는 적은 나이가 아니지 않느냐”며 “결혼도 시기가 있는데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결혼을 심각히 고려해야할 나이지만 결혼을 한다고 해도 당장 은퇴할 생각은 없다”고 못박았다. 박세리는 “은퇴라뇨”라고 반문하며 “한국에 수많은 ‘세리키즈’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 골프에 더 매진하겠다”고 거듭 은퇴와 거리를 뒀다. 

그는 “함께 경쟁하던 소렌스탐이 은퇴하고 최근에는 오초아도 빠지면서 은퇴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고 토로하면서도 “이번 대회를 통해서 보고 느낀 것들이 나를 다시 골프에 빠져들게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그의 도전은 ‘세리키즈’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으로 보인다. 박세리가 이번 우승으로 거둔 타이틀에는 ‘역대 한국 선수 LPGA 투어 최고령 우승’이라는 기록도 있다. 그는 현재 32세로 구옥희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부회장이 지난 1988년 스탠더드 레지스터에서 우승했을 당시 나이인 31세를 1년여 정도 뒤로 미뤘다.

이를 두고 스포츠계에서는 박세리가 자신을 바라보며 골프를 시작한 ‘세리 키즈’들에게 더 오랫동안 LPGA 무대를 주름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박세리도 이를 의식한 듯 자신의 선수 활동을 “후배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한 보험이 되고 싶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박세리 자신에게도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그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여줬다. 드라이버 거리가 늘고 오락가락하던 퍼트가 좋아진 것. 박세리는 “20대 초반보다 여유가 생겨 멘털은 훨씬 강해졌다”며 “힘과 지혜·경험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그는 또 “골프는 아직도 내게 강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 자신에게 미련이 남지 않을 때까지 선수 생활을 계속하겠다”면서 “20대 때도 못해본 (골프인생의) 진정한 전성기가 이제 시작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와 함께 그는 ‘승리의 순간’을 뒤로 하고 20일부터 미국 뉴저지주 글래드스톤 해밀턴팜골프장에서 열리는 사이베이스매치플레이챔피언십에 참가, 연승 도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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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