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망신 부르는 ‘국뽕’을 아십니까

한류 마케팅 자화자찬 “독 된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요즘 인터넷 상에서 ‘국뽕’이란 말이 흔히 쓰이고 있다. 국뽕은 ‘나라 국’과 ‘히로뽕의 뽕’의 합성어로 국가에 대한 자긍심에 과도하게 도취해 있는 것을 조롱할 때 사용된다. 이와 함께 ‘똥송’이라는 말도 함께 등장하고 있는데, 동양인이라 죄송하다는 의미로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태생적으로 우월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국뽕과 똥송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무비판적인 한류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두 유 노 김치(Do you know Kimchi)?” “두 유 노 싸이?” “두 유 노 유나 킴(김연아)?”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베스트 3다. 실제로 한국에 온 해외 유명인들은 국내 입국장이나 기자회견장에서 가수 싸이의 ‘말춤’을 춘다. 미국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윌 스미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톰 행크스는 인터뷰 도중 “햄을 프라이팬에 구워서 김치와 드셔보세요”라는 진행자의 말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국내 방송에 출연해 김치를 먹거나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춤을 추라고 강요받는 외국 유명인들의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Do you know?”
김치·싸이·연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외국인만 보이면 저돌적으로 다가가 김치, 싸이, 김연아, 독도 등에 대한 생각을 묻는 “두 유 노…” 시리즈는 유행처럼 번졌고 점점 불편한 모습이 연출됐다. 누리꾼들은 “엎드려 절 받기 같다”며 국가에 대한 자긍심에 과도하게 취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때쯤부터 나라 ‘국’과 히로뽕의 ‘뽕’의 합성어로 국가에 대한 자긍심에 과도하게 도취해 있는 것을 조롱하는 ‘국뽕’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 시기에 미국 국무부 브리핑에서 한국 통신사 기자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알고 있느냐?”고 묻는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논란을 키웠다. 여기에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미국 배우 휴 잭맨에게 걸그룹이 맨손으로 김치를 찢어 먹여주는 장면이 더해지면서 “국뽕 극혐(극도로 혐오)” 등이 일상적으로 쓰이게 됐다. 한류를 강조하는 방식이 낯간지럽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에 많은 사람들은 피로감을 호소했다. 급기야 한 누리꾼은 ‘외국인이 한국에서 입으면 좋을 티셔츠’라는 제목의 합성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의 자료에는 백인 남녀 두명이 흰색과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티셔츠에는 “나는 싸이, 강남스타일, 독도, 김치, 박지성, 김연아를 알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외국인에게 던지는 국뽕 질문을 정면으로 꼬집었던 것이다.
 
 
국뽕을 조롱하는 일명 ‘국뽕맨’도 등장했다. 국뽕맨은 독도와 태극기를 배경으로 싸이의 머리, 박태환의 오른팔, 박찬호의 왼팔, 박지성의 오른다리, 김연아의 왼다리, 류현진의 모자를 쓴 모습으로 김치를 들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합성된 사진이다. 맹목적 애국주의 낌새가 발견되면 누리꾼들은 어김없이 국뽕맨에게 S.O.S를 쳤다. “국뽕맨 도와줘요”라며 국뽕 맞은 사람들을 조롱했다. 폭소를 자아내는 국뽕맨 사진은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퍼져 국뽕의 심각성을 널리 알렸다.
 
외국인만 보면 자동적으로…“두 유 노?” 
해외 스타 방한 시 싸이 말춤 통과의례
 
국뽕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역사갤러리에서 시작됐다. 이곳에서는 언젠가부터 “단군 이전 한민족이 세계 4대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지역 수메르 왕국을 세웠다” “명나라 황제 주원장조차 조선의 군사력을 두려워했다” 등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흘러나왔다. 한국사를 미화하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역사 마니아들 사이에서 국뽕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후 국뽕은 ‘일간베스트(일베)’ 저장소에서 자주 사용됐고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까지 뻗어갔다. ‘우리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게시물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국뽕이다” “극혐이다” 등 댓글이 달리면서 맹목적 애국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국뽕에 대한 반발로 ‘국까(국가를 까다)’라는 말도 생겨났다.

우리 것 감싸기

‘국뽕’ 반대
 
그러면서 함께 등장한 것이 ‘똥송’이라는 표현이다. 똥송은 동양인이라 죄송하다는 의미로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태생적으로 우월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국뽕 관련 게시글 등이 나올 때면 서양인에게 보여주기 너무 민망하다며 “똥송합니다”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국뽕과 똥송은 바늘과 실 같은 존재다.
 
애니메이션 <김치 워리워>가 국뽕과 똥송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재미동포 강영만 감독이 제작한 <김치 워리어>는 2010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주해 정식 입찰과정을 거쳐 세금 1억5000만원이 제작지원금으로 투입된 작품이다. <김치 워리어>는 김치 전사가 김치의 효능으로 말라리아, 돼지독감 바이러스 등을 물리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이다. 2011년 유튜브에 15편짜리 동영상이 오르면서 세간에 화제가 됐다.
 
김치 전사는 배추 머리를 하고 초록색 쫄쫄이를 입은 복면인이 괴성을 지르며 총각김치 쌍절곤을 휘두르면서 돼지 콜레라균들을 무찌른다. 젓갈을 뿌리면 모기 형상을 한 말라리아균들이 흩어지고, 1000년 묵은 김치 냄새를 뿌리면 적들이 몰살된다. 김치 전사의 여성 파트너는 빨간 쫄졸이를 입은 ‘고추걸’이다. 고추걸은 커다란 붉은 고추를 골프채로 날리는 기술을 사용한다.
 
 
<김치 워리어> 입찰요청서에 따르면 이 작품의 목적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미디 액션 장르로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 및 국내에서도 어필할 수 있는 홍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여 김치의 우수성 홍보 및 세계화’이고, 5개월의 용역기간 동안 ‘해외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김치 애니메이션 캐릭터 개발, 재미 요소를 극대화할 수 있는 액션 코미디 장르의 김치 애니메이션 제작, 국내외 TV, UCC 동영상 사이트와 박람회 홍보용 스팟 영상 제작, 국내외 UCC 및 초등학교, 미국 TV 어린이쇼, 아리랑TV 등에 제작된 애니메이션 배포’하는 것이다.
 
김치 워리어 이야기는 제목만큼이나 지극히 간단하다. 김치 전사가 ‘질병마왕’이 보낸 병균 또는 바이러스들을 김치 관련 무기로 물리치는 내용이 계속 반복된다. 김치 전사가 위기에 빠질 때면 고추걸이나 스승인 ‘대사부’, 옹기로 만든 로봇 ‘옹기봇’ 등의 도움을 받아 질병을 퇴치한다. 작품 내에서 김치는 말리라, 광우병, 신종플루, 스페인 독감 등 그 어떤 질병이라도 물리칠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묘사된다. 김치 냄새나 젓갈 등은 일종의 ‘화생방 무기’처럼 사용된다.
 
맹목적인 애국주의 열풍 
왜곡된 외부시각만 키워
 
애니메이션을 본 누리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독도&사스’ 편에서는 과거 조상들이 김치로 만든 그물로 곡식을 보호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날아가는 새들이 김치 그물에 닿자마자 바로 추락해서 죽는 장면이 등장한다. 외국인들 입장에서 본다면 김치는 독극물에 가까웠다.
 
게다가 김치의 매운맛은 고추장에서 나온다는 등 김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 담겨 있었다. 또한 고추걸의 캐릭터는 일본의 ‘닌자’와 유사해 한국적인 느낌이 거의 없었다. 더 황당한 건 ‘김치 워리어와 신종플루의 아들’ 편이었다. 미국을 구한 김치 전사에게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개혁법안에 김치를 포함시키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스꽝스러웠다.
 
 
묵은 김치로 적을 물리치는 내용은 오히려 외국인에게 나쁜 인상만 심어줬다. 실제로 ‘김치 워리어’를 검색해보면 작품을 조롱하는 외국인들의 반응을 볼 수 있다. 김치 워리어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여론의 화살은 정부의 김치 마케팅으로 향했다. ‘한국’ 하면 ‘김치’밖에 생각해내지 못하는 1차원적인 사고방식을 지적한 것이었다.
 
어설픈 한류

오히려 망신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치 워리어>는 지난해 미국 LA에서 열린 웹콘텐츠 시상식 ‘웹페스트’에서 3관왕은 차지했다. 그러나 ‘LA 웹 페스트’의 문제점이 발견됐다. 세계적인 시상식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했다. 참가작 251편 모두 최소 1개 이상의 상을 받았고, 3개 이상의 상을 받은 작품은 12편이 넘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돼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한국 홍보를 위해 만들었다던 <김치 워리어>가 혈세로 일본해를 홍보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주먹구구식 투자가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사기만 저하시킨 것이다.
 
<김치 워리어>와 함께 ‘김치 칵테일’도 논란이 됐다. 유명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 향토지적재산본부 연구위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한바탕 웃고 싶으면 한국관광공사로!’라는 제목의 글에서 “관광공사 업무에 ‘국민 웃기기’가 있음이 분명하다”며 김치 칵테일을 소개한 바 있다. 황 연구위원은 광광공사가 운영하는 한식세계화 홍보사이트(Koreataste.org)에 올라온 김치 칵테일을 한식 세계화 실패작의 예로 들었다.
 
황 연구위원이 올려놓은 한식 세계화 홍보 사이트에는 ‘김치 블러디 메리(Kimchi bloody mary)’라는 이름으로 김치 칵테일이 올라왔다. 제조 과정과 완성된 모습이 사진과 함께 소개돼 있었다. 김치 국물, 마늘, 소주, 토마토 주스 등을 섞어 만든 붉은색 칵테일이었다. 얼음과 마늘을 띄어놓고 양념이 된 배추 잎을 세워 담가 놓았던 것이다. 참신함과 독창성과는 거리가 던, 황당 그 자체였다. 분위기 좋게 한 잔 걸치는 칵테일이라기보다는 대학교 MT에서 억지로 먹는 ‘벌칙주’나 ‘생일주’ 같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였다.
 
김치 칵테일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자 누리꾼들은 “손발이 오글거린다” “보기만 해도 토가 쏠린다” “이게 무슨 한류냐”는 등 비난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되는 괴음료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치 칵테일 사진을 올린 장본인은 한국관광공사가 아닌, ‘AnsanAnswer’라는 아이디의 외국인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이 외국인이 어떤 의도를 갖고 사진을 올린 지는 의문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식 마케팅의 진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재단이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활용해 한식 마케팅을 벌인다. 지난 16일 농식품부는 외국인들에게 한식문화를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한식 해설서 <맛있는 한국여행>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 해설서는 한국의 게스트하우스를 배경으로 주인공인 외국인이 한국 식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총 4장으로 1장은 아빠의 손님상 이야기로 한식 상차림, 식기 소개 및 식사 예절 등을 담았고 2장은 손맛 좋은 엄마의 이야기로 깊은 맛 장류, 발효와 김치, 김장문화, 한식의 특별한 조리법을 소개했다.
 
3장은 최신 트렌드를 좋아하는 아들의 이야기로 세계 속 한식의 위상과 다양한 한국의 길거리 음식 및 현대적인 한식 이야기를 담고 있고, 4장은 외국인 친구가 많은 막내딸의 이야기로 실제 외국인에게 한식에 대한 안내를 하면서 필요한 팁 등을 수록했다.
 
특히 외국인들이 궁금해 하는 북한음식, 한·중·일 음식의 공통점과 차이점, 외국인이 즐겨 찾는 한식 10선, 외국인들이 자주 묻는 질문과 답 등도 담았다. 농식품부는 이 해설서를 방한 외국인과 가장 가깝게 만나 소통하는 관광통역안내사의 보수교육교재로 활용토록 관련기관에 배포할 계획이다. 아울러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한식당과 한국 및 한식홍보 기관 및 업체의 종사자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할 예정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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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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