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팍팍 쓰는 기업들 백태

IMF보다 어렵다지만…두꺼워지는 재벌 지갑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우리나라의 소비자 심리지수가 60개국 중에서 59위를 기록했다. 30대 그룹 대부분도 지금 경제 상황에 대해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경제에 장기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하지만 기업들의 배당·실적·임금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불황이라면서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 기업들은 한둘이 아니다.

글로벌 정보분석 기업인 닐슨이 지난해 4분기 세계 60개국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지출 의향 등을 물었더니 우리나라의 소비자 심리지수는 60개국 중에서 59위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의 '1월 소비자 동향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 심리지수는 지난해 9월(107)부터 3개월 연속 떨어지다가 지난달 102로 1포인트 상승하며 하락세가 진정됐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직후 기록한 소비자 심리지수(104)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부진 예측 뒤엎는
대기업 실적 개선

기업들이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인식도 비슷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30대 그룹을 대상(1개 그룹 무응답)으로 '2015 투자·경영 환경 조사'를 실시한 결과 24개 그룹(82.8%)이 '구조적 장기 불황이 우려된다'고 답했다. 절반이 넘는 그룹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해 현 경영 환경이 '더 나쁘다'고 답했다. 44.8%에 해당하는 13곳은 경제 회복 시기가 '2017년 이후'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올해 예상 투자규모를 묻는 질문에는 41.4%가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답했고 24.1%는 작년보다 줄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처럼 너도나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연초부터 발표되고 있는 기업들의 배당, 실적, 임금 수치를 보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부진할 것이라는 업계의 예측과 달리 지난 한해 대체로 양호한 실적을 올린 기업들이 많았다. 특히 한진그룹의 약진이 눈에 띈다.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한진그룹 주력계열사 대한항공은 2013년 4분기 영업이익 178억원에서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1305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던 한진해운은 4년 만에 흑자를 달성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0.3% 감소한 8조6548억원을 기록했으나 영업이익은 1435억원이다. 한진그룹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280%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년 동기에 비해 36%나 줄어든 영업이익을 기록한 삼성전자 때문에 고전이 예상됐던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카드, 삼성증권, 삼성생명, 호텔신라, 크레듀 등 타 계열사 실적 개선으로 그나마 '선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와 기아차 영업이익이 각각 전년 대비 7.6%, 23% 하락한 현대자동차그룹 또한 현대제철과 현대건설의 선전으로 작년과 비슷한 수준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도 SK이노베이션 부진을 SK하이닉스가 보완해 줬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4600억원대 영업손실을 냈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액 17조1256억원, 영업이익 5조1095억원을 기록하며 또 한번 최대 매출액과 영업이익 기록을 갈아치웠다. 당기순이익도 전년 동기보다 46% 증가했다.

배당금 총액 전년 대비 61% 증가
100억 이상 배당 부자 최소 20명

LG그룹은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이 선전하면서 LG화학의 부진을 메꿨다. CJ그룹도 CJ헬로비전과 CJ E&M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의 실적 향상을 이끌어 내며 전체적으로는 성장했다.


포스코그룹은 3조원대 매출을 회복했다. 포스코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61조865억원) 대비 5.2% 증가한 65조984억원으로 나타났으며 영업이익은 3조2135억원으로 전년 대비 7.3% 증가했다.

기업들의 실적 선방을 방증하듯이 올해 역시 '배당 잔치'가 벌어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일부터 올해 2월5일까지 2014년도 배당총액은 10조2751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조9025억원(61%)이 증가했다. 현금배당을 공시한 상장법인도 253개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13개(80%) 늘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중 배당을 공시한 기업은 전년 86개에서 145개로 증가했고 배당금 총액은 6조1989억원에서 9조8774억원으로 늘어났다. 코스닥 상장법인 중 배당을 공시한 곳은 전년 54개 사에서 108개로 증가했고 배당금 총액은 1737억원에서 3977억원으로 집계됐다.

가장 많은 배당금을 지급한 기업은 삼성전자로 배당금 총액은 전년보다 40.5% 증가한 2조9246억원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는 보통주 1주당 배당금을 1만3800원에서 1만9500원으로 41.3% 늘렸다. 삼성화재해상보험은 주당 2750원에서 4500원으로 63.6%늘렸으며 배당금 총액은 1202억원에서 1988억원으로 65.4% 늘었다. 삼성카드도 2013년 700원에서 2014년 300원(42.9%)이 증가한 1000원을 배당해 배당금 총액 1154억원(전년 808억원)을 기록했다.

배당금을 큰 폭으로 확대한 주요 대기업을 살펴보면 ▲현대자동차(1950원→3000원, 53.8%) ▲기아자동차(700원→1000원, 42.9%) ▲동부화재해상보험(1000원→1450원, 45%) ▲SK C&C(1500원→2000원, 33.3%) 등으로 나타났다.

전년도 주당 600원을 배당한 포스코와 4000원을 배당한 LG화학, 1000원을 배당한 LG, 2500원을 배당한 SK는 올해 같은 금액을 배당하기로 했다. 전년도 배당을 하지 않았던 SK하이닉스는 올해 주당 300원 배당으로 배당금 총액 2184억원을 기록했으며, 역시 배당을 하지 않았던 LG디스플레이도 올해 500원을 배당, 총 1789억원을 배당하기로 했다.

배당 공시 기업
86개→145개

100%가 넘는 배당금 총액 증가율을 나타낸 기업은 엔씨소프트(472.4%)와 메리츠종금증권(108.7%), 아이마켓코리아(100%), 호텔신라(132.5%), 삼성생명(109.5%) 등이다.

코스닥시장에서는 동서가 전년보다 9.1% 증가한 596억원을, GS홈쇼핑이 119.3% 증가한 480억원을, 파라다이스가 56.6% 증가한 428억원을 배당했다.

주요 금융지주사들과 시중은행들도 '배당 잔치'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던 우리은행은 올해 은행권 내 가장 큰 규모인 5000억원의 배당을 계획 중이다. 올해 3월 초 열리는 이사회에서 최종 배당액을 확정할 계획이다. 주당 배당금은 700~750원 사이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금융지주는 전년도 650원에서 46.2% 증가한 950원의 배당을 실시키로 결정했다. 배당성향(순이익 대비 배당 총액)은 21.6%로 전년(16.2%)에 비해 크게 확대됐다. 

지난해 주당 500원을 배당했던 KB금융지주는 올해 780원씩 배당하기로 했다. 배당성향은 15.1%에서 21.5%로 증가했다. 꾸준히 배당성향을 늘려오던 하나금융지주와 IBK기업은행도 적극적으로 배당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배당을 늘리면서 100억 이상 '배당 부자'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재벌닷컴과 금융투자업계 분석 결과 2014년 배당금을 100억원 이상 받게 되는 대기업 주주는 16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배당 규모를 발표하지 않은 기업을 포함하면 배당부자는 최소 20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기업 호실적 소식 잇달아
경영진 임금도 속속 올려

2014년 가장 많은 배당금을 받는 기업인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 지난 2013년 1079억원에서 2014년 1758억원으로 63% 증가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지난 2013년 495억원에서 2014년 649억원으로 31% 늘었다. 2014년 120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79.5% 늘어난 216억원의 배당금을 받게 됐다.

이밖에 ▲최태원 SK그룹 회장(2013년 배당금 286억원→2014년 배당금 330억원 증감률 15.4%)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155억원→217억원, 39.9%)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155억원→205억원, 32.2%) ▲정몽진 KCC그룹 회장(131억원→168억원, 28.6%)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94억원→144억원, 53.3%) ▲김상헌 동서 고문(126억원→135억원, 7.2%)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110억원→120억원, 9.3%) ▲이재현 CJ그룹 회장(118억원→119억원, 0.3%)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91억원→109억원, 19.6%)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기원씨(79억원→105억원, 33.3%) ▲구광모 LG 상무(86억원→105억원, 22.6%) 등이 100억원 이상의 배당금을 받게 됐다. 구본무 LG그룹 회장(192억원)과 구본준 LG전자 부회장(137억원)은 배당 액수가 전년과 동일했다.

기업의 근간이 되는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졌다. 매출 1조원 이상 대기업 등기임원들은 직원들보다 13배 많은 연봉을 타갔다. 기업분석 전문업체 한국CXO연구소는 2013년 기준 국내 1500대 기업 등기임원 보수의 적정성을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매출 1조원이 넘는 대기업 등기임원의 1인 평균 보수는 8억2276만원으로 1인 당 평균 6121만원을 받은 직원들보다 7억6155만원이 높았다. 매출 1000억원 미만 중소기업에서 등기임원과 직원의 보수 격차는 4.8배에 불과했다.


1500대 기업 중 등기임원과 직원 보수가 5배 미만인 기업이 795개사로 절반을 넘었으며 15배 이상 차이가 나는 기업은 109개사에 불과했다. 매출 1조원 이상 대기업 때문에 연봉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등기임원과 직원의 평균 보수 격차가 가장 큰 기업은 SK이노베이션으로 70.4배에 달했다. 그 다름은 오리온(68.7배), 삼성전자(65.9배), 현대백화점(53.5배), SK(55.7배), 메리츠화재(55.5배), 코데즈컴바인(49.6배), 이마트(54.9배), SK C&C(47.2배), 에이블씨엔씨(45.5배)순이다.

불황 비웃는 기업
4분기 깜짝 실적

금액 순으로 등기임원 1인 평균 보수가 가장 높은 기업은 삼성전자로 65억8900만원이다. 2위는 50억2150만원이 지급된 SK, 3위는 47억2988만원이 지급된 SK이노베이션이 차지했다. 그 뒤를 현대백화점(33억7433만원), SK C&C(31억8033만원), 메리츠화재(27억9555만원), 삼성물산(25억3566만원), 삼성중공업(24억900만원), 오리온(23억9100만원), SKC(23억8133만원)가 이었다.

CXO연구소는 "대체로 국내 상장기업에서는 15배가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분석결과를 얻었다"며 "등기임원이 직원보다 15배 이상 받아가면 '과하다'고 볼 수 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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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