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세계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산악인 오은선

히말라야 품은 ‘철의 여인’ 맘껏 웃을 수 없다


여성의 몸으로 험준한 히말라야 산 봉우리를 14번이나 정복한 산악인 오은선 대장의 인생스토리가 화제다. 산을 접한 후 ‘최초’라는 타이틀을 이미 여러 차례 만들어낸 그였지만 ‘세계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도전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타이틀을 얻기 위해 달리는 동안 소중한 동료를 잃기도 하고 수많은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등정 중 목숨을 잃을 뻔했던 순간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마지막 봉우리인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는데 성공했다. ‘철의 여인’ 오은선 대장의 지난 13년 히말라야 정복기를 살펴본다. 


걸어온 길·넘어온 산·뛰어 넘어야 할 벽 높다
기록 보유 20인 중 한국인 네 명 국가 위상 업  


여성 전문산악인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6시15분(한국시간) 세계에서 10번째로 높은 해발 8091m의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다. 영하 30도의 기온 속에 초속 12m의 강풍과 맞서며 등반한지 13시간 만에 이룬 성과였다. 정상에 승리의 깃발을 꽂은 오 대장은 이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오 대장이 걸어온 길
산과 사랑에 빠진 25년

이 날 오 대장은 여성 산악인으로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주인공이 됐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한 지 13년 만에 이뤄낸 쾌거다. 오 대장의 기록은 세계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빼놓더라도 충분히 거창하다. 실제 이제껏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한 산악인은 전 세계 남녀를 통틀어 20명에 불과하다.

그 중 한국인은 네 명으로 앞서 2000년 7월 엄홍길 대장, 2001년 박영석, 2003년 한왕용 대장이 14좌 탈환에 성공한 바 있다. 이들 중 국내 산악인으로는 네 번째로 이름을 올린 오 대장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여성 산악인으로서 ‘최초’라는 영광을 안게 된 것이다. 오 대장의 완등 소식을 들은 이명박 대통령은 축전을 보내 그를 격려했다.

이 대통령은 “오은선 대장의 완등은 도전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인간 승리의 과정이었다”며 “정말 장하고 자랑스럽다”고 축하했다. 이 대통령의 말처럼 끈질긴 도전 정신으로 ‘인간 승리’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 오은선 대장. 그가 이처럼 산에 미쳐 살게 된 것은 25년 전 부터다. 오 대장은 1985년 수원대학교 산악부 동아리에 입회하면서 처음으로 산악인의 길을 걷게 됐다. 대학교 2학년 시절 인수봉 정상을 밟은 오 대장은 이후 주말마다 산을 찾았다.

직장 생활 중에도 산을 즐기던 오 대장이 히말라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3년이다. 당시 대한산악연맹이 낸 에베레스트 여성원정대 모집 공고를 본 오 대장은 근무 중이던 서울시 교육청에 사표를 내고 원정대에 합류했다. 하지만 히말라야가 처음부터 그를 반겨준 것은 아니었다. 오 대장은 당시 히말라야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8848m)의 정상을 밟아보지 못했다.

등반대장의 하산 명령에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것. 당시의 아쉬움과 함께 이후 고산 등반의 매력에 빠져든 오 대장은 본격적으로 히말라야 정복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정 등반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오 대장은 스파게티 음식점을 운영하거나 컴퓨터 학원 강사, 학습지 교사 등으로 일하며 원정 비용을 마련했다.

오 대장이 다시 히말라야를 찾은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였다. 1997년 7월 오 대장은 가셰르브룸Ⅱ(8035m)를 무산소로 등정하는데 성공했다.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등정자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순간이었다. 오 대장은 한 인터뷰를 통해 “그때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고산 등반을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오 대장이 넘어온 산
히말라야가 허락한 14좌

하지만 오 대장의 도전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2004년 5월 그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11년 전 곁을 내어주지 않았던 에베레스트가 오 대장에게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단독 등정에 성공하는 영광을 안겨준 것이다. 하지만 손쉽게 얻은 영광은 아니었다. 산소가 떨어져 정신력으로 버티며 하산하다 캠프 텐트를 불과 10m 가량 남겨두고 쓰러졌던 것. 다행히 일본 원정대가 오 대장을 발견, 텐트로 데려가 보살펴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한 상황은 2006년 시샤팡마(8027m) 등정 길에도 이어졌다. 등정 당시 난데없이 굴러온 얼음 덩어리에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고 눈사태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겨야 했다. 2007년 5월 초오유(8201m) 등정에 성공한 그는 두 달 뒤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K2(8611m)에 올랐다. 이후 자신감을 얻은 오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완등 플랜을 위해 본격적으로 속도를 냈다. 오 대장이 ‘철의 여인’이라는 닉네임을 얻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2008년부터는 한 해 무려 4개의 봉우리를 올랐다. 2008년 5월엔 마칼루(8463m), 로체(8516m), 7월엔 브로드피크(8047m), 10월엔 마나슬루(8163m)를 등정했다. 2009년에도 5월6일 칸첸중가(8586m), 5월21일 다울라기리Ⅰ(8167m), 7월10일 낭가파르밧(8125m), 8월3일 가셔브롬Ⅰ(8068m)를 잇따라 등정하는데 성공했다.

오 대장이 뛰어 설 벽
따가운 시선 곳곳에…

빠른 속도로 히말라야 고봉에 올라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선두주자가 됐던 오 대장은 그 해 10월 마지막 고봉인 안나푸르나(8091m)에 올랐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초속 40m의 강풍과 짙은 안개에 폭설까지 이어져 정상을 불과 600여m 남겨두고 돌아서야 했다. 이후 6개월간의 준비 끝에 재도전한 오 대장에게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는 드디어 정상을 허락했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도 4명의 동료를 잃는 아픔 속에서 5번의 도전 끝에 성공했던 안나푸르나를 두 번의 도전 끝에 품안에 넣은 것이다. 하지만 히말라야 14좌 완등 성공으로 화려한 타이틀을 가지게 된 오 대장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더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그를 둘러싸고 있던 업계 일각의 논란들이 안나푸르나 등정 소식과 함께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탓이다.

오 대장은 2004년 에베레스트 원정 이후 ‘독한 X’라는 비난에 휩싸였던 바 있다. 오 대장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해 올라가던 중 동료 산악인 고 박무택 대장이 로프에 매달려 숨져 있는 것을 보고도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오 대장보다 며칠 앞서 정상에 올랐던 박 대장은 동료들과 정상 등정 후 하산하다 해발 8700m 부근에서 설맹(雪盲)이 와 조난, 끝내 목숨을 잃었다.
 
특히 함께 목숨을 잃은 백준호ㆍ박무택ㆍ장민 등 3명의 동료는 사고 당시 서로를 구조하려다 결국 자신의 생명까지 잃게 된 사연이 전해지면서 오 대장을 향한 반감은 더욱 커졌다. 오 대장은 “당시 상황은 모두 끝났었다”며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그의 동료애에 대한 비난은 한동안 계속됐다. 오 대장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 7월 고 고미영 대장이 낭가파르밧에서 실족해 사망했을 당시에도 불거졌다.

비정한 동료애·죽음 내몬 라이벌 경쟁 ‘꼬리표’
완등 논란 히말라야 칸첸중가 재등정 의지 관심


고 대장은 오 대장의 후배이자 ‘세계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는 최고의 라이벌이었다. 이에 산악계 일각에선 고 대장의 죽음이 무리한 속도 경쟁으로 화를 만든 것이라며 오 대장을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국내 대표 산악인 중 한 명인 허영호씨는 한 라디오방송에서 “등반은 음미하면서 해야 하는데 이것을 스포츠처럼 경쟁적으로 하다 보면 거기에 따른 무리라는 게 있다”며 “8000m 고봉 3~4개를 1년 사이에 두고 등정하려고 하니까 이런 안타까운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 고 대장은 숨질 당시 11개 봉우리에 올랐고, 오 대장은 12개 등정에 성공하며 14좌 완등을 두고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들보다 오 대장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지난해 5월 등정한 칸첸중가(8586m)의 미등정 논란이다. 지난해 말 국내 산악계에는 오 대장이 칸첸중가의 꼭대기, 즉 정상을 밟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오 대장이 칸첸중가에서 찍은 사진이 정상의 모습으로 확신하기 어렵고, 등정 시간도 짧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은 확산됐다. 오 대장은 눈물의 기자회견까지 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의문점은 여전히 남았다. 이런 가운데 히말라야 등정 기록을 책임지고 있는 미국 산악인 엘리자베스 홀리(86)가 오 대장의 캉첸중가 등정을 ‘논란인 상태(disputed)’로 변경하면서 미등정 논란은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특히 최근 오 대장의 또 다른 경쟁자인 에두르네 파사반(36·스페인)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있어 오 대장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오 대장의 입장에선 만약 캉첸중가 등정이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 사이 경쟁자 파사반이 마지막 14봉 등정에 성공한다면 ‘세계 최초’의 타이틀이 물 건너 갈 수도 있게 된다.

이에 산악계 일각에선 오 대장이 캉첸중가 미등정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캉첸중가를 재등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줄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실제 과거 엄홍길 대장은 1993년 오른 시샤팡마 등정을 두고 시비에 휘말리자 2001년 재등정해 논란을 잠재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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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정국과 검사들 동향

특검 정국과 검사들 동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전 정부를 겨냥한 3대 특검이 출범을 앞두고 있다. 윤석열정부에서 계속 거부되던 특검법이 이재명정부 첫 법안이 됐다. 사상 최대 규모의 특검 3개가 동시에 출범하면서 검찰 내부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검이 검찰에게 독이 될지, 정부에 독이 될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승인한 1호 법안이 3대 특검이 됐다. 헌정사상 최대 규모의 특검 수사팀이 구성될 가운데 검찰 내부에서는 오히려 특검을 반긴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검찰의 수사력을 보여줄 기회이자 최근 검찰 출신을 반기지 않는 로펌으로의 이직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직이냐 영전이냐 이재명정부 출범 이틀 만에 전임 윤석열정부를 겨냥한 사정 수사에 발동이 걸렸다. 국회는 지난 5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주도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를 정조준한 3개 특별검사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윤석열 내란·외환행위 진상규명 특검(내란 특검)’ ‘김건희 국정 농단 및 불법 선거개입 특검(김건희 특검)’ ‘순직 해병 수사방해 특검(순직 해병 특검)’ 등 3개 법안을 각각 찬성 194표, 반대 3표, 기권 1표로 가결했다. 국민의힘은 ‘부결’ 당론을 정하고 집단 퇴장했지만 안철수·배현진 의원 등 5~6명이 각각 이탈해 찬성표를 던졌다. 이후 지난 10일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해병 특검법’ 등 3개 특검법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작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전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등에 대한 특검이 출범한다. 윤정부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특검 3개가 동시에 수사에 나서게 됐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가 끝난 뒤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윤 전 대통령의 12·3 계엄 사태 관련 전반을 수사하게 될 ‘내란 특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명품백 수수·불법 선거 개입 의혹 등을 다룰 ‘김건희 특검’, 그리고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및 은폐 의혹을 규명할 ‘순직해병 특검’이 출범하게 된다”며 “세 건의 특검법은 모두 윤정부가 거부권을 반복 행사하며 지연됐던 것으로, 멈춰있던 나라를 정상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수순”이라는 글을 작성했다. 이어 “내각 구성원들과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조율해 심의와 의결을 마쳤다”며 “이재명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거부권에 막혀 제대로 행사되지 못했던 국회의 입법 권한을 이제 다시 국민 여러분께 돌려드리고자 한다”며 “이번 특검을 계기로 국민 여러분께서 바라시는 진실이 민주주의 원칙 아래 투명하고 소상하게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적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날 회의에선 3개 특검법을 포함한 법률안 공포 4건, 대통령령 3건, 일반 안건 1건이 심의 및 의결됐다”고 말했다. 특검 규모에 대해서는 “내란 특검법 최대 267명, 김건희 특검법 최대 205명, 순직해병특검법 최대 105명의 수사 인력이 배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당선 후 1호 법안으로 의결 검사만 120명·총 수사팀 577명 이어 “순직해병특검법은 최장 140일, 나머지 두 특검법은 최장 170일까지 수사가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강 대변인은 “이재명정부가 1호 법안으로 특검법 3개를 심의·의결한 것은 대선으로 확인된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원하는 국민의 뜻에 부응하는 조치”라고 언급했다. 이번 3대 특검에서는 전례없는 규모의 특검이 가동될 예정이다. 파견 검사의 수만 해도 120명으로 전체 검사 인력의 6%에 달한다. 내란 특검의 경우 60명, 김건희 특검 40명, 해병대원 특검은 20명에 달하는 검사가 파견될 예정이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였던 ‘최순실 국정 농단 특검’ 파견 검사(20명)의 6배 수준이다. 전체 수사 인력은 577명에 이른다. 구체적으로 내란 특검은 특검 1명, 특검보 6명, 파견 검사 60명 등 총 267명으로 구성된다. 김건희 특검은 특검보 4명, 검사 40명을 포함해 총 205명, 채상병 특검은 특검보 4명, 검사 20명 등 총 105명 규모다. 특검별 수사 기간은 준비 기간 20일을 포함해 내란 특검과 김건희 특검이 최대 170일, 채상병 특검은 최대 140일로 규정돼있다. 늦어도 오는 7월 중순에는 각 특검 사무실이 출범해 연말까지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특검법 공포 전부터 특검 후보를 물색하고 후보자들에 연락을 취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검 수사팀장은 통상 부장검사, 특검보는 차장검사, 특검은 검사장급 인사가 맡는다. 하지만 ‘최순실 특검’ 당시 수사팀장을 차장급이었던 윤 전 대통령이 맡은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 특검 역시 사건 성격과 수사 난이도에 따라 유동적인 인선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내란 특검은 파견 검사 수가 많아 복수의 차장급 간부가 함께 투입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검찰 내부에서는 특검 파견 검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너무 많은 인력들이 특검에 몰려 주요 수사가 불가능해 민생 수사에 위험이 된다는 입장이 나온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최대 6개월에 가까운 기간에 서울남부지검 검사 수(107명)보다 많은 검사들이 3개 특검에 투입되면, 검찰의 주요 수사가 마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관련 특검에 기존 수사팀이 합류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라며 “문제는 해당 부서가 맡고 있는 사건이 특검에 속한 사건 외에도 많이 산적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새로운 인원으로 부서를 다시 꾸린다고 해도 수사기록을 훑어보는 데 시간이 더 걸려 수사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한 검찰 수사관은 “특검팀으로 파견되지 않으면 남은 사람들이 산적해 있는 모든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지금도 인력이 부족해 업무가 과중돼있는 상황이라 ‘차라리 특검으로 파견을 가서 원활하게 수사하고 싶다’는 의견이 수사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수사 난이도 유동적 인선 한 부장검사는 “특검으로 지정된 사건의 규모가 만만치 않기에 수사 베테랑이 파견될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수사 지휘부는 물론 베테랑도 일선청에 남아있지 않아 수사를 하더라도 미흡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검을 경험한 적 있는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특검에는 한창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검사들의 파견된다”며 “하나의 특검만 시작하더라도 일선청에서는 업무과중이 일어나는데 3개의 특검, 특히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3개의 특검을 한번에 하는 것은 검찰을 완전히 마비시키겠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편으로는 특검을 통해 수사력을 인정받아 새롭게 개편되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에서 영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특검에 파견되는 검사들은 수사력을 인정받았다. 성공적인 특검으로 평가받는 ‘ 드루킹 특검’의 허익범 전 특검도 “수사 검사가 특검 성공의 기본”이라며 “가장 정치적인 사건을 비정치적으로 풀어야 하기에 무엇보다 수사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한 검찰 특수부 소속 평검사는 “검찰 내부에서는 특검으로 파견 요청이 온다는 것은 지휘부에 수사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라며 “평검사들 사이에선 ‘파견 이후 특검 지휘부에 수사력을 인정받으면 이후 중수청에서 더 기회를 받을 수 있지 않겠나’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에도 윤 전 대통령이 문재인정부 당시 최순실 국정 농단 특검을 잘 이끈 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으며 그와 같이 수사팀에서 근무했던 검사들도 한 자리씩 꿰찼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은 차장검사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앙지검장을 맡기도 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현재 서울중앙지검 같은 경우 지검장이 부재한 상황”이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도 특검에서 수사력을 인정받고 초고속 승진을 할 수 있었다. 이번 특검은 지난 최순실 국정 농단 특검보다 파견 검사가 많아 수사력뿐만 아니라 지휘력까지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휘부 눈도장 부장 및 차장급 검사들은 특검과 더불어 이직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윤정부 들어서 로펌으로 이직이 잦던 검사들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이후 검찰을 퇴직하더라도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거나 기업의 법무팀으로 이직하는 것 외에는 법조계에 남을 방도가 없던 검찰 간부들이 특검으로 성과를 인정받고 이직해 검찰개혁을 피하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복수의 법무법인 관계자들은 “특검이 진행되는 동안 겸직과 영리행위가 금지돼있는 만큼 특검 이후에는 돌아갈 검찰이 없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로펌들은 이 때를 위해 실력있는 검찰 출신 법조인을 로펌으로 데려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 10대 로펌 소속 변호사는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라며 “3대 특검에 검찰만 다수 파견되는 것이 아니라 로펌 업계에서도 다수 파견을 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 자리가 없다며 이직을 받아주지 않던 로펌들이 문을 열고 다른 사건 대응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기업에서 검찰 출신 인재 스카우트 제의도 늘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김건희 특검의 경우 기업 사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기업이 신속하게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최근 동기들에게 기업 법무팀 이직에 관해 물어보는 사람이 늘었다”라며 “이재명정부가 나온 후 공정거래위원회 인력 충원,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과 관련된 법안을 손보려는 움직임이 계속해서 보이고 있는 상황에 기업은 발등에 불똥 떨어진 듯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김건희 특검에서 기업 사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이권에 조금이라도 연루된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3대 특검을 지휘할 특별 검사는 지난 13일에 지명됐다. 3대 특검을 지휘할 특별검사는 ▲내란 특검은 조은석 전 감사원장 권한대행 ▲김건희 특검은 민중기 전 서울중앙지법원장 ▲채상병 특검에는 이명현 전 국방부 검찰단 고등검찰부장이 지명됐다. “민생 수사에 차질 있어” 검 개혁과는 모순적 태도 조 특검은 박근혜정부 당시인 2014년 대검 형사부장으로서 세월호 참사 검경 합동 수사를 지휘했고, 문정부에서 서울고검장과 법무연수원장을 지냈다. 윤정부 때 감사원 감사위원 시절에는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가 ‘표적 감사’라며 제동을 걸었고, 감사원의 대통령 관저 비리 의혹 감사 결과가 부실하다며 재심의를 주장하는 등 전 정권과 대립했다. 민 특검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문정부 때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사건 조사를 주도했고, 이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역임했다. 이 특검은 군법무관 출신으로, 2022년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장남 병역비리 의혹을 수사한 이력이 있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 인력으로 신속한 수사 착수와 효율성을 위해 기존 수사팀 인원과 특수통 출신 검사 차출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3대 특검은 수사팀을 구성한 뒤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음 달 초에 수사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이 대통령이 각 당 추천 후보자 중 1명씩을 임명하는 시한은 3일 이내인데, 추천 당일 즉시 지명을 완료함에 따라 3대 특검팀 출범에 한층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면서 전 정권 수사엔 검사를 쓰겠다는 모순적 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안팎에선 “민주당 의원들이 검찰을 없애겠다고 외치면서, 정치적 성과가 필요한 수사에 검사를 끌어다 쓰는 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한 10년 차 검사는 “이재명정부가 검찰청 문을 닫겠다고 하는데 직장을 잃게 생긴 검사들이 특검에 들어가고 싶겠느냐”고 말했다. 특수 수사 경험이 있는 한 부장검사도 “정치적 목적으로 사실상 결과를 정해놓고 하는 수사이다 보니, 선뜻 특검에 가겠다는 검사들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부부장검사도 “굳이 특검에 발을 담가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차라리 육아휴직이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2016년 ‘최순실 국정 농단 특검’ 당시 검찰에 재직했던 한 변호사는 “과거 특검팀은 검찰총장에게 편지까지 써가며 수사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젊은 검사들이 많았다”며 “지금은 개혁과 수사를 동시에 하겠다고 하니, 후배 검사들은 마음이 내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수사에 참여” 젊은 검사들 법조계 일각에선 검찰의 칼이 이정부에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정부 시절 전 정권 수사를 이끌었던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2019년 ‘조국 사태’를 집중 수사하며 정권에 맞선 것과 비슷한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차장검사는 “전 정권 수사와 검찰개혁을 동시에 하겠다는 것은 욕심”이라며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으면 수사도, 개혁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계 인사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특검 수사 결과가 나오게 되면, 결국 특수부 검사들의 힘이 훨씬 더 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