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살해위협’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후계구도’ 딴지에 ‘제거작전’ 본격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고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 2명이 검거됐다. 망명 이후 13년 간 끊임없이 신변위협을 받아왔던 황 전 비서.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다르다. 북한이 현역 장교로 짜인 공작 조직을 직접 투입해 살해를 기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위협은 남한 내 고정간첩이나 친북세력에 의한 것으로 추정됐던 것. 이처럼 북한이 극단적인 계획을 시도한 것은 최근 황 전 비서의 행적과 발언이 원인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살해 위해 북 간첩 남파 드러나
망명 후 수백 차례 테러 위협…공작 조직 투입은 처음


북한의 테러대상 1호 황장엽(87)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암살지령을 받은 간첩이 검거되면서 남북을 오갔던 황 전 비서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23년 평안남도 강동에서 일본인 회사 사무원이었던 부친 아래 태어난 황 전 비서는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성장했다.
함북 주을의 경성중학을 마치고 1949년 김일성종합대학에 들어가 대학과정을 마쳤다. 그 뒤 모스크바종합대학에서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을 공부했다. 이 과정을 통해 공산주의 이론의 모태가 된 학문을 연마한 그는 1954년 고국 땅에 돌아와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엘리트 코스 학자 인생
망명으로 ‘테러 인생’

승승장구한 엘리트 인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1958년 노동당 핵심지위로 발탁되면서 김일성의 철학비서, 김일성대학 철학강좌장과 학부장을 거쳐 1965년 총장자리에 올랐다. 42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룬 성과였다. 그 후 10년 동안 총장자리를 지킨 그는 김일성유일사상체계 확립에 관여하면서 당시 후계자였던 김정일을 후원했다.

또 1970년 당중앙위원, 1980년 당비서, 1984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1987년 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정치적 입지도 다져갔다. 이처럼 북한 내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던 황 전 비서는 뜻밖의 선택을 한다. 일흔 넷이라는 나이에 가족을 버린 채 남한으로 망명한 것. 그는 1997년 2월 북경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한 뒤 필리핀을 거쳐 1997년 4월 서울에 도착했다.

당시 황 전 비서의 망명은 국내외에 큰 충격을 던져줬다.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의 이론적 토대를 닦은 당대의 이론가이자 후계자 김정일에게 ‘제왕학’을 가르친 스승의 갑작스런 남한 행은 파문을 낳기에 충분했다. 각종 의혹도 불러일으켰다. 자신이 이룬 모든 성과와 가족들을 버리고 망명을 시도한 동기와 당시 정부의 미심쩍은 대응, 안기부의 사건 개입 여부 등 숱한 미스터리를 남겼던 것.

하지만 황 전 비서를 괴롭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망명 신청 직후부터 그의 목을 조여오던 테러 위협이 그것.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당시 황 전 비서의 망명에 대해 “배신자여 갈 테면 가라”고 언급해 그의 신변에 대한 위협을 예고했다. 이 때문에 황 전 비서 곁에는 늘 7~8명의 경호원이 그를 감싸곤 했다.
이 같은 철통보안 속에서도 테러의 위협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2001년에는 당시 민주당 정대철 위원이 “황장엽씨가 지난 4년간 국내에 거주하면서 270여 차례나 신변 위협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황 전 비서를 향한 어둠의 그림자가 끊이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줬다.

황 전 비서에 대한 위협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그가 누구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다 대내외적인 자리에서 북한 체제의 만행을 비판했다는 것이 일순위로 꼽힌다. 철저히 비밀에 묻혀있었던 북한의 내부사정이 그의 입을 통해 발설될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황 전 비서를 제거해야 했던 것이다.

2004년 3월에는 황 전 비서가 회장으로 있던 탈북자동지회 사무실에 식칼과 위협적인 문구를 넣은 유인물이 발견돼 테러 공포를 고조시켰다. 당시 사무실 출입문에 피로 추정되는 붉은 색 물질이 묻은 황 전 비서의 사진과 식칼, ‘죽여 버리겠다’는 글이 적힌 유인물 10여 장이 뿌려져 있었다. 유인물에는 황 전 비서는 물론 함께 망명한 김덕홍 전 여광무역 사장, 주 콩고 북한 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있다 1991년 망명한 고영환씨 등을 살해하겠다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또 현장에서 발견된 ‘민족 반역자 황장엽은 각오하라’는 제목의 유인물에는 황씨의 반북 활동에 대한 경고가 담겨져 있었다. 이 유인물에는 “이북의 사랑과 믿음에 배신과 변절로 대답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한 마리 미친×처럼 반북모략에 나서고 있다”며 “그것도 모자라 변절자 황장엽은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과 손을 잡고 북을 모략하기 위해 방일 행각까지 계획하고 있다”는 내용의 비난 글이 적혀있었다.

피로 물든 협박 편지
끊이지 않는 테러공포

이뿐만 아니다. 2006년 6월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황 전 비서를 응징하겠다는 내용의 협박편지가 배달됐고 그해 12월에는 빨간 물감이 뿌려진 황 전 비서의 사진과 손도끼가 사무실로 왔다. ‘황장엽은 쓰레기 같은 그 입을 다물라’,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는 내용이 담긴 경고문도 함께였다.

하지만 황 전 비서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신변위협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지난 3월3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서는 자신의 신변안전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경호는 내가 요구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한국 정부 측에서 테러를 우려해서 배려하는 것”이라며 “조금도 김정일의 테러를 겁내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낮추지 않았다. 이날 강연에서 황 전 비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나는 김정일 사생활이나 성격 이야기하러 한국에 온 게 아니다. 내가 김정일 욕하면 뭐하겠나. 업적 가지고만 평가하면 된다. 300만을 굶겨 죽인 게 누구냐”고 전했다.

후계자로 알려진 3남 김정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황 전 비서는 “그 녀석 만난 일도 없고 그깟 녀석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며 “김정일보다 못하면 못했지. 그깟 놈 알아서 뭐하나”라며 “미국 같은 위대한 나라가 관심을 돌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천안함 침몰사고에 북한이 관여했을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그럴 가능성이야 있다. 하지만 가능성만 갖고 책임을 추궁할 수 없다”며 “현재로선 그것과 관련된 정보도 없고 증거가 없어 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다. 황 전 비서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북한정권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4월8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황 전 비서는 “지금 북한은 부친인 김일성 주석 시대보다 독재의 정도가 10배는 더 강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북한은 나를 반역자라고 말하고 있지만 반역자는 국민을 굶어 죽게 하고 있는 김정일이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4일에는 황 전 비서가 망명할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수령을 배반한 개만도 못한 짐승”이라고 황 전 비서를 비난한 문건이 일본 언론에 공개됐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김정일이 황 전 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했을 때 황씨를 격렬하게 매도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김정일은 황 전 비서에 대해 ‘인간도 아니다. 개만도 못한 짐승이나 다름없다. 인생도 얼마 남지 않은 74세에 당과 수령의 신임을 배반한 자를 어떻게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라고 매도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김정일 비난 수위 높아져 극단적 방법 동원했다는 의혹 제기
후계구도 정당화 논리에 문제 생긴다는 우려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여


또 지난 4월5일 북한 매체는 “추악한 민족 반역자 황가(黃家)가 미국, 일본을 싸다니며 미친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고 비난하며 “무사치 못할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위협은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 4월20일 북한이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살해할 목적으로 남파한 간첩 2명이 검거된 것.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와 국가정보원은 이날 위장 탈북한 후 국내로 들어와 황 전 비서를 살해하려한 혐의로 김모(36)씨와 동모(36)씨를 구속했다.

13년 만에 왜 암살지령?
북한 의도 의혹 모락모락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1992년 인민무력부 정찰국(현 정찰총국) 소속 전투원으로 선발된 뒤 1998년 북한 노동당에 입당했다. 본격적으로 남파 훈련을 받은 것은 2004년부터였다. 이후 2008년 11월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장인 김영철 상장으로부터 황장엽 암살 지령을 받고 같은 해 11월 말 두만강을 건너 중국 옌지로 향한다. 중국 옌지에서 중국 내 연락책을 통해 탈북 브로커를 소개받아 12월에 일반 탈북자와 함께 태국으로 갔다. 그리고 올해 1월말 김씨가, 2월 초에는 동씨가 한국에 입국했다.

이들은 남파를 앞두고 다른 사람으로 신분을 위장했다. 이들 중 동씨는 황 전 비서의 친척인 것처럼 신분을 위장한 뒤 “황씨 친척이라 더 이상 승진을 못해 남조선행을 택했다”고 탈북 이유를 둘러댄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이들은 황 전 비서가 자주 다니는 병원이나 장소, 지인 등을 파악해 보고한 뒤 구체적인 살해계획을 지시받기로 했다. 하지만 국내에 들어온 뒤 탈북자 심사과정에서 꾸며낸 인적사항과 동일지역 출신 탈북자와 대질신문을 받다 가짜 경력이 탄로났고 결국 암살지령을 받고 남파된 간첩임을 털어놨다.

이처럼 북한이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 황 전 비서를 제거하려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설이 나오고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최근 황 전 비서의 행적이 원인이 됐다는 것. 망명 이후 김정일 독재정권을 비난해 온 그는 정권교체 이후 김정일에 대한 비난 수위를 한층 높였다. 이런 황 전 비서가 북한에게는 눈엣가시가 될 수밖에 없고 암살시도를 택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은 황 전 비서의 최근 행보가 ‘3대 세습’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 후계구도의 정당화 논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에 암살이란 극단적인 카드를 썼다는 설이다.

한편 이번 간첩 사건에 대해 황 전 비서는 “살해 위협 신경 안 쓴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의 한 측근은 “어제 저녁 간첩들이 붙잡혔다는 뉴스를 보고 황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뭘 그런 걸 신경 쓰고 그러냐’고 말씀하셨다”며 “황 선생님은 2006년 손도끼 협박 때도 ‘어차피 죽을 거 그쪽한테 죽어도 상관없겠지’라고 말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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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고 흔드는’ 민주당 꽃놀이패

‘쥐고 흔드는’ 민주당 꽃놀이패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1일 이재명정부의 첫 정기 국회가 열리면서 100일 대장정이 시작됐다. 늘 그렇듯 각종 입법과 개혁, 예산안 등을 두고 여야가 거세게 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회 첫날부터 기싸움이 만연한 가운데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고삐를 틀어쥐면서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9월에 접어듦과 동시에 빽빽한 일정이 여야를 기다리고 있다. 9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오는 10일, 국민의힘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진행되고, 15~18일 나흘 동안 정부를 상대로 ▲정치▲외교 ▲통일·안보 ▲사회 ▲교육 ▲경제 등 대정부질문이 예정됐다. 벌써부터 국정감사 제보센터를 개설하는 의원실도 눈에 띄었다. 사면초가 국민의힘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민생과 성장, 개혁 안전 등 4대 핵심 과제를 골자로 한 224개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검찰개혁, 금융위원회 등 정부조직법 개정을 포함해 언론개혁, 대법원 개혁 등 공약으로 내걸었던 법안도 지체 없이 빠르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계획을 ‘입법 폭주’라고 비판하며 ‘경제·민생·신뢰 바로 세우기’를 기조로 하는 100대 입법 과제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미래 첨단산업 육성을 비롯한 경제 활성화 및 민생경제 회복, 청년 희망 및 취약계층 돌봄 등을 통해 국민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계획이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이번 정기국회는 인사청문회와 대정부질문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특히 인사청문회서 국민의힘은 최교진·주병기 후보를 정조준하면서 이정부의 ‘인사 실패’ 프레임을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먼저 국민의힘은 최 후보의 과거 음주 운전 전력과 천안함 폭침 관련 음모론을 제기한 것을 문제 삼았다. 당내 교육위원회 간사인 조정훈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최 후보는 인사청문회에서 음주 운전, 학생 체벌, 막말, 천안함 음모론 제기, 부산·대구 폄하 발언, 입시 비리 조국 사태 옹호 등 셀 수 없는 범죄와 논란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며 “그 사과가 진심이라면 자진 사퇴하라. 이재명정부는 후보를 즉각 지명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주 후보에 대해선 세금 ‘상습 체납’ 이력 등을 파고들었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에 따르면 주 후보와 배우자가 공동 소유한 아파트에는 압류 등기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주 후보는 종합소득세 납부기한도 여러 차례 어겼으며 2023년(406만원)과 2024년(183만원) 종합소득세도 올해 6월에야 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민주당은 통일교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 체포동의요구서에 대한 국회 표결을 벼르고 있다. 앞서 지난 1일 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만큼 국회의장은 요구서가 접수된 후 다음 본회의인 오는 9일에 국회 보고를 거쳐 72시간 이내에 표결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다만 국민의힘 교섭단체 연설일인 10일에 체포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어 이날을 제외한 11일 또는 12일 처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정부 첫 정기국회 100일 대장정 권성동 체포동의안 변수도 ‘주목’ 체포동의안은 무기명 투표로 진행돼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의 주도하에 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권 의원은 혐의를 부인하며 체포동의안 처리와는 관계없이 구속 적부심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SNS를 통해 “민주당은 야당 교섭단체 대표연설 일정에 저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집어넣으려 한다”며 “이는 야당 대표 연설을 덮으려는, 국회를 정치 공작 무대로 삼으려는 행태”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원식 국회의장은 민주당과 정치적 일정 거래에 저의 체포동의안을 이용하지 말라”고 밝혔다. 국회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였던 만큼 결국 개원 첫날부터 여야가 격돌했다. 우 의장은 “차이보다 공통점을 통해 함께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화합의 메시지”를 예로 들며 개회식에서 한복 착용을 권유했지만, 국민의힘은 “국회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이재명정권의 독재정치에 맞서자는 심기일전의 취지”라며 검정 양복과 검정 넥타이, 근조 리본을 맨 상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정부와 여당에 항의하는 차원의 퍼포먼스라고 들었지만 정작 애도해야 할 대상은 국민의힘 자당”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황명선 최고위원 역시 “국민이 국회에 바라는 것은 희망과 미래지, 장례식이 아니”라고 일침을 가했다. 국회 상임위에서도 크고 작은 해프닝이 발생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서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검찰개혁 공청회 계획서 채택의 건’을 표결하려 하자 국민의힘 의원이 위원장석 앞으로 몰려가 항의했고, 초선인 민주당 이성윤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가시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초선은 가만히 앉아 있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앉아 있어”라고 반말로 말한 것이 문제가 됐다. 굽히지 않는 강대강 매치 이를 두고 범여권에서는 나 의원을 향한 질타가 쏟아졌고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초선 의원은 의정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냐”며 “5선 의원이 가만히 있으라면 무조건 따라야 하냐. 초선 의원이 가마니인가”라고 직격했다. 정 대표는 “초선 의원이 무엇을 모른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 의원은 일단 예의를 모르는 것 같다”고 공개적으로 저격했다. 검찰개혁 관련 공청회에서도 설전이 오갔다.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담길 검찰개혁안의 핵심은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권 분리 및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공소청 신설인데, 국민의힘이 이를 두고 “검찰해체법을 통해 독재 국가로 가는 길”이라고 반발하면서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높다는 점을 들어 추석 전에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오는 25일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개혁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보인다. 3대 특별검사(내란·김건희·순직해병)의 수사 인력과 기한을 확대하고 재판 중계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더 센 특검법(특검법 개정안)’도 민주당 주도로 상정됐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특검 수사 기간은 기존 한 차례 30일 연장에서 두 차례, 최대 60일까지 연장할 수 있게 된다. ‘3대 특검(내란·김건희·순직해병)’ 재판의 녹화 방송 중계도 가능해진다. 재판 내용이 공개돼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교훈을 후손에 남겨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노란봉투법도 쟁점이다. 국민의힘이 ‘사용자’와 ‘노동쟁의 대상’ 범위를 제한하는 보완 입법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여야의 입법 주도권 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파업 시 대체 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 금지, 형사처벌 규정 개선, 최소한의 방어권 보장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오는 12월까지인 정기국회에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 대표는 소상공인연합회를 찾아 중소기업계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기업 달래기에 나서면서 경제 행보를 넓히고 있다. 저항해도 질질∼ 국민의힘은 매일같이 보이콧과 논평을 쏟아내지만 무용지물이다. 의석수로 민주당을 이길 수 없을 뿐더러, 특검의 대대적 압수수색 등 당 내부도 시끄러운 만큼 민주당이 휘두르는 대로 속절없이 끌려다니는 형국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겨냥해 ‘야당 탄압’ ‘야당 말살’ 프레임 씌우기에 나섰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정치 특검이 연이틀 국민의힘 심장부에 쳐들어왔다”며 “법사위에서는 특검 기간을 연장하고, 특별재판부도 설치하고, 재판까지 검열하겠다는 무도한 법들이 통과될 예정”이라고 소리 높였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민주당을 향해 “요즘 정부여당을 보면 폭주 기관차를 떠올리게 된다”며 “역사적 전례를 보면 폭주 기관차는 반드시 궤도를 이탈해 전복된다”고 꼬집었다. 특검이 국민의힘 압수수색을 시도하고 민주당이 내란특별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지금처럼 과도한 행태를 계속 보이면 국민의 냉엄한 견제가 시작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오 시장은 “지금 국민의힘은 정권을 잃어버리고 이제 겨우 전열을 재정비하는 중”이라며 “그런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과도한 정치 공세로 야당을 뒤흔드는 폭주 기관차의 모습에서 저는 정말 전복이 멀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송언석 원내대표도 “(이번 특검은) 이재명정부의 앞잡이를 자처하고 있는 조은석 정치특검”이라며 “국회의 권위와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는 이재명정권과 특검의 야당 탄압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풍 기우제” 오히려 똘똘 뭉쳤다 윤석열·김건희 지지율 올리는 주역 오히려 민주당은 단일대오로 뭉치면서 “역풍 기우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야당이던 당시 개혁을 앞세워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려고 하면 역풍 타령이 이어졌다”며 “이는 개혁에 걸림돌이 된다. 지금이 개혁 적기다. 순풍이 부는데 이를 자꾸 역풍이라 하는 건 민주당이 돛을 펼치는 걸 막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을 당선시킨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당원 전체의 목소리로 인식돼 당분간은 이들이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치 효능감을 느낀 강성 지지층이 당 분위기는 물론 방향까지 주도하는 만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민주당 의원들의 강경한 태도가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날이 갈수록 민주당 의원들의 혀가 독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강성 지지층에게 있어 지금은 ‘이재명과 개혁의 시간’이다. 아직 국민의힘이 ‘내란 동조범’이라는 꼬리를 떼지 못한 만큼 여야 협치에서 국민의힘은 논외 대상으로 여겨진다. 범여권 의석수를 합하면 180석이 넘는 만큼 입법 과정에서도 국민의힘 눈치를 보거나 숙일 필요가 없다. 정부여당 지지율이 소폭 하락하더라도 다시 솟아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씨가 수사에 비협조적일수록 민주당을 향한 여론이 다시 우호적으로 변하는 상황을 노리는 것이다. 그 예시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의 구치소 CCTV 사건이다. 윤 전 대통령이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며 속옷만 입고 있었다는 민주당 의원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국민의 관심이 다시 전 정권으로 쏠렸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추미애 의원은 자신의 SNS에 “체포영장을 모면하려 한참 나이 차이가 나는 젊은 교도관들을 상대로 온갖 술수와 겁박을 늘어놓는 궁색하고 옹졸한 모습뿐이었다”고 비판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한때 대통령이셨던 분 아닌가, 옷을 입어달라”는 말에 “나 검사 27년 했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 “이거 따르면 앞길이 구만리인 여러분 어떻게 할 거냐” 등 극구 반발했다. 추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은) 내란의 밤에 불법 명령을 내리고, 사령관들에게 따르라고 거듭 재촉해 군 간부들의 신세를 망쳐 놨다”며 “재판 거부와 수사 방해, 회피로 책임지기를 거부하면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갈수록 첩첩산중 여기에 국정감사까지 줄지어 있어 민주당의 강경한 태도가 더욱 강해질 것이란 해석이다. 국정감사는 흔히 야당의 시간으로 여겨지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탄핵의 강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정기국회가 시작된 만큼 국민의힘은 갈 길이 멀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에서 터지니 빠르게 수습해도 세월이 걸릴 것 같다”고 푸념했다. 이어 “걱정인 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수사가 끝나고 상황이 일단락돼도 속은 여전히 곪아 있을 것”이라며 “(민주당은) 계속해서 밀고 들어올 텐데 여기에 대응할 현실적인 방법이 아직은 없어 보인다. 언제까지나 민주당의 실책에 기댈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당 또 다른 솟아날 구멍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띄우기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오는 22일부터 지급되는 정부의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언급하며 “지난번 1차 소비쿠폰이 마중물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물이 콸콸 나오는, 경제계에 활기가 넘치도록 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것만으로 재계엔 긍정의 시그널을 줬다”며 “주가도 3200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고 시총이 700조원 늘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 역시 “이정부 출범 이후 실행한 민생소비쿠폰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22일부터 발급되는 2차 소비쿠폰은 내수와 소비 회복을 더욱 앞당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여당 의원들의 평가로 미뤄볼 때, 민주당은 정기 국회에 돌입하면서 정쟁으로 치우친 국회를 벗어나 민생과 경제로 시선을 돌리며 다시 한번 지지율 견인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