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검찰’에 발목 잡힌 김준규 검찰총장

페어플레이 정신 잊은 ‘새 시대 검찰(?)’ “누굴 위한 수사인가”


‘한명숙 뇌물수수’ 의혹이 무죄로 판결나면서 그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표적수사 논란에 휩싸였던 이번 사건은 그 후폭풍이 검찰의 심장부인 김준규 검찰총장에게 직접 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검찰의 강압수사와 별건수사 사실이 드러나면서 취임 이후 줄곧 ‘신사다운 검찰’로의 변신을 강조해온 김 총장이 각계의 따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것. 일각에선 MB정부 들어 검찰의 표적수사 논란이 제기됐던 사건들이 줄줄이 무효 판결로 끝난 점을 지적, 검찰의 무리한 수사 방식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심지어 법원과 여당마저 검찰을 비판하고 나서 김 총장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김준규호의 ‘새로운 수사 패러다임’ 실종
신사다운, 공정·정확한 수사 어디로?


지난해 5월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검찰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임채진 검찰총장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새로 지명된 천성관 전 서울지검장이 중도에 낙마하면서 검찰 총수의 자리는 한동안 공석으로 남아있어야 했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가 고심 끝에 내놓은 카드가 김준규 검찰총장이다.

때마다 ‘신사검찰’ 강조
혁신 이루겠다더니…

김 총장은 “검찰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많은 어려운 시기이고, 검찰이 상처를 많이 받은 상황이다. 이러한 때 지명 받아 어깨가 무겁다”며 “앞으로 검찰은 검찰답게, 검사는 검사답게 일하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어려운 시기에 수장을 맡은 김 총장은 지난해 8월 취임 직후 땅에 떨어진 검찰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분주했다. 이를 위해 취임 후 열린 전국 검사장회의에서 그는 검찰 수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구체적인 그림을 제시했다.

김 총장은 ▲신사다운 수사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 ▲진실을 밝히는 정확한 수사 등 3대 메시지를 던졌다. 이는 ‘먼지털이’식의 별건수사나 강압수사 등 과거의 잘못된 검찰 수사관행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의지로 이를 통해 국민의 신뢰회복에 나서겠다는 김 총장의 복안이었다. 이후에도 김 총장은 수차례 공식적인 자리에서 변화하는 검찰의 모습을 강조했고, 정정당당하고 명예로운 수사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난 현재 김 총장의 이 같은 구호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각계의 반응이다. 이는 MB정부 들어 검찰이 조사한 다수의 사건들이 표적수사 논란을 받으며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데에 기인한다. 특히 관련사건 대부분이 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나자 각계에선 검찰이 증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 지난해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네르바 기소 사건은 검찰이 공권력을 이용해 ‘표현의 자유’마저 침해하고 있다는 날 선 비난을 받았다. 미네르바 박대성(31)씨는 2008년 인터넷 포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 ‘외화예산 환전업무 8월1일부로 전면 중단’, ‘긴급명령 1호로 정부가 7대 금융기관 등에 달러 매수 금지 긴급 공문’ 등의 글을 올렸고, 이를 두고 검찰은 정부의 환율정책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검찰은 박씨가 정부 정책과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깎아내리고 허위사실을 유포해 공익을 해하는 등 전기통신기본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해 4월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구체적 표현 방식에서 과장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서술이 있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허위의 사실’이라고 인식하면서 글을 게재했다고 보기 어렵고,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도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연이은 무죄 판결에
‘정치검찰’ 꼬리표

법원의 무죄 선고는 지난해 8월에도 이어졌다. 검찰이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배임혐의로 기소한지 1년 만이었다. 당시 검찰은 정 전 사장이 재임 시절 국세청을 상대로 낸 법인세 환급 1차 소송에서 2448억원을 환급받을 수 있음에도 조정을 통해 556억원만 돌려받기로 한 것을 두고 문제 삼았다. 검찰은 이를 두고 정 전 사장이 연임을 목적으로 조정에 합의해 회사에 1892억원의 손해를 입혔다며 업무상 배임혐의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정 전 사장이 KBS의 이익에 반하는 조정을 강행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뿐만 아니다. 수사 초기부터 정치적 색을 띤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MBC <PD수첩> 제작진 기소 사건 역시 올 초 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지난해 6월 <PD수첩> 제작진 5명에 대해 “의도적인 오역이나 왜곡 등으로 사실에 어긋나는 보도를 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있다”며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는 등 나름대로 근거를 갖춰 비판했기 때문에 허위 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제작진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미네르바에서 한명숙까지 표적수사 논란 사건 줄줄이 무죄
여야 곳곳서 무리한 검찰 수사 책임론…김 총장 입지 ‘흔들’


이처럼 표적수사 또는 정치수사로 시선을 모았던 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라 무죄로 판결나자 결국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일삼은 탓이라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 대검찰청의 1심 무죄판결 현황을 살펴보면 2007년 3200여건이었던 것이 2008년 MB정권에 들어 급속히 증가해 3950여건에 달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검찰이 처음부터 확증되지 않은 혐의로 무리하게 기소해 무죄판결 역시 급증하게 된 것이라며 검찰이 성과를 위해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은 최근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뇌물수수 의혹 사건이 ‘무죄’로 판결나면서 절정에 달하고 있다. 애초 검찰은 한 전 총리가 곽영욱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곽씨가 건넸다는 수만 달러 자금의 출처확인과 제3자의 진술도 부족했다. 법원 역시 뇌물수수혐의로 기소했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검찰이 명확한 증거도 없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전 총리에 대해 도덕적 흠집내기를 목적으로 수사를 진행했다는 해석이 더욱 힘을 싣게 됐다.

정계 곳곳에선 김 총장을 두고 한 전 총리에 대한 표적수사를 진두지휘한 책임을 물어 사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2일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검찰은 사건에 대한 무죄를 예상해 물타기를 한 것으로 한명숙 죽이기의 집요한 표적수사”라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검찰총장은 당연히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지적은 여당 내부에서도 퍼져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후 서울시장 선거 대책 등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한나라당 일부 의원 사이에서 “정치권에서 검찰총장의 퇴진을 내놓고 거론하지 못하지만, 이 정도면 검찰총장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내가 검찰총장이라면 사퇴했을 것이다” 등의 이야기가 오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총리에 대한 무죄 판결을 두고 야당에 이어 여당에서까지 김 총장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지는 것은 이번 사건이 평소 김 총장의 신념인 ‘신사다운 수사’와 거리가 멀었던 탓이다. 실제 검찰은 이번 한 전 총리에 대한 뇌물수수 혐의 수사 과정에서 강압수사와 별건수사 등을 강행했다. 검찰이 곽 전 사장으로부터 유리한 진술을 얻기 위해 그를 압박한 사실이 재판부를 통해 드러난 것.

강압·별건수사 드러나
“결국 구습 되풀이” 지적

재판부에 따르면 검찰은 곽 전 사장이 5만 달러를 줬다고 진술한 날은 오후 6시30분에 조사를 마치는 반면 돈을 주지 않았다고 진술한 날은 새벽 2시까지 조사를 강행했다. 또한 검찰은 검찰측에 불리한 증언을 한 전 경호원 윤모씨를 재판 도중 ‘위증혐의’로 수사하는 등 강압수사를 벌였다.

또한 검찰은 1심 선고 전 날 한 전 총리가 한 건설시행사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 여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포착, 관련 건설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공판 중 제보가 들어와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선고를 하루 앞두고 불거진 정치자금 수사는 전형적인 별건수사라는 지적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1심에서 무죄가 날 것 같으니까 또 하나를 찾겠다는 것은 검사의 당당한 태도가 아니다”며 검찰의 별건수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편 김 총장은 한 전 총리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김 총장은 한 전 총리에 대한 선고 직후 “거짓과 가식으로 진실을 흔들 순 있어도 진실을 없앨 수는 없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판결이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했다.


<김준규 검찰총장 프로필>


▲1955년 10월28일 서울 출생
▲1979년 사법시험 합격(21회)
▲1981년 군법무관
▲1984년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
▲1987년 광주지검 장흥지청 검사
▲1988년 서울지검 북부지청 검사
▲1989년 법무부 국제법무심의관실 검사
▲1991년 서울지검 고등검찰관
▲1993년 청주지검 제천지청장
▲1993년 대검 검찰연구관
▲1994년 주 미국 법무협력관
▲1997년 수원지검 특수부장
▲1997년 수원지점 형사3부장
▲1998년 법무부 국제법무과장
▲1999년 법무부 법무심의관
▲2000년 서울지검 형사6부장
▲2000년 서울지검 형사2부장
▲2001년 창원지검 차장검사
▲2002년 인천지검 제2차장검사
▲2003년 수원지검 1차장검사
▲2004년 광주고검 차장검사
▲2005년 법무부 법무실장
▲2007년 대전지검 검사장
▲2008년 국제검사협회(IAP) 부회장
▲2008년 부산고검 검사장
▲2009년 대전고검 검사장
▲2009년 8월 제37대 대검찰청 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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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