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검찰’에 발목 잡힌 김준규 검찰총장

페어플레이 정신 잊은 ‘새 시대 검찰(?)’ “누굴 위한 수사인가”


‘한명숙 뇌물수수’ 의혹이 무죄로 판결나면서 그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표적수사 논란에 휩싸였던 이번 사건은 그 후폭풍이 검찰의 심장부인 김준규 검찰총장에게 직접 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검찰의 강압수사와 별건수사 사실이 드러나면서 취임 이후 줄곧 ‘신사다운 검찰’로의 변신을 강조해온 김 총장이 각계의 따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것. 일각에선 MB정부 들어 검찰의 표적수사 논란이 제기됐던 사건들이 줄줄이 무효 판결로 끝난 점을 지적, 검찰의 무리한 수사 방식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심지어 법원과 여당마저 검찰을 비판하고 나서 김 총장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김준규호의 ‘새로운 수사 패러다임’ 실종
신사다운, 공정·정확한 수사 어디로?


지난해 5월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검찰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임채진 검찰총장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새로 지명된 천성관 전 서울지검장이 중도에 낙마하면서 검찰 총수의 자리는 한동안 공석으로 남아있어야 했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가 고심 끝에 내놓은 카드가 김준규 검찰총장이다.

때마다 ‘신사검찰’ 강조
혁신 이루겠다더니…

김 총장은 “검찰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많은 어려운 시기이고, 검찰이 상처를 많이 받은 상황이다. 이러한 때 지명 받아 어깨가 무겁다”며 “앞으로 검찰은 검찰답게, 검사는 검사답게 일하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어려운 시기에 수장을 맡은 김 총장은 지난해 8월 취임 직후 땅에 떨어진 검찰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분주했다. 이를 위해 취임 후 열린 전국 검사장회의에서 그는 검찰 수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구체적인 그림을 제시했다.

김 총장은 ▲신사다운 수사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 ▲진실을 밝히는 정확한 수사 등 3대 메시지를 던졌다. 이는 ‘먼지털이’식의 별건수사나 강압수사 등 과거의 잘못된 검찰 수사관행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의지로 이를 통해 국민의 신뢰회복에 나서겠다는 김 총장의 복안이었다. 이후에도 김 총장은 수차례 공식적인 자리에서 변화하는 검찰의 모습을 강조했고, 정정당당하고 명예로운 수사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난 현재 김 총장의 이 같은 구호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각계의 반응이다. 이는 MB정부 들어 검찰이 조사한 다수의 사건들이 표적수사 논란을 받으며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데에 기인한다. 특히 관련사건 대부분이 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나자 각계에선 검찰이 증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 지난해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네르바 기소 사건은 검찰이 공권력을 이용해 ‘표현의 자유’마저 침해하고 있다는 날 선 비난을 받았다. 미네르바 박대성(31)씨는 2008년 인터넷 포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 ‘외화예산 환전업무 8월1일부로 전면 중단’, ‘긴급명령 1호로 정부가 7대 금융기관 등에 달러 매수 금지 긴급 공문’ 등의 글을 올렸고, 이를 두고 검찰은 정부의 환율정책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검찰은 박씨가 정부 정책과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깎아내리고 허위사실을 유포해 공익을 해하는 등 전기통신기본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해 4월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구체적 표현 방식에서 과장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서술이 있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허위의 사실’이라고 인식하면서 글을 게재했다고 보기 어렵고,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도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연이은 무죄 판결에
‘정치검찰’ 꼬리표

법원의 무죄 선고는 지난해 8월에도 이어졌다. 검찰이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배임혐의로 기소한지 1년 만이었다. 당시 검찰은 정 전 사장이 재임 시절 국세청을 상대로 낸 법인세 환급 1차 소송에서 2448억원을 환급받을 수 있음에도 조정을 통해 556억원만 돌려받기로 한 것을 두고 문제 삼았다. 검찰은 이를 두고 정 전 사장이 연임을 목적으로 조정에 합의해 회사에 1892억원의 손해를 입혔다며 업무상 배임혐의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정 전 사장이 KBS의 이익에 반하는 조정을 강행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뿐만 아니다. 수사 초기부터 정치적 색을 띤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MBC <PD수첩> 제작진 기소 사건 역시 올 초 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지난해 6월 <PD수첩> 제작진 5명에 대해 “의도적인 오역이나 왜곡 등으로 사실에 어긋나는 보도를 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있다”며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는 등 나름대로 근거를 갖춰 비판했기 때문에 허위 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제작진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미네르바에서 한명숙까지 표적수사 논란 사건 줄줄이 무죄
여야 곳곳서 무리한 검찰 수사 책임론…김 총장 입지 ‘흔들’


이처럼 표적수사 또는 정치수사로 시선을 모았던 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라 무죄로 판결나자 결국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일삼은 탓이라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 대검찰청의 1심 무죄판결 현황을 살펴보면 2007년 3200여건이었던 것이 2008년 MB정권에 들어 급속히 증가해 3950여건에 달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검찰이 처음부터 확증되지 않은 혐의로 무리하게 기소해 무죄판결 역시 급증하게 된 것이라며 검찰이 성과를 위해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은 최근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뇌물수수 의혹 사건이 ‘무죄’로 판결나면서 절정에 달하고 있다. 애초 검찰은 한 전 총리가 곽영욱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곽씨가 건넸다는 수만 달러 자금의 출처확인과 제3자의 진술도 부족했다. 법원 역시 뇌물수수혐의로 기소했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검찰이 명확한 증거도 없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전 총리에 대해 도덕적 흠집내기를 목적으로 수사를 진행했다는 해석이 더욱 힘을 싣게 됐다.

정계 곳곳에선 김 총장을 두고 한 전 총리에 대한 표적수사를 진두지휘한 책임을 물어 사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2일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검찰은 사건에 대한 무죄를 예상해 물타기를 한 것으로 한명숙 죽이기의 집요한 표적수사”라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검찰총장은 당연히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지적은 여당 내부에서도 퍼져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후 서울시장 선거 대책 등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한나라당 일부 의원 사이에서 “정치권에서 검찰총장의 퇴진을 내놓고 거론하지 못하지만, 이 정도면 검찰총장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내가 검찰총장이라면 사퇴했을 것이다” 등의 이야기가 오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총리에 대한 무죄 판결을 두고 야당에 이어 여당에서까지 김 총장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지는 것은 이번 사건이 평소 김 총장의 신념인 ‘신사다운 수사’와 거리가 멀었던 탓이다. 실제 검찰은 이번 한 전 총리에 대한 뇌물수수 혐의 수사 과정에서 강압수사와 별건수사 등을 강행했다. 검찰이 곽 전 사장으로부터 유리한 진술을 얻기 위해 그를 압박한 사실이 재판부를 통해 드러난 것.

강압·별건수사 드러나
“결국 구습 되풀이” 지적

재판부에 따르면 검찰은 곽 전 사장이 5만 달러를 줬다고 진술한 날은 오후 6시30분에 조사를 마치는 반면 돈을 주지 않았다고 진술한 날은 새벽 2시까지 조사를 강행했다. 또한 검찰은 검찰측에 불리한 증언을 한 전 경호원 윤모씨를 재판 도중 ‘위증혐의’로 수사하는 등 강압수사를 벌였다.

또한 검찰은 1심 선고 전 날 한 전 총리가 한 건설시행사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 여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포착, 관련 건설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공판 중 제보가 들어와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선고를 하루 앞두고 불거진 정치자금 수사는 전형적인 별건수사라는 지적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1심에서 무죄가 날 것 같으니까 또 하나를 찾겠다는 것은 검사의 당당한 태도가 아니다”며 검찰의 별건수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편 김 총장은 한 전 총리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김 총장은 한 전 총리에 대한 선고 직후 “거짓과 가식으로 진실을 흔들 순 있어도 진실을 없앨 수는 없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판결이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했다.


<김준규 검찰총장 프로필>


▲1955년 10월28일 서울 출생
▲1979년 사법시험 합격(21회)
▲1981년 군법무관
▲1984년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
▲1987년 광주지검 장흥지청 검사
▲1988년 서울지검 북부지청 검사
▲1989년 법무부 국제법무심의관실 검사
▲1991년 서울지검 고등검찰관
▲1993년 청주지검 제천지청장
▲1993년 대검 검찰연구관
▲1994년 주 미국 법무협력관
▲1997년 수원지검 특수부장
▲1997년 수원지점 형사3부장
▲1998년 법무부 국제법무과장
▲1999년 법무부 법무심의관
▲2000년 서울지검 형사6부장
▲2000년 서울지검 형사2부장
▲2001년 창원지검 차장검사
▲2002년 인천지검 제2차장검사
▲2003년 수원지검 1차장검사
▲2004년 광주고검 차장검사
▲2005년 법무부 법무실장
▲2007년 대전지검 검사장
▲2008년 국제검사협회(IAP) 부회장
▲2008년 부산고검 검사장
▲2009년 대전고검 검사장
▲2009년 8월 제37대 대검찰청 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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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