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기로선 최철홍 보람상조 회장

벼랑끝 ‘상조 신화’… 정면 돌파? 해외 은둔?


국내 상조업체 1위인 보람상조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다. 오너의 비리 혐의가 드러나면서 계약 해지 등 회원들의 이탈이 가시화되고 있는 탓이다. 이 불똥은 상조업계 전체로 튈 조짐마저 보여 가입자 및 업체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런데도 화근의 불씨를 지핀 최철홍 보람상조 회장은 묵묵부답이다. 사건이 불거지기 직전 출국해 감감무소식이다. 정면 돌파냐, 아니면 해외 은둔이냐. ‘죽느냐 사느냐’기로에 선 그는 과연 어떤 복안일까.
1백억 횡령 혐의 오너일가 수사 급물살
전 계열사 압수수색…친형 부회장 구속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난 최철홍 보람상조 회장은 군복무 도중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했다. 마지막 휴가를 받아 들른 집이 사라진 것이다. 당혹감에 휩싸인 것도 잠시, 수소문 끝에 어렵게 찾은 집은 달동네 단칸방이었다. 가족들은 최 회장의 군 생활을 위해 힘든 가정 형편을 ‘쉬쉬’했다. 제대 다음날 곧바로 시작한 일이 보험판매원이다. ‘성공해야 가족이 산다’는 의지는 높은 성과로 나타났고, 이를 발판삼아 1983년 사업을 시작했다.
‘검은돈’파장 어디까지
업체·가입자 불안 고조

최 회장은 현대실업이란 재고 물품을 처리하는 대행업체를 차려 불과 1년 만에 직원이 150명으로 느는 등 쏠쏠한 재미를 봤다. 하지만 이도 잠시. 회사는 부도를 맞게 됐고, 가족이 길거리로 나 앉을 처지에 놓였다. 그의 나이 29세 때다. 최 회장은 막막한 생계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시도했다. 3∼4일 후 병원에서 깨어난 그는 또다시 수술용 메스로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다행히 주변에 빨리 발견돼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사업이 실패하면서 자책감과 비참함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우울증까지 겪게 되면서 스스로 살아갈 가치를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극단적인 선택 이후 병상에서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니 부질없이 삶을 포기하고자 했던 어리석은 마음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생사를 오가면서 ‘죽을 각오로 덤비면 못할 것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리고 새롭게 시작했죠. 그 일이 바로 남들이 모두 꺼리던 상조업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 국내에 처음 등장한 상조업은 당시만 해도 불모지였다. 일본 상조회를 모델로 부산지역에 가장 먼저 도입돼 일부 영세업체들이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품앗이’수준에 그쳤다. 최 회장은 한국업체가 아닌 일본업체를 모델로 삼아 직접 일본을 드나들며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는 등 상조 지식을 쌓았다. 이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좌절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냥 접을까’하는 고민도 많이 했지만 최 회장은 좌절하지 않고 부도 5년 뒤인 1991년 보람상조를 설립했다. ‘주식회사’형태를 띤 사실상 최초의 상조업체였다. 사업 영역과 규모도 영남지역에서 서울 등 수도권으로 점차 확대했다. “상조업계에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한 점이 성공 요인입니다. ‘웰다잉(Well-dying)’문화에 따라 고객 감동 장례서비스를 구축했습니다. 국내 상조문화를 선도한 셈이죠. 고객들에게 단순히 상을 치러주고 장례용품만을 파는 상조회사가 아닌 고객의 아픔을 내 가족의 아픔처럼 정성껏 모시고 있습니다.”
이 결과 보람상조는 설립 이후 지금까지 ‘한우물’에서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다. 보람상조는 업계(상조업체 280여개) 최대인 75만명의 회원을 보유해 전체 가입자(약 265만명) 중 30% 가량을 차지한다. 현재 부금예수금(월 회비)은 1600억원 수준이다. 연간 1만2000여 건의 장·축의를 치르고 있으며, 임직원 3000여 명과 전국 300 여개 지점 및 영업소를 모두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보람상조의 자본금은 5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늘어난 상태다. 총자산은 2006년 375억원, 2007년 478억원, 2008년 531억원 등으로 증가했다. 매출도 2006년 17억원, 2007년 30억원, 2008년 51억원을 기록해 1년에 약 2배씩 늘어났다.

평소 투명경영 강조
출국 전 164억 인출

‘몸집’역시 급격히 불었다. 보람상조는 상조업이 기반인 보람상조개발과 보람상조라이프를 비롯해 보람상조플러스(웨딩), 보람호텔(숙박업), 보람정보산업(프로그램 개발), 보람종합건설(건축업), 더오픈(광고대행사), IT칼라(스튜디오) 등 16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여기에 미국 현지법인 보람USA와 C&Q Enterprise, PNG Trading 등 3개 해외 법인도 운영하고 있다.
최 회장 일가는 양대 축인 보람상조개발과 보람상조라이프를 통해 그룹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두 회사가 100% 오너일가 소유인 것. 보람상조개발은 최 회장이 지분율 67%로 최대주주이며 부인 김모씨가 22%, 최 부회장이 11%를 갖고 있다. 보람상조라이프도 최 회장(47.5%)과 김씨(29.5%), 최 부회장(23%)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 최 회장의 ‘상조 신화’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비리 혐의가 드러나면서 계약 해지 등 회원들의 이탈이 가시화되고 있는 탓이다. 
이 불똥은 전체 상조업계로 튈 조짐마저 보이고 있어 보람상조 가입자뿐만 아니라 다른 상조업체 회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시민단체는 “검찰의 보람상조 수사는 법적 사각지대에 방치돼 무분별한 난립과 과당경쟁으로 얼룩진 상조업계의 총체적 부실 실태가 곪을 데로 곪다가 드디어 터진 것”이라며 “수사 결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여 소비자는 물론 업체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거액의 고객 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 회장이 여러 개의 계열사를 가족과 친인척 이름으로 운영하면서 수년간 고객이 맡긴 돈을 빼돌려 부동산을 사들이는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파악하고 있는 최 회장의 횡령금은 무려 100억원에 이른다. 이 돈으로 부산 동구 P호텔, 사상구 N호텔 등과 외국에 부동산까지 매입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노조, ‘돈다발 전달’동영상 공개
최 회장, 내사 중 출국 감감무소식

검찰은 최 회장이 이들 부동산을 매입한 돈의 출처를 밝혀내기 위해 지난달 전 계열사 압수수색을 끝낸데 이어 지난 1일 최 회장의 형인 최모 부회장을 구속했다. 최 부회장은 최 회장과 짜고 현금으로 받은 고객 미수금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2007년 6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60여 차례에 걸쳐 61억9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 회장 일가가 장의행사를 담당하는 개인사업장인 보람장의개발 소속 장례지도사들이 계열사의 지원으로 행사를 치르고 현금으로 받은 돈을 법인 계좌로 넣지 않고 유용했다는 것이다. 최 부회장은 2006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보람장례식장의 수익금 5억5000여 만원을 자신의 계좌로 입금한 뒤 임의로 카드대금 등으로 쓴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보람상조 노조가 지난 1일 최 회장에게 돈다발을 전달하는 동영상을 공개해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동영상엔 지난해 7월2일 최 회장 부인의 비서가 보람상조 장례행사부 부산사무실에서 돈을 찾아가는 장면이 담겨있다. 이날 전달된 돈만 현금과 수표를 합해 3500만원에 이른다. 노조는 “통상 장례를 치르면서 꽃이나 유골함 등 장례 물품을 판매하면 30%의 리베이트를 받는데 이 돈을 최 회장 일가가 챙겼다”며 “최 회장 일가가 이런 방법으로 부산사무실에서만 매달 1억5000만원에서 2억5000만원을 받아갔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노조로부터 이 영상과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최 부회장 등 경영진을 상대로 횡령 혐의를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다. 최 회장은 평소 ‘투명경영’을 강조해 이번 횡령 혐의와 리베이트 수수 의혹은 충격을 더한다. 부산 모 교회 장로를 맡고 있는 그는 인터뷰나 강연 등에서 “길이 아니면 절대 가지 말아야 한다”, “정직한 자가 반드시 성공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더욱이 최 회장은 검찰의 내사 중 해외로 떠나 본격적인 수사를 피해 출국한 게 아니냐는 해외 도피 의혹까지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1월 부인과 취학연령인 자녀를 데리고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최 회장은 출국하기 직전 개인통장과 법인계좌에서 164억원을 외국으로 인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보람상조가 지난 1월 초 미국법인에 이 돈을 송금한 정황을 포착한 것.
검찰도 이를 근거로 최 회장이 도피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찰은 여러 경로를 통해 최 회장의 귀국을 종용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검찰 관계자는 “미국으로 도피성 출국을 한 최 회장 일가가 자진해서 출두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며 “미국 사법기관에 범죄인 인도요청 등을 통해 신병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람상조 측은 최 회장의 횡령 혐의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P호텔과 N호텔은 각각 보람상조개발㈜, 한국상조보증㈜ 소유로 검찰이 지적한 부동산은 최 회장이나 그 일가 개인이 아닌 계열사 법인 명의로 구입한 것”이라며 “회계법인의 외부감사와 국세청 세무조사에서도 고객 돈을 빼돌린 내용이 적발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출장…곧 돌아온다”
최 회장 입국에 촉각

그는 최 회장의 도피 의혹도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최 회장은 200만 교포를 대상으로 한 상조 해외사업을 위해 미국 현지법인에 출장 중으로 조만간 귀국할 예정”이라며 “혐의가 사실이 아닌 만큼 곧 돌아와 수사에 협조해 직접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최 부회장의 혐의 여부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설사 혐의가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보람상조 법인과는 무관한 개인회사에 대한 부분으로 최근 공정위가 밝힌 대로 고객들에게 돌아갈 서비스는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또 노조가 제기한 리베이트 의혹에 대해선 “회사 대표가 매일 현금을 2000만원씩 가져갔다는 주장은 장례행사를 후 정산한 행사금 잔액이 통상 현금으로 수금되기 때문에 이를 각 지역단위센터에서 취합해 은행에 입금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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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