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로 코너 몰린 김태영 국방부장관

41년 군인인생 천안함과 함께 침몰?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사고에 대한 안타까움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해군의 미흡한 초동대응과 사고과정을 숨기기에만 급급한 태도에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화살은 김태영 국방부장관에 쏠리고 있다. 국방부 수장으로서 위기관리능력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 데다 사고원인 등에 대해 오락가락한 답변을 해 신뢰감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김 장관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천안함 침몰사고 해결 지지부진…김장관에 따가운 눈길
승승장구했던 군인 인생에 커다란 오점 남길 위기 처해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취임 6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국방부장관에 내정됐을 당시만 하더라도 “될 만한 사람이 됐다”는 분위기 속에서 환영을 받았던 김 장관. 하지만 천안함 침몰은 김 장관의 군인인생까지 침몰시키고 있다. 일각에선 김 장관의 퇴진이 기정사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번 사고가 김 장관에게 던진 타격은 크다.

군인 생활 내내 엘리트코스를 밟아 오며 인정받았던 김 장관이기에 이번 사건은 더욱 뼈아프다. 김 장관이 국방부장관으로 내정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당시 이상희 전 국방부장관이 퇴진하면서 차기 장관자리에 낙점된 것이 김 장관이었다. 육사 29기의 선두주자인 김 장관은 여러 모로 국방부장관 자리에 모자람이 없는 인물로 꼽혀왔다. 먼저 야전과 정책부서를 모두 거쳐 군사 현안에 대해 정통하다는 것이 김 장관의 가장 두드러진 장점이었다.

야전과 정책부서 거친 ‘엘리트’
일찌감치 차기 장관으로 낙점

1984년 15사단 26포병 대대장을 시작으로 야전지휘관, 육군사관학교 교수,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등을 거친 김 장관은 야전 지휘관과 정책 부서를 경험한 ‘전략·정책통’이다. 김 장관의 또 다른 강점은 개방적 리더십이다. 김 장관은 평소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부하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아 ‘덕장’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독단적인 의사결정보다는 부하들의 의견을 수렴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성품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부하들과의 스킨십도 중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말해주는 일화도 있다. 2002년 태풍 ‘루사’로 강원도지역에 큰 피해가 있었을 때 김 장관은 2주 동안 공관에 들어가지 않고 장병들과 함께 숙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소탈함과 함께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1군 사령관 시절에는 2000쪽이 넘는 작전계획 서류를 퇴근길에 들고 집에 들어가 검토해 부인의 눈총을 받았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합참의장을 맡을 당시에는 많은 업무량에도 불구하고 생일을 맞은 부하들에게 책을 선물해주고 같은 사무실 사병이 전역하면 회식자리를 마련하는 등 따뜻한 인간미도 두드러졌다. 또 한 가지 장점은 통역 없이도 국제회의에 참여할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췄다는 것. 육사 재학 당시 독일에서 3년간 유학한 경력이 있는 김 장관은 영어 뿐만 아니라 독일어 실력도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기관리에도 철저하다.

김 장관은 매일 5km 이상을 뛰는 ‘마라톤맨’으로 알려져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또 합참의장으로 재직하면서 한ㆍ미 군사관계 업그레이드를 지속적으로 추진한 점으로 인해 한미동맹 발전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이처럼 김 장관의 성품과 평소 생활태도, 업무 추진 스타일 등은 국방과 군 조직문화 발전, 군의 선진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감을 높였다.

이렇다보니 김 장관의 인사청문회는 다른 후보자들과는 달리 별다른 공방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재산문제 등 개인적인 의혹이 불거지지 않았던 김 장관의 청문회에서는 다른 후보들의 청문회와는 달리 국방관련 정책 문제가 주요 현안이었다. 임진강 댐 방류사고에 대한 추궁, 국방예산 문제 및 기무사 민간인 사찰 논란, 군 복무기간 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부각돼 비교적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청문회가 끝이 났다.

하지만 이런 김 장관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북문제. 김 장관은 지난 2008년 3월 합참의장 내정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발언을 해 남북관계 악화의 빌미를 제공한 바 있다. 당시 청문회에서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에게 “북한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해 남한을 공격할 경우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김 장관은 “정밀 타격하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장관은 “제일 중요한 것은 핵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서 타격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미사일 방어 대책을 강구해서 핵이 우리 지역에서 작동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고 말했고 그의 발언에 대해 북한은 “김태영 의장이 사과하지 않으면 모든 남북 대화를 중단하겠다”고 반응해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은 바 있다.

또 하나 걱정스런 부분은 김 장관으로 인해 ‘국방 문민화’가 후퇴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김 장관은 합참의장 이임식과 전역식이 열리고 한 시간 뒤 국방장관 취임식을 가졌다. 이 같은 ‘번개 취임’은 어렵게 진행됐던 국방 문민화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에서는 현역 군인은 전역 10년이 지나야 국방장관에 임명될 수 있다는 점을 국가안전보장법에서 명시하고 있다.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국방 문민화는 자리 잡고 있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전역 1시간 만에 국방부장관에 임명된 김 장관의 사례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계기가 됐다.

‘일류 국방경영’ 다짐
전 장관과 차별화

이처럼 기대와 우려 속에서 국방부 수장이 된 김 장관은 ‘일류 국방경영’을 모토로 내걸고 이상희 전 장관의 색깔을 빼는데 주력했다. 김 장관은 취임사에서 “일류 국방경영을 위해 국방부의 조직 및 업무수행체계 효율화, 저탄소 녹색성장에 기여하는 국방정책, 방위산업의 신성장동력화 등을 꾸준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의욕적으로 장관직을 시작한 김 장관. 하지만 지난 3월 뜻하지 않은 파문에 휩싸였다. 흑인 비하 발언을 해 비난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이 발언은 지난 3월20일 김 장관이 제주도 서귀포호텔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나왔다. 시 김 장관은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야 제주도가 관광 명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아프리카 밀림에 가면 자연이 있다. 그게 관광 명소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거기는 그냥 무식한 흑인들만 뛰어 다니는 그런 곳일 뿐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발언에 ‘제주 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 대책위원회’는 성명에서 “일국의 장관이 아프리카의 사람들을 ‘무식하게 뛰어다니는 흑인’이라는 표현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했다는 것 자체도 심각하지만, 마치 제주의 대표 경관인 강정이 천연의 아름다움만으로는 아프리카의 그런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뉘앙스”라고 비판했다.
 
범대위는 이어 “이는 제주의 대표 경관지이자 천혜의 생태계 지역인 강정마을과 주민들을 사실상 비하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며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이에 대해 분명한 해명과 더불어 도민 앞에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김 장관이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방부 수장으로서 위기관리능력 부족 드러나 신뢰감 하락
지휘부 라인 문책 불가피해 김 장관 향후 거취에 이목 집중 


유은혜 민주당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일국의 국무위원으로서 ‘무식한 흑인’ 운운하는 인종차별적 발언은 크나큰 외교적 결례이며, 이명박 정부가 주창하는 아프리카 등 해외자원외교 측면에서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발언임에 틀림없다”며 흑인 비하 발언을 질타했다. 이어 유 대변인은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이로 인한 외교적 결례와 국익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발언을 한 김 장관은 더 이상 국무위원으로서 자격이 없다”며 “김 국방장관은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 말고, 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데 대한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이에 김 장관은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며 사과했다. 김 장관은 국방부 원태재 대변인을 통해 “제주가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하는 과정에서 돌발적인 발언이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장관은 이어 “‘국무위원으로 좀 더 신중하게 발언했어야 했는데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고 원 대변인은 전했다.

이 같은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 김 장관의 두 번째 위기는 천안함 침몰로 찾아왔다.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김 장관은 국민들에 실망을 안겨줬다. 사고 원인조차 뚜렷이 밝히지 못한데다 초동대응과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도 번번이 어설픈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 장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발언이 이어졌다.

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국방위가 연 전체회의에서 “초동조치는 비교적 완벽하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민주당 서종표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이 해군 초동대응을 잘했다고 말했는데 동의하느냐”고 질문하자 이 같은 답을 내 놓은 것. 이에 대해 의원들과 국민, 유가족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사고원인에 대해서도 오락가락하는 답변을 해 신뢰를 떨어뜨렸다.

장관생활 두 번째 위기
돌파구 찾을지 주목


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이 어떤 짓을 해 놓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침묵)할 수도 있고, 또 오해를 안 받기 위한 행위이거나 도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며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김 장관은 같은 날 열린 국방위에서 “합참의장을 하고 있던 2008년도에 (기뢰)이야기가 있어서 다 수거했다. 기뢰 가능성은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낮은 수심에서 여러 압력으로 인해 진흙이나 펄에 묻혀 있던 기뢰가 떠올랐을 가능성도 열어놓고 조사해야 한다”는 일부 의원의 지적에 “북한 기뢰가 흘러들어와 우리 지역에 있었을 수 있다”고 대답해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김 장관의 모습은 군 전체에 대한 불신감으로 번지고 있다. 또 군과 정부의 위기대응능력에 대해 회의적인 여론이 커진 것에 대해 책임 문제를 피하기 어려울 거란 의견도 많다. 특히 김 장관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안이 사안인 만큼 군의 지휘 라인에 대한 문책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향후 김 장관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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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