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격 ‘갱스터’ 출신 영어강사 덜미

미국에선 ‘살인자’ 한국에선 ‘선생님’


무자격 원어민 영어강사들이 학원가를 누비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한인 폭력조직원으로 살인까지 저지른 한국계 미국인이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해 온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인터폴에 쫓기고 있던 범죄자가 무려 3년 동안 강단에 서온 것이다.

심지어 마약유통과 복용까지 일삼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행정당국과 어학원 등의 허술한 심사체계가 살인범을 영어강사로 만든 것이다. 이런 허점을 노리고 학원가에 입성한 무자격 강사들로 인해 학부모들의 고민은 날로 커지고 있다.


미국 한인 폭력조직에 몸담던 조직원 한국 어학원에서 강사생활
살인혐의로 인터폴 수배 중에도 서류조작으로 손쉽게 취직 성공


2006년 한국에 온 재미교포 R모(26)씨는 영어강사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경기도 수원의 한 어학원에 갔다. 유창한 영어실력에 한국말까지 구사하는 R씨에게 어학원 측은 단번에 호감을 느꼈다. 서류상으로도 별다른 하자가 없었다. 캘리포니아의 한 주립대를 졸업한 재원으로 강사 자격으로 충분했다.

경력이나 범죄증명서 등을 받는 과정도 생략했다. 미국에서 온 젊은 교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에 어학원은 R씨를 채용했고 그날로 R씨는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영어강사가 됐다. 그 후 3년 동안이나 영어강사로 일했지만 누구도 그의 과거를 의심하지 않았다.

살인자가  강사?
서류 위조로 OK

한국계 미국인인 이모(26)씨도 한국으로 건너와 영어강사를 했다. 2004년 입국한 이씨는 지난해 서울 강남의 한 어학원에서 6개월간 영어강사로 일했다. 이씨 역시 서류상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미국 출신에 나이까지 어린 강사를 마다할 리 없었던 어학원은 의심 없이 이씨를 강사로 채용했다. 하지만 이들에겐 무서운 과거가 있었다. 더구나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갱스터’였다는 것.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를 받는 범죄자였다. 심지어 영어강사로 활동할 당시에도 마약유통과 복용을 서슴지 않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는 지난달 23일 R씨와 이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이들 중 R씨는 법원 심사를 거쳐 미국에 넘길 계획이다. 경찰에 따르면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 갱단에 몸담았던 R씨는 한국에 오기 전인 2006년 7월 14일 코리아타운의 한 카페에서 B씨 일행과 싸움을 벌였다.

R씨와 같은 조직에 있는 10여명의 갱스터도 함께였다. 그러다 R씨는 가지고 있던 흉기로 B씨를 찔렀고 B씨는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순식간에 살인자가 된 R씨의 선택은 한국행이었다. 범행 3일 뒤 R씨는 한국으로 도주했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이듬해 살인에 가담한 다른 두 명을 붙잡아 추궁한 끝에 R씨의 신원을 알아냈고, 미국 사법당국은 R씨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를 내리고 한국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그러는 동안 R씨는 한국에서 당당히 영어강사로 채용됐다. 대학졸업증과 허위 이력서 한통이면 거절할 어학원은 없었다. 이름까지 바꾸면서 수사기관의 눈을 교묘하게 피하기도 했다. 이중 국적자였기 때문에 법원 개명신청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쉬웠던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습관은 버릴 수 없었다. 도피 중에도 상습적으로 대마초를 흡연했던 것.

낮에는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어엿한 강사였지만 밤이면 클럽 등지를 떠돌며 마약을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 역시 LA 갱단에서 활동한 조직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살인미수, 신용카드 위변조 등의 혐의로 미국에서 강제 추방당했다. 이런 과정으로 한국에 건너 온 이씨는 R씨와 마찬가지로 학력 위조 등을 통해 어학원에 취업했다.

허술한 관리체계
날라리 강사 양산

이씨의 돈벌이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마약 장사가 부업이었다. 이씨는 미국 현지 갱 조직과 연계해 필로폰 64g(시가 1920만원 상당), 대마초 34.5g(시가 345만원 상당), 엑스터시 등을 밀반입했다. 이씨는 반입이 적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마약을 비닐봉지 속에 넣은 뒤 항문에 숨겨 입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마약은 국내 체류 외국인과 재미교포 출신 영어강사에게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R씨가 인터넷 학위 사이트를 통해 위조된 학위를 외국으로부터 송달받았다고 진술해 피의자가 접속한 사이트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한편 국내로 마약류를 밀반입해 공급하는 재미교포, 유학생 등에 대한 수사를 강화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관계자는 “최근 영어교육 붐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강남 등 수도권 일대 어학원에서 원어민 영어강사를 무분별하게 채용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커 행정당국 및 어학원에서는 영어강사를 채용할 때 학위나 경력 등에 대한 심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당국과 학원의 허술한 검증체제, 위조 자격증으로 판치는 가짜 강사
성범죄, 마약 등 강력범죄 전과자 가릴 방법 없어 위험 노출된 학생들


이처럼 부적합한 과거를 숨기고 강사로 취업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허술한 관리체계에 있다. 어학원의 경우 영어실력이 뛰어나면 부수적인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드물어 어렵지 않게 강사가 될 수 있다. 특히 재미교포의 경우 취업은 더욱 수월해 진다. 한 어학원 관계자는 “현재 출입국 관리법에서는 교포 강사를 채용할 때 범죄경력 증명서를 받으라는 조항이 없어 교포들의 취업이 쉬운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또 하나는 취업 시 필요한 서류들을 위조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데 있다. 해외 웹사이트 등에서 가짜 대학졸업증과 이력서 등의 자료를 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00달러 정도면 신청 후 2주 안에 각종 서류들을 받아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국인이나 교포가 자신의 이력을 속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국내 어학원 정도는 쉽게 뚫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공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초·중·고교에서 선발하는 원어민교사들 가운데도 교사자격에 미치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다.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시의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 초·중·고교에 배치된 원어민 영어강사 중 절반이 교사자격증도 없고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성범죄 전과 외국인
버젓이 강단에서 수업

교사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은 16.2%에 불과했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인 테솔(TESOL) 테플(TEFL) 이수자는 38.9%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학사학위를 소지한 외국인이라면 일정한 자격 유무에 상관없이 원어민 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무자격 외국인 강사들의 범죄도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 자신들의 나라에서 저질렀던 범죄를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저지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마약, 성범죄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유치원과 학교 등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외국인 강사들이 마약혐의로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 가운데는 대학교 정규 강사와 재연배우 등도 포함됐다. 이들 중 미국인 S(46)씨는 1999년 한국에 입국하여 교회부설 학교에서 영어강사로 일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결과 S씨는 중졸 학력이 전부인데다 마약 중독 증세까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강사는 마약을 투약한 채 환각상태에서 강의를 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들은 국제특송화물을 이용,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코카인과 대마쿠키를 밀수입하거나 작년 이란인 마약공급책 L(42)씨를 통해 해시시를 구입, 흡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가하면 지난해 6월에는 대구 경북 지역에서 강사로 활동하던 8명의 외국인이 대마초혐의로 덜미를 잡혔다. 캐나다에서 온 J씨 등은 대학과 외국어학원 등지에서 강사로 일하면서 대마초를 흡입했다.

이들은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으로 연락해 대구시내 클럽과 레스토랑 등에서 만난 뒤 대마초를 돌아가면서 흡연하고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물과 음료수를 많이 마시는 방법으로 약성분을 희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약에 취한 상태로 강의를 한 정신 나간 외국인 강사들도 덜미를 잡혔다. 캐나다와 미국, 뉴질랜드 등의 국적을 가지고 서울지역 초등학교와 유명 어학원에서 일해 온 이들 강사는 이태원 클럽 등지에서 새벽까지 마약을 흡입한 뒤 환각상태로 출근해 영어 수업을 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성범죄 전과가 있는 외국인들도 버젓이 강단에 서고 있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007년에는 수년간 동남아일대에서 아동을 성추행하고 성추행장면을 인터넷에 유포해 인터폴이 전 세계에 공개수배한 성추행범이 한국에서 영어교사로 일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캐나다 국적의 크리스토퍼 폴 닐이 그 장본인. 동남아시아 일대를 돌며 영어강사로 일한 폴 닐은 2002~2004년 사이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지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성추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폴 닐은 아무런 제약 없이 한국으로 들어와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 후에도 태국 등을 떠돌며 강사를 하던 폴 닐은 인터폴의 수사로 결국 덜미를 잡혔다. 다행히 국내에서는 아동성추행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지만 인터폴의 수사가 아니었다면 언제라도 성범죄가 벌어질 수 있었다는 걸 보여준 아찔한 사건이었다. 한 교육 전문가는 “외국인들이 쉽게 강사가 될 수 있는 지금의 시스템에 백인이라면 별다른 확인 없이 전폭적 신뢰를 보내며 아이를 맡기는 세태가 사라지지 않는 한 무자격 영어강사와 그들이 벌이는 범죄는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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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