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갑작스레 떠난 신해철

이젠 전설로…‘굿바이 마왕’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1990년대 록 음악의 대중화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는 ‘마왕’ 신해철이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향년 46세 일기로 별세했다. 뮤지션, 라디오 디제이, 논객 등 우리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쳤기에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3040세대에게 그의 음악은 신세대의 표상이었다. 마왕의 전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지난달 27일 가수 신해철이 심장 이상으로 수술을 받던 오후 8시19분 끝내 세상을 떠났다. 향년 46세로 한국 록의 큰 별이 졌다. 이날 소속사 KCA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신해철은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입원 중이던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동료도 팬들도
애도의 물결
 
KCA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의료진이 사인을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밝혔다”며 “신해철씨가 지난 22일 오후 2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혼수상태로 내원한 뒤 응급 수술을 포함해 최선의 치료를 했으나 끝내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해철씨의 회복을 바라는 모든 분들의 간절한 염원과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복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족 분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앞서 의료진은 심정지에 이른 원인을 찾기 위해 최근 신해철이 장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은 부위를 개복해 응급 수술을 하기도 했다. 당시 KCA 엔터테인먼트는 “의료진이 부어오른 장으로 인한 심장 압박이라는 소견을 냈지만 장 상태가 왜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명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신해철은 동공 반사가 없는 의식 불명으로 위중한 상태였다. 고인의 빈소는 지난 2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에 마련돼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이날 역대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들로 구성된 대학가요제회는 신해철을 애도·추모하는 공식 추모 모임을 가졌다. 신해철은 지난해 대학가요제회 기획팀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대학가요제회에는 배철수, 심수봉, 김경호, 전람회 김동률, 마그마 조하문, 샌드페블즈, 서울대트리오, 이명우, 임백천, 노사연, 썰물, 김학래, 권인하, 정오차, 이재성, 스물하나, 김한철, 조정희, 우순실, 샤프, 이무송, 에밀레, 조태선, 장철웅, 높은음자리, 원미연, 이정석, 조갑경, 유열, 이규석, 작품하나, 주병선, 전유나, 배기성, 이한철, 이상미, 랄라스윗 등의 가수들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연예계는 비통함에 젖었다. 서태지는 최근 엠넷 ‘슈퍼스타K6’ 출연 당시 “신해철을 응원해달라”며 울먹였다. 이날 서태지는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리허설 도중 고민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병원으로 달려간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신해철과 서태지는 6촌 관계다. 서태지는 추모사에서 “우리의 젊은 날에 많은 추억과 아름다운 음악을 선물해준 그 멋진 이름을 기억해주실 겁니다”라고 적었다.
 
연예계의 애도가 SNS 등을 통해서도 잇따랐다. 윤도현은 트위터에 “실감은 안 나고 가슴은 멈칫멈칫하고 난 형한테 마음의 빚도 있고, 남은 가족분들은 얼마나 더 허망할까요? 한국 록의 큰 별이 떠나갔습니다. 해철이 형, 미안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듀오 더 클래식 멤버 김광진 역시 “신해철 님이 세상을 떠났군요.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의 노래와 많은 추억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라고 남겼다. 애도의 물결은 끊이지 않았다.
 
일부 동료 연예인들은 의료과실을 주장하기도 했다. 고인과 절친했던 시나위 기타리스트 신대철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너를 떠나보내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만 해철아 복수해줄 게”라고 분노했다. 장협착증 수술을 담당했던 병원 측은 의료과실을 부인하고 있다. 
 
‘시대의 아이콘’한국 록의 큰별 지다 
깨어 있는 지성으로 사회에 독설 일침
 
정치권도 애도의 물결에 동참했다. 박원순 시장은 트위터에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 같았던 ‘마왕’의 빈자리는 지금보다 살아가며 그 크기가 커져 갈 것입니다. 신해철씨, 당신의 팬이었음에 행복했습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남겼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논평을 통해 고인에게 애도를 표했다.
 
신해철은 지난 2011년 7월 한 종합편성채널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내와 아이들에게 영상으로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그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고 당신의 아들, 엄마, 오빠, 강아지 그 무엇으로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사실이 다시 알려지면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신해철은 생전 인터뷰에서 “뜨지 않은 곡 ‘민물장어의 꿈’은 내가 죽으면 뜰 거다. 내 장례식장에서 울려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각종 온라인 음원 차트에서 ‘민물장어의 꿈’이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했다. ‘민물장어의 꿈’은 2001년 8월 발매된 앨범 ‘락 앤 록(樂 and Rock)’의 수록곡으로 신해철이 작사, 작곡, 편곡을 맡은 곡이다. 스스로의 고뇌, 반성, 꿈에 대한 갈망을 담았다. 이 곡은 잔잔하게 시작되지만 후렴구에서는 절규가 돋보이는 곡으로 신해철이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며 만든 곡으로 유명하다.
 
‘민물장어의 꿈’은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번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없이”라는 비장미 넘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해철은 1990년대 록 음악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끊임없는 음악적 도전을 통해 매력적인 음색을 들려주면서 살아 있는 가사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의식 있는 뮤지션이라는 찬사도 받았다. 그의 음악성과 카리스마를 인정한 팬들은 그를 ‘마왕’ 혹은 ‘천재’라고 부르기도 했다.
 
 
신해철은 서울 보성고등학교 재학 시절 그룹 사운드 활동을 시작한 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이던 1988년, 친구들과 함께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했다. 그리고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하면서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무한궤도는 그 유명한 ‘그대에게’를 열창했다. ‘그대에게’는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대학교 축제나 각종 운동 경기의 단골 응원 레퍼토리로 활용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무한궤도 해체 이후인 89년에는 정석원까지 합류하며 6인조로 재편된 무한궤도로 첫 앨범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발표하고 활발히 활동했다. 당시 그는 빼어난 외모와 신선한 음악으로 많은 팬을 확보했다.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안녕’ 등 히트곡을 쏟아내며 새로운 뮤지션의 등장을 알렸고 이듬해 발표한 ‘마이셀프’ 앨범부터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걸었다.

‘민물장어의 꿈’
음원차트 점령
 
그는 앨범에 수록된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와 같은 노래를 통해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와는 차별화된 음악을 선보였다. 이렇게 개성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신해철은 솔로 뮤지션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뒤 92년 록밴드 ‘넥스트’를 결성했다. 이후 넥스트는 1997년 해체되기까지 1~4집을 발표하면서 1990년대를 대표하는 록그룹으로 로큰롤 음악의 대중화 첨병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넥스트는 ‘도시인’ ‘날아라 병아리’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먼훗날 언젠가’ ‘해에게서 소년에게’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 등 숱한 명곡을 쏟아내며 록음악 팬층을 넓혔다. 그가 창작을 주도한 넥스트의 음악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이나 깊은 철학적 사유를 토대에 두면서도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보였다. 새로운 차원의 록밴드가 등장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전성기를 달리던 넥스트는 97년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다”며 밴드 해체를 선언했다. 이후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과 프로듀싱 공부에 전념했다. 유학을 전후해서는 ‘크롬’ ‘모노크롬’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이름으로 팀 또는 개인 활동을 벌이며 전자 음악 사운드를 접목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대중성 보다는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시 넥스트를 꾸렸고 솔로 뮤지션으로 앨범을 꾸준히 발표했다. 그리고 2002년 미스코리아 뉴욕 진으로 본선에까지 오르고 뉴욕 스미스대학교를 졸업, 금융회사 골드만삭스 일본지사에서 일한 윤원희씨를 유학길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동거를 시작했을 만큼 열정적인 사랑을 했고,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2년간 연애한 끝에 2002년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신해철은 윤원희가 림프암에 갑상선암으로 투병생활을 할 때 끝까지 아내 곁을 지키고 결혼해 애틋함을 더했다.
 
신해철은 2008년 SBS <야심만만2-예능선수촌>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부인 윤원희씨와의 러브스토리를 공개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결혼 전 부인이 암으로 아팠다”며 “나는 원래 결혼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던 사람인데 그런 일을 겪고 나서 더 빨리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신해철은 “(부인과) 병원에 가면 그냥 ‘남자친구’인 것과 ‘제가 이 사람 남편입니다. 보호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다르더라”고 털어놓으면서 “빨리 결혼해 든든한 남편으로서 그 사람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고 더 덧붙이기도 했다. 부인의 암투병 사실을 알고서 결혼한 사연이 전해지며 감동을 선사했다.
 
마지막 어록 “성공보다 행복이 중요”
팬·동료 등 각계각층 슬픈 작별인사
 
신해철은 활동 기간 동안 탁월한 언변을 보여 줄곧 ‘라디오 스타’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에는 MBC FM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도시>의 초대 디제이로서 진행을 맡았고, 2000년대 초에는 SBS 라디오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을 맡아 팬들과 소통했다. 그는 음악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한 의견 표명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MBC <100분 토론>에 여러 차례 출연해 간통제 폐지를 찬성하거나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2002년 대선 당시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반면 이라크 파병만큼은 반대했다. 2008년 이명박 당선자의 영어 공교육 정책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스스로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든지, 영국의 영연방에 들어가 스스로 식민지가 되든지…이게 무슨 엿 같은 소리냐?”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는 천민자본주의를 혐오하기도 했다. 돈이나 출세가 성공이나 행복을 결정짓는다고 보지 않았다. 91년 발표한 ‘나에게 쓰는 편지’의 가사를 보면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엿볼 수 있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4년 전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도 출세지향주의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를 비판했다.
 
“20, 30대가 삶의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희망이 없어요. 이 사회가 대학 1학년부터 겁을 잔뜩 줘서 취직 걱정부터 하게 만드니까 젊어서도 음악에서 뭔가 멋진 일이 일어나길 꿈꾸지 않아요. 영국에서 살면서 영국 노동자들은 상류층으로 살려는 욕망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그 사람들은 퇴근해서 맥주 마시고 일요일 날 축구하고 노조 나갔다가 공장가면서 이대로 살다 죽을 거라고 말하거든요. 걔네는 상류층이 되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해서 천박하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욕망이 없으면 정신이 썩은 놈이라고 하죠. 우리는 지금 천민자본주의 중에서도 가장 쌍스럽고 천박하면서 거기에 겁먹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거예요. 그걸 인정해야 하는 거죠.”
 
최근 발언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종합편성채널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그는 “흔히 꿈은 이뤄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네가 무슨 꿈을 이루는지에 대해 신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성공의 결과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해철은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삶을 대하는 측면에서도 ‘현실에 순응하는 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는 자세를 견지했다. 지금 30, 40대들이 신해철의 죽음에 먹먹해진 건 신해철과 함께 젊음을 고뇌했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신해철은 오랜 공백을 깨고 솔로 6집 앨범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를 발표하며 가요계로 돌아왔다. 또 ‘넥스트유나이티드’를 꾸려 공연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또 최근에는 싱어송라이터 윤종신, 진중권 교수 등과 토크쇼 <속사정 쌀롱> 출연을 예정하며 방송 활동에 박차를 가하려던 차였다. <속사정 쌀롱>은 2회분까지 녹화된 상태다. 신해철은 1회 녹화에 참여했고 예고편이 전파를 탄 바 있다. <속사정 쌀롱> 측은 유족과 협의 끝에 신해철이 출연한 1회 방송분을 내보냈다. 

마왕이 남긴
독설과 감동
 
그는 최근 앨범 발매 당시 인터뷰에서 “내 나이가 마흔여섯이다. 아직도 살 빼라는 요구를 받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쁘게 복귀를 발표한 바 있지만, 건강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1990∼2000년대를 그와 함께 보낸 팬들은 저마다 슬픈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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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