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갑작스레 떠난 신해철

이젠 전설로…‘굿바이 마왕’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1990년대 록 음악의 대중화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는 ‘마왕’ 신해철이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향년 46세 일기로 별세했다. 뮤지션, 라디오 디제이, 논객 등 우리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쳤기에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3040세대에게 그의 음악은 신세대의 표상이었다. 마왕의 전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지난달 27일 가수 신해철이 심장 이상으로 수술을 받던 오후 8시19분 끝내 세상을 떠났다. 향년 46세로 한국 록의 큰 별이 졌다. 이날 소속사 KCA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신해철은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입원 중이던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동료도 팬들도
애도의 물결
 
KCA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의료진이 사인을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밝혔다”며 “신해철씨가 지난 22일 오후 2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혼수상태로 내원한 뒤 응급 수술을 포함해 최선의 치료를 했으나 끝내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해철씨의 회복을 바라는 모든 분들의 간절한 염원과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복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족 분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앞서 의료진은 심정지에 이른 원인을 찾기 위해 최근 신해철이 장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은 부위를 개복해 응급 수술을 하기도 했다. 당시 KCA 엔터테인먼트는 “의료진이 부어오른 장으로 인한 심장 압박이라는 소견을 냈지만 장 상태가 왜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명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신해철은 동공 반사가 없는 의식 불명으로 위중한 상태였다. 고인의 빈소는 지난 2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에 마련돼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이날 역대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들로 구성된 대학가요제회는 신해철을 애도·추모하는 공식 추모 모임을 가졌다. 신해철은 지난해 대학가요제회 기획팀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대학가요제회에는 배철수, 심수봉, 김경호, 전람회 김동률, 마그마 조하문, 샌드페블즈, 서울대트리오, 이명우, 임백천, 노사연, 썰물, 김학래, 권인하, 정오차, 이재성, 스물하나, 김한철, 조정희, 우순실, 샤프, 이무송, 에밀레, 조태선, 장철웅, 높은음자리, 원미연, 이정석, 조갑경, 유열, 이규석, 작품하나, 주병선, 전유나, 배기성, 이한철, 이상미, 랄라스윗 등의 가수들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연예계는 비통함에 젖었다. 서태지는 최근 엠넷 ‘슈퍼스타K6’ 출연 당시 “신해철을 응원해달라”며 울먹였다. 이날 서태지는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리허설 도중 고민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병원으로 달려간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신해철과 서태지는 6촌 관계다. 서태지는 추모사에서 “우리의 젊은 날에 많은 추억과 아름다운 음악을 선물해준 그 멋진 이름을 기억해주실 겁니다”라고 적었다.
 
연예계의 애도가 SNS 등을 통해서도 잇따랐다. 윤도현은 트위터에 “실감은 안 나고 가슴은 멈칫멈칫하고 난 형한테 마음의 빚도 있고, 남은 가족분들은 얼마나 더 허망할까요? 한국 록의 큰 별이 떠나갔습니다. 해철이 형, 미안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듀오 더 클래식 멤버 김광진 역시 “신해철 님이 세상을 떠났군요.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의 노래와 많은 추억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라고 남겼다. 애도의 물결은 끊이지 않았다.
 
일부 동료 연예인들은 의료과실을 주장하기도 했다. 고인과 절친했던 시나위 기타리스트 신대철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너를 떠나보내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만 해철아 복수해줄 게”라고 분노했다. 장협착증 수술을 담당했던 병원 측은 의료과실을 부인하고 있다. 
 
‘시대의 아이콘’한국 록의 큰별 지다 
깨어 있는 지성으로 사회에 독설 일침
 
정치권도 애도의 물결에 동참했다. 박원순 시장은 트위터에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 같았던 ‘마왕’의 빈자리는 지금보다 살아가며 그 크기가 커져 갈 것입니다. 신해철씨, 당신의 팬이었음에 행복했습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남겼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논평을 통해 고인에게 애도를 표했다.
 

신해철은 지난 2011년 7월 한 종합편성채널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내와 아이들에게 영상으로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그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고 당신의 아들, 엄마, 오빠, 강아지 그 무엇으로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사실이 다시 알려지면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신해철은 생전 인터뷰에서 “뜨지 않은 곡 ‘민물장어의 꿈’은 내가 죽으면 뜰 거다. 내 장례식장에서 울려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각종 온라인 음원 차트에서 ‘민물장어의 꿈’이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했다. ‘민물장어의 꿈’은 2001년 8월 발매된 앨범 ‘락 앤 록(樂 and Rock)’의 수록곡으로 신해철이 작사, 작곡, 편곡을 맡은 곡이다. 스스로의 고뇌, 반성, 꿈에 대한 갈망을 담았다. 이 곡은 잔잔하게 시작되지만 후렴구에서는 절규가 돋보이는 곡으로 신해철이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며 만든 곡으로 유명하다.
 
‘민물장어의 꿈’은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번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없이”라는 비장미 넘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해철은 1990년대 록 음악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끊임없는 음악적 도전을 통해 매력적인 음색을 들려주면서 살아 있는 가사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의식 있는 뮤지션이라는 찬사도 받았다. 그의 음악성과 카리스마를 인정한 팬들은 그를 ‘마왕’ 혹은 ‘천재’라고 부르기도 했다.
 
 
신해철은 서울 보성고등학교 재학 시절 그룹 사운드 활동을 시작한 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이던 1988년, 친구들과 함께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했다. 그리고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하면서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무한궤도는 그 유명한 ‘그대에게’를 열창했다. ‘그대에게’는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대학교 축제나 각종 운동 경기의 단골 응원 레퍼토리로 활용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무한궤도 해체 이후인 89년에는 정석원까지 합류하며 6인조로 재편된 무한궤도로 첫 앨범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발표하고 활발히 활동했다. 당시 그는 빼어난 외모와 신선한 음악으로 많은 팬을 확보했다.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안녕’ 등 히트곡을 쏟아내며 새로운 뮤지션의 등장을 알렸고 이듬해 발표한 ‘마이셀프’ 앨범부터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걸었다.

‘민물장어의 꿈’
음원차트 점령
 
그는 앨범에 수록된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와 같은 노래를 통해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와는 차별화된 음악을 선보였다. 이렇게 개성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신해철은 솔로 뮤지션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뒤 92년 록밴드 ‘넥스트’를 결성했다. 이후 넥스트는 1997년 해체되기까지 1~4집을 발표하면서 1990년대를 대표하는 록그룹으로 로큰롤 음악의 대중화 첨병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넥스트는 ‘도시인’ ‘날아라 병아리’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먼훗날 언젠가’ ‘해에게서 소년에게’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 등 숱한 명곡을 쏟아내며 록음악 팬층을 넓혔다. 그가 창작을 주도한 넥스트의 음악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이나 깊은 철학적 사유를 토대에 두면서도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보였다. 새로운 차원의 록밴드가 등장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전성기를 달리던 넥스트는 97년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다”며 밴드 해체를 선언했다. 이후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과 프로듀싱 공부에 전념했다. 유학을 전후해서는 ‘크롬’ ‘모노크롬’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이름으로 팀 또는 개인 활동을 벌이며 전자 음악 사운드를 접목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대중성 보다는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시 넥스트를 꾸렸고 솔로 뮤지션으로 앨범을 꾸준히 발표했다. 그리고 2002년 미스코리아 뉴욕 진으로 본선에까지 오르고 뉴욕 스미스대학교를 졸업, 금융회사 골드만삭스 일본지사에서 일한 윤원희씨를 유학길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동거를 시작했을 만큼 열정적인 사랑을 했고,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2년간 연애한 끝에 2002년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신해철은 윤원희가 림프암에 갑상선암으로 투병생활을 할 때 끝까지 아내 곁을 지키고 결혼해 애틋함을 더했다.
 
신해철은 2008년 SBS <야심만만2-예능선수촌>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부인 윤원희씨와의 러브스토리를 공개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결혼 전 부인이 암으로 아팠다”며 “나는 원래 결혼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던 사람인데 그런 일을 겪고 나서 더 빨리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신해철은 “(부인과) 병원에 가면 그냥 ‘남자친구’인 것과 ‘제가 이 사람 남편입니다. 보호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다르더라”고 털어놓으면서 “빨리 결혼해 든든한 남편으로서 그 사람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고 더 덧붙이기도 했다. 부인의 암투병 사실을 알고서 결혼한 사연이 전해지며 감동을 선사했다.
 
마지막 어록 “성공보다 행복이 중요”
팬·동료 등 각계각층 슬픈 작별인사
 
신해철은 활동 기간 동안 탁월한 언변을 보여 줄곧 ‘라디오 스타’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에는 MBC FM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도시>의 초대 디제이로서 진행을 맡았고, 2000년대 초에는 SBS 라디오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을 맡아 팬들과 소통했다. 그는 음악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한 의견 표명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MBC <100분 토론>에 여러 차례 출연해 간통제 폐지를 찬성하거나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2002년 대선 당시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반면 이라크 파병만큼은 반대했다. 2008년 이명박 당선자의 영어 공교육 정책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스스로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든지, 영국의 영연방에 들어가 스스로 식민지가 되든지…이게 무슨 엿 같은 소리냐?”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는 천민자본주의를 혐오하기도 했다. 돈이나 출세가 성공이나 행복을 결정짓는다고 보지 않았다. 91년 발표한 ‘나에게 쓰는 편지’의 가사를 보면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엿볼 수 있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4년 전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도 출세지향주의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를 비판했다.
 
“20, 30대가 삶의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희망이 없어요. 이 사회가 대학 1학년부터 겁을 잔뜩 줘서 취직 걱정부터 하게 만드니까 젊어서도 음악에서 뭔가 멋진 일이 일어나길 꿈꾸지 않아요. 영국에서 살면서 영국 노동자들은 상류층으로 살려는 욕망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그 사람들은 퇴근해서 맥주 마시고 일요일 날 축구하고 노조 나갔다가 공장가면서 이대로 살다 죽을 거라고 말하거든요. 걔네는 상류층이 되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해서 천박하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욕망이 없으면 정신이 썩은 놈이라고 하죠. 우리는 지금 천민자본주의 중에서도 가장 쌍스럽고 천박하면서 거기에 겁먹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거예요. 그걸 인정해야 하는 거죠.”
 
최근 발언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종합편성채널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그는 “흔히 꿈은 이뤄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네가 무슨 꿈을 이루는지에 대해 신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성공의 결과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해철은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삶을 대하는 측면에서도 ‘현실에 순응하는 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는 자세를 견지했다. 지금 30, 40대들이 신해철의 죽음에 먹먹해진 건 신해철과 함께 젊음을 고뇌했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신해철은 오랜 공백을 깨고 솔로 6집 앨범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를 발표하며 가요계로 돌아왔다. 또 ‘넥스트유나이티드’를 꾸려 공연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또 최근에는 싱어송라이터 윤종신, 진중권 교수 등과 토크쇼 <속사정 쌀롱> 출연을 예정하며 방송 활동에 박차를 가하려던 차였다. <속사정 쌀롱>은 2회분까지 녹화된 상태다. 신해철은 1회 녹화에 참여했고 예고편이 전파를 탄 바 있다. <속사정 쌀롱> 측은 유족과 협의 끝에 신해철이 출연한 1회 방송분을 내보냈다. 

마왕이 남긴
독설과 감동
 
그는 최근 앨범 발매 당시 인터뷰에서 “내 나이가 마흔여섯이다. 아직도 살 빼라는 요구를 받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쁘게 복귀를 발표한 바 있지만, 건강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1990∼2000년대를 그와 함께 보낸 팬들은 저마다 슬픈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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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천조국’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라는 반응이 거듭되는 모양새다. 되짚어 보면 이제 와 말이 안 된다고 하기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조롱과 웃음이 난무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상보다 더 파격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임기 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행했다. 그 공약이 ‘미치광이’ ‘사이코’ 등의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져도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외부 자극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그 행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의 경찰’로 각국 상황에 관여했던 때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관세 부과에서 비롯된 통상 전쟁과 국제 질서 유지를 내세운 타국에 대한 물리적 개입이다. 두 사안 모두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라면 생각은 해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당장 전 세계의 지도자가 반발할 테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겪어야 할 정치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했고 또 하려 하고 있다. 모두가 ‘설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 소유로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시기에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기’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와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는 서로 수천%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관세 부과로 흔들더니 그린란드로 공포 조장 과거 FTA 체결로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 0%를 유지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협상한 일본의 관세 부과율을 기본으로 깔고 조율이 이뤄졌다.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관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전 세계가 통상 전쟁의 여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영토 확장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해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언급했지만 속내는 석유라는 말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제1의 석유 매장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차지하게 되면 세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개편에 나설 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은 물론 산유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자체를 통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 지형을 ‘친미’ 또는 친미 우호 세력으로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가에서는 공산 정권을 유지 중인 쿠바가 다음 표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에도 마이웨이 베네수엘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란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의 섬으로 한반도보다 9배나 큰 섬이다. 인구가 6만여명에 불과하고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라 가치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아래에 묻힌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정학적으로도 좋은 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과거 미국정부는 그린란드를 사기 위해 돈을 제시한 적도 있고,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반발, 무엇보다 그린란드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골적인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상 이유를 들었다. 그린란드를 지킬 수 있는 건 미국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그린란드에 묻혀 있는 자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압송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승리’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면서 극대화됐다. 협상의 기술 자유자재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에 참여 중인 국가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유럽 간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대서양 질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무력 충돌 가능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폐하면서 상황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실제 그의 발언 이후 미국 증시 등은 오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집단 반발, 금융시장 동요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발 후퇴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계속 가다간 나토의 내부 분열은 물론 유럽의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취하는 ‘협상의 기술’을 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협상 기술을 사용해 왔다. 과도한 관세 부과, SNS 사용 등이 그 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어 광물 자원 노리고 장악 시도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을 뿐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 자체가 꺾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진행한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 병합의 당위성을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전략 요충지’이며 ‘북미 대륙의 일부,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예측불가의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우리나라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미국과의 관계인 만큼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후 관리를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 가입 초청장을 60여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의 평화지만 속내는 국제연합(UN) 등을 대체할 다자간 기구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서방 및 친서방 국가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20일 “미국 측 초청에 따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평화위원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제나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임기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일으킨 풍파는 엄청나다. 앞으로 불어닥칠 태풍의 크기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20일 정오까지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