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을 보면 따뜻해지는 이 사람 -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아트룸 정해철 실장

투명한 얼음조각(Icecarving)은 생동감과 웅장함으로 연회장의 분위기를 한껏 높여준다. 최근 국제제과대회 얼음조각 부분에서 한국이 우수한 성적을 거둬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얼음조각은 아직까지 생소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의 아이스카빙 기원은 신라 지증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라상 올릴 때 음식에 띄우는 얼음을 조각하면서부터였다고 하니 그 역사가 1천년을 넘는다. 그러나 활동 영역이 한정돼 있는 탓에 역사에 비해 아이스카버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얼음조각가는 1백여명 정도. 최근 들어 각종 축하연에 얼음조각이 빠질 수 없는 장식물로 인식되면서 얼음조각가는 늘고 있는 추세다.

"얼음조각을 요리합니다"

“얼음조각은 묘한 빛을 내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냅니다. 스스로 녹아 없어지며 예술로 승화하죠.”
얼음조각에 푹 빠져있는 사람이 있다. 누구보다도 시원한 직업을 가진 얼음조각가 정해철(48)씨. 우리나라 초창기 얼음조각을 시작한 그가 지금까지 만든 얼음 작품만도 수천 개에 달한다. 현재 그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아트룸 실장이자 한국 얼음조각가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호텔 내의 모든 국제 행사와 결혼식, 가족행사, 컨퍼런스, 파티에는 그의 얼음조각이 선보인다. 2000년도 26개국 아시아 유럽 정상들의 아셈 행사 때는 피사탑, 에펠탑, 개선문, 남대문 등 26개국의 상징물들을 얼음으로 조각해서 찬사를 받았다. 또한 우리나라 유수의 눈꽃 축제, 얼음 축제, 스키장에는 그가 회장으로 속해있는 얼음조각협회에서 직접 만든 얼음조각 작품들이 선보인다.
“돌이나 나무가 아닌 얼음을 깎아 만드는 조각품은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을 만들 수 있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요.”
‘얼음조각가는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나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하지만 기대를 저버리는 그의 항변.
“어휴, 말도 마세요. 워낙 강도가 센 육체노동에 가까운 일이어서 작품 하나 만들고 나면 속옷까지 땀으로 흠뻑 젖는 게 예사인 걸요. 시원하기는커녕 장화를 신고 일하니 무좀에 걸리기 십상이고. 겨울엔 또 야외에서 작업하다 보면 코나 귀가 얼얼해지죠.”
정씨가 처음 일을 시작한 것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얼음조각가는 불과 10여명에 남짓했다. 아직도 전국에 얼음조각을 하는 이들은 1백여명에 불과하다.
“당시만 해도 전기톱도 없어서 손으로 톱질해서 집채만한 얼음 잘라 원앙도 만들고, 다보탑도 만들었죠.”
정씨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육영숙 여사가 만든 ‘정수직업훈련원’에서 목공예 기술을 처음 배웠다. 전문학교에서 공예전문학과를 다니다가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상 학업도 중도에 포기해야 했다. 그러다 군대를 제대하고 훈련원의 선배의 소개로 당시 워커힐 호텔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얼음조각은 손재주 좋은 주방장이 직접했다. 그러던 것이 주방장보다 목공예 출신인 정씨가 솜씨 좋게 얼음조각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자 소문이 퍼져 어느덧 하얏트 호텔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이어 1988년 서울 올림픽 본부 호텔로 인터컨티넨탈 호텔이 개관하면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수많은 연회의 얼음조각 작품이 들어섰다.
“얼음은 영하 5∼10도에서 48시간 가량 얼려야 투명하고 잘 녹지 않아요. 얼음은 석고나 돌, 나무 등의 소재와 달리 시간이 흐르면 형태가 사라지는 ‘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작업 후엔 많은 아쉬움이 남지요. 하지만 끝없는 창작 욕구를 자극합니다.”

얼음과 사투… 시원하기는커녕 온몸은 땀 범벅
목공예 출신 솜씨 좋아 호텔업계에서 스카우트

얼음조각을 할 때는 순서가 가장 중요하다. 세밀한 부분은 나중에, 두텁고 큰 부분부터 가능한 빨리 조각을 해나가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얼음조각은 냉동실에서 보관되어 행사 1시간 전에 설치된다. 만든 지 2시간 정도 지나 조금씩 얼음이 녹아 내리기 시작할 때가 가장 예쁘기 때문이다. 얼음이 녹으면서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이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이 수정구슬처럼 아름답다는 것이 장씨의 설명이다.
“얼음조각은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죠. 당연히 작업할 때에는 잡념 없이 일에 빠질 수 있고요. 성취감도 아주 좋아요.”
나무나 돌과 같은 다른 재료와 달리 얼음의 성질을 제대로 알고 감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1년을 꼬박 연습해도 작품 하나 완성하기 어려울 만큼 쉽지 않은 일. 얼음 조각을 배워보겠다고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포기해버린 것도 그런 까닭이다.
“힘들지만 큰돈은 되지 않는 직업이지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아직은 얼음 조각의 멋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정씨는 호텔의 고품격 결혼식 행사를 위해서 하트 모양의 얼음 조각에 장미꽃을 넣어 고급스러우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국제 행사 때는 보다 웅장한 작품으로 한국적인 다보탑, 독립문 또는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경주마, 용, 월드컵 4강 기원을 위한 대형 축구 선수 모형, 지난 남북 총리 회담 때는 북한의 대동문 등 그가 만든 작품 수는 이루 셀 수가 없다.
“연회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독수리상이에요. 고희연에는 학이나 봉황, 결혼식 때는 잉꼬나 하트 모양의 조각이 많이 나가죠. 나름대로 꾸준히 개발해 둔 디자인만 1백여종이 넘습니다.”
지난 1월에는 새해를 맞이하여 서울 올림픽 공원 평화의문 광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활약하고 있는 얼음조각가협회 회원들이 얼음조각 전시회를 가졌다. ‘얼음 공룡전’이라는 테마 아래 총 13개의 작품이 선보였으며 이 전시회를 위해서 얼음 4백장(5만6천kg)의 얼음이 사용되었다.  
“외국에서는 얼음조각을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정해줘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제대로 가르치는 교육기관도 없고, 얼음 조각 작품에 대한 홍보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정씨는 앞으로 한국 얼음조각이 대중에게 더욱 알려지고, 일본의 삿뽀로 국제 얼음조각축제나 중국의 ‘빙등제’처럼 우리나라에도 대표적인 얼음축제를 만들어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축제를 통해서 많은 작품 활동으로 얼음 조각을 대중들에게 보다 많이 알리고 싶어요.”
곧 50세를 앞 둔 나이에도 희망을 꿈꾸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


Tip - 얼음조각가가 되려면    
삿포로 동계 얼음조각대회 입상이 지름길
얼음조각에 대한 수요는 해가 거듭될수록 높아지고 있다.
겨울철에는 전국 곳곳에서 ‘눈과 겨울’을 테마로 한 축제가 풍성하게 열리고 있는데 다양한 캐릭터를 조각한 얼음조각들은 풍성한 볼거리로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또 여름에 만들어지는 얼음조각은 시각적인 즐거움과 함께 더위를 식혀주는 역할도 한다.
이렇듯 얼음조각은 사계절 내내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각종 축하연에 빠질 수 없는 장식물로 인식되고 있다. 대형 호텔에서는 ‘아트룸’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얼음조각을 만들고 있으며 결혼식이나 연회 등 각종 축하모임에서 얼음조각의 수요는 날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현재 얼음조각가 분야를 가르치는 전문적인 교육 기관이 없다. 그래서 얼음조각가가 되려면 일단 호텔의 조리부나 아트 분야에 취업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보통 미대를 졸업한 사람이 많이 택한다. 일본의 삿포로 동계 얼음조각대회에서 입상하면 빨리 인정받을 수 있어 얼음조각가가 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얼음조각에 필요한 도구
1? 톱
얼음을 조각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 가운데 하나다. 얼음과 얼음을 붙일 때 사용하며 얼음조각 표면에 거친 느낌을 표현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2? 얼음집게
얼음집게는 조각용 얼음을 눕히거나 세울 때 또는 이동할 때 사용하는 얼음조각에 반드시 필요한 도구.
3? 전기톱
대형 공예작품을 만들 때 얼음을 쉽게 자를 수 있어 조각하는 데 편리한 도구이다. 톱은 크기가 다른 2종류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톱날의 길이가 40~45cm인 것을 사용한다. 얼음조각의 기본인 스케치가 끝나면 가장 먼저 톱의 사용법을 익히게 되는데 조각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얼음조각 작업의 40~50%는 톱을 사용한다.
4? 전동 그라인더
작품의 최종 마무리 전 단계에서 사용하는 그라인더는 세밀한 공예 작업 전에 작품의 모서리를 갈면서 전체적으로 작품을 매끄럽게 다듬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연마석은 굵은 것부터 고운 연마석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5? 평끌(평칼)
평끌은 긴것, 짧은 것, 넓은 것, 좁은 것, 두꺼운 것, 얇은 것 등 크기별로 5가지 종류가 있다. 날의 길이가 12cm, 10cm, 8cm, 5.5cm, 3.5cm 등으로 평끌의 종류는 다양하다. 특별한 사용법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날이 얇은 것을 사용하는 것이 작업하기가 수월하다. 평끌의 종류는 위의 사진에서와 같이 다양하지만 얼음을 조각할 경우 톱을 사용한 다음에는 보통 ‘가장 큰 평끌’을 사용한다. 그러고 나서 한 단계 작은 크기의 평끌을 사용한다.
6? 원형각끌(원형각도)
천사의 날개, 파도 등과 같은 부드러운 곡선과 홈을 만들 때 사용한다.
7? 각끌(각도)
각끌은 넓이가 4cm, 3cm 정도의 크기가 적당하다. 각끌 크기가 같고 칼의 자루가 길면 대형 공예 작품을 만들 때 사용하면 좋다. 전체 공정이 끝나고 최종 마무리 작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구.
8? 창칼
창칼은 주문식이 아닌 맞춤형으로 개인에 맞게 제작하는데 이번에 소개된 창칼은 칼날과 칼자루의 길이가 30-30cm, 30-20cm, 20cm-18cm. 칼자루의 길이는 칼과 함께 본인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조각 특성에 맞도록 주문 제작해야 사용할 때 편하다. 창칼은 각도 칼을 사용하기 전에 전체를 다듬고 정리할때, 움푹 들어 간 곳을 정리할 때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9? 냉각제
순간적으로 분사되는 냉매는 얼음과 얼음 사이를 순식간에 얼릴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칼이나 창 모형처럼 날카로운 부분을 따로 조립할 때 유용한 도구로 얼음조각 작업 중 실수로 떨어뜨리거나 깨진 얼음조각을 붙일 때에도 사용한다.
[10] 줄자
얼음조각에 스케치를 하거나 여러 장의 얼음을 조합하여 대형 작품을 만들 때에 사용하는 것으로 비례를 맞추고 크기를 조정할 때도 줄자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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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