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3대 여름 가전 '대해부'

습기 잡고 더 시원하게 ‘뜨거운 전쟁’

[일요시사 =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일찍 찾아온 무더위로 여름 가전제품 시장이 벌써부터 후끈하다. 특히 제습기 업계 조짐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에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에어컨과 선풍기 업계도 무더위의 영향으로 수요가 급증했다. 여름을 앞두고 가전업체들의 뜨거운 전쟁이 예고된다.

“비만 오면 집안 공기 ‘안습’. 매년 장마철이 ‘기습’. 내 얼굴은 언제나 보습보단 ‘우습’. 우리집 습기는 연습 없는 ‘실습’. 축축하게 살지 말고 ‘제습’”

한 제습기 업체의 광고 CM송이다. 올 여름 시장을 뜨겁게 달굴 제품은 제습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상 기후 영향으로 제습기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제습기 시장
1조 규모 예감

가전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습기 판매량은 2009년 4만대, 2010년 8만대, 2011년 25만대, 2012년 40만대, 2013년 130만대로 4년만에 약 33배나 치솟았다.

2012년 1200억원(약 40만대 판매규모) 규모였던 국내 제습기 시장은 지난해 4000억원까지 올라섰고 올해에는 2배 수준인 8000억원까지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올해 최소 250만대가 팔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판매 금액으로 보면 연 1조원 규모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내년에는 냉장고, 김치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TV와 함께 1조원 가전제품 시장에 제습기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제습기도 필수가전이 된다.


지난해 여름 고온 다습한 날씨로 제습기 시장이 주목받으면서 국내 제습기의 가구당 보급률은 12%까지 올라섰다. 업계에서는 올해 제습기 보급률이 23%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습기는 출시 당시만 해도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2000년대 초반 제습기는 전국적으로 연간 1만∼2만대가량만 팔리는 상품에 불과했다. 그런데 2010년 이후 판매량이 급증했다. 기후변화의 결과물이다.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면서 지난해 여름부터 제습기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온난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한반도 기온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0.18도씩 오르고, 강수량은 매년 21mm씩 늘어나고 있다.

제습기, 고온다습 기후에 필수가전
40개 업체 각축…위닉스 아성 도전

또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이 어느 날 갑자기 매년 2∼3배씩 성장하는 이유는 주부들 입소문의 힘이 크다. 위니아만도가 최초로 출시했던 김치냉장고 ‘딤채’와 비슷한 경우다. 위니아가 딤채를 출시했던 때만해도 소비자들에게 김치냉장고는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주부들의 입소문을 타고 점차 사랑받게 됐다. 제습기도 주부들의 입소문에 의해 급성장한 제품이다.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아열대 기후로 인해 제습기 자체가 필수 가전이 되면서 지난해 폭발적인 수요를 보였다”며 “지난해에는 판매량 예측에 실패했지만 올해에는 물량 확보에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는 올해도 제습기 시장이 지난해에 비해 두 배 가량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벌써 지역에 따라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등 때 이른 더위로 고온 다습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제습기 구매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춘추전국시대
40개 업체 경쟁


여름철이 다가오면서 전자업체들은 본격적으로 습기 잡기 경쟁에 나서고 있다. 제습기 업체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대기업뿐 아니라 쿠쿠전자, 리홈쿠첸, 롯데 기공, 파세코 등 중견업체까지 제습기 시장에 가세했다. 약 40개 업체가 제품을 내놓으면서 제습기 시장 파이는 쪼개질 것으로 보인다. 파이가 커지면서 제습기 시장을 독점해왔던 위닉스와 LG전자는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국내 제습기 시장 점유율 1위(지난해 점유율 33%)를 차지하고 있는 위닉스는 2014년 제습기 ‘위닉스뽀송’을 출시하면서 톱스타 조인성을 모델로 내세워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위닉스는 2014년 제습기 전 제품의 전력소비등급을 1등급에 맞췄다. 전력소모와 소음 등을 최소화한 인버터 제습기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가격은 지난해 수준에 맞췄다.

이에 질세라 LG전자도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LG전자는 위닉스와 시장 점유율 1위를 다투고 있다. 1986년 제습기 사업을 최초로 시작한 LG전자가 28년 만에 처음으로 TV광고를 시작한 것이다. 점유율 1위를 선점하겠다는 의도다.

LG전자는 TV광고에서 ‘인버터 컴프레서’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다. ‘인버터 컨프레서’ 기술로 기존 제습기보다 제습 속도가 빨라졌고, 소음도 낮아졌다고 LG전자는 강조했다.

삼성전자도 LG전자와 함께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 지난 3월부터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삼성전자는 인버터 제습기를 내놓았다.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를 모델로 내세워 광고하고 있다.

중견 가전업체들의 쟁탈전도 치열하다. 위니아만도는 작년 대비 생산 물량을 늘릴 계획이다. 위니아만도는 신형 제습기를 16종이나 새로 내놨다. 올해 제습기 판매량 증가가 확실한 만큼, 다양한 제품군 공급으로 시장 수요에 대비한다는 판단이다.

최근에는 밥솥 시장에서 점유율 1, 2위를 다투고 있는 쿠쿠전자와 리홈쿠첸까지 제습기 전쟁에 뛰어들었다. 국내 포화상태인 밥솥 시장에서 벗어나 제습기를 통해 성장 모델을 찾겠다는 의도다.

작년 제습기를 출시한 쿠쿠전자는 4월부터 5월까지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5배 증가했다. 제습과 공기청정 기능이 함께 들어있는 ‘하이브리드 365’ 제품을 내세워 렌탈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렌탈 서비스 이용 고객은 전체 실적 중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습기도 정수기처럼 필터와 내부 청소 등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제습기 렌탈 이용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쿠쿠전자는 예상하고 있다.

리홈쿠첸도 최근 2014년형 제습기 2종을 새롭게 출시했다. 신제품 ‘CCD-CD10 시리즈’와 ‘CCD-CD15 시리즈’는 각각 일일 제습량 10ℓ, 15ℓ의 넉넉한 양으로 오랜 시간동안 습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리홈쿠첸은 자부했다. 지난달에는 롯데기공이 제습기를 출시하며 소비자 가전시장에 재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렇게 되면서 약 40개의 전자업체가 제습기 시장에 뛰어든 셈이다. 업체들이 시장 파이를 나누면서 위닉스와 LG전자의 아성은 조만간 깨질 것으로 보인다. 제습기 업체가 급증한 이유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제습기를 만드는 기술이 어렵지 않다보니 시장에 도전하는 업체들이 많이 생겨났다”며 “제습기는 6∼7월에 가장 많이 팔리기 때문에 다들 물량 확보에 신경 쓰고 있다”고 전했다.

다재다능 에어컨
삼성 vs LG


에어컨은 최근 제습기의 놀라운 성장에 묻혀 부각되지 않지만 그래도 여름 필수 가전제품이다. 재작년 시장의 불황으로 주춤한 때도 있었지만 지난해부터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사실상 에어컨 경쟁의 승자가 진정한 여름가전 1위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최근 에어컨 시장의 주요 테마는 ‘힐링’이다. 기본적인 기능을 넘어 소리와 향을 부각시키면서 업체들이 ‘힐링’ 마케팅으로 시장몰이에 나서고 있다.

에어컨 시장의 강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벌써부터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예약판매를 진행하면서 지난달부터 ‘힐링’을 내세워 점유율 1위를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마케팅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에어컨 시장의 키워드 ‘힐링’
삼성 vs LG…자존심 건 승부

삼성전자는 ‘휴(休)바람’, LG전자는 ‘내추럴 아로마향’을 특징으로 내세웠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2014년형 삼성 스마트에어컨 Q9000에 채택된 휴바람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쾌하게 느낀다는 한계령 기류패턴을 분석해 적용했다. 특징은 새·파도 등 자연 음향을 함께 들려준다. 한계령의 바람과 소리로 힐링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LG전자는 업계 최초로 천연 아로마향을 전달하는 ‘내추럴 아로마’ 기능을 2014년형 휘센 에어컨에 담았다. 올 신제품 30종에 적용하며 LG전자는 ‘스마트에 힐링을 더한 휘센 에어컨’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에어컨 하단부 토출구 안쪽에 레몬·라벤더향 키트를 내장해 원하는 향을 선택할 수 있다. 숲·정원·언덕 3가지 모드로 제공하며 아로마향과 함께 감성적 음악, 은은한 조명까지 설정해 청각·후각·시각적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했다.


캐리어에어컨과 위니아만도, 동부대우전자 등은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점유율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들 업체는 에어컨 본연의 기능인 냉방성능에 충실하면서도 가격을 낮춘 ‘실속형’ 제품을 선보였다. 캐리어에어컨과 위니아만도의 2014년형 에어컨은 살균 및 공기청정 기능을 강화한 것이 돋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난해 에어컨 판매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올해에는 작년만큼의 호황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실제 에어컨 시장은 2011년 좋았고 2012년에 부진했다. 에어컨 시장은 통상 한 해 호황을 누리면 이듬해 불황을 겪는다. 무엇보다 전세 계약이 2년 단위로 이뤄져 이사할 때 새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늘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날개 없는 선풍기
조용한 전쟁

그동안 잠잠했던 선풍기 시장도 은근히 치열하다. 정부가 2010년부터 전력난을 덜기 위해 전국 2만여 개 공공기관의 여름철 실내온도를 28도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지도하면서부터다. 더운 사무실에서 일해야 하는 직원들은 전력소비를 줄이기 위해 선풍기를 애용하고 있다.

가정에서도 선뜻 에어컨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다. 무턱대고 에어컨을 켰다가는 전기료 폭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뜰한 주부에게는 선풍기가 단연 인기 제품이다. 롯데하이마트에 따르면 무더위 관련 제품의 판매 현황을 집계한 결과 선풍기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 증가했다. 전기료 부담이 적고 여름철을 맞아 성능이 대폭 개선된 중소업체들의 선풍기가 눈길을 끌고 있다.

선풍기 시장 강자로 불리는 한일전기, 신일산업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유통망 확대에 나서고 있다.

특히 한일전기의 ‘초초미풍 아기바람’ 선풍기는 아기를 위한 '약한 바람'을 내세운 역발상으로 엄마들의 큰 지지를 얻고 있다. 4월 이후 1개월여의 기간에만 5만대를 판매했다.

최근 가전제품업체 파세코는 공업용 선풍기 신제품을 출시했다. 파세코는 주력사업인 석유난로 사업의 안전성을 바탕으로 여름 가전제품 라인업을 강화해 이를 개선해 나갈 방침이다.

선풍기, 전력난에 되찾은 인기
날개 없는 제품들 선풍적 반응

최근 선풍기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제품은 '날개 없는 선풍기'다. 지난 2010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혁신적인 선풍기’라고 소개하면서 화제가 됐다.

날개 없는 선풍기의 원리는 이렇다. 공기가 고리모양의 링을 따라 흐르면 이동속도가 빨라진다. 속도가 높아진 공기의 흐름이 에어포일 모양의 경사를 따라 이동하며 공기를 한 방향으로 보내면서 제트 기류를 형성한다. 이때 주변 공기가 제트 기류에 빨려 들어가면서 바람이 만들어진다.

날개 없는 선풍기는 2009년 영국의 생활가전 기업 다이슨이 최초로 개발했다. 다이슨은 이달 더 조용해진 날개 없는 선풍기 ‘다이슨 쿨’ 3종을 국내에 출시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다이슨 쿨은 이전 모델보다 소음을 최대 75% 줄여 음향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날개 없는 선풍기는 시장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저질 제품이 범람하고 있다. 특히 중국산 불량 모조품이 쏟아지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dklo21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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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