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유가족 가슴에 못질한 사람들 ②막 나간 인사들

막말은 기본, 황당한 시추에이션 연발

[일요시사=정치팀] 세월호 침몰 참사로 전 국민이 슬픔에 빠져있다. 그런데 일부 인사들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들이 이런 국민들의 가슴에 또 한 번 대못을 박고 있다. <일요시사>가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일부 인사들의 몰상식한 행태를 모아봤다.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을 포함해 승객 476명이 타고 있던 여객선 세월호가 지난 16일 전남 진도군 해상에서 침몰했다. 특히 이번 사고의 희생자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은 집단 트라우마 증상까지 겪고 있다. 그런데 일부 인사들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은 이런 국민들의 가슴에 또 한 번 대못을 박았다.

집단 트라우마
가슴에 대못

우선 SNS상에서 정치인들의 경솔한 발언이 국민들과 실종자 가족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사고 직후 자신의 SNS에 '현장행' '캄캄바다' '가족' '진도의 눈물' 등의 자작시를 게재해 논란을 일으켰다.

사고 현장에서의 느낌을 짧게 표현했다는 김 지사의 자작시에 일부 누리꾼들은 "이 와중에 시나 쓰고 있다니 지금 백일장 하러 사고 현장에 갔느냐"며 "실종자 가족들은 슬픔에 빠져있는데 운율 맞출 여유도 있냐"고 김 지사를 비판했다. 김 지사는 또 실종자 가족들이 더딘 구조 작업에 대해 항의하자 "경기도 지사는 경기도 안에서는 영향력이 있지만 여기는 경기도가 아니라 힘이 없다"고 발언해 구설수에 올랐다.

새누리당 한기호 최고위원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난데없는 '색깔론'을 제기해 논란을 일으켰다. 한 최고위원은 자신의 SNS에서 "드디어 북한에서 선동의 입을 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적 애도 분위기에 질펀한 술자리
사망자 명단 앞서 기념사진 촬영까지
사고 현장서 먹자판 벌인 장관도 도마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은 지난 2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세월호 실종자 가족 행세를 하며 정부를 욕하고 선동하는 이들이 있다는 글을 게재해 논란이 됐다. 권 의원은 "유가족들에게 명찰을 나눠주려고 하자 그거 못하게 막으려고 유가족인 척하며 선동하는 여자의 동영상이다. 그런데 위의 동영상의 여자가 밀양송전탑 반대 시위에도 똑같이 있다"며 영상을 함께 공개했다.

하지만 권 의원이 공개한 영상은 합성인 것으로 밝혀졌다. 권 의원은 사실 여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실종자 부모를 선동꾼이라며 몰아붙인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권 의원은 곧바로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를 했지만 경찰은 권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민련) 장하나 의원은 지난 17일 자신의 SNS에 "선내 진입 등이 이렇게 더뎌도 될까. 이 정도면 범죄 아닐까?"라는 글을 올려 구조대원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미개한 국민"
구조대원이 범죄자?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인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은 막내 아들의 '미개한 국민' 발언으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정 의원의 막내아들은 지난 18일 SNS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통령이 가서 최대한 수색 노력하겠다는데도 소리 지르고 국무총리한테 물세례 한다.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하다"는 글을 남겼다. 정 의원은 뒤늦게 해당 발언이 알려지자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들의 발언을 대신 사과했다.

정치인들의 경솔한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새누리당 소속 유한식 세종시장은 지난 18일 저녁 세종시 조치원읍 모 식당에서 청년당원들과 폭탄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해 구설수에 올랐다. 새누리당 윤리위원회는 유 시장에 대해 '경고' 징계처분을 내렸다. '경고'는 가장 가벼운 징계처분이다.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도 지난 18일 지역 내 한 술자리에 참석해 건배사를 하고 술을 마신 것으로 알려져 구설수에 올랐다. 특히 당시 식당 TV에서는 세월호 침몰 관련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 구청장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구청장 측은 "원래 회식자리가 아니라 식사를 겸한 월례회의 자리였는데 술자리처럼 상황이 됐다"고 해명했다.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도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인 지난 16일 저녁 공무원들과 술판을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민 청장은 "회계전산과 직원 30여명이 구청 인근 식당에서 식사하는 자리에 잠시 들렀던 것뿐"이라며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새민련 광주시당위원장인 임내현 의원은 지난 20일 광주에서 개최된 마라톤 대회에 '국회의원 임내현'이라고 적힌 조끼 등을 착용하고 참석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새민련 이윤석 의원은 경비정을 타고 세월호 침몰 현장에 갔다가 비판을 받았다. 불필요하게 현장을 방문해 구조에 오히려 방해만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게다가 침몰 현장에 가고 싶다는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는 대부분 묵살된 반면 밤늦게 도착한 이 의원은 보좌진 3명과 함께 곧바로 경비정을 타고 사고해역으로 출항해 특혜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이 의원은 "구조작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실종자 가족들의 하소연을 전달하기 위해 학부모들과 함께 현장에 갔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새민련 소속의 경기도의원 후보였던 송영근씨는 사고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 대표로 활동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송씨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 아님에도 사고가 발생하자 진도로 내려가 실종자 가족 대표를 자처했고 지난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실내체육관을 방문했을 때는 사회를 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를 선거에 이용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거세지자 새민련에서는 송씨의 제명을 안건으로 긴급 윤리위원회를 소집할 계획이었으나 송씨 스스로 탈당을 선택했다.

이외에도 지방선거 후보자들은 세월호 사고에 대한 위로의 뜻을 전하면서 사실상 본인을 홍보하는 선거운동을 펼쳐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여야는 세월호 사고로 지방선거 선거운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100명이 넘는 예비후보들이 본인 명의의 세월호 사고 위로 문자를 시민들에게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시민단체에서는 최근 이 같은 문자를 보낸 예비후보들 148명(새누리당 102명, 새정치민주연합 46명, 교육감 및 무소속후보 제외)의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컵라면에
치킨까지

사고 수습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 관계자들의 경솔한 발언과 행동도 연일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6일 사고 직후 세월호 실종자들이 있는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의전용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당시 실종자 가족들이 차가운 바닥에 앉아 슬퍼하고 있는 모습과 비교되면서 '황제 라면' 논란으로 번졌다.

특히 라면을 놓고 먹은 테이블은 의사와 군 의료진이 진료와 치료를 할 때 사용하던 테이블인 것으로 알려지며 더 큰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서 장관이 라면에 계란을 넣은 것도 아니고 끓여 먹은 것도 아니다"라며 두둔해 논란을 더욱 키웠다.

서 장관은 지난 18일 경기도 안산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단원고등학교 학생 이모군의 빈소를 찾았다가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서 장관의 한 수행원이 빈소 앞쪽에 앉아 있던 유족에게 "장관님 오십니다"라고 전하자 유족이 곧바로 "장관 왔다고 유족들에게 뭘 어떻게 하라는 뜻이냐"며 거칠게 항의해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서 장관은 조문을 마치고 "제가 대신 사과 하겠습니다"라고 짧게 말한 뒤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

못말리는 SNS 실언 퍼레이드
문제 터지면 무조건 사과부터


정부 안전 정책을 총괄하는 안전행정부 강병규 장관은 세월호 사고 당일 현장에 도착해 야식으로 치킨을 먹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구설에 올랐다. 실종자 숫자 파악도 제대로 못한 시점에서 치킨이 넘어가느냐는 비판이었다. 이어 안행부의 송모 국장은 지난 20일 사망자 명단 앞에서 동행한 공무원들과 기념촬영을 하려다 실종자 가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논란이 확산되자 안행부는 3시간 여만에 송 국장을 곧바로 직위해제했다. 안행부는 다음날 제출된 송 국장의 사표도 즉시 수리했다. 물의를 일으킨 송 국장은 박근혜 정권의 첫 훈장 수여자로 알려져 국민들을 더욱 씁쓸하게 했다.

지난해 2월 열린 제1회 국민권익의 날 기념식에서 당시 행정안전부 소속이던 송 국장은 홍조근정 훈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송 국장은 사무관 시절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재난관리법률 제정 작업의 실무를 맡았던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급차 출퇴근
시체장사 막말

사고 현장에 파견된 보건복지부 직원들은 구급차를 출퇴근 용도로 이용해 물의를 빚었다. 구급차는 희생자, 구조자, 실종자 가족을 이송하거나 실종자 가족의 실신 등 위급상황 발생에 대비해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복지부 측은 "짐이 많아 차량 없이는 이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전남도에 업무지원 차량을 요청했더니 구급차가 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22일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 구조 작업과 관련해 부적절한 발언을 한 해경 간부가 직위해제되기도 했다. 목포해경 소속 모 간부는 지난 17일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초기 대응이 미진했던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해경이 못한 게 뭐가 있느냐. 80명 구했으면 대단한 것 아닌가"라고 답해 논란을 일으켰다. 극우논객으로 알려진 지만원 씨는 세월호 참사는 (국가를 전복시키기 위한) 시체장사라는 황당한 음모론을 제기해 유족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세월호 사태에도 조용히 틈새 선거운동

지방선거를 불과 40여일 앞두고 세월호 사태가 터지면서 여야의 선거운동이 모두 중단됐다. 각 당 지도부는 당분간 선거운동은 물론이고 당을 상징하는 색상의 점퍼를 입는 것까지 금지시켰다. 


하지만 선거판 물밑에서는 틈새 선거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일부 후보는 아예 당 상징색과 거리가 먼 하얀색 점퍼를 입고 선거 운동에 나섰고, 대중과 접촉하기 보단 지역 유력 인사들을 대면 마크하는 선거 운동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참에 부족한 공약을 보완하거나 향후 선거 전략을 짜는 데 집중하는 후보가 있는가하면 세월호 사태가 진정되면 곧바로 내보 낼 보도자료나 인터뷰 스케줄을 잡는데 주력하는 후보들도 있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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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