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 부킹룸’ 판치는 부천나이트클럽 잠입기

여인들 날개짓에 뭇 남성들 함박웃음

최근 몇 년 사이 나이트클럽에서의 30대 부킹문화가 확 달라졌다. 보통 부킹이라고 하면 남성들이 여성에게 먼저 접근하고 여성들은 그나마 콧대를 세우는 분위기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관계는 역전이 된다. 남성들이 콧대까지는 세우지 않지만 여성들이 더욱더 적극적으로 남성들과의 부킹을 원한다. 대부분  이혼한 ‘돌싱’이거나 가정주부들이다. 취재진은 부천에 있는 한 나이트클럽에 직접 잠입,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했다.

사실 이들은 남편의 무관심 탓에 외로움을 많이 타고 성관계의 맛도 알기에 내숭 떨 필요도 없고 체면도 필요 없다. 무조건 남성들에게 달려들어 원나잇 스탠드를 통해 쾌락을 즐기고 운이 좋으면 ‘애인 만들기’에도 성공할 수 있다.

여성비율 70%
남성비율 30%

특히 이런 부킹은 대개 룸 안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불꽃’이 튀겼을 때는 바로 현장에서도 섹스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취재진이 ‘중년 부킹’으로 유명한 부천의 한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그곳은 이미 주변에서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여성 비율 70에 남성비율 30.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만큼 그곳에서는 매일 밤 ‘남자 부킹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취재진은 ‘룸을 잡아야 부킹녀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조언에 따라 사전에 지인을 통해 현장의 룸을 잡았다. 도착한 시간은 오후 10시. 아직도 피크 타임은 아니었지만 웨이터들은 한결같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더 많은 여자들이 몰려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룸에 자리 잡은 취재진이 맥주 한두 잔을 기울이고 있을 즈음부터 부킹은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킹녀들에서 20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이곳 나이트클럽 자체가 30대 이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소문이 나 있는 상황이라 20대는 발길을 잘하지 않는다는 것.

이혼녀와 미혼녀가 각각 반반 정도의 비율이라고 한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술에 거나하게 취했고 서슴없는 스킨십과 과감한 대시를 보여주곤 했다. 과거처럼 남자가 쭈뼛대며 말을 걸고 여자는 내숭을 떨며 술이나 얻어먹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사뭇 ‘전투’처럼 보일 정도로 그녀들은 부킹에 열정적이었고 하룻밤을 보낼 남자를 찾고 있는 듯했다.

돌싱 또는 가정주부들 주축 나이트서 원나잇스탠드 낚시질
서슴없는 스킨십과 과감한 대시 예사…부킹성사에 열성적

그중에서 인상적인 대화를 했던 조모(36·여)씨는 “솔직히 남편은 돈도 잘 벌고 나에게도 잘해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게 너무도 답답했다. 뭐랄까 나른한 일상에 재미가 없다고 할까. 그러던 중에 친구 따라 나이트클럽에 왔는데 정말이지 이곳에는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하지만 가정을 깰 생각은 없다. 그저 일상을 견디게 해줄 잠깐의 엔조이, 그냥 그 정도가 필요할 뿐이다. 솔직히 서른다섯 넘으면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외로운 사람들끼리 함께 즐기고 외로움을 나누는 게 뭐가 잘못 됐는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이곳을 찾는 여성들의 상당수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이트클럽을 찾는 듯 했다.

돌싱이든 노처녀든 큰 상관은 없었다. 외로움과 고독감을 이기기 위해선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웨이터의 말에 따르면 상당수의 여성들은 이곳 근처에 살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이 동네에 사는 여자들은 다른 지역의 나이트클럽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이곳에 오는 여성들은 한껏 해방감에 들떠 있는 경우가 많다. 아예 마음먹고 온다는 얘기다. 당연히 남편에게는 동창모임, 친정집 등의 구실을 둘러댄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에게 ‘나이트클럽에 다녀오겠다’고 말하는 여성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성들의 정서와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나이트클럽의 위아래층은 모텔이다. 즉석에서 부킹하고 즉석에서 모텔로 향해 즉석 인스턴트 섹스를 즐기는 것이다.

나이트 원정 온 여성들
더 적극적으로 ‘헌팅’

취재진은 한 이혼녀와 부킹을 해 또 다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같은 나이트클럽이 아니면 섹스 파트너를 만나기가 거의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그녀들의 섹스 파트너를 찾는 훌륭한 통로가 된다는 것.

친구들과 나이트 원정을 왔다는 최모(32·여)씨는 “솔직히 이 나이에 어디 모임에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는 사람들끼리 불륜을 저지르는 것도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직장에서 그런 관계를 맺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이런 나이트클럽은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섹스 파트너를 찾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이런 곳에 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부킹을 하다 보면 의외로 괜찮은 남성을 만날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연인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다”며 “물론 일단 관계가 형성되었다가 나중에 끊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사생활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전화만 받지 않으면 서로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부킹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웨이터가 느닷없이 “마음에 들고 얘기가 잘 되는 여성이 있으면 미리 말씀해 달라”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만약 그런 여성이 있다면 더 이상 부킹을 하지 않을 테니 문을 잠그고 있어도 된다”는 것이다. 취재진은 내침 김에 그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물어보았다.

눈치보고 뜸 들이면
“남자가 왜 저래” 짜증

웨이터는 “남자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여자들은 집에서 빨리 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유부녀일수록 남편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하다. 그런 만큼 모텔에 가는 것조차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어떨 때는 그냥 이곳에서 바로 해결하기도 한다. 콘돔 하나만 있으면 굳이 샤워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요즘에는 샤워하고 비누냄새 풍기고 집에 들어가면 오히려 의심을 많이 받는다. 일부 여성들도 오히려 즉석 섹스를 원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웨이터의 말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성매매 여성들도 아닌 여성들이 처음 만난 남성과 그것도 즉석에서 섹스를 한다는 말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웨이터는 오히려 취재진에게 ‘너무 순진하다’며 “요즘 여자들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아닌가. 정말 요즘 여자들은 장난이 아니다. 애인을 한 명만 두는 여자들은 그나마 약과다. 때로는 4~5명을 섹스 파트너로 두면서 자신의 인생을 즐긴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또 “룸에서 섹스하는 것쯤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남자들이 괜히 쑥쓰러워하고 뜸을 들이면 오히려 속으로는 ‘남자가 왜 저러냐’하고 짜증낸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오래되면 그냥 다른 곳으로 부킹을 가버리고 만다. 여자의 속성을 알아야 여자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 아닌가”라고 조언했다.


룸 안에서 부킹, 불꽃 튀기면 현장에서도 섹스 가능
일각에선 ‘바람과 불륜의 표본 우리들 자화상’ 통탄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흐느적거리는 여자들은 더욱 많아졌고 화장실 주변에는 술에 취해 북적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남자 화장실에 가면서 흘끗 바라본 여자 화장실의 풍경은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술 먹고 말싸움 하는 여자들, 토하는 여자들, 화장실 내에 비치되어 있는 소파에서 잠들어 있는 여성들이 즐비했다.

과연 이곳에서 ‘얌전한 여성’이란 이미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모두들 남자를 만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성적 쾌락과 일상의 스트레스를 마음껏 날리고 싶어 안달이 나있는 상태였다.

특히 이른바 ‘아줌마 부대’가 왔을 때 상황은 더욱 시끌벅적 왁자지껄해진다. 몇 명만 모여도 시끄러운 아줌마들이 떼로 몰려왔을 그 분위기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 그렇다면 과연 남자들은 이런 나이트클럽에 가면서 도대체 어떤 생각들을 하는 것일까.

자영업을 하고 있다는 김모(44)씨는 “솔직히 우리 입장에선 감사할 따름이 아니겠는가. 여자들이 대시를 한다면 우리는 앉아서 가만히 초이스만 하면 되고 또 그녀들이 더욱 간절히 섹스를 원하니 우리는 모텔비 정도만 내주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살다 살다 또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젊을 때만 해도 여자들은 온통 내숭에 수동적이었고 먼저 섹스를 하자고 말하는 것조차 마치 죄를 짓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세상 살면서 산전수전 다 겪다보니 이제 낯도 두꺼워지고 얼굴도 뻔뻔해진 것 같다”고 웃음을 지었다.


“남자 입장에선
감사할 따름”

이제 경기도 인근의 일부 나이트클럽은 완전히 중년들의 해방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겉으로는 멀쩡히 평화롭고 안정적인 가정생활 또는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외로움에 바람과 불륜을 바라는 우리 시대의 슬픈 초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