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정통 한은맨’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

대통령이 꺼낸 경제 히든카드 ‘먹힐까’

[일요시사=사회팀] 한국은행 신임 총재에 이주열(62) 전 한국은행 부총재가 내정됐다. 그는 35년간 한은에서 일한 ‘정통 한은맨’으로 통한다. 인사청문회는 능력 검증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한은 총재 내정 소식에 한은 내부는 반기면서도 미묘하게 술렁이는 분위기다. 이 내정자가 취임하게 되면 조직개편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임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이주열(62) 전 한국은행 부총재를 내정했다. 청와대는 “이 내정자가 한은 업무에 누구보다 밝고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식견과 판단력을 갖췄다”며 내정 배경을 밝혔다. 이 내정자는 “현 시점은 통화 정책을 수행하기 아주 어려운 시기”라며 “앞으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시장과 교감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내정자는 한은의 주요 요직을 경험한 정통 한은맨으로 신망을 받고 있다. 그는 한은 생활 대부분을 조사업무와 통화정책 업무를 맡았다는 점에서 통화신용정책의 전문가라는 장점이 발휘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유의 온화한 리더십도 강점으로 꼽히면서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 부총재 내정
수십년 경력자

신임 한국은행 총재 후보에 이주열 전 부총재가 내정되면서 과거 어느 때보다 안팎의 관심이 높다. 이 내정자는 통화정책의 전문성은 물론 조직관리 측면에서도 적임자라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기업과 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은 통화정책 전문가이면서 시장주의자로도 유명하다. 다만 한은에 오래 머물렀던 경력에 한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큰 무리 없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한은 내부에서는 대체적으로 이 내정자를 반기는 분위기다. 이성태 전 한은 총재 이후 4년 만에 내부 출신 인사가 총재로 내정됐기 때문이다. 직원들과의 소통 능력도 뛰어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 내정자가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만큼 주변에서 떠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조사 연구나 통화정책과 관련해 많은 경험이 있는 분이며 뉴욕 사무소에 뽑혀갈 정도로 업무 능력도 탁월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오랜 기간 한은에 근무하면서 직원들로부터도 신망을 받고 있다”며 “특유의 온화한 리더십으로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도 이 내정자 소식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전임 총재보다는 정책에 대한 시그널을 명확히 하면서 시장과의 소통에도 신경을 써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시장과 정부 사이에서의 가교 역할에 좀 더 신경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물론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내부 출신이라는 점에서 조직관리나 통화정책이 다소 편향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시점은 그 어느 때보다 통화정책이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글로벌 금융 패러다임 전환기를 어떻게 맞이할지 주목된다. 대내적으로는 가계부채 문제와 저물가 기조 지속에 따른 디플레이션 우려, 내수부양을 통한 성장회복 등 통화정책 운용 측면에서 엇박자 신호가 곳곳에 잠재해 있다. 이 내정자는 부담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중요한 시기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간담회를 통해 “총재 후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IB들은 이 내정자를 중립적 기조로 평가했다. 씨티그룹글로벌마켓은 이 내정자 임명 소식에 금리 인상과 금리 인하 가능성 모두 낮아진 것으로 진단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 내정자가 전임자보다 내부 견해에 더 귀를 기울일 것으로 전망하고, 한은이 올해 성장과 물가 예상을 감안하면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앞서 JP모건도 이 내정자를 컨센서스 스타일의 정책 결정자로 평가하고 거시경제 데이터와 금융시장 여건을 중시할 것으로 판단했다. 도이치뱅크는 이 내정자를 베테랑으로 비유하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오는 19일로 예정돼 있는 인사청문회가 향후 행보를 가늠할 수 있는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상 첫 한국은행 인사청문회다. 이 내정자의 청문회를 주관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여·야는 아직까지 개인신상에서 문제 삼을만한 것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재위 여당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 측은 이 내정자가 한국은행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과 내부 평가가 좋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부드럽게 청문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민주당 측도 이 내정자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다. 청문요청안이 접수되고 이를 검토해봐야겠지만 아직까지 이 내정에 대한 신상문제는 크게 문제삼을 만한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기재위 김현미 민주당 의원실 측은 이번 청문회가 정책위주의 질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생산적인 청문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야의 흠집내기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 요직 두루 거친 통화정책 전문가 정평
내부 반기면서도…대폭 물갈이설에 설왕설래

이 내정자의 경우 정권과 유착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개인 신상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시장에선 그를 중도파 혹은 강경파로 보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한은 내부 출신이기 때문에 ‘중도적 매파’로 보고 있다”며 “그의 성향이나 향후 통화정책 방향이 드러날 인사 청문회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한은 직원들은 첫 인사청문회를 겪는 만큼 긴장과 걱정이 가득하다. 한은은 이번 총재부터는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므로 신임 총재 후보자가 임명되기 전부터 인사청문 관련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겠다는 계획을 짜고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막상 후보가 내정된 이후에는 이 내정자와 협의해 인사청문 준비팀을 구성하고 있다. 국회 서면 사전질의에 대한 답변 준비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역대 첫 청문회
무사통과 점쳐져

청문회 단골 지적사항인 재산내역과 관련해서는 분산투자가 눈에 띈다. 이 내정자의 총재산은 2012년 공개 기준 14억3571만원으로 전년보다 줄었지만, 이는 서울 동작구 소재 아파트 시세 하락 때문으로 금융자산은 매년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조성과 증식 등에 대해서는 지적될 만한 사항은 보이지 않지만, 저축은행 사태 당시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저축은행에 분산투자한 것은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저축은행이 대거 퇴출됐던 2011∼2012년 당시에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7개 저축은행에 8개 계좌를 두고 대부분 5000만원 미만을 분산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금자보호법상 저축은행 예금은 원금과 이자를 합쳐 금융기관별로 1인당 5000만원까지 보호된다. 이 내정자는 2010∼2012년 본인 명의로 옛 진흥저축은행에 4518만∼4995만원의 예금이 있었다. 비슷한 기간 배우자는 솔로몬·서울·동부·더블유·현대스위스저축은행에 각각 4500만∼4962만원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진흥저축은행에는 5263만원이 예금됐고, 2011년 5000만원이던 한신저축은행 예금은 이듬해 2078만원으로 줄었다. 이 내정자 부부가 보유했던 8개 저축은행 계좌 가운데 5개는 영업정지 저축은행(솔로몬·진흥·서울·더블유)에 만들어졌다. 이 내정자는 2009년 4월부터 2012년 4월까지 한은 부총재로서 저축은행 영업정지를 의결하는 금융위원회 회의에 참여한 바 있다.

이 내정자 본인은 공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했지만 자녀의 병역문제가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다. 병역회피 여부는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의사인 아들(32)은 인대 파열로 군대를 면제 받았다. 이 내정자는 이에 대해 “(아들이) 운동경기 중 큰 부상을 당했다”며 “청문회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내정자가 청문회를 무사 통과할 경우 별도의 인준절차를 거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임명 절차를 거쳐 곧바로 한은 총재에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 김중수 총재의 임기는 이달 말까지다.

그가 총재로 취임하게 되면 인사와 조직개편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과거 요직을 거쳤다 외곽으로 밀려난 이들을 복귀시키고 ‘한은의 혼’이라 불리는 조사국과 옛 정책기획국·금융시장국 등의 핵심 라인이 재부상할 것이라는 등의 시나리오도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내정자가 단기간에 조직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어차피 박원식 부총재와 강준오·강태수·김준일 부총재보 등의 임기가 내년 4월이면 끝나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이 내정자가 ‘조직을 그대로 가져갈 수 없지만 예전으로 되돌리기도 힘들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대대적인 물갈이에 나설 경우 조직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이 내정자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내정자는 지난 리먼사태 때 확인된 것처럼 필요 시 정부와 유연하게 협조하는 인물로 알려진다. 때로는 정부에 대한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004년 원화가치·유가·실업률이 모두 치솟으며 일명 3고를 겪었던 당시, 조사국장이었던 이 지명자는 정부가 실시했던 고환율정책에 문제를 제기했다. 물가상승을 부추겨 무리를 줄 수 있다고 지적하며 경제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원화가치 상승을 어느정도 용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언론을 통해 한은 고유의 정체성 침해를 경계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2005년 재경부 인사가 콜 금리 동결 과정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을 때도 강한 어조로 비판했었다. 그는 “금리 조정 시 과거에도 정부는 인상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면서 “정부는 금리정책과 관련해 금통위의 독립성을 존중해야 하며 금통위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무대 경험 전무
약점이라면 약점

한은 부총재 시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정부가 매달 금통위에 참석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통화정책의 중립성을 지키는 것이며 결국 금통위원들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내부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김중수 총재 산하 한은 조직에 대한 비판은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때로는 한은에 쏟아지는 비판에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첫 연대 출신 총재…이미 검증된 능력자
한은에만 오래…‘우물 안 개구리’우려도

이 내정자는 연세대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던 지난해 12월 한 언론 기고에서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밝혔다. 그는 “아직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단계가 아니다”라면서 “현 시점에서 통화정책 기조를 바꿔 추가적인 완화 조치로 대응하는 건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면 과감하고 적극적인 정책  운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국가 주도 경제계획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언급하며 “어려울 때일수록 정부를 신뢰하고 따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거시 경제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을 우려하기도 한다. 금리요구를 인상하는 목소리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내정자는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원주 대성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77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해외조사실장·조사국장·정책기획국장을 거쳐 2007년 부총재보, 2009∼2012년 부총재를 역임했다. 재직 기간 중 유학을 떠나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를 취득하기도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은총재에 임명된 8명 중 7명은 서울대 출신이었다. 20대 이경식 총재만 유일하게 고려대 출신이었으며, 이외의 대학 출신자는 전무했다. 그 이전에도 미국·일본 대학이나 서울대 출신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 내정자가 25대 총재로 취임하게 되면 역대 한은 총재 중 처음으로 연세대 출신의 총재가 된다.
강원도 원주 출신의 이 내정자는 또 강원도 출신 두 번째 한은 총재가 될 전망이다. 1987년 이후 한은 총재의 출신지는 서울 2명, 부산 2명, 전북 2명, 강원 1명, 경북 1명으로 다양했다.

친기업·친시장주의
통화정책 편향 우려

한은 총재는 많은 고위직 중에서도 글로벌 감각이 특히 요구되는 자리다. 경제 및 금융 관련 다양한 국제회의에 수시로 참석해 의견을 주고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수준 높은 영어구사 능력은 기본이다. 이 내정자의 어학능력은 국제적 업무를 수행하는 데 문제될 게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는 한은 입사 후 한은 뉴욕사무소에서 3년간 수석조사역을 지내기도 했다. 부총재 당시에는 ADB(아시아개발은행) 연차총회 등 다수의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한은 관계자는 “맡은 보직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한은 이사급 이상의 직위를 맡을 정도가 되면 영어 의사소통에 대한 문제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내정자의 국제적 네트워크는 김 총재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김 총재는 총재직을 맡기 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사를, 총재로 임명된 후에는 BIS(국제결제은행) ACC(아시아지역협의회) 의장직을 맡는 등 다양한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며 한은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반면 이 내정자는 정통 한은맨으로 상대적으로 국제 업무를 해본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국제 업무에 관심을 얼마나 쏟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질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노력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한 금융 관계자는 “이 후보자는 과거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때도 관여했기 때문에 필요할 때 충분히 역할을 할 것”이라며 “국제협력도 총재 혼자서 할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기 떄문에 글로벌 감각에 대해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이주열 내정자는?]

▲강원도 원주 출생
▲원주대성고 졸업
▲연세대 경영학 학사, 펜실베니아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한국은행 조사국 국제경제실 실장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수석조사역
▲한국은행 조사국 해외조사실 실장
▲한국은행 조사국 국장
▲한국은행 정책기획국 국장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 부총재보
▲한국은행 부총재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